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이야기] 1988년 노무현의 첫 선거를 말하다
2012. 3. 17. 11:23ㆍ사람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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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후보가, ‘상품’이 좋아 돈으로 안 한다” - [구술이야기] ‘부산 동구지구당 사람들’, 노무현과 새로운 선거운동 펼치다 노무현재단 사료편찬위원회
1988년 초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한테서 영입 제안이 왔다. 대선에서 패배한 ‘양김’이 재야 민주화운동 출신 인사를 다투어 영입하던 때였다. …(중략)··· 어쨌든 나는 김영삼 총재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였다. 개인적으로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소박하게 판단했다. “국회의원이 되면 노동자들을 돕는 데 유리할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한 동지들과 이 문제를 놓고 진지하고 치열하게 토론했다. (자서전 <운명이다> 96·98p) 노 대통령은 출마 여부를 놓고 여러 경로를 통해 의견을 듣고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최병철 씨도 그런 자리에 있었던 한 사람이다. 최병철 씨는 학생운동을 하던 시기에 만나 1984년 노 대통령이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 공간을 내줬던 공해문제연구소에서 간사로 일했다. 이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 등에서 노 대통령과 함께 했다. [최병철 구술영상] “어차피 붙을 바에 제일 ‘쎈 놈’하고 붙어야겠다” 노 대통령은 그렇게 연고 없는 동구를 선택했다. 노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창인 원창희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언론에서 ‘동구에는 민정당 허삼수 후보가 최고 강자니까 전부 다 피한다’ 이런 기사가 나오고 그럴 때였어요. 그런데 ‘동구에 노무현 나온다’는 소식을 접한 거죠. 그 전에는 노 대통령이 살던 남구나, 부산상고가 있어 동문들도 많은 부산진구에 나올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래서 내가 노 대통령한테 전화해가지고 ‘야, 니 그 어짜냐’ 이러니까, ‘동구에 할란다’ 이러는 거야. ‘야, 그 동구에 해가(나와서) 되겠냐. 와 힘든 싸움을 할라 그러냐’ 말렸더니만 그 참, 본인 이야기가 그래요. ‘야, 어차피 붙을 바에야 제일 쎈 놈하고 붙어야 되겠다’ 그러더군요.” 80년대 인권변호사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노무현 대통령은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 동구에 출마해 제도정치권에 첫 발을 디딘다.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하나하나 사람들이 모였다. 과거 김영삼 총재를 도왔던 동구지구당 터줏대감들과 노 대통령의 인연도 이때 시작됐다. 노 대통령보다 열세 살이 많았던 김규도 당시 동구지구당 수석부위원장, 노 대통령보다 한 살 적었던 이석렬 사무국장이 나섰다. 둘 모두 동구 사정을 훤히 꿰고 있는 ‘선거 고참’이었다. 김규도 수석부위원장의 말이다. “그 전엔 (노 대통령을) 잘 몰랐지만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같은 변론에 참여하는 걸 보면서 좀 알게 됐지. 하루는 김영삼 총재가 날 찾아서 ‘노무현 변호사가 동구에 출마해 허삼수 후보와 붙기로 했다. 김형이 좀 도와달라’고 그러더만. ‘좋소’ 그러고 노 변호사를 만나 술 한 잔 했지. 그게 전부였어요. ‘아, 이런 친구가 일을 하려고 하는구나. 내가 발판이 되어주어야겠다’는 결심이 들더라고. 그게 인연이었지.” 김규도 부위원장이 보기에 선거과정에서 접한 노무현 후보의 면모는 남다른 바가 있었다. [김규도 구술영상] “허삼수 후보 차타고 다닐 때 노 후보는 걸어 다녀” 선거운동 하는 당원들 ‘단속’도 김규도 부위원장 몫이었다. 돈을 안 쓴다고, 너무 지원이 없다고 불만들이 나왔다. 그럴 때마다 ‘옛날 선거하고는 다르다. 노 변호사 성격이 이렇다. 우리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일 안 된다’고 설득했다. 그래서 결국 상대 캠프로 가버린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선거사무실도 제대로 못 구할 만큼 힘든 상황이었다”는 이석렬 사무국장의 말처럼 실제로 선거살림 꾸리기는 만만치 않았다. 어려운 만큼 더 열심히 했다. 이석렬 국장은 선거기간 내내 노 후보를 수행했다. 허삼수 후보가 차타고 다닐 때 노 후보와 이 국장은 함께 동네 구석구석을 걸어 다녔다. 이석렬 국장의 말이다. 노 후보를 ‘노’라고 부른다. [이석렬 구술영상] 주민들도 도와줬다. 선거사무실에는 “상대편에서 노무현 벽보를 떼버렸다. 와서 새로 붙이라”는 제보도 잦았다. 이석렬 국장은 노 후보가 “여러분 지금 노무현이가 왔습니다. 여러분 경청해 주십시오” 하면서 연설을 시작했다고 기억한다. 그때 사용하던 핸드마이크, 유세 때 틀었던 카세트테이프도 내내 간직해왔다. 테이프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동해방가’, ‘늙은 노동자의 노래’같은 민중가요가 실려 있다. 가수 정태춘씨가 유세 때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이어지는 이석렬 국장의 회고다. “수정초등학교였을 거라. 인자 정태춘이가 먼저 공연하고 이어서 연설을 한다고 내가 ‘노’하고 같이 단상으로 가는데 허삼수 패들이 옆에서 막 난리굿을 부리는 거라. 그래서 내가 ‘뭐하는 거냐’ 하고 한번 붙었지. 붙고 나니까 ‘노’가 보고는 ‘참, 우리 이 국장이 힘이 좋네.’ 웃으면서 그래요. 그래 욕을 해도 그 사람은 절대 지지를 않아요. 신나게 했다고.” 그런 이석렬 국장에게 다른 사람들이 “딴 데는 저리 많이 주는데 당신들은 와그라노?” 그러면 “우리는 ‘노’가 좋아서 하는 거지 돈 때문에 하는 거 아니다”고 했다. 동구지구당 여성부에서 활동했던 이들은 “우리는 ‘상품’이 좋았다”고 표현한다. 여성부장이었던 김영자 씨는 노 후보보다 아홉 살이 많고 성숙희 씨는 노 후보와 동갑, 김순복 씨는 그중 막내다. 선거과정에서 여성부의 활동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여성부 구술영상] 상대편에서 3만원 받을 때 점심값 5천원 받고 뛰다 여성부원들은 이렇게 ‘상품’을 앞세우며 동네를 누볐다. 새벽 5시, 6시에 나와 골목에서 선거홍보물을 나눠줬고 상대 후보의 선거운동도 ‘감시’하며 저녁에는 좌담회를 조직했다. 여성부장 김영자 씨의 말이다. “낮으로는 선거운동 하러 다니고 저녁으로는 인제 좌담회를 모으는 기라. 동 책임자한테 ‘느그 동네 몇이고, 좌담할 사람 모아라’ 하고. 그렇게 모아 놓으면 후보님이 오시는 거라. 와서 같이 이야기 해주시고. 처음엔 우유하고 빵이라도 내놨는데 나중엔 음료수만 두 병 사놓고 그랬다. 좌천동 가니까 그라더라고. ‘이래 하면서 사람 모으라 했냐’고. 그래서 내가 ‘어디 먹을라고 모인 것도 아이고 후보님 오시면 좋은 말씀 좀 듣고 느그들 선거 바로 하라고 이야기 들을라고 모은 거지 그거 먹을라고 모았나’ 그랬지. 그래, 우리 호주머니 털어가 빵이라도 더 사놓고 이랬다고예, 참.”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흑색선전이나 돈 봉투 같은 탈 법사례도 도를 더해갔다. 경찰은 여당후보 편을 들었고 상대 운동원한테 노 후보 운동원이 폭행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여성부 김순복 씨는 마을 동생한테 “형수, 투표 얼마 안 남았는데 어지간하면 나가지 마소. 잘못하면 맞아요” 하는 소릴 들었다. 말 그대로, 살벌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래도 열심히 했다. 노 후보와 동갑내기인 여성부 성숙희 씨는 “대장이 당당하니까 밑에 사람들도 당당해지더라니까” 했다. 자서전 <운명이다>의 한 대목이다. 허삼수 선거캠프에는 주먹들이 많다는 소문이 돌았다. 선거운동원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된 것 같았다. 그래서 혼자 허삼수 후보 선거사무소를 찾아갔다. 가서 인사를 하고 정정당당하게 겨루어보자고 말한 다음 아무 일 없이 돌아왔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98p) 허삼수 후보와 담판…“대장이 당당하니까 우리도” [여성부 구술영상] 이렇게 ‘동구지구당 사람들’은 노무현 후보라는, 자신들이 이전에 만난 정치인과는 다른 인물을 만나 전과 다른 선거운동을 해나갔다. ‘처음 만난 노무현이 좋았다’고 했고 ‘품질’이 좋다고 생각했고 대장이 당당하니 함께 당당했다. 이런 상황과 별개로 자서전 <운명이다>의 한 대목에서처럼 ‘선거 판세는 끝까지 낙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선거운동은 지구당 사람들만 한 게 아니었다. 후보 노무현이 그때까지 걸어온 길에서 만난 또 다른 사람들도 선거운동에 한창이었다.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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