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600만 실손의료보험 `갱신폭탄' 우려>

2011. 9. 26. 10:42관심사

 

<2천600만 실손의료보험 `갱신폭탄' 우려>

고령화시대 은퇴자들 보험료부담 급증 예상
업계 판촉과열에 과잉진료ㆍ의료쇼핑 겹친 탓

연합뉴스 | 홍정규 | 입력 2011.09.26 06:11 | 수정 2011.09.26 08:36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홍정규 기자 = `민영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의 갱신 시기가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집중돼 갱신보험료 부담이 우려되고 있다.

상품을 판매한 손해보험사와 가입자의 연령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새로운 요율이 적용된 지난 6월부터 대략 20~30%씩 오르고 있다는 게 금융감독원과 업계의 설명이다.

당장 갱신보험료 부담도 부담이지만, 갈수록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훗날 마땅한 수입이 없는 은퇴자들이 보험료를 내지 못해 정작 필요할 때 보장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더 큰 걱정거리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손보사들이 시장점유율을 높이려고 출혈경쟁을 벌였던 게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부르는 게 값'인 병원의 비급여 수가와 지나친 진료 권유, 실손보험의 맹점을 이용한 일부 가입자의 의료쇼핑도 문제로 꼽힌다.

◇8천원씩 내던 보험료, 9년만에 3배로 `껑충'

자영업자 최모(49)씨는 지난 2002년 10월 지인의 권유로 가족 모두 장기손해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상품 약관에는 주계약인 사망보험, 암보험 외에 특약으로 실손보험이 포함됐다. 전체 보험료 20만원 가운데 실손보험료는 3만2천776원에 불과했다.

병을 앓거나 사고를 당해 치료를 받아도 매월 3만3천원씩 꼬박꼬박 내면 가족의 병원비를 모두 보장해준다는 설계사의 말을 믿은 최씨. 실손보험료는 그러나 다음달부터 10만1천212원이 된다. 가입 당시와 비교하면 매월 내는 보험료가 3배로 뛴 셈이다.

최씨가 가입한 상품은 3년마다 보험료가 달라지게끔 설계됐다. 가입할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실손보험이 3차례 갱신되더니 어느새 전체 보험료의 37.7%나 차지하게 됐다. 그는 "설계사에 속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모두 2천600만건에 달하는 실손보험의 갱신시점이 집중적으로 돌아오고 있다. 주로 3년갱신형이 많은 실손보험은 지난 2008년 말부터 2009년에 걸쳐 많이 팔려나갔다.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갱신보험료 부담이 급격히 가중될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3년 전과 비교하면 보험료가 20~30%씩은 오르게 된다. 이 기간 가입자가 더 늙어 보험사의 `리스크'가 커진 측면이 자동적으로 반영됐지만, 실손보험에 애초부터 내재된 구조적인 문제점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보험사들 출혈경쟁에 병원 장삿속도 한몫"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의료비를 보장해준다는 취지로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후 보험업법 개정으로 생ㆍ손보 성격을 섞은 `제3보험' 판매가 가능해지면서 업계의 판촉 경쟁에 불이 붙었다.

당국이 2009년 10월부터 의료비 보장한도를 100%에서 90%로 낮추기로 한 것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보험사들은 2008년 말부터 앞다퉈 `곧 판매가 종료된다'는 홈쇼핑식 광고로 가입자를 끌어들였다. 이 와중에 설계사들이 갱신 부담 등을 제대로 설명할 리 없었다. 일부 보험사는 역마진까지 감수해가며 상품을 팔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실손보험료가 큰 폭으로 오르게 된 원인은 당시의 `절판 마케팅'으로 보험사들의 손해율이 급등했기 때문"이라며 "과열경쟁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라고 지적했다.

상해 실손보험 손해율(회계연도 기준)은 2007년 78.2%에서 2008년 85.4%, 2009년 94.1%로 치솟더니 2010년에는 104.7%까지 올랐다. 질병 실손보험 손해율도 같은 기간 89.9%에서 103.2%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업계는 그러나 덮어놓고 보험사 탓만 할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과잉진료와 강제적인 선택진료를 통한 병원들의 `장삿속'도 한몫했다는 것이다.

손해보험협회가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뇌 자기공명영상진단(MRI)은 건강보험에서 제외되는 비급여수가로 A병원이 51만원을 받지만, B병원은 78만원을 받는다. 경추 MRI(조영제 사용)도 병원마다 57만원에서 10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특진'으로 불리는 값비싼 선택진료 역시 이름과 달리 반강제적이라는 게 손보협회의 주장이다. 의사가 16명 있는 C병원 소화기내과 진료시간표를 보면 일반진료는 매일 의사가 1~2명씩 배치된 반면 선택진료는 요일마다 최대 7명까지 배치됐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인구 100만명당 MRI가 20.2대, CT가 35.7대씩 보급되는 등 특수의료장비가 과잉 공급됐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MRI 11.1대, CT 23.0대다.

그는 "비용 부담이 없다는 인식에 무작정 병원을 찾거나 비싼 진료를 고집하는 일부 가입자의 `의료쇼핑'도 전체 가입자의 보험료를 비싸게 한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금감원 "`의료비 대란' 막겠다" 대책 추진

금감원은 지난 8일 갱신형 실손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한 적이 없다면 갱신 때 오르는 보험료의 10%를 깎아주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보험료 인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진짜 고민은 당장의 보험료 갱신이 아니라 20년, 30년 뒤"라고 말했다. 이대로라면 갱신 주기마다 보험료가 오를텐데, 막상 몸이 불편해지는 나이가 되면 퇴직한 뒤라 보험료 납입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몇십년동안 실컷 보험료만 내고 필요할 때 보험금은 받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나올 수 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금감원은 이에 따라 기존의 `자연보험료' 방식 상품을 점차 폐지하고 `평균보험료' 방식 상품으로 바꾸는 쪽으로 업계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추진 중이다.

자연보험료란 가입자의 나이가 들면서 자연히 증가하는 위험을 고스란히 반영해 처음엔 보험료가 싸지만 갈수록 비싸지도록 설계된다. 반면 평균보험료는 연령 증가에 따른 보험료 인상분을 가입 기간에 걸쳐 균등하게 내도록 해 처음엔 다소 비싸지만 시간이 지나도 보험료가 별로 오르지 않는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르면 올해 안에, 늦어도 새 요율이 적용되는 내년 4월까지 모든 보험사가 평균보험료 상품을 내놓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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