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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4. 13. 23:12관심사

"차마, 꽃잎 아파할까 발 디디지 못했네"
가슴 저민 감동이 봄비와 함께 내리던 섬진강
텍스트만보기   서종규(gamguk) 기자   
▲ 강가의 버드나무는 벌써 연한 녹색의 손을 내밀고 있다.
ⓒ 서종규
갑자기,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겠다는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우리들의 마음에 매혹적으로 파고들었던 노래,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 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라고 우리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가 비 오는 섬진강가에 울려 퍼지는 것 같다.

내가 서 있었던 4월 11일(화), 비가 내리는 섬진강가에 물안개는 피어오르지 않았다. 가까운 산들에 잔뜩 비구름이 감싸고 있다. 물안개가 아니라도 봄비 내리는 강물의 도도함이 이렇게 마음 가득 차 오르는 것을, 나는 떨리는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지리산에서 흘러 내린 물이 쌍계사 앞으로 섬진강까지 흘러 간다.
ⓒ 서종규
안도현 시인은 그렇게 표현했다. 겨울에 강물이 어는 이유를 말이다. 어린 눈발들이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어 녹아내리는 것이, 안타까워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자꾸 뒤척였다고.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 안도현의 시 <겨울 강가에서> 중에서


너무도 섬세한 안도현 시인의 마음이 섬진강물에도 흐르고 있는 것 같다. 내리는 눈을 받아 내려고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아 놓은 강이다. 강에 대한 대단한 애정이 깃든 시이다. 섬진강은 내리는 눈을 받아 내는 마음으로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 지리산에서 흘러나온 강물이 쌍계사 계곡을 타고 섬진강에 합하여 질 땐 몸을 뒤척이며 하얗게 소리 지르고 있다.
ⓒ 서종규
봄비가 내리는 강가에 서서, 내리는 봄비를 몸으로 받아 내는 강을 바라보고 있다. 비에 젖어, 아니 내리는 비를 안아내는 그 넉넉함에 젖어, 강가의 버드나무는 벌써 연한 녹색의 손을 내밀고 있다.

지리산에서 흘러나온 강물이 쌍계사 계곡을 타고 섬진강에 합하여 질 땐 몸을 뒤척이며 하얗게 소리 지르고 있다. 흐르다가 바위라도 만나면 아는 체를 해야만 반가운 정이 배가 될 것을 강물은 잘 알고 있다.

쌍계사 들어가는 길을 하얀 터널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던 벚꽃은 간밤의 비바람으로 하나씩, 하나씩, 날리어, 날리어, 쌍계사 계곡 흐르는 물에 몸을 실었고, 섬진강 큰 물줄기 속으로, 물줄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 섬진강은 정말 시원하게 흘러간다.
ⓒ 서종규
물위를 날던 갈매기 한 마리 빙 돌아 다시 날아온다. 강물에 그 모습을 비추고 싶었는지, 물 가까이 날아간다. 강물은 몸을 뒤척이며 흰 갈매기에게 물결을 일으킨다. 비 오는 날에는 더 그리워지는 강물이 보내는 미소다.

화개장터에서 11년 간 개인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는 정한구(58세)씨는 섬진강의 수량이 줄어들어 그 아름다움이 반감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옛날에는 수량이 많아서 강물이 깨끗했고, 더불어 쌓여진 모래에서 금빛이 반짝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섬진강 상류에 섬진강댐, 주암댐이 생기면서 수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이 점차로 메말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들의 흐름이 늦어지면서 강물의 깨끗함이 줄어들고, 고기들도 줄어들고, 금빛 반짝이던 모래도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모래가 너무 좋았습니다. 백사장이 금빛으로 반짝이면 신발을 벗고,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요. 사실 여름이면 그 금빛 백사장에서 모래찜질도 하였구요. 지금은 기가 죽어 있어요. 그 색을 잃어 버려서 윤기가 없다니까요."

▲ 남도대교로 인하여 화개장터는 다시 화합의 화개장터가 되었다.
ⓒ 서종규
200km가 넘는 섬진강의 줄기가 옛날같이 활기차게 살아 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은어며, 재첩이며, 참게며, 그렇게 많이 섬진강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고기들도 풀이 죽어 있기는 마찬가지란다. 그래서 지리산에 또 댐을 막으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반대하고 있단다.

하동군에서는 또 벚꽃길을 2차선이 비좁다고 4차선으로 확장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20km 섬진강 벚꽃길을 4차선으로 확장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또 모든 사람들이 하동군청에 달려가 반대를 하여, 하동군청에서는 4차선 확장 공사 계획을 보류하였단다.

▲ 비에 젖어, 아니 내리는 비를 안아내는 그 넉넉함
ⓒ 서종규
정한구씨는 차라리 다리를 더 많이 건설하여 섬진강 양옆의 도로의 이용률을 높이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남도와 경상남도가 나뉘어져 있으나, 전라도 쪽 길엔 교통량이 훨씬 적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놓았던 남도대교가 그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도대교의 개통으로 화개장터가 활기를 찾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양 김씨의 대립이 섬진강에서도 팽팽하게 이어졌는데,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남도대교의 교통과 양 김씨의 퇴진으로 인하여 다시 화합의 화개장터가 되었다는 것이다.

▲ 백사장이 금빛으로 반짝이면 신발을 벗고 , 달려가고 싶은 충동
ⓒ 서종규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의 이야기꽃이 피었다. 어제 비가 오는 가운데 다녀온 소풍이야기이다. 광주경신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바로 이 섬진강 하구 하동에서 화개장터로 이어지는 20km, 그리고 쌍계사 입구의 벚꽃길을 다녀왔다.

학생들이 비만 맞고 왔다고 불평이 많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특히 쌍계사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화개장터까지 4km의 벚꽃길을 걸으면서 불평을 많이 하였다는 것이다. 전날 내린 비바람으로 벚꽃이 대부분 땅에 떨어져 버려 볼품이 없는 길을 다리만 아프게 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떨어진 꽃잎이 더 예뻤다는 선생님들의 의견이 나왔다. 큰비가 아닌 이슬비 정도의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길에, 온통 하얗게 떨어진 꽃잎을 밟으며 걸었던 쌍계사의 벚꽃길은 지금까지 어떤 소풍보다 좋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과는 큰 의견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학생들은 비만 맞고 다리만 아프고 재미 하나도 없었던 소풍이었다는 것이고, 선생님들은 비에 젖은 벚꽃길과 섬진강의 모습이 가슴을 저미어 오는 감동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 물위를 날던 갈매기 한 마리 빙 돌아 다시 날아온다.
ⓒ 서종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어 보았다. 어제 간 소풍이 재미없었느냐고.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학생들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그동안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교과서 밖에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데, 섬진강 이야기를 하였다.

꽃을 보아도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청소년 세대, 만개한 벚꽃보다 비에 젖어 떨어지는 벚꽃잎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차마 그 꽃잎들이 아파할까 봐 발을 어떻게 디딜 수 있었겠는가 하며 감성을 자극하였다. 비 내리는 섬진강은 우리들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섬진강의 참 모습이었다고 했다.

학생들이 숙연해지기 시작하였다.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쌍계사의 벚꽃을 보려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여러분은 그 곳에 가보고서도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꽃을 보고, 흐르는 강물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제자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설득했다.

▲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는 배
ⓒ 서종규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선생님이 본 것을 다 보기는 보았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생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나의 설명을 들었던 김다혜(경신중 3) 학생은 작은 꽃잎 하나에 기쁨을 얻었다며 좋아했고, 강혜정(경신중3) 학생은 섬진강이 가장 깨끗한 강이라고 다음과 같이 소감문에 적었다.

"비도 맞고 옷도 젖고 불평을 늘어놓다가 작은 꽃잎 하나에 기쁨을 얻은 것은 작은 것을 잊고 살던 우리에게 작은 것의 소중함도 느끼게 해주었다. 멋지게 흩날리는 벚꽃은 보지 못했지만 까만 아스팔트와 바위 나무기둥 사이사이 화려하게 수놓은 꽃잎이 더 인상적이었다. 좀 특별한 소풍이 오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섬진강은 정말 깨끗한 강이다. 내가 소풍을 간 곳 중에서 물이 가장 깨끗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섬진강은 정말 시원하게 흘러가는데 나는 더웠다. 자꾸만 섬진강에 뛰어들어서 시원하게 친구랑 물장난을 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와 내 친구들이 섬진강에서 장난을 치면서 쓰레기를 버리고 한다면 섬진강은 더 이상 깨끗한 강이 아닐 것이다."

▲ 봄비 내리는 강물의 도도함이 이렇게 마음 가득 차 오르는 것을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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