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2006. 4. 7. 12:51관심사

바다에서 잡은 대게, 즉석에서 찐 그 맛은?
3일 연속 먹었던 대게, 더 이상은 못 먹어~
텍스트만보기   김용철(ghsqnfok) 기자   
▲ 대게 집게 살을 먹으면서 다른 음식 생각난다면 거짓말일 정도로 맛있다
ⓒ 맛객
쫄깃거리고 담백한 맛, 울진 '대게'

통통통... 불을 환하게 켜고서 출항하는 뱃소리에 항구는 새벽 3시라는 시간을 잊으라고 한다. 언제 봐도 시장과 항구는 부지런하다. 우리네 삶이 있다. 벌써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성광호' 박영철 선장님과 선원 두 분하고 인사를 나눴다.

자 출발이다! 불빛으로 가득 찬 죽변항을 뒤로 하고 우리가 탄 배는 어둠 속을 향해 나아갔다. 하늘이 도왔는지 어제와는 사뭇 다르게 오늘은 바람도 잔다. 항해는 순조롭다. 그래도 바다는 바다! 뱃속에서 울렁거림이 느껴진다. 속으로 말했다. '참자... 참아야 해..... 난 멀미 안해...'

네 명이 들어앉으면 꽉 차는 선실, 멀미를 잊기 위해 잠을 청했다. 그러나 쉽사리 눈이 붙어지지 않는다. 찬바람이라도 쐬면 나아질까? 창문을 열었다. 찬 공기에 좀 나아지나 싶더니 다시 우욱! 우욱! 금방이라도 나올 것만 같다. 바다는 배가 일으키는 물보라만 하얄 뿐 캄캄해서 어디까지 바다이고 어디서부터 하늘인지 분간이 안 간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외롭게 뜬 초승달이 계속해서 우리를 따라온다. 저기가 하늘이구나.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엔진소리가 작아지더니 배가 멈추는 느낌이다. 그새 지쳐 잠시 잠이 들었었나 보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30분, 죽변항을 떠난 지 한 시간여가 지난 시간이다.

배가 멈추니까 속이 더 이상하다. 멀미를 지배하는 건 정신! 최대한 생각 안하려 했다. 선원들은 맥주 두 병을 챙겨서 작업을 위해 밖으로 나가고 정 시인과 나만 선실에 남았다. 아직 어두워서 사진 찍기는 쉽지 않으니까 한두 시간 눈을 붙이기로 했다. 사실 날이 훤하다 하더라도 이 상태로는 무리다.

누워서 바라보니 창문으로 달이 보인다. 배 움직임으로 인해 달은 널뛰기를 하는 듯 위로 아래로 심하게 움직인다. 달을 보고 있는 새에 옆에 있던 정 시인이 보이지 않는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배 난간을 붙잡고 바다에다 무엇인가를 내뱉고 있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미안했다. 못 본 척 해줄 걸.

▲ 바다에서 잡은 대게를 즉석에서 찌고 있다
ⓒ 맛객
밖에 나가서 사진을 찍고 다시 들어와 눕기를 반복하다 다시 잠이 들었다. 달그락 소리가 난다. 선장이 대게를 열댓 마리나 찌고 있다. 와아~ 기대된다. 바다에서 막 잡은 대게를 쪄 먹는 맛과 기분은 환상일 것만 같다. 사실 취재도 취재지만 배 위에서 가지는 식도락 시간을 은근히 기다렸다. 시간이 좀 지나자 냄비는 김을 내뿜기 시작한다. 맛있는 대게냄새가 후각을 파고든다. 30여분 지나자 대게가 완전히 쪄졌다.

▲ 대게잡이 배 위에서 대게를 먹고 있다. 왼쪽이 기자, 오른쪽이 정덕수 시인이다
ⓒ 맛객
선장과 선원들도 일손을 멈추고 대게냄비 주위에 둘러앉았다. 맥주도 한잔씩 따르고 대게다리를 뜯어서 마디를 비틀어 잘랐다. 한쪽을 쪽 빨았더니 맛있는 국물과 함께 대게 살이 통째로 입 속으로 들어왔다. 아무 양념이 필요 없다. 대게 살 자체에 모든 맛이 다 들어 있다. 쫄깃하면서 담백하고 간간한 듯하면서 달근하다. 요 맛! 육지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없다!

선장과 선원들도 바다에서 꺼내먹는 맛하고 육지 수족관에서 꺼내 먹는 맛하고는 차원이 다르다고 인정한다. 게 등껍질을 벗기니 맛있는 육수와 연한 국방색 게 장이 가득 들어 있다. 요게 또, 천연의 맛! 일류 요리사라고 해도 흉내 못 낼 맛이다. 갓 잡아서 신선한 게의 장은 연한 색이지만 오래된 게는 장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까맣다고 한다. 선장은 자기들만 오면 이렇게 먹을 시간도 없지만 손님이 왔기 때문에 대게를 쪘다고 한다.

▲ 자연의 맛! 이 게장만 보면 '쐬주'가 생각난다
ⓒ 맛객
그러면서 많이 다 먹으라고 한다. 이따가 한 냄비 또 찐다고, 그런데 대게를 또 찐다는 말이 반갑게 들리지 않는다. 지금 이 냄비에 있는 게만 해도 다 먹을 수 없는 양이다. 대게 맛을 아는 사람이 들으면 대게를 무시해도 유분수라고 하겠지만 3일째 대게를 먹었더니 별 감흥이 없다. 오죽하면 정 시인이 말하기를 "3일 연속 먹었더니 입에서 비린내가 다 나네" 했을까?

선장과 선원은 대게 한두 마리만 먹고서 자리를 일어난다. 냄비에는 열 마리 정도 남아 있는데 얼른 얼른 다 먹으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3일째 먹고 있다 하더라도 계속 먹을 수 있는 게 대게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식도락을 즐기는 나는 3일이 문제가 아니라 1주일 연속 먹는다 하더라도 맛나게 먹을 수 있겠는데 문제는 배 위였다. 먹으면 먹을수록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아쉽지만 대게에서 손을 떼었다.

▲ 갈매기
ⓒ 맛객
배를 타고 나간 그 날은 바다의 날이다. 바다를 청소하는 날이기 때문에 하루 동안 배도 쉰다. 이 배도 쉬어야 하지만 취재협조를 위해 바다에 나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 배 말고는 바다 어디를 둘러봐도 배가 없다. 섬도 없다. 눈에 들어오는 거라곤 대게그물 위치를 알리는 부표와 하늘을 나는 갈매기 한두 마리가 전부다. "사진 몇 컷 찍고 났더니 할일이 없네"라고 말하는 정 시인 말이 틀리지는 않다.

▲ 배에서 내린 대게는 즉석에서 경매에 붙여진다. 울진 죽변항에서 대게를 경매하고 있다
ⓒ 맛객

▲ 쫄깃하고 담백한 대게 다리 살, 마치 국수처럼 보인다
ⓒ 맛객

▲ 선원들이 대게를 잡고 있다
ⓒ 맛객
선장과 선원들은 여전히 대게잡이에 열중이다. 그물에서 대게를 분리해내는 일은 단순작업이기도 하다. 지루해서 농땡이를 피울 만도 한데 참 열심이다. 묵묵히 자연과 맞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직함은 바로 저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 대게잡이 배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나아가고 있다
ⓒ 맛객
220M에 달하는 그물도 어느덧 다 올라왔다. 선장은 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가 지나가자 바다는 하얀 물결로 나눠졌다. 가끔 돌고래 떼가 나타나서 배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속도경쟁도 한다는데 그날은 끝까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 작업을 마친 한 선원이 눈을 감고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 맛객
배가 육지로 향하는 동안 선원 한 사람은 그물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또 한 사람은 턱을 괴고 눈을 감고 있다. 새벽부터 나와 쉬지 않고 일해서 노곤했나 보다. 비록 작업복 차림으로 깨끗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열심히 일하고 나서 휴식 취하는 사람의 모습이 참 멋지구나 생각 들었다. 나는 그 분들을 보면서 삶에 대한 진한 애착을 배웠다. 저 멀리 죽변항 등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갑자기 기운이 솟는다.

'관심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용  (0) 2006.04.08
[시]  (0) 2006.04.07
[펌]  (0) 2006.04.07
[펌]  (0) 2006.04.02
[스크랩] 가은님께...rojinsky  (0) 2006.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