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2006. 3. 22. 11:48관심사

[사진] 톡톡톡... 세상을 여는 생명의 노크
"삐약삐약" 병아리떼와 함께 떠나는 봄나들이
텍스트만보기   임윤수(zzzohmy) 기자   
▲ 따뜻한 봄날! 울타리 밑에서는 은밀한 그들만의 속삭임, 삐약삐약 하는 병아리 소리가 있었습니다.
ⓒ 임윤수
이맘때가 되면 시골집에서 볼 수 있던 또 하나의 진풍경이 있었습니다. 언 땅이 녹으며 돋아나는 새싹처럼 갓 태어난 병아리들을 몰고 다니는 어미닭들의 모습입니다. 어미닭과 병아리들은 마당은 물론 헛간이나 울타리 아래까지 파헤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들을 없애거나 키우지 않으면 이따금 밥상에 오르는 계란찜도 맛볼 수 없고, 제상에 올릴 닭도 귀하게 되니 무조건 없애거나 미워할 수만도 없었습니다.

요즘처럼 마당이 시멘트로 덮여있지 않았고, 웬만하면 집집마다 크든 작든 흙마당이나 텃밭 하나쯤은 있었으니 장닭 한 마리에 암탉 몇 마리만 있으면 하루에도 싱싱한 계란을 몇 개씩은 거둬들일 수 있었습니다. 닭들은 알 낳는 장소가 일정하고, 알을 낳으면 친절하게도 ‘꼬꼬댁’ 거리며 알을 낳았다고 신호까지 해주니 달걀 거둬들이기를 건너뛰거나 잊어버릴 이유는 없었습니다.

암탉이 꼬꼬댁 거려 알자리를 찾아가면 따끈따끈한 알이 덩그러니 놓여있습니다. 설사 집을 비웠거나 다른 일이 있어 미처 알을 거둬들이지 못해도 근처에 족제비 등만 없으면 크게 걱정할 것은 없었습니다. 다음날이나 그 다음날 가면 거두지 못한 몇 개의 알들이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있으니 크게 손해 볼 일도 아니었습니다.

▲ 예전에야 이렇듯 어미닭이 지푸라기로 만든 둥우리에서 알을 품어 병아리를 깠습니다.
ⓒ 임윤수
닭들이 낳아주는 계란들을 그날 그날 그렇게 모아 10개씩 꾸러미로 엮어 시장에 내다팔기도 하고, 손님이라도 오는 날이면 계란찜이나 삶은 계란 등으로 특별 반찬이 되어 밥상에 올랐습니다. 어떤 여름,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것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삼복쯤에는 고기보다도 훨씬 더 많은 찹쌀을 넣어 끓인 백숙, 파와 고사리를 듬뿍 넣은 얼큰한 닭개장이 되어 온 집안의 밥상에 오르기도 했던 당시의 보양식 뒤에는 언제나 마당이나 텃밭에서 놀던 닭들이 있었습니다.

요즘처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전화를 걸고, 전화를 걸고 몇 분 후면 배달되는 프라이드니 양념닭이니 하는 그런 닭고기들과는 맛은 물론 의미조차 다를 그런 닭과 병아리를 이맘때가 되면 추억처럼 떠올리곤 합니다.

▲ 요즘에는 전자제어방식의 부화기에서 한꺼번에 만 수천여 마리의 병아리가 한꺼번에 부화되었습니다.
ⓒ 임윤수
시골에서 닭을 기르며 빠트리지 않는 연중행사는 이맘때가 되면 병아리를 까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한두 배를 까는 것으로 끝냈지만 이따금은 서너 배의 병아리를 깔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서너 배를 깔 때면 어미닭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르 흐르는 초여름까지도 둥지에서 알을 품어야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닭들이 낳은 알들 중 그 크기가 고르고 껍질이 튼튼해 보이는 것들만을 골라 별도로 보관하다가 이맘때가 되면 어미닭이 품게 합니다.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둥우리에 열대여섯 개의 달걀을 넣고 헛간 한 구석, 사람의 왕래가 그렇게 빈번하지 않은 적당한 곳에 매달아 놓으면 암탉이 들어가 알을 품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아무 닭이나 알을 품는 것은 아닙니다. 짐승들이 암내를 내거나 발정을 하듯 닭들 중에서도 표시를 내는 닭들이 있습니다. 알을 낳고는 자리를 뜨지 않고 품으려 하는 등 눈에 뛰는 행동을 하는 닭들이 있으니 그 닭에게 알을 품게 합니다.

▲ 부화기에서 갓 나온 병아리들은 건강상태가 체크되며 조금 전까지 병아리들이 몸담고 있던 계란껍질과 분리되었습니다.
ⓒ 임윤수
알을 품기 시작하면 어미닭은 둥우리에 들어앉아 20여 일 동안 꼼짝을 안했습니다. 먹이를 먹는 건지 아니면 굶고 있는 건지 걱정될 만큼 자리를 뜨지 않고 둥지에만 쪼그리고 앉아 알만을 품고 있습니다. 이따금 물이라도 먹으러 자리를 뜨겠지만 일부러 지켜보지를 않아서 그런지 어미닭이 둥지를 비웠던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는 듯합니다.

20여일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어미닭 깃털사이에서 병아리들이 한두 마리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침에는 불과 몇 마리였던 병아리가 저녁쯤이 되면 훨씬 늘어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품었던 알들이 모두 한꺼번에 우르르 병아리로 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일찍 깐 것이 있는가 하면 하루나 이틀 쯤 늦게 부화되는 것도 있었습니다.

먼저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들은 대개 어미 품속에서 머물지만 이따금 극성맞은 놈들은 둥지를 벗어나다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비좁고 울퉁불퉁한 둥우리지만 병아리들에겐 놀이터가 됩니다.

깨어난 병아리들은 알을 품고 있는 어미닭 배 아래로 들락거리고, 날개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콕콕 입질을 하고, 봄이면 들려오는 그들만의 은밀한 속삭임 같은 '삐약삐약'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이때쯤이 되면 알을 품기 시작하며 예민해지기 시작한 어미닭은 무척이나 사나워집니다. 평소엔 사람이 다가가면 도망을 가던 닭이었지만 새끼가 부화되기 시작하면 머리털을 곧추세우고 달려들기 일쑤입니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원초적 모성이 어미닭을 공격적으로 만드는가 봅니다.

사나흘쯤 기다려도 부화되지 않는 달걀들을 꺼내보면 이미 곯아있는 상태가 태반이니 이들을 골라내는 것으로 한 배의 병아리 까기는 마무리됩니다. 병아리가 빠져나온 계란 껍데기와 부화하기에 실패한 곯은 달걀들을 둥우리에서 빼내면 이때부터 어미닭은 새끼 병아리들을 데리고 봄나들이를 시작합니다.

작은 발들로 밭이라도 일구듯 땅을 헤집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뭔가를 잡아먹느라 연약한 부리로 콕콕거리며 땅바닥을 쪼아댑니다. 올라오는 새싹도 조금씩 뜯어먹고, 고여 있는 물이라도 만나면 부리를 담가 물 한 모금을 물고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보며 입속의 물을 목구멍으로 넘깁니다.

어미닭과 병아리들이 무리를 이뤄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면 울타리 밑이나 마당은 온통 이들의 세상이 되어 여기서 바스락 저기서 바스락, 이 구석에서 삐약 저 모퉁이서 삐약거리며 따뜻한 봄날을 노래했습니다.

▲ 뒤섞여 있던 병아리들은 이렇듯 색깔별로 다시 분류되었습니다.
ⓒ 임윤수
어미닭이 알을 품는 모습이나 알을 깨고 갓 나온 병아리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삐약거리던 모습도 이젠 보기 힘든 기억 속 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시설 잘된 부화장에서 수천수만 마리의 병아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니 병아리 숫자로만 봐서야 비교가 안 될 만큼 풍족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맘때쯤이면 볼 수 있던 이런 저런 볼거리, 시골 집집마다 울타리 아래서 펼쳐지던 자질구레한 정겨움도 이제는 보기 힘든 옛 모습이 되었습니다.

수천마리 병아리가 한꺼번에 부르는 탄생의 소리 ‘삐약삐약’

둥그스레한 돔형지붕으로 된 부화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아직은 바깥기온이 차가워서 그런지 훈훈한 온기가 완연하게 느껴집니다. 대형 부란기(孵卵器)가 실내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대형 캐비닛을 양쪽으로 줄 맞춰 세워놓은 듯합니다. 정확히 3주 전에 부란기에 수정란을 넣었으니 이 시간쯤이면 병아리가 부화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고 시간을 맞춰 부화장을 찾은 것입니다.

▲ ‘삐악삐악’ 병아리들이 자신이 태어났음을 삐악거리는 소리로 외쳐댑니다.
ⓒ 임윤수
병아리는 수정란을 부란기에 넣어 정확하게 3주, 21일 만에 부화를 합니다. 어미닭이 품어서 병아리를 까던 때는 어미닭이 골고루 뒤집어 주고 자리를 바꿔 주더라도 주변 환경이나 달걀이 놓여있던 위치에 따라 하루나 이틀쯤 늦거나 빨리 부화되었지만 전자제어방식의 부화기에서는 계란마다 똑같은 조건을 유지해주니 거의 동시에 부화된다고 합니다.

수천 마리의 병아리들이 거반 동시에 하나, 둘, 셋 하고 카운트다운을 하듯 연약한 부리로 계란 껍데기를 토도독거리고 깨트리며 새로운 생명을 연습하는 가슴 벅찬 순간이 연상되었습니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도 않아 그렇지 그 순간, 수천 수만 개의 계란 껍데기를 박차고 나오는 병아리들의 함성과 환희를 집대성할 수 있다면 엄청난 생명의 소리, 탄생의 축가가 만들어 질 듯합니다.

아직 부화기를 열지 않아 병아리는 보이지 않는데 여기저기서 삐약거리는 병아리 소리가 들립니다. 부화기 안에는 이미 병아리들이 부화되었고, 부화된 병아리들이 ‘나 태어났소’ 하면서 존재를 알리기 위해 소리라도 지르는 모양입니다.

▲ 갓 태어났지만 금방이라도 봄나들이를 갈 수 있을 만큼 건강해 보입니다.
ⓒ 임윤수
캐비닛을 열어젖히듯 부화기 문짝을 여니 안쪽은 선반처럼 칸칸으로 되어있고, 구멍 숭숭 뚫린 철판상자가 층층으로 차곡차곡 들어있습니다. 차곡차곡하게 쌓여있는 철판상자 안에서 갓 태어난 병아리들이 온몸을 꼼지락거리며 삐악거리고 있었습니다.

한 번 문을 열면 가능한 한 빨리 부화기에서 병아리들을 꺼내야 하는지 부화장 3대 가족, 주인 되는 정원식(52)씨와 아들 영태(28)씨 그리고 영태씨의 할머님이 능숙한 솜씨로 손발 척척 맞춰가며 철판 상자를 차곡차곡 꺼내 놓습니다.

꺼내놓는 상자마다 병아리들이 빼곡합니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소리를 지르고, 아장아장 걷기라도 할 듯 깃털도 없는 작은 날개를 퍼덕이며 발걸음을 떼려 안달들입니다. 병아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복슬복슬해 보이는 털옷들을 입었습니다. 어미 닭이나 어느 정도 자란 병아리처럼 깃털을 가진 게 아니라 까슬까슬한 머리카락처럼 짧고 가느다란 털들입니다.

비록 그 털이 짧고 가늘어 보이지만 워낙 빼곡하고 산뜻하니 포근하고 예쁘게만 보입니다. 어떤 놈은 노란 털옷을 입었고, 어떤 놈은 까만 털옷을 입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놈은 다람쥐처럼 알록달록한 털옷으로 연미복인양 등 쪽 무늬를 놓았습니다. 병아리들은 조금도 쉼 없이 깃털도 없는 날개와 연약해 보이기만 하는 양쪽 다리를 허우적거립니다.

▲ 어엿한 병아리들도 몇 시간 전까지는 이렇듯 흔하게 볼 수 있는 달걀모습이었습니다.
ⓒ 임윤수
알에서 깨어나 얼마동안이나 부화기 안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털들은 보송보송하게 말라있었고 그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어떤 놈들은 여려 보이기만 하는 부리로 아무것이라도 쪼아 댈 듯 여기저기를 콕콕 찍어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 몸을 감싸고 있었을 계란껍질을 쪼아대기도 하고, 옆에 있는 다른 병아리를 쪼아보기도 합니다.

모든 병아리들이 계란껍질 위로 올라서서 삐약거리며 탄생의 함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부화기에서 철판상자를 모두 꺼낸 부화장 가족들은 노란색이나 다람쥐 무늬의 병아리와 함께 있던 까만색 병아리를 골라냅니다.

섞여있던 병아리 중 까만색 병아리만 골라 칸막이가 된 플라스틱 상자에 넣으니 알록달록 하던 병아리 무리에서 까만색 병아리가 분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까만색 병아리에 이어 노랗거나 다람쥐 무늬의 병아리들도 다른 플라스틱 상자로 옮겨지니 철판상자에는 계란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 병아리들이 빠져나온 계란껍질은 허전해 보이기만 합니다. 그 허전함은 생명을 탄생시킨 위대한 느낌입니다.
ⓒ 임윤수
한 대의 부화기에서 일련의 작업, 병아리가 들어있는 철판 상자를 꺼내고, 까만 병아리와 다른 병아리들을 분리하는 등의 작업이 끝나면 잽싸게 다음 부화기를 열고 똑 같은 작업이 반복되었습니다. 부화기의 문이 열리 때마다 수천 마리의 병아리들이 불러대는 생명의 노래, 새봄의 찬가가 삐약거리는 합창소리로 부화장 안에 울렸습니다.

계란껍데기만 남아있는 철판상자는 부화장 밖으로 옮겨졌고, 옮겨진 철판상자에서 회수된 계란껍질은 계란껍질 대로 다시 모아져 다른 동물의 사료 등으로 이용된다고 했습니다.

알을 넣고 3주가 지나 병아리들이 부화 되는 날, 부화기가 열려 바쁘게 병아리들을 챙기는 날이면 허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지만 병아리를 주워 담는 할머니, 30년 가까이 부화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아들 정원식씨, 부화장을 3대째 이어가고 있는 영태씨의 손끝에선 그 옛날 울타리 밑에서 들을 수 있었던 그들만의 속삭임, 갓 태어난 병아리들이 내는 생명의 소리가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힘이야 들겠지만 생명의 소리를 연주하고 있는 그들의 이마에선 결실의 땀줄기도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 잘 영근 알곡처럼 병아리들도 튼튼하고 건강한 잘 자라줬으면 좋겠습니다.
ⓒ 임윤수
일반 농부들이 논밭에 씨앗을 뿌려 김매주고 농작물을 가꿔가듯 이들 부화장 식구들은 수정란을 품어 병아리로 싹 틔우는 또 다른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모든 농부들이 병충해 피해 없이 알곡 주렁주렁 달리는 풍년 결실을 기원하듯, 이들 가족들도 조류독감이나 돌림병 없는 1년 양계를 기원할 것입니다.

어미닭을 따라다니며 봄날을 노래하던 병아리 떼들의 ‘삐약삐약’소리를 환청처럼 추억하며 마음으로나마 봄나들이를 시작합니다. 3대가 함께하는 이들 부화장에도 계란 곯아 실패하는 일 없이 100%가 부화되는 삐악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마음으로나마 초등학교 때 부르던 동요 속으로 봄나들이를 떠나보렵니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부화장을 견학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협조해준 대전 유성형제부화장(042-823-2020) 정원식님께 감사드립니다. 형제부화장에서는 토종닭만을 부화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2006-03-19 19:03
ⓒ 2006 OhmyNews

'관심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 春情實錄-배반의 봄1  (0) 2006.03.26
[스크랩] 러시아 화가의 풍경화  (0) 2006.03.22
[펌]  (0) 2006.03.17
[펌]  (0) 2006.03.16
[펌]  (0) 2006.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