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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3. 13. 10:11관심사

어! 누렁 소 콧잔등에 땀방울 송송하네
새봄, 쟁기질하는 농부와 소의 모습은 하나였습니다
텍스트만보기   임윤수(zzzohmy) 기자   
▲ 밭갈이를 하러 농부와 함께 밭으로 나와 쟁기를 끌던 누렁이 콧잔등에는 어느 듯 땀방울이 송송하게 솟았습니다.
ⓒ 임윤수
양말조차 신지 않은 맨살에 낡은 털신을 신은 농부가 짊어진 지게에는 쟁기가 실려 있고, 한 손에 잡고가는 고삐는 앞서가고 있는 누렁소의 코뚜레에 매달려 있습니다. 농부는 앞서 가는 소를 따라 휘적휘적 힘들지 않게 동네 뒤쪽 들녘 길을 오르더니 밭가에 멈추어 섭니다.

들녘이라고 해야 몇몇 뙈기밭이 듬성듬성 있는 산비탈입니다. 지게를 벗고 쟁기를 내리더니 익숙한 솜씨로 소한테 쟁기 줄을 차례대로 얽어매고 챙기기 시작합니다. 신고 온 털신을 훌떡 벗어 지게 옆에 가지런히 놓습니다.

소 목덜미에 멍에를 얹고 이리저리 줄들을 연결하더니 어느 순간 소갈이를 할 수 있게 쟁기와 소가 연결됩니다. 아직 소들이 먹을 것을 찾느라 한눈을 팔 만큼 새순들이 올라오지 않아서인지 소를 부릴 때면 언제나 채워지는 듯한 부리망, 그물처럼 생겨 입에 덧씌우는 부리망은 채우질 않았습니다.

▲ 농부는 지고 온 지게에서 쟁기를 내려 소에게 매더니 신발조차 훌떡 벗었습니다.
ⓒ 임윤수
농부가 한 손에 잡고 있던 고삐를 흔들며 "이러~!" 하고 소리를 치니 누렁이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폭삭거리며 먼지가 일어날 것처럼 메마른 땅에서는 쟁기 끝에 달린 보습이 지나가면 휙휙 뒤엎어지고 촉촉한 새 흙들이 올라옵니다.

농부는 촉촉하면서도 포슬포슬해 보이는 흙덩이들을 맨발로 밟으며 밭갈이를 시작합니다. 맨발을 한 농부는 발끝으로 기분 좋은 촉감을 느낄 듯합니다. 땅에서 올라오는 차가우면서도 은근한 봄기운이 걸릴 것 없이 전해지고, 땅기운을 머금은 촉촉함과 양기가 배어 있는 포슬포슬함 또한 그대로 느낄 듯합니다.

농부와 소 모두가 밭갈이에 익숙해 보입니다. 농촌엘 가면 농부도 많고 소도 많지만, 농사일 또한 상당 부분이 기계화되면서 능숙하게 소를 부릴 수 있는 농부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 몇몇에 불과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쟁기를 끌 수 있는 일소 또한 흔하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 소를 부린다는 게 힘이나 우격다짐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요령은 물론 소와 호흡을 함께 할 만큼 손발이 척척 맞아야합니다.
ⓒ 임윤수
힘들고 고단한 게 농촌일이니 무조건 힘만 있으면 우격다짐으로라도 될 듯하지만 밭갈이만큼은 그렇지 않습니다. 경험을 쌓으면서 얻게 되는 요령도 있어야 하고, 길들여진 소와 호흡이라도 하듯 손발이 척척 맞아야 합니다. 요령 없이 힘만 끄려는 사람은 너무 우악스러워 자칫 보습을 부러뜨리기도 하지만 무리한 밭갈이로 소를 다치거나 병들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쟁기의 일부나 보습을 부러뜨리거나 망가뜨리면 당장 일손을 멈춰 새로 만들거나 5일장쯤을 기다렸다 새로 사와야 하니 차라리 일을 아니한만 못할 만큼 농사철에 커다란 피해를 줍니다. 게다가 소라도 병들게 된다면 한 철 농사를 어렵게 하는 것은 물론 소에 대한 걱정으로 농부의 마음이 고통스러워지게 마련입니다.

밭을 갈고 있는 농부와 소는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한 듯 손발이 척척 맞습니다. 밭 아래쪽 가장자리서부터 빠짐없이 차곡차곡 쟁기질이 이뤄집니다. 박혀 있는 돌이라도 나오면 소는 알아서 돌아가고, 농부는 미리미리 쟁기를 들어 헛고생을 덜어줍니다.

▲ 밭을 반쯤 갈았을 때 소가 힘들어 하니 농부는 쟁기를 세우고 휴식을 취합니다.
ⓒ 임윤수
겨우내 외양간에만 있다 오랜만에 멍에를 메고 쟁기를 끌어서 그런지 소가 힘들어 합니다. 멀찌감치 서도 느껴질 정도로 식식 거리며 콧바람을 몰아쉽니다. 힘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꾀를 부리느라 그러는지 소가 똑바로 가지 않을 때마다 농부는 "이러이러, 어더더더~"거리며 목소리를 높여줍니다.

소가 힘겨워 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모가지를 앞쪽으로 길쭉하게 내밀고 안간힘을 다해 멍에에 매달린 쟁기 줄을 끌어당깁니다. 그래도 이들은 밭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저쪽 끝에서 이쪽 끝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메마른 땅을 차곡차곡 일궈갑니다. 밭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인지 밭갈이를 시작해 30여분 정도 지나니 절반쯤을 갈았습니다.

겨우내 불그죽죽하게 녹슬어 있었을 보습도 어느덧 반짝거릴 만큼 윤기나게 깨끗해졌습니다. 남이 되는 땅을 일구다보니 자신의 몸쯤은 저절로 깨끗하게 닦아지고 윤기 나게 된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장입니다.

▲ 농부가 힘들어 쉬는 것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올 들어 처음 멍에를 짊어진 소가 힘들어 하니 오랫동안 쉬는 것이었습니다.
ⓒ 임윤수
농부는 밭가에 보습을 꼽아 쟁기를 세우며 "워~" 하고 소를 세우더니 길 옆에 있는 돌멩이에 털썩 주저앉습니다. 농부가 휴식을 취하니 소에게도 자연스레 주어지는 휴식시간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농부는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별로 오랫동안 일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참 오래도 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참 오래 쉬시네요" 하며 은근하게 오래 쉬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농부아저씨는 씨익 웃으시며 "소가 아직 대근해 하는 것 같아서…" 하시며 소를 바라보십니다. 그러고 보니 콧바람만 식식거리는 것 같던 소가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뱃가죽까지 실룩거립니다. 해가 바뀌어 처음으로 밭갈이를 하니, 아직 일에 익숙해지지 않은 소가 힘들어 해서 소를 쉬게 하느라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 소의 눈은 선하기만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도 별다른 경계심이나 저항감 없이 두 눈만을 껌벅거립니다.
ⓒ 임윤수
이런 게 농부의 마음인가 봅니다. 구경꾼은 렌즈를 통해서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면서도 소가 힘들어 하는 것을 느끼거나 생각하지 못했는데, 농부는 소의 마음이 되어 먼저 힘들어 하고 먼저 느껴 충분하게 쉬도록 해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일궈지는 땅에서 느끼는 생명력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나 감회 또한 농부와 구경꾼이 천차만별일 거란 생각입니다.

배를 실룩거리던 소가 어느 정도 진정된 상태에서 농부의 허락을 받고 소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레 소에게로 다가갔습니다. 별다른 경계심이나 저항감 없이 두 눈만을 껌벅거리며 맞아줍니다.

눈빛이 참 선합니다. 힘이 들고 몸이 고되어 그런지 약간 충혈된 듯 보였지만 착하고 선함이 뚝뚝 떨어질 듯한 그런 눈빛입니다. 까맣고 커다란 눈동자에는 새순보다도 더 여리고 착해 보이는 순종의 뭔가가 배어 있었습니다.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으니 '푸~푸~' 하며 콧바람을 일으킵니다.

▲ 송송 땀방울 맺은 콧잔등이나 콧구멍이 가려운지 기다란 혀를 내밀어 쓱쓱 핥아줍니다.
ⓒ 임윤수
그러고 보니 소머리에서 유일하게 맨살로 드러나 있는 콧잔등에 이슬 같은 물방울이 달렸습니다. 되새김질을 하느라 연실 놀려내고 있는 주둥이 위쪽, 콧잔등이에 땀방울이 송알송알 솟았습니다. 평소에도 습기를 머금고 있는 콧잔등이었겠지만 식식거리는 콧김에 젖어 그런지 한결 촉촉해 보이고 선명한 색깔입니다.

반질반질하고 누런 빛깔의 콧잔등이에 유리구슬이라도 뿌려놓은 듯 땀방울이 빼곡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울컥하도록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커다란 덩치에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이토록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송할까를 생각하니 애처롭기까지 했습니다.

힘겹게 쟁기를 끌고 있을 때 멀찌감치 서서 구경꾼처럼 서성대던 필자의 모습이 소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지고 투영되었을까를 생각하니 미안해졌습니다. 그렇다고 힘겨움을 덜어줄 능력도 없고, 형편도 되지 않으니 그냥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쓰다듬어 주는 손길을 통해 마음이라도 전달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 멍에가 얹혀있는 목덜미 주변, 실질적으로 쟁기를 끄는 모든 힘이 걸리고 있을 목덜미엔 황토색 누런 소털들이 이리저리 헝클어져있습니다.
ⓒ 임윤수
흐르는 땀에 콧잔등과 콧구멍이 간지러운지 기다란 혀를 내밀어 쓱쓱 핥아줍니다. 생살을 째서 넣은 코뚜레에는 소고삐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소 자체의 성품이 온순하기도 하겠지만 생살을 뚫고 있는 쇠코뚜레가 주는 통증이 너무 커서 소들이 그렇게 사람 말을 잘 듣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생깁니다.

멍에가 얹혀 있는 목덜미 주변, 실질적으로 쟁기를 끄는 모든 힘이 걸리고 있을 목덜미엔 황토색 누런 소털들이 이리저리 헝클어져 있습니다. 아직은 굳은살이 잡히지 않아 쟁기를 당길 때마다 느껴질 고통을 덜어보려 이리저리 몸부림을 치듯 움직이느라 털조차 그렇게 뭉쳐진 모양입니다.

▲ 소가 끌고 있는 쟁기에는 이처럼 묵직한 보습이 달려있어 땅을 일굽니다. 겨우내 녹이 슬어있었을 쟁기도 밭을 갈아주다 보니 자신도 윤기 나도록 깨끗해졌습니다.
ⓒ 임윤수
불규칙하던 들숨과 날숨이 고르게 되고 실룩대던 뱃가죽이 평온해지니 앉아 있던 농부가 벌떡 일어나 쟁기와 고삐를 부여잡고, "이러~!" 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이미 짧은 시간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소는 서두르거나 당황해 하지 않고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멍에를 짊어멘 소가 앞장서고 쟁기 끝에 달린 보습이 뒤따릅니다. 거칠고 말라 있던 밭뙈기가 차곡차곡 뒤엎어지며 포슬포슬한 새 흙들이 올라옵니다. 그렇게 올라온 새 흙에서는 보일 듯 말 듯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새싹들을 움틔워 줄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식식거리는 소의 숨소리가 크게 들리고, 뒤집혀진 새 흙에 찍히는 농부의 발자국이 늘어날수록 갈아엎어야 할 면적이 줄어듭니다. 비록 사람인 농부였고 축생인 소였지만, 쟁기를 걸머메고 밭을 일구는 동안 그들은 둘이 아닌 혼연(渾然)이 되었습니다.

▲ 휴식을 취하고 난 농부와 누렁이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남은 밭을 일구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이렇게 일군 밭에는 머지않아 뭔가가 파종되고 새싹으로 돋아날 것입니다. 돋아나는 새싹과 거둬지는 결실 뒤에는 이렇듯 이른 봄부터 흘려준 소의 땀이 배어들었고, 당신의 몸보다 소를 먼저 생각하는 농부의 마음이 흘러들어 양분도 되고 허수아비가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커다란 눈 껌뻑거리던 누렁이 콧잔등에 맺혔던 땀방울은 그냥 땀방울이 아니라 알곡이 되는 보배스런 땀방울이었습니다. 거친 땅을 일구는 소의 모습을 보며, 소가 사람들을 위해 알곡 되는 땀방울을 흘려주듯 사람들도 그 누군가를 위해 땀방울을 맺어 준다면 그거야 말로 숭고한 사랑이며 자비일 거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마음 한 자락을 일궈봅니다.
사진은 지난 목요일(9일) 찍은 것입니다.
2006-03-13 09:45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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