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2006. 4. 8. 11:59관심사

언덕에 누가 싸라기를 뿌렸을까?
광주경신중학교 앞 둔덕에 핀 조팝나무꽃
텍스트만보기   서종규(gamguk) 기자   
▲ 광주경신중학교 앞산 둔덕에 핀 조팝나무꽃
ⓒ 서종규
교정엔 3월 중순에 핀 개나리가 아직도 노랗다. 그리고 만개한 벚꽃이 화사하다. 교정 앞엔 조그마한 산이 하나 있다. 도심 속의 산은 공원 역할을 충분히 한다. 학생들은 화사하게 핀 벚꽃 아래에서 떠날 줄 모른다.

벚꽃 핀 둔덕 옆으로 하얗게 핀 꽃이 눈에 들어온다. 무리를 지어 핀 흰 꽃은 하늘의 은하수처럼 띠를 이루어 피어나고 있다. 조팝나무꽃이다. 봄이면 알게 모르게 산천에 피었다가 지는 꽃이다.

▲ 하얀 싸라기를 가득 뿌려놓은 듯한 꽃이다.
ⓒ 서종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보면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라고 메밀꽃 핀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소금을 뿌린 듯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의 하얀 메밀꽃의 모습은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설렌다.

봄이면 이러한 메밀꽃같이 하얗게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꽃이 있다. 멍석에 가득 하얀 쌀을 널어놓은 것 같은 꽃이 있다. 아니 하얀 쌀이라기보다는 하얀 싸라기를 가득 뿌려놓은 듯한 꽃이다. 산천에 알게 모르게 지천으로 깔려 있는 하얀 싸라기들을 보고 사람들은 밥을 생각하였는지 모른다.

▲ 그 순백의 꽃잎들은 보기만 해도 깨끗하다.
ⓒ 서종규
조팝나무, 즉 조밥처럼 생겼다고 붙은 이름이겠다. 하지만 조밥은 누런 색깔을 띤다.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는 이름이다. 꽃들이 작고 앙증맞아서 조팝나무라고 붙였는지 모른다. 좁쌀만한 꽃들이 좁쌀만큼 많이 붙어 있는 꽃이다.

어린 시절, 조밥을 먹기 시작하는 춘삼월엔 배고픔과의 전쟁이었다. 조밥엔 팥도 넣고, 고구마도 넣고, 쌀도 조금 넣어서 밥을 짓는다. 그것도 없으면 조만 삶아서 먹기도 한다. 하얀 쌀밥이라도 한 그릇 먹고 싶은 마음 굴뚝같은데, 어른 생일이라도 돌아와야 한 번 먹어 보았던 흰 쌀밥이다.

▲ 싸라기처럼 흩어 뿌려진 들판의 조팝나무꽃으로 교정은 더 활기차다.
ⓒ 서종규
조밥 한 그릇 먹고 들로 산으로 내닫는다. 그것이 어린 시절이었다. 산에 가면 칡이 가장 인기다. 땅 깊이 파고들어가는 칡뿌리를 캐기에 정신이 없다. 온통 땀을 쏟아가며 캐낸 칡뿌리를 한입에 넣고 씹어 물을 삼키면, 그 특유의 떨떠름한 맛이 뱃속까지 퍼진다.

지나가다 찔레나무 아래에서 자라나는 새 순은 상큼한 맛이다. 손가락만한 찔레라도 하나 발견하면 날아갈 듯한 손놀림으로 꺾는다. 껍질을 벗겨서 입속에 넣는다. 가시가 있어서 조금은 성가신 찔레나무 아래서 뱀이라도 한 마리 튀어나올까 걱정이다.

▲ 무리를 지어 핀 흰 꽃은 하늘의 은하수처럼 띠를 이루어 피어나고 있다.
ⓒ 서종규
어린 시절은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언덕에 하얗게 핀 조팝나무꽃은 영락없는 싸라기다. 참 곱기도 하다. 마당에 널어 놓은 흰쌀 같은 꽃이 언덕에 가득 피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몇 가지 조팝나무꽃을 꺾어 집에 가져 온 일이 있다. 병 하나를 깨끗이 씻어서 정성스럽게 꽂아 놓았다. 방안이 하얗게 변했다. 조팝나무꽃으로 밥을 지어 맛있게 먹는 꿈까지 꾸었다.

▲ 좁쌀 만한 꽃들이 좁쌀만큼 많이 붙어 있다.
ⓒ 서종규
조팝나무꽃은 낙화가 아름답다고들 한다. 하얀 꽃잎들이 떨어져 땅을 소복이 덮는다. 일부러 뿌려 놓은 싸라기 같다. 그 순백의 꽃잎들은 보기만 해도 깨끗하다. 바람이라도 한 줄기 불어 올라오면 꽃잎들은 별처럼 날아오른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조팝나무꽃을 보았다. 모두 시들어 있었고, 꽃병 아래에는 하얗게 꽃들이 떨어져 있었다. 싸라기 같은 꽃들이 바닥에 쌓여 있었다. 조팝나무꽃이 이렇게 빨리 시들 줄은 몰랐다. 꽃들에게 미안했다.

▲ 봄이면 알게 모르게 산천에 피었다가 지는 꽃이다.
ⓒ 서종규
그 뒤로는 자연에 흩어진 꽃들을 꺾지 않는다. 지금도 꽃꽂이에 무관심한 것이 그 영향인지 모르겠다. 화병의 꽃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꽃을 더 좋아하게 된 사연인지도 모른다.

며칠 동안 교정에 하얀 개 한 마리가 돌아다녔다. 애완견인가 보다.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었지만 몸에는 더러운 때가 묻어 있었다. 일부러 버린 개인지, 집을 나와 잃어버린 개인지 잘 모르겠다.

▲ 봄이면 메밀꽃 같이 하얗게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꽃이 있다.
ⓒ 서종규
학생들은 개 주위를 돌아다니며 과자를 던져 주거나 우유를 먹였다. 그렇지만 몸이 더러워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그래도 정성스럽게 그 애완견 주위를 돌아다니며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를 보고 선생님께서 집에 가져가 기르시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도 집에 애완견 한 마리를 기르고 있어서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네가 가져다 기르면 안 되겠니?"하고 말하자 비염이 심해 부모님께서 개 기르는 것을 반대하신다고 한다.

주인 잃은 개도 하얀 조팝나무꽃을 좋아하는지 가끔 그 조팝나무꽃 아래에 앉아 있었다. 하얀 꽃 아래 앉아 있는 애완견은 애처로웠다. 알게 모르게 산천의 언덕에 피어 있는 조팝나무에 친구가 생긴 것일까?

▲ 조팝나무, 즉 조밥처럼 생겼다고 붙은 이름이겠다.
ⓒ 서종규
구청에 전화를 했다. 집 잃은 개를 보호하는 시설에서 개를 데리러 사람이 왔다. 매일 10-20마리 정도 전화가 걸려 온다는 것이다. 보호 시설에는 약 150여 마리가 있단다. 수의사와 전문가들이 와서 보살펴 주기 때문에 건강을 금방 회복한다고 안심하라고 한다.

싸라기처럼 뿌려진 조팝나무꽃으로 교정은 더 활기차다. 아침에 보았을 때보다 더 많이 피어난 벚꽃도 출렁거린다. 노란 개나리는 이제 바닥에 노란 꽃잎들이 늘어가고 있고, 파란 잎이 솟아나온다.

▲ 멍석에 가득 하얀 쌀을 널어놓은 것 같다.
ⓒ 서종규

'관심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  (0) 2006.04.08
[펌]  (0) 2006.04.08
중용  (0) 2006.04.08
[시]  (0) 2006.04.07
[펌]  (0) 2006.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