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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6. 7. 16:35정치

마레의 횡설수설8. 너 그럴 줄 내 알았다

- 당헌당규는 뒀다 어디쓸려구?

마레

너 그럴 줄 내 알았다

1. 오랜만에 한겨레21을 봤다. 역시나 정론주간지다. 이 말은 칭찬이 아니다. 비꼼이다. 정론주간지에 대한 마레식 정의는 이렇다. 사회적 이슈 중에서 한겨레스러운 것을 택해 적당히 전망하고 적당히 비판한 두 쪽짜리 쪽글 모음집. 그래도 이 잡지가 창간 이후로 쭈욱 주간지 시장 1위란 사실은 나쁘진 않다. 썬데이서울이나 주간조선이 1등인 것보다는 좋잖나? 그래서 나날이 정론주간지다워 가는 게 문제지만.

한겨레21에서 내가 가장 즐겨 읽는 부분은 맨 마지막 칼럼란이다. 노 땡큐!란 이름이 붙어 있다만, 저자는 늘 바뀌고, 전국 어떤 매체에 실리는 칼럼에 뒤지지 않는다. 이 정도 길이에 이 정도 촌철살인을 담아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오늘 내가 본 칼럼의 제목은 “덤”, 저자는 칼럼니스트 임경선, 좋은 눈빛을 한 젊은 여성분이다(그미보다 확실히 연상인 나는 한겨레에 칼럼을 쓸 가능성이 제로다. 대체 뭐냐? 버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덤” 좋아하지 마라는 거다. 여성지 회사에서 마케팅 담당자였던 저자는 잡지를 팔자면 부록을 잘 만들어야 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여성지 부록으로 이런저런 유명 브랜드 화장품을 준다는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지만, 무겁다고 잡지는 화장실에 버리고 부록만 챙겨가는 사람이 나올 정도라니, 놀랍다. 잡지보다 부록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야 말로 “꼬리가 개를 흔드는” 현상이지만, 이런 현실이 낯익은 대한민국은, 문득 두렵다. 그로데스크하다고 느끼거나 적어도 생경스러워야 하지 않은가?

2. 만국의 한의사가 동일한 침법을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한의원을 두 군데 이상 가보지 않은 분이다. 대개의 한의사들은 서로 다른 침법을 사용한다. 나는 그 중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소수의 한의사들만 쓰는 침법을 쓴다. 통증성 질환이나 어혈성 질환에 효과적이지만 맞을 땐 좀 더 아픈 편이다. 그러니 침 맞으러 올 분들은 아파도 좋으니 낳기만 해라는 분들만 오시면 좋겠다. 찬밥 더운밥 가릴 계제는 아니다만.

이 침을 사용한 뒤로 내 좌판에 일대 부흥기가 있었다. 매일 환자가 적어서 걱정이던 마나님이 이러다가 서방 잡겠다며 환자 좀 줄이라는 소리를 다 할 정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밀려드는 환자에 기고만장한 나는 자신만만하게 본인 부담금을 올렸다. 그리고 이년이 지난 지금, 왜 그랬을까... 자책 중이다. 환자가 격감해서 저번 달 세금 내기가 제법 고됐거든.

며칠 전 환자 한 분이 오셨다. 그 분은 내 오랜 환자의 아내인데, 남편이 치료받기를 강요하다시피 해서 함께 오셨던 분이다. 다섯 번 정도 시술로 다행히 증상은 좋아졌지만, 치료를 중단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환자분은 침이 너무 아프다며, 차라리 약을 계속 먹겠노라 하신다. 침은 보험이지만 한약은 그렇지 않으니, 비싸다. 그런데도 침 대신 약을 먹겠다니, 경영상 매우 바람직한 환자다. 이런 분만 계시면 무슨 걱정이랴, 만...

침 안 맞으면 약 드실 필요도 없다고 말씀드렸다. 체력이 약해서 약을 먹어야 침을 맞을 수 있었던 환잔데, 침을 맞지 않는다면 약도 필요 없는 거 아닌가. 자발적으로 약 먹겠다는 데도 필요 없다는 한의사는 처음 본다는 식으로 갸웃하는 환자분에게 아직 뿌리를 다 뽑은 건 아니니 증상이 나타나면 다시 오라고 말씀드리곤 돌려보냈다. 환자도 없는 판에 뭘 그리 가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원칙 아닌가.

3. 열린우리당이 정신이 혼미해진 모양이다. 선거 참패의 원인이 과도한 조세부담에 있었다고 보고, 부동산 세제를 손질하시겠다고 나섰다. 그런 와중에 김혁규, 조배숙의원은 최고위원에서 사퇴했다. 개혁파인 김근태 최고가 당대표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서란다. 시각장애인들은 8일째 목숨을 건 고공농성 중이고, 워싱턴에서는 한미FTA 1차 협상이 시작됐다. 우리당 의원들이 이런 민생 현안을 챙기고 있다는 조짐은 어디에도 없다. 너 그럴 줄 내 알았다.

이 사람들에겐 분석 능력이나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모양이다. 한의학에서는 간장에서 모려가 출한다(일을 꾸미고 조정하는 능력이 간장에 있다는 말)고 하고, 쓸개를 두고 결단이 나온다(주체적이고 과단성 있게 사안을 판단하는 능력)고 하는데, 열린우리당 의원님들 하는 걸 보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놓고 다니는 사람들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해괴망칙한 일들을 거듭해서 하시는고?

내가 비록 서울이 아니라 지방에 살긴 하지만 시가도 아니고 고시가격으로 6억 넘는 주택에 사는 사람에게 보유세를 물린다는 건 타당한 정책이다. 부동산 거래세를 좀 낮추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보유세를 올려야지, 거꾸로 간다는 건 부동산 정책을 포기하고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도록 놔두겠다는 거 아닌가. 그게 정부가 할 일인가? 그게 중소기업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란 열린우리당이 할 몫인가?

김근태 의원은 참 아까운 사람이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이가 여권 대선주자로 나가기란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지지도가 만년 2%란 사실도 문제고 항상 타이밍을 놓친다는 것도 문제다. 좋은 정치적 자원이지만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단지 그이가 대표가 되는 것이 싫어서 질서 있는 퇴각을 거부하고 모두 다 죽어버리자며 최고위원직을 내던지는 김, 조 두 최고위원을 보면 저절로 혀끌탕이 쳐진다. 고작 저 정도였던가? 하긴 그랬으니까 졌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열린우리당은 덤을 너무 좋아한다. 총선에서 단독 과반수를 만들어준 것 자체가 거대한 덤이었다는 것을 종종 잊는다. 그래서 소인배들에게 너무 좋은 것을 주면 안 되는 법이다. 로또된 사람치고 행복해진 사람 별로 없다더만, 준비도 안 된 애송이들에게 개혁의 적통이란 왕관과 단독과반수란 왕홀을 쥐어준 것이 문제였나 보다. 대선 두 번 이겼다고 기고만장해서는 잡지 내용은 돌보지 않고 그저 부록만 괜찮으면 사준다는 착각 속에서 살았던 개혁세력, 정신 차려라. 에이 제기랄, 그러고 보니 나도 그 사람 중 하나네.

열린우리당이 사는 방법을 알려주랴?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원칙이 제일이다. 당신들 당헌 당규대로 정치하면 된다. 서민정당이라매? 서민들이 잘 살게끔 해주면 된다. 기득권이고 대권주자고 다 잊어먹어라. 유시민이고 천정배고 다들 내가 이런 사람인데 따위는 잊어먹고 유권자들에게 일로매진 기쁨과 감동을 주는 정치를 하면 남은 일년 육개월 사이에 천지가 뒤집어지고도 남을 것이다. 하긴 우리당 의원들이 그럴 주제가 되는 지는 심히 의심스럽다만.

읽어주신 님들의 평안을 빕니다.
자숙한 게 고작 나흘이라 민망합니다. 부동산 세제를 개악한다는 보도를 보니까 꼭지가 도네요. -.,-;;;
마레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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