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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4. 2. 07:58관심사

꽃을 꺾지 못했다 2
                                                                                               -땡순이-

울 동네는 야트막한 산과 작은 저수지가 아담스레 얽힌 곳이다. 칠십점짜리 풍경은 되지 싶다. 호젓한 자리도 두세 군데 있어서 청체불명의 원앙들이 솔찮게 잦아드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명당은 저수지방둑 건너편 비탈, 입산금지 바리케이드 앞이 되겠다. 경관 좋지. 외부의 시선 완벽하게 차단되지. 수도권 백대 성지(性地)를 뽑으면 말석은 차지하지 않을까. 그 명당의 진가를 실감하려면 인적 끊기는 저녁 무렵에 가봐야 한다. 그 시간 그 자리에 차 한대 외로이 서있으면 열에 열 몰지각한 원앙들이 엉큼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어제 뒷동산을 돌다 저녁 어스름을 타고 내려오던 길이었다. 문제의 명당자리에 빨간 티코 한대가 대구리를 박고 서있었다. 티코는 길거리에서 본 지도 오래 됐고 그 자리에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신성한 밀어 앞에 어찌 차종의 차별이 있으랴. 모퉁이 안쪽으로 얼른 몸을 감추고 십미터쯤 전방의 티코 쪽으로 목을 길게 늘여 뺐다. 아니나 다를까. 앞창 유리너머로 츠자의 얼굴 대신 뒤통수와 등짝이 보였다. 계집이 사내의 허벅지에 걸터앉는 고전적인 자세가 틀림없었다. 저 옹색한 깡통 안에서 그 발랄 무비한 운동방식이 가능하단 말인가? 내가 군자의 도리도 팽개치고 길옆에 붙어 살금살금 걸음을 옮겨놓은 것은 어디까지나 이런 학문적 호기심의 발로였다.

그러나 내 호기심은 두세 걸음도 못 가서 저지를 당하고 말았다. 뜻밖의 사태가 돌발하였기 때문이다. 티코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놀란 토끼로 변해 길모퉁이 뒤로 부랴부랴 철수했다. 급작스런 진동의 진원지는 티코 안에 거꾸로 앉은 츠자였다. 츠자의 어깨와 등짝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보아하니 예열을 마치고 바야흐로 팔부능선으로 치닫는 형국이었다. 츠자의 몸부림은 더 사나와지고 그에 따라 차체의 진동도 더 거세졌다. 차문 한짝은 떨어져 나가고도 남을 기세였다. 낡은 침대가 삐걱거리는 환청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츠자는 힘만 장사가 아니었다. 그 비좁은 속에서 엇박까지 섞어가며 맷돌질과 절구질을 배합하는 솜씨가 하루이틀 닦은 기량이 아니었다.

평상시 나는 무정한 길손으로 악명이 높다. 엉큼한 원앙들을 만나면 인정사정없이 없다. 성큼성큼 지나간다. 어흠어흠 소리도 곁들이고, 수틀리면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졸지에 찬물을 뒤집어쓴 원앙들은 혼비백산에 우왕좌왕이다. 대개 얼굴을 감싸쥐거나 아무데나 대구리를 들이박는다. 이 세상에 그보다 더 고소한 구경거리가 있을까? 없다! 그러나 산동백을 꺾지 못하고 내려오던 어제 저녁은 마음이 달랐다. 츠자의 필사적인 몸부림이 내 가슴을 아연 숙연하게 만들었다. 나는 경건하게 앞섶을 여미고 나직하게 읊조렸다.

꽃은 산과 들에서만 피는가.
살과 넋에서도 꽃은 피노라.
이것이 욕정이면 저것도 욕정
같은 근원 같은 운명이로세.


심사가 도도해지길래, 다시 한수,

기다려라 꽃은 그대 안에 있나니
뜻없이 솟아나 속절없이 꺼져가는 순간이여
그 순간의 허망 위에 머무를 줄 모르는 자
끝내 참되고 정당한 것을 보지 못하리라.


노래를 마치자, 산 아래 저어쪽 개울가 갈빗집 옆의 ㄷ 모텔과 저수지 위로 ㅁ 모텔과 그 옆으로 더 머얼리, 시설이 호텔급이라고 소문이 난 ㅋ 모텔의 수많은 창문들이, 창문들마다, 하양, 빨강, 분홍, 파랑의 꽃다발들이, 삽시간에, 동시다발로, 한꺼번에,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빵! 빵! 빵! 빵! 콘돔 풍선 터지는 소리를 내며.

잠시후 시흥(詩興)에서 깨어난 나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대략 삼분, 아무리 길어도 오분이면 뒤집어쓰고도 남을 거라던 나의 계산은 말짱 오판이었다. 무려 십분이 지나갔건만, 츠자의 기세는 여전히 꺾일 줄을 몰랐다. 저수지의 오리들도 남쪽 능선으로 사라지고 골짜기 위를 홀로 외로이 맴돌던 가마귀도 어느새 산 넘어 가버렸지만 티코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몰려오는 짜증과 싸웠다. 그렇게 서서 버틴 시간이 적어도 이십분은 되었을 것이다. 간신히 대미가 찾아왔다. 츠자가 턱을 뒤로 벌컥 젖히고 포효하더니 사내의 목을 두팔로 감싼 채 아랫도리로 행주를 힘껏 쥐어짰다. 하낫, 둘, 셋.... 마침내 츠자가 사내의 한쪽 어깨 위로 무너져내렸다. 동시에 차체의 진동도 멈추었다. 나는 이삼분쯤 더 길모퉁이 뒤에 붙어 있었다. 방사는 긴 여운의 음미로 완성되는 법이다. 나는 원앙에게 그 시간을 충분히 배려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절차가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앙은 자세를 풀지 않았다. 그렇게 뻔뻔스런 원앙은 처음이었다. 나는 차를 향하여 걸어갔다. 사내가 츠자의 어깨너머로 나를 발견했다. 눈꺼풀 올라가붙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츠자는 내가 지나가는 동안 사내 위에 걸터앉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얼굴에 손금자국이 날정도 꼬옥 감싸쥐고 있었다.

거기서 다소 혼란이 있었다. 차를 지나치고나서 뒤를 돌아다보니 땡순이가 안 보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놈은 숨어있던 길모퉁이에 옆에 주저앉아 눈만 끔벅거리고 있었다. 마치 원앙의 허락 없이는 절대 통과할 수 없다는 듯이. 내 고함소리도 마이동풍이었다. 개는 인간을 속속들이 이해하지만, 개한테는 인간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땡순이를 붙들러 올라가야 했다. 올라가다가 옆창 너머로 츠자와 정통으로 얼굴이 마주쳤다. 츠자는 아랫도리를 떼어내느라 엉거주춤 서 있는 자세였다. 땀에 얼룩진 벌건 얼굴에, 두 눈은 과로로 희미했다. 츠자는 다시 손으로 얼른 얼굴을 가리며 사내의 무릎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차를 내버려두고 동네로 내려오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엇갈렸다. 츠자는 삼십 후반에, 목이 짧고 얼굴에 화장기 하나 없는 순박한 얼굴이었다. 배에는 삼겹살을 두어겹 둘렀을까. 싸구려 파마에 분홍이 섞인 옷빛깔이 촌스러웠다. 구질구질한 베이지색 잠바를 입은 사내는 사십 중반쯤이었는데, 츠자의 격렬한 공격을 이십분 넘게 버텨낸 일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약하고 찌들린 인상이었다. 행색으로 봐서 눈이 맞은 외간남녀들 같지는 않았다. 좁은 집 사는 가난한 부부가 간만에 회포를 풀러 나왔다가 모텔비 아낀다고 그리로 올랐던 것일까? 아니면 모처럼 색다를 맛을 즐기기 위해 야외원정을 나온 것일까? 아냐! 아냐! 외도의 인연이 어찌 행색을 가리던가. 채소가게 아주미와 생선가게 아자씨가 삘이 꽂힌 것일지도 몰라!지나치게 격렬하고 애틋했던 사랑이 그 증거가 될 수 있어! 그건 부부의 뉘앙스가 아니었어! 불륜의 뉘앙스였다구! 안 그랴? 츠자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던 모습도 왠지 냄새가 났다구!

비탈을 다 내려올 때까지 나는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사실은 결론을 내릴 생각도 없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둘이 피워낸 꽃의 모습뿐이었다. 꽃이 피는 데 무슨 이유가 있던가. 있다 한들 내가 그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이 세상에서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모두 꽃처럼 이유없이 피어나는 또는 끝까지 피어난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들이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꽃을 꺾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아닌가. 어제는 멍청한 땡순이 때문에 약간 생채기가 나긴 했지만...

 

땡 님은 書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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