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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3. 25. 12:49정치

"딸들에게 희망을 주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재상이 된 '운동권 새댁'... 아들 이름은 '박 한길' 아닌 '박한 길'
텍스트만보기   김당(dangk) 기자   
▲ 한명숙 국무총리 내정자가 24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하기 위해 국회 기자실로 향하면서 취재진을 향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딸들에게 희망을 주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헌정사상 첫 여성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한 한명숙 국무총리지명자의 일성(一聲)은 역시 여성운동가 출신 정치인다운 발언이었다.

한명숙 총리지명자는 24일 오후 총리 지명을 받은 뒤에 국회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스스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우리나라의 정치발전에 지평을 여는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한 의원은 '딸부자' 같지만 실은 마흔한살에 낳은 외아들 '박한길'이 유일한 혈육이다.

13년 옥중서신으로 나눈 전설적 사랑

한명숙 의원은 자신의 인생행로를 뒤바꾼 결정적 사건으로 부군인 박성준(성공회대 겸임교수·신학박사)씨와의 만남과 크리스찬아카데미와의 만남을 꼽는다.

한 의원은 1967년 대학 연합서클 선배인 박성준씨와 4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지만 그 이듬해 남편이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되는 바람에 신혼의 단꿈을 6개월만에 접어야 했다. 그 이후 한 의원은 81년 성탄절 특사로 남편이 풀려나기까지 13년 동안 여성운동계의 '전설'처럼 내려오는 애틋한 사랑을 나누었다.

당시 교도소 철창에 갇힌 남편과 담장 밖의 아내를 잇는 유일한 창구는 일주일에 한번씩 교신하는 옥중서신이었다. 그는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을 '남편의 편지를 먹고 사는 새댁'으로 회고했다.

"나는 남편이 대전교도소에 수감되던 그날부터 출옥하는 그날까지 (교도소 규정에 따라) 단 한 번의 어김도 없이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쓰고, 한 달에 한 번씩 면회를 갔다. 남편 역시 일주일에 한 번씩 붙여오는 답장을 단 한 차례도 빠트리지 않았다. 비록 교도소의 검열을 거쳐 서로의 생각을 온전하게 전달할 순 없었지만, 남편과 나의 옥중서신은 13년 동안 서로의 이상과 사랑을 오롯하게 확인할 수 있는 창구였다.

우리의 편지는 남편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통로였으며 사랑을 확인시켜주는 강한 끈이었다. 우리의 못다한 사랑과 시대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분노와 희망이 온전하게 편지에 실려 있었다. 우린 편지만으로도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었으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철학까지 공유할 수 있었다. 나는 남편의 편지를 먹고 사는 새댁이었다. 그리고 점점 더 강하고 맹렬한 투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1974년부터 6년 동안 한국 여성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진행된 여성 중간집단 교육과정의 간사역할을 했다. 여성 중간집단 교육은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의식화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외국에서는 '여성해방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기였다.

'남녀 차별없이' 자행된 가혹한 고문

▲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의식화 교육' 프로그램인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여성 중간집단 교육과정에 참여한 교육생들과 한명숙 간사(가운데 왼쪽).
▲ 한명숙은 중앙정보부의 고문과 가혹행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지난 30년 동안의 한국 여성운동사에서 가장 큰 변화로 간주되는 가족법 개정도 1975년 1월 당시 아카데미 하우스에 모인 각계각층 인사 100명이 1박 2일 동안 여성문제 토론회를 하면서 '가족법부터 바꾸자'는 주장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그때 한명숙 간사와 함께 활동했던 여성활동가들이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과 장필화 이화여대 교수 등이다.

그러나 박정희 독재정권의 중앙정보부는 1979년 4월 16일 김세균·신인령·이우재·장상환·한명숙·황한식 등 크리스찬아카데미 간사 6명과 정창렬 한양대 교수를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불법 지하용공써클을 구성해 크리스찬 아카데미에 입교하는 농민·근로자·여성·청년·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중간집단이론 강의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등 헌법질서를 부정하고 이를 변혁함으로써 사회주의의 실현을 획책했다는 혐의였다.

이들은 사회주의 서적을 소지하고 있다는 혐의로 전원 징역 1년6개월부터 7년형을 선고받았다. 한명숙 또한 남편 박성준이 대전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에 광주교도소에서 2년6개월을 수감돼 있었다.

수감되기 전에 이들에게는 '남녀 차별없이' 가혹한 고문이 자행되었다. 그 또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온 몸이 꽁꽁 묶인 채 밤새도록 구타를 당했다. 그 시절 그는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밤과 낮을 구별할 수 없었고 내가 살아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온 몸은 피멍이 들어 부어올랐고 부은 피부는 스치기만 해도 면도날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고문의 고통보다 더 크게 나를 짓눌렀다. 그들이 나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빨갱이'임을 실토하라는 것이었다."

그를 죽음의 언저리에서 건져준 것은 여동생 한이숙이 넣어준 한 권의 책이었다. 그 책은 나찌정권에 저항하다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수감중에 종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서 총살을 당한 독일의 실천적인 신학자 디트리히 본훼퍼의 옥중서간집이었다. 그는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본훼퍼의 이 대목을 다시 읽곤 했다.

"내가 고통을 당하는 것, 내가 매 맞는 것, 내가 죽은 것, 이것이 그리 심한 고통은 아니다. 나를 참으로 괴롭게 하는 것은, 내가 감옥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동안 밖이 너무 조용하다는 사실이다."

85년, 동사무소가 발칵 뒤집히다

▲ 13년여 동안 옥바라지하며 순정을 바친 아내 한명숙이 마흔한 살에 선물한 아들 '길'을 애지중지하며 돌본 남편 박성준씨.
그러나 조용한 가운데서도 세월은 흘렀다. 두 사람은 1981년 각각 광복절 특사와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단란했던 신혼의 꿈이 13년 동안 정지된 탓일까. '맹렬한 투사'라는 표현과 달리 한명숙 의원은 애틋한 그 시절 편지에 쓰던 표현대로 지금도 이따금 남편을 '준'이라고 부르는 '닭살 부부'다. 한명숙에게 남편 박성준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사마'였던 셈이다. '신랑' 박성준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또한 아내 한명숙이다.

그도 그럴 것이 67년에 결혼했던 그들은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82년부터 다시 늦은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 두 사람은 각각 전공도 바꾸었다. 남편은 경제학에서 신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한국신학대학에 편입했으며. 진보적 여성운동이 조직화되기를 희망한 그 역시 전공을 여성학으로 바꾸어 이화여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그는 한창 대학원 논문을 쓰던 1985년 어느 날 기대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마흔 한 살의 나이에 첫 아이를 낳았다. 그는 내심 딸이기를 원했으나 아들이었다. 뜻하지 않은 선물에 감격한 부부는 아이의 이름을 '길'로 지었다. 그런데 성(姓)이 문제였다.

지금은 부모의 성을 함께 쓰는 운동이 한창 벌어지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이름에 엄마의 성을 쓰는 것은 생뚱맞고 난데없는 일이었다. 그는 남편의 성에 자신의 성을 덧붙여 '박한 길'이라는 이름을 지어 출생신고서의 성을 쓰는 칸에 '박한'이라고 적어서 냈다. 동사무소가 발칵 뒤집혔다. 새로운 성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하는 수없이 '박한 길'을 '박 한길'로 고쳐 출생신고를 마쳤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들의 이름은 '공길'도 '한길'도 아닌 '길'이고 성은 '박한'임을 분명히 했고, 그의 아들 또한 자신의 성과 이름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 늦동이는 현재 현역으로 군복무 중이다.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권유로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한명숙 의원은 그해 모성보호관련 3법(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제출하고 호주제폐지를 위한 청원서를 소개했다. 이듬해 초대 여성부장관에 기용된 그는 재임중에 21세기 남녀평등헌장 제정, 여성발전기본법 개정,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출범 등에 이바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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