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2012. 4. 10. 14:27사람 사는 세상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강기석 홈페이지 편집위원장 2012.04.10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강기석/홈페이지 편집위원장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모택동이 한 말이지요. 중국의 공산혁명을 이끈 인물다운 말입니다. 실로 인류역사상 거의 모든 국가권력이 폭력을 퉁해 형성되었습니다. 이를 간파한 것이 모택동 뿐이겠습니까. 아주 먼 옛날 이야기를 할 것도 없이 20세기에만도 러시아의 레닌,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스페인의 프랑코 등등 폭력으로 권력을 쟁탈한 수많은 독재자들이 모택동의 명제를 증명하는 듯 합니다.

그밖에도 쿠바의 카스트로, 체 게바라,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린 칠레의 피노체트 등 무수한 혁명가 혹은 쿠데타 주동자들이 총칼을 들고 탱크를 앞세워 권력을 세우거나 빼앗았습니다. 지금도 온 나라를 피로 물들이고 있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또 어떻습니까. 북한정권이 내세우는 ‘선군정치’ 역시 김일성이 무력으로 세운 정권을 계속 무력으로 유지하겠다는 발버둥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인류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더 이상 총탄(bullet)이 권력의 산파역할을 하는 것을 거부하는 쪽으로 전진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인민의 보편적 투표(ballot)를 통해 권력을 창출하는 서구민주주의는, 그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중반 나치즘에 대한 승리, 20세기 후반 공산주의에 대한 승리를 거치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굳어 졌습니다. 중국과 북한, 그리고 중동과 아프리카의 극소수 몇몇 나라만이 이 거대한 흐름에 안간힘을 다해 저항하고 있을 뿐입니다.



투표로 권력을 창출하는 민주주의가 인류 보편적 가치

역사가 저절로 그렇게 흘러온 것은 물론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지난한 투쟁이 막힌 물꼬를 텄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물길을 돌렸습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되새긴 것처럼 “민주주의란 나무는 인민의 피를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시민․대학생들이 피를 흘려 이승만 독재정권을 타도했고 박정희 유신정권을 무너뜨렸으며 전두환 등 신군부의 군사독재로부터 주권을 되찾았던 것입니다.

60년 경무대 앞에서, 79년 부산과 마산에서, 80년 광주에서, 87년 시청 앞 광장에서 시민들이 총을 맞고 곤봉으로 두들겨 맞고 최루탄 가스를 뒤집어 쓰며 요구했던 것은 단 하나 “주권을 돌려 달라”, 즉 “투표권을 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불행히도 양김 분열과 이어진 3당야합으로 인해 우리는 10년을 더 독재정권의 후유증을 겪으며 살아야 했지만 97년 드디어 정권교체라는 기적을 이루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동안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우리가 피를 흘려 쟁취해 낸 ‘투표권’ 덕분이었습니다.

선거가 항상 지고지선의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꼭 불법․부정선거 때문이 아니라 주권자 스스로의 판단착오로 인해 가장 나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결과를 우리는 지난 4년 동안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고소영 인사-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4대강 파헤치기-검경의 정치도구화-정적탄압-부자감세-용산참사-언론악법 날치기통과-한미FTA 굴욕재협상-내곡동 땅투기에 국고투입-친인척․측근비리-국가기관 선관위를 둘러 싼 의혹-방송3사 동시파업을 부른 방송장악-민간인 불법사찰과 은폐시도 등등, 나쁜 것을 더 나쁜 것으로 덮어가는 최악의 정권을 겪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사과는커녕 독선과 오기, 꼼수와 거짓만이 난무합니다. 이것은 악몽입니다. 우리 스스로 자초한 악몽입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4년 전 우리 스스로 저지른 엄청난 실수를 인정한다면, 그 실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힘이 여전히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 입니다. 투표를 통해서입니다. 이 정권의 혹독한 탄압에 몰려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망했던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인 시민들의 조직된 힘”, 그것은 궁극적으로 투표를 통해 표출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인 1인1표 보통선거권은 허상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수구기득권세력은 과거처럼 구태여 표를 매수하거나 군이나 공무원을 동원하는 관권선거 등 불법부정선거를 자행하지 않아도 선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무엇보다 돈과 권력으로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이미지를 조작합니다. 자기들에게 불리한 이슈는 죽이고 유리한 이슈는 살립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유권자로부터 아예 투표할 마음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들은 투표를 두려워 합니다. 총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몰락한 것도 ‘선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투표를 피하기 위해 유신체제를 구축하는 등 철권통치에 몰두하다가 부하의 총에 맞아 죽은 것입니다. 결국 독재자를 죽인 것은 ‘총알(bullet)’이었지만 독재체제를 무너뜨린 것은 ‘투표(ballot)'-혹은 투표에 대한 두려움-였던 것입니다.

투표를 두려워하는 수구기득권세력

스스로 투표를 포기하려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잡하게 깔려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잡한 이유들을 정리해 가다 보면, 수구기득권세력이 만들어 놓은 구질서에 순응하면서 편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놓여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구기득권세력이 기회닿는 대로 퍼뜨리는, “정치는 모두 썪었다”는 정치혐오와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냉소와 “투표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무기력이 작용한 탓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투표의 결과는 즉각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서서히 우리의 삶의 질을 바꿉니다. 민주정부 10년의 추억 말고도, 재작년 지방선거의 결과 지방행정이 눈에 띄게 바뀌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전 자치정부의 잘못된 행정이 바로 잡히고 부정행위와 예산낭비 사례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등장으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되고 서울시립대 등록금이 절반으로 인하됐습니다. 그 덕에 서울시립대 학생들의 투표열풍이 불었다고 하는데 이런 기사 역시 수구언론에서는 찾아 보기 힘들지 않습니까.

고 김대중 대통령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바람벽에 대고 욕이라도 해라” 고 했습니다. 김용민은 바람벽이 아니라 인터넷 방송에 대고 욕을 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고 있지만 총선을 앞 둔 우리는 욕을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우리에겐 총알보다 무서운 투표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바꿀 힘이 우리에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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