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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 18. 15:46정치

길고 고통스러운 추락의 시간에 읽을 거리

- 단순하게 처벌과 용서의 흑백논리로 말하는 것이 왜곡이다

낮은풍경

모른다. 그가 왜 그랬는지. 경제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그랬는지, 세계최초 동양최대의 구호에 익숙해져버린 명예욕이었는지, 조국과 민족이 잘 팔린다는 것을 눈치챈 영악한 장사속인지 혹은 그것을 가치로 소영웅주의인지, 우월한 종족을 열망하는 신세기 우생학인지, 아니면 확신범인지 알 수도 없고 믿기도 힘들다.

사람에 대한 불신이 아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와 영광이 누구의 입에서든지 발음될 수 있는 낱말이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정의와 민주를 입에 담지 않는 정치인을 본 적이 없고, 달러를 벌어들이는 수출역군이라는 이태원 포주의 주장을 목격했으며, 심지어 지존파도 사람을 죽이고 먹기까지 하면서 빈부의 차이에 대한 분노를 입에 담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야할 가치들이 불순한 목적의 추종자들에게 인용되고 그들의 행위를 변명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일 뿐이다. 현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사람에 대한 불신이 아니다.

딸아이 등록금을 채우기 위해 밤새워 택시운전을 하는 허씨 아저씨가 있다. 황금시간대라고 승차거부도 하지 않고, 신호등에 걸리게끔 속도를 조절해서 몇백원의 부당이익을 노리지도 않는 사람이다. 웃는 얼굴로 실어다 주고 바래다 주면 밥먹고 자식 키우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걸 믿는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을 신뢰한다. 등록금이 또 오른다는 그의 근심을 함께하고, 정직하게 열심히 살면 소박하게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고, 반칙한 사람들을 개탄하면서도 그들과 같이 해볼껄이라는 후회를 하지 않게 도와드리겠다고 다짐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신뢰한다.

그가 너무 높이 날았다는 것이다. 가진 것에 비해서 높이 날았다. 룰을 지키는 사람들보다 먼저 가기 위해서, 쉽게 가기 위해서, 학문이라는 허락된 날개 이상의 것을 원했다. 언론을 탐했고, 대중을 넘보았으며, 권력을 갈구했다. 그가 추락하는 고통의 시간이 너무 길고, 추락의 높이가 너무 높다는 불평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닌 날개로 얼마나 높이 올랐는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한 걸음씩 딛고 올라가는 계단이 얼마나 든든한 토대인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눈 덮힌 들판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마라, 오늘 걸어간 발자국이 뒷사람의 길이 되리라는 학문의 자세를, 삶의 자세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진술 속에 등장하는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모두가 그의 기만처럼 행동하고 성취를 하고자할 때 대한민국이 병들 것이라는 걸 외면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진술을 믿지 않지만, 그또한 정직함의 힘을 믿지 않았다. 원칙과 상식의 힘과 정도의 힘을 불신하고 그 불신을 전파하고 있는 것에 분노한다. 우리가 힘이 부족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를 때리는 것이 아니다. 정직함을 외면하고 원칙과 상식을 부정함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음모론에 기대어 남의 탓만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힘이 부족한 것이다.

이카루스의 추락.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신화를 이야기했었고, 또 얼마나 많은 사건에서 이 신화를 빗대어 반성하고 현명해지기를 기원했었던가. 우린 또다시 얼마나 많은 일들을 만나서 이 신화를 기억하고 되새기면서 세상사에 교훈을 일깨울 것인가. 사람들의 반성과 성찰속에서 이카루스는 억겁의 날개짓으로 올랐다 추락하기를 반복해야 하고,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가혹한 추락을 되풀이를 해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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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황까라는 입장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원칙과 가치, 대화와 질문이 허락되는 사회를 위해 글보시나마 해왔던 관성이었고, 변치않는 시각과 일관된 자세였다. 황의 태도와 황과 조응하는 여론의 태도를 보면서 딱딱해져가는 우리 사회의 병적인 징후를 보았다. 음모론을 배격했다. 그리하여 내가 혹은 비슷한 주장을 하는 황까들이 미즈메디를 옹호하고 있다고 보는지, 서울대를 옹호하고 있다고 보는지를 궁금하게 생각했다. 혹시 황박이 미즈메디 핑계대고, 서울대를 핑계대고, 의대와 수의대의 알력관계를 핑계대고 빠져나가는 태도를 기만의 연속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지 묻고도 싶었다. 

이번 황박 게이트는 황박 + 미즈메디 + 한양대 관련 교수들 + 서울대 관련 교수들 + 과기부 관련자들 + 청와대 관련자들 + 고기먹은 기자들 + 황박 팔아 돈 번 언론사들 + 후원금 받아 먹으면서 거래한 여야 10인, 혹은 그 이상이 될 지 모르는 정치권들까지 반칙에 가담한 사람들, 반칙을 눈감아주고 야합한 사람들 모두를 밝혀내서 우리가 사는 이곳을 더 건강하게 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맘대로 황박 하나한테 덮어씌우고 단물 빨아먹으면서 배불렀던 놈들을 놔준단 말인가. 그래서 내가 황까인가 보다.  

수년전이다. DJ가 자신을 핍박했던 전두환과 5공을 용서한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분노했다. DJ, 당신은 이땅의 역사와 과오를 바로잡을 권한을 부여받았지 용서할 권한을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소리질렀다. 개인적인 용서와 사회적인 용인을 분별하기를 요구했다. 어떠한 처벌과 징계인지, 어떠한 용서인지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고 앞으로 일어날 유사한 사건들에게 경고를 한다. 이를 단순하게 처벌과 용서의 흑백논리로 말하는 것이 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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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과 여론 조작을 지적받는 조중동의 시장점유율은 70%를 상회한다. 개혁을 표방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은 20% 전후를 배회한다. 사학법 장외투쟁에 대한 싸늘한 반응에 당혹해하는 한나라당은 마의 40%를 넘느냐 마느냐를 운운한다. 히틀러에 대한 독일 국민의 지지율은 99%였으며, 부시의 최저 지지율은 열린우리당이 잘해야 받을 수 있는 34%다.  

여론은 옳지않다. 단언컨데, 옳지 않다.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다. 정답을 찾아 유랑하는 동안은 모두가 옳은 답을 지향하는 오답의 소유자인 것이다. 인류와 역사에 대한 범죄가 폭로될 때 99%의 지지율은 99%의 증오와 탄식으로 정체성을 되찾는 것이다.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쪽수로 자신의 희망이 얼마나 정당한 지를 증명한 사례는 없다. 가치가 실현되는 정도로 말할 뿐이다. 대화속에서 관계속에서 존재의 실마리들이 발현되는 추이에 감격할 뿐이다. 

황우석의 재연을 요구하는, 따라서 황우석을 지지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론이 80%라고? PD 수첩의 질문 이전에 황우석에 대한 신뢰는 100%였다. 해석은 누구나 아전인수식으로 할 수 있다. 주장은 입맛에 맞는 해석을 채택할 수 있다. 원하는 것이 듣기에 달콤한 멘트인지를 고민해주었으면 한다.

-노하우2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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