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春情實錄-배반의 봄2

2006. 3. 26. 11:59관심사

春情實錄 - 배반의 봄2

                                                                                                          -땡순이-

* 사무치는 그리움

지나간 일들을 돌이켜보노라니 이 내 신세가 처량하다. 츠자들과 운우를 희롱하던 세월은 엊그제의 개꿈이 되었다. 이제는 몸에서 군내만 날 뿐이다. 연장에 퍼렇게 덮힌 저것은 무엇이냐. 곰팡이냐. 고목에는 꽃이 피건만 뿌리 뽑힌 나무는 그냥 말라죽는구나. 세상이 적막하고 마음이 갑갑하다. 이렇게 자탄하며 하릴없이 지내던 어느날 문득 팔자 탓만 하는 자신이 심히 역겨워졌다. 그래서, 심기일전,

한번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렵디 어려왜라.
금생 서럽다 한탄만 말고 부지런히 선업 쌓아
아래 위로 옥골선풍 내생 기약 하여보세.

마음을 추스리고는, 낮에는 산으로 가마귀를 벗삼아 천지의 자취를 살피고 밤에는 거문고와 어울려 격물치지에 전념하니, 차차차차 마음이 개운해지고 몸도 맑아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꾸준히 나아가는 게 정도였고, 그랬더라면 우화등선도 남의 일만은 아니었을텐듸, 가을햇살 화사한 어느날 대낮에 기별도 않고 칼슨상의 작업실로 올라간 것이 치명적인 불찰이었다. 작업실 곁문너머로 본의 아니게 칼슨상과 칼가리아의 백주교접성사(白晝交接聖事)를 목도하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으니,

어마나반메훔! ~~~

그날부터 오관(五管)의 빗장이 풀리고 막혔던 오감(五感)이 이른 봄의 새순으로 되살아나는듸, 그 기세로 말하면, 중놈이 생전 처음 고기굽는 냄새에 홰가 동한 것같고, 그 형국으로 말하자면, 쫓겨나간 귀신 하나가 동무 귀신 일곱을 데리고 돌아온 것같고, 그 중세로 말하자면, 꽃만 보아도 여인의 체취에 몸이 감전이 되고, 잘록한 것만 봐도 배꼽 아래가 질금거리고, 잘록한 것 아래 도드라진 것만 봐도 속이 뒤집히고, 잘록한 것 위에 두쪽이 짝으로 솟은 것만 봐도 간장이 녹는듸, 낮이란 이리저리 피해라도 보겠으나, 밤에 어김없이 몽조로 들러붙는 데에는 견딜 재간이 없는 것이었다.

오감은 갈증이 되고 갈증은 회한이 되고 회환은 분심으로 옹이가 맺혔다. 같은 세상에 같은 껍질을 두르고 태어난 것이다. 누구는 손자 볼 나이에 이밥과 꿀떡에 주야로 배가 터지고 누구는 혈기방장한 청춘(?)에 식어빠진 조밥 대궁도 없어 발가락떼나 벳기며 주구장창 단식수련만 하고 자빠졌으니 이런 고약한 찌게백반이 어디 있느냐. 하루는 칼슨상이 칼 굵은 거 하나 팔았다며 삼겹살판으로 나를 불러냈는듸, 삼겹살 사이로 소주가 한잔 스며들어가자, 가슴 속에 부글부글 끓던 매운탕 찌게냄비가 졸지에 엎어지고 말았다.

“해도 너무 하시는 것 아님껴?”
“내가 멀 어쨌길래 그랴?”
“대저 의리라카는 기 머시깁니껴?”
“괴기두 먹어감서 야그하자꼬.”
“녹두알 반쪽이라도 상부상조하는 기 의리 아니겄슴껴?”
“우리는 삼겹살씩이나 나눠먹는 거 아녀.”
“삼겹살 관심 웂소.”
“생등심으로 바꿀까?”
“생등심 혼자 드소.”
“먹고자픈 걸 말해부아! 한턱 낸다니께!”
“거시기라고 있소.”
“거시기가 머여?”
“그걸 꼭 내 입으로 해야겠소?”
“뭔 소린 줄 알겄네.”
“낼모레면 옴팡 단식 넉달쨉니데이!”
“쩜 됐고마.”
“쩜이여? 푸헤! 그 모진 지율스늼도 단식 백일빢엔 안했으요!”
“내가 실언했네.”
“칼카리아형수늼하꼬 의논 함 잘해보소.”
“그 여편네하꼬?”
“노는 동무가 많지 않겄습니껴?”
“그럴까?”
“쉰아홉 이하면 무조건 선착순으로 한명 받겄십니다!”
“알거써. 연구해봄세. 괴기나 먹자구. 먹어야 힘쓰쥐.”

슨상은 그렇게 중요한 연구를 시러배아들넘한테 떠맡긴 게 틀림없었다. 나를 만날 적마다 둘러대기에 급급하기를, 깜빡 잊었다느니! 바빴다느니! 돌발사고가 났다느니! 염병! 그라다가 한꺼번에 쌓였던 울화통을 터뜨린 게 십이월초순의 일이었다.

“칼 맹기는 양반이 어찌 그리 흐릿함껴? 싫다면 싫다꼬 칼로 잘라서 말씀하서요! 칼슨상늼이 그란다꼬 지가 슨상늼헌테 테러를 하거써요? 앙심을 품꺼써요? 일언이작폐허고 말 꺼냈던 것 도로 돌려주시고, 맛난 꿀떡일랑 슨상늼 혼자 다 자시오! 내는 구경이나 허문서 살겄응께! 내 안 오거들랑 뒷동산에 목매달아 죽은 줄 아시고요! 봄 되문 칼가리아형수늼이랑 울동네 뒷동산 나으 무덤가에 놀러와서 두 양반 교대로 따땃한 오줌이나 함 갈겨주시등가 말등가!”


* 뻐드렁니와 돼지머리

그제서야 슨상의 마음에 걸리는 게 생기는 모양이었다. 닷새 지나서 슨상한테서 저녁이나 함께 먹자고 기별이 왔다. 긴히 의논할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장소는 슨상 사는 동네의 평양막국수집이었다. 한번도 못 가본 음식점이었다. 그날 저녁 시간에 맞춰 음식점으로 들어서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삼삼하다. 나는 음식점 출입문 앞에서 졸지에 감전이 되고 말았다. 나를 보고 손을 흔드는 칼슨상 옆에 처음 보는 츠자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것도 매력있는. 매력이 심상치 않은.

츠자는 오렌지빛깔로 부분 염색한 길고 탐스러운 웨이브머리였다. 아이라인이 선명했고 보라빛 마스카라가 진했다. 새빨간 립스틱의 입술 사이로 드러나는 뻐드렁니는 천박했다. 잠깐 일어설 때 아랫도리도 잽싸게 훔쳐보았다. 검은 미니스커트 안에 큼직한 백자 요강이 꽉 끼어 있었다. 허벅지도 실팍해 보였다. 한마디로 꼭 내 타입이었다. 칼카리아가 한 손에 천오백원짜리 닷새 묵은 자반이라면 뻐드렁니는 간밤에 동해안에서 올라온 토실토실한 샘물고등어였다. 나는 칼슨상의 우정어린 배려에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칼슨상은 뻐드렁니 소개는 않고 싱거운 너스레만 계속 늘어놓았다. 그러는 사이에 종업원 아주미가 닭무침을 들고 왔다. 아주미가 개성이 넘쳤다. 우람한 난쟁이 절구통 위에 큼직한 돼지머리가 올라붙은 모습이었다. 얼굴은 분으로 떡칠을 해놓고, 눈꺼풀에는 따로 고추장으로 벌겋게 발라놓았다. 아주미가 음식을 내려놓고 물러가자 뻐드렁니도 화장실에 간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슨상이 기민하게 내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주미 으뗘?”
“우히히히히... 괜찮습니당!”
“겉보기하군 달러! 자세히 바바. 피부 죽인다꼬!”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칼가리아형수늼이 주선한 겁니껴?”
“걔 하곤 상관웂어! 걔하곤 헤어졌는듸!”
“헤어져으요~? 언제요?”
“그저께 보내뿌렀어. 다신 찾아오지 말라캤어.”

칼가리아의 과도한 집착에 슨상은 오래전부터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해가 다 저물었는데도 슨상의 품에 안겨 있다가 남편의 핸펀 받는 일이 점점 많았다. 슨상의 성화도 소용이 없었다. 슨상은 왕년에 간통사건으로 한번 경을 친 경험이 있는 위인이었다. 길어져만 가는 꼬리를 놓아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매정하게 잘라버릴 줄은 몰랐다.

“그럼 저 아주미는 어디서...?”
“연변출신이여. 여기 온 지 반년 됐을걸?”
“연변이여?”
그때 돼지머리가 막국수를 들고 왔다. 칼슨상이 돼지머리를 올려다보며,
“운심씨가 여기 은제 왔지?”
“올 봄에 왔시요.”
“반년도 훨씬 더 됐네?”
“반년이 모야요. 일년이 낼 모렌데. 세월이 빠르구만요. 근데 와요?”
“암것두 아녀. 참. 인사혀. 저쪽은 저 웃동네에 사는 검프(나의 별명)씨야. 이쪽은 운심씨...”
“안녕하서요.”
돼지머리 위에 호박꽃이 활짝 피었다.
"안녕...하서요."
아주미가 물러나자 칼슨상이 입에 침을 튀겼다.

“한국에 온 지는 삼년 됐댜. 여기저기서 일을 하다가 아는 사람 소개로 일루 온 모냥이여. 나이는 마흔하날걸. 나이 좋쥐? 연변에 남편하고 아이가 있대는디 바다 건너 있는 거여 머. 말하는 것 들어보니 지두 타관객지 생활이 무척 고독한 모양이야. 왜 안 그렇겄써, 한창 나이에, 안그려? 그래서 내가 당신허고 다리 함 놓아보려구. 으뗘? 괜찮어? 서로 부담두 웂잖어. 그리고... 피부가 죽인대니깐. 뇨자는 고저 피부가 제일이거드응!”


* 낙담의 세월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칼슨상을 다시는 안 보리라 공산토월에 맹세하였다. 아모리 끈 떨어진 갓이라지만 사람을 그렇게 무시할 수는 업었다. 뻐드렁니만 없었어도 마음의 상처가 덜 깊었을 것이다. 뻐드렁니는 다름아닌 슨상의 새 애인, 서른일곱의 유부녀였다. 슨상의 말로는 '선(線)'이 끝내줬다. 염장질도 유분수지! 칼가리아가 버림을 받은 이유는, 확신컨대, 칼가리아의 과도한 집착 때문이 아니었다. 저 요망한 뻐드렁니한테 밀려난 것이었다. 가엾은 칼가리아는 극심한 금단증세와 정신적 공황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통씩 애절한 문자메시지 - 따랑해요. 카알 - 를 슨상한테 날리고 있었다. 말할! 그럼, 칼가리아라도 나한테 넘기든가! 내가 칼가리아가 마음에 있어서 이러는 거 아니다. 다 좋은듸, 하필이면 웬 아닌 밤중에 돼지머리냐는 것이다!

그날밤 나는 무당옷을 입은 돼지머리가 또다른 돼지머리 앞에서 겅중겅중 뛰며 푸닥거리를 하는 악몽에 밤새 시달렸다. 구경꾼들 중에는 검은 선그라스를 낀 칼가리아도 보였다. 칼가리아는 검은 돼지머리 옆에서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칼슨상은 사날 걸러 전화를 걸어와서는 있는 대로 생색을 다 냈다. 운심이가 워낙 정조 관념이 투철한 여편네다. 설득에 애로가 쩜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당신은 유사시에 대비해서 기름칠에 전념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잠자코 듣고 있기만 했다. 슨상의 정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습지 아니한가. 슨상한테 돼지머리에 대한 나의 취향을 설명한다는 것이. 나는 요런조런 핑계를 대고 슨상의 회동제의를 피해다녔다.

어느덧 세밑이 코앞에 와 있었다. 짝이 필요한 것들은 모두 짝을 지어 오손도손 서로 온기를 나누는 계절이었다. 나만 지난 몇년과 마찬가지로 홀로 쓸쓸하게 넘겼다. 밤이 되면 문틈의 삭풍이 내 가슴과 허벅지안으로 스며들어왔다. 나의 위안은 빈 산에 홀로 남은 까마귀와 저녁 오솔길마다 오락가락하는 헛것들과 옛 노래뿐이었다.

겨울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니덜이 시방 가는 곳이
어드멘지 몰겄지만
내도 한점 섞여 가자
아싸... 가오리...


* 운심氏

내가 다시 평양막국수집엘 가 본 것은 해를 넘기고 올 정월 하순께였다. 중요한 손님이 집으로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별미를 찾다가 막국수집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운심을 재검토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적극 재검토를 고려하고 싶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재검토고 뭐고 없었다. 극에 달한 굶주림으로 나는 거의 빈사상태였다. 이제는 돼지머리와 소머리를 따질 여유가 없었다.

운심과의 재회는 달반만이었다. 절구통과 돼지머리와 떡칠을 한 얼굴, 눈 위의 벌건 고초장도 모두 처음 봤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날은 운심의 모습은 내게 다르게 다가왔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법문(法文)이 가슴에 사무치는 순간이었다. 가만히 보니 운심은 아조 정을 못 붙일 밉상은 아니었다.

전에는 몰랐던 매력 포인트도 눈에 많이 뜨였다. 희고 매끄러운 피부는 일찌기 칼슨상이 지적한 바 있는 것이었다. 목이 거의 없고 얼굴은 떡칠에 가려 검증에 애로가 있었지만 손과 팔목과 귀밑만으로도, 운심의 비단 살결은 짐작을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작고 옹졸한 두 눈도 나름의 교태가 있었다. 턱밑에 난 검은 점도 새로 발견한 것이었다. 그런 중요한 섹시 포인트가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몰라봤다니 내 자신을 용서하기가 어려웠다. 막국수를 내려놓고 돌아서는 운심의 궁둥이가 우람했다. 그 궁둥이를 게슴츠레한 눈길로 어루더듬으며 나는 선현들의 알흠다운 지혜를 마음속 깊이 곱새겼다.

돼지 얼굴 보고 잡아먹나...

운심과의 인연을 위해 나는 바쁘게 서둘렀다. 적어도 이틀에 한번 평양막국수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일단 서로 안면을 익히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가세에 엄청난 부하가 걸리는 일이었지만 굶어죽는 것보담은 나았다. 칼슨상과의 관계 회복도 시급한 과제였다. 슨상의 도움은 필수적이었다. 지난해 막국수집 회동 이후로 나는 한번도 슨상을 만나지 않았었다. 슨상도 해를 넘기면서는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 억하심정과 무관하게 문안 전화 없이 연초를 지난 것은 결례였다. 눈이 몹시 내린 날 오후에 나는 토마토쥬스와 백세주와 삼겹살을 사들고 슨상의 거소가 있는 산기슭으로 올라갔다.

슨상은 작업실에서 회전톱으로 오동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슨상은 검(劍)이 잘 안팔려서 다른 목공(木工)에 손을 대보는 중이었다. 우리는 거실에 앉아 보이차를 마셨다. 슨상은 뻐드렁니와 일주일전에 헤어졌다며 우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유를 묻자 얼버무렸다.

“단식 중이시네욤.”
“일주일째야. 죽갔구만. 어디 좋은 츠자 없남?”
“칼가리아는 뭐합니껴?”
“걘 아직도 문자메세지 보내와.”
“재결합하시져.”
“안돼. 걘 너무 착해서. 그때 그쯤에서 그렇게 보낸 게 잘한겨. 안 그랬으면 걔 정말 불행해졌을겨.”
“막국수집엔 가십니껴?”
“통 못 가다가 어제 갔구만.”
“그 아주미는... 잘 있죠?”
“운심이? 거기서 먹고 자고 하는데 잘 있구 말구가 있남.”
“......”
“......”
“연변에 가보셨습니껴?”

그날 나는 연변 이야기만 한참 나누다가 내려왔다. 운심의 이야기는 혀에서만 맴돌다 말았다. 슨상의 배려를 무시했던 가책 때문이었다. 게다가 슨상도 운심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나는 은근히 오기가 발동했다. 그까짓 돼지머리, 나 홀로 해결해보겠노라!


* 배반의 봄 - 다북쑥늼에게

다북쑥늼. 글이 한도 없이 늘어집니다. 이만 할랍니다. 결연한 의지로 시작한 글이었지만 쓰다보니 다북쑥늼에 대한 억하심정이 봄비에 잔설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왜 제가 이런 쓸데없는 짓을 시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허망함과 회한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전들, 다북쑥늼의 말씀처럼, 이 생동하는 계절에 좋은 인연을 만나 “힘”을 쓰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다북쑥늼의 그 다정한 격려와 권면이 그때 제 귀에는 그저 조롱과 저주로만 들렸던 게 사실입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봄을 맞이하는 제 심사가 참담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참담이 저를 편협하고 옹졸하게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다북쑥늼이 한 저렴한 영혼에게 얼마나 모진 테러를 가했는지 그것을 소상히 밝히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북쑥늼은 밤을 양심의 가책으로 잠을 못이루는 끔찍한 밤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한심한 발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다북쑥늼의 그 천사와도 같은 친절한 마음에다 가래침을 뱉으려 한 것입니다! 이런 옹졸하고 어이없는 인간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아. 부디 이 찌그러진 깡통 같은 영혼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기만을 간전히 바라고 또 바라옵니다.

더이상 글을 쓴 기력도 없고, 시작도 끝도 아무 보람도 없는 이야기이긴 하오나, 그래도 기왕 시작한 이야기인만큼, 남은 대목을 간단하게나 덧붙이겠사오니, 이 긿일은 영혼이 이 화사한 봄날에 왜 이 지경이 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인지 아무때나 틈나실 적에 잠시 참고해 주시면 저로서는 더 바랄 나위가 없갔습니다.

저는 계획대로 평균 이틀에 한번씩 평양막국수집에 가서 점심 또는 저녁으로 평양막국수를 먹었습니다. 꾸준히 줄기차게 먹었지요. 한달 남짓을 먹었습니다. 성과가 있었습니다. 운심씨와 저는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운심씨는 저를 보면 미소를 지어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허물없이 농담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고, 급기야는, 운심씨가, 시키지도 않은 이천원짜리 막국수 사리를, 자진해서 제게 몰래 가져다주는 수준으로 비약했습니다. 그렇게 삼월로 접어들었습니다. 밥상을 다 차려졌습니다. 숟깔만 꽂으면 언제든지 식사 가능한 상태다. 저는 그렇게 확신을 했습니다. 봄의 도래에 들뜬 감미로운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저도 기꺼운 마음으로 주역을 펴놓고 디데이 택일을 하였습니다. 구석에 오래 쳐박아두었던 각종 방중서들을 다 꺼내놓고 쭈욱 요점정리도 하여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거사일...바로 전날이었습니다. 오후에 칼슨상의 집엘 올라가보았습니다. 슨상은 작업실에 없고 거실로 들어가는 문이 약간 열려 있었습니다. 문으로 다가간 저는 문에 손을 댔다가 얼른 떼어냈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츠자가 문틈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츠자는 목이 짧고 몸매가 절구통이었습니다. 운심씨였습니다. 운심씨는 냉장고를 열더니 뒤를 돌아다보며 애교가 듬뿍 담긴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슨상뉘임~! 머 드시갔어요? 토마토쥬~스?”

'관심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  (0) 2006.04.02
[스크랩] 가은님께...rojinsky  (0) 2006.04.01
[펌] 春情實錄-배반의 봄1  (0) 2006.03.26
[스크랩] 러시아 화가의 풍경화  (0) 2006.03.22
[펌]  (0) 2006.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