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정상인’이 된 영구와 맹구

2009. 11. 6. 10:11정치

드디어 ‘정상인’이 된 영구와 맹구
(서프라이즈 / 내과의사 / 2009-11-05)


어느 마을 앞에 다리가 놓였다. 그러자 다리를 유지, 관리할 직원이 필요하게 되었다. 마을 의회에서는 직원채용을 의결한다. 직원을 채용하자 직원을 감독할 관리소장도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의회는 관리소장 선임을 의결한다. 이들에게 월급을 줘야 하니 경리직원도 필요해졌고, 이렇게 직원이 늘어나자 사무실도 개설하게 된다. 사무실이 생겼으니 사무실 수위와 청소부도 두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마을의 공공재산인 다리를 효율적으로 유지, 관리하는데 필요 이상으로 많은 예산이 낭비됨을 마을 의회는 깨닫게 된다. 관리조직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이에 마을 의회는 비대해진 관리조직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의결한다.

 

“ 관리직원을 해고할 것.”

 

1980년대 미국 우익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 유머란에서 읽었던 낡은 우스개이다. 이와 같이 바보 천치들의 나라에서나 가능한 코미디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다름 아닌 ‘세종시 논쟁’이다. 세종시 논쟁에서 핵심은 왜 충청도 땅 한복판에 계획도시가 세워지려 하는지 그 이유를 되짚어 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 시각으로 갑론을박을 벌인다면 위에 소개한 유머와 같은 썰렁한 난센스만 대량생산될 뿐이다.

 

세종시 논쟁. 태초에 노무현이 있었다. 그는 국토의 0.5% 면적을 차지하는 서울에 온 국민의 5분의 1 가까이가 몰려 살고 있는 황당한 모순을 지적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쥐새끼의 대운하 삽질공약과 달리 노무현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은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추진력을 잃지 않았었다. 근래에 보기 드문 여야합의로 후속법안이 통과된 것이다. 그것도 야당인 한나라당이 다수를 차지한 의회구도 아래에서 말이다.

 

수도권 과밀화 현상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고질병 중 하나이다. 이 고질병에 대해 역대 정권들은 적극적이든, 적극적이지 않든, 최소한 질병을 치유하거나 증세를 완화시키려는 정책들을 시행해 왔었다. 하지만, 노무현은 차원이 달랐다. ‘대통령 되면 나부터 탈서울 할 게!’라는 파격 선언을 던졌다. 대통령 자신은 서울 한복판 목 좋은 청와대에 틀어박혀 앉아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니가 가라 하와이’ 식으로 백날 떠든다고 해서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국토 불균형 발전 현상은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고 노무현은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나가던 행정수도 이전 사업은 난데없는 짱돌을 얻어맞게 된다. 바로 헌법재판소 아이들이 창작한 불세출의 개그, ‘관습헌법’이다.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자, 여소야대 국회에서 법적 근거가 합의로 통과된 국책사업이 한순간에 위헌행위가 되어 버렸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왕조국가 조선의 경국대전을 수호하기 위해서, 4천7백만 주권자들의 행복추구권이 1% 부동산 귀족의 탐욕의 제물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일단 ‘관습헌법’으로 자기들이 가진 수도권 아파트값 사수에는 성공했지만, 토지보상까지 마친 행정수도 이전 사업을 완전 백지로 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정치권은 ‘관습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수준의 반쪽짜리 행정수도로 애매모호하게 합의를 본다. 이게 현재까지 진행된 세종시 건설 사업의 본말이다.

 

세종시 논쟁에서 이명박과 정운찬이 보여주는 행보의 수준은 ‘덤 앤 더머’를 능가한다. 정운찬이 말하길, 현재 계획대로라면 세종시는 자립 도시로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일견 타당한 분석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자립도를 높일 수 있을까? 애초 세종시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답이 쉽게 나온다. 세종시는 행정도시로 기획되었다. 그런데 자립도가 부족하다면? 계획을 바꾸면 된다. 계획보다 더욱 광범위한 행정기구 이전을 추진하면 된다. 그게 세종시 기획의도에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충실한 해결책 아니겠는가.

 

정운찬은 자립도시를 만들기 위해 행정기구 대신 교육기관이나 기업을 이전하는 대안을 검토한다고 했다. 행정기구 대신 기업이나 학교가 도시에 자리 잡으면 도시가 대박이 날 것이라는 논리다. 이는 행정수도 건설을 결사반대했던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의 논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들은 행정기구가 충청도로 내려가면 수도권은 텅 비어 버릴 것이라는 ‘수도권 공동화론’으로 수도권 시민들을 협박하고, 선동했었다.

 

정운찬 논리대로라면 정부기관 몇 개 내려간다고 계획도시는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대신 기업이 내려가면 도시는 대박 난다. 그렇다면, 인구 2천만 가까이 되는 수도권, 막강한 대기업군과 기라성 같은 일류대학들이 버티고 있는데, 도시자립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행정기관들이 몽땅 내려간들 수도권이 공동화된다는 김문수류의 논리와 그 논리에 부화뇌동하여 관습헌법 개그를 지어낸 헌법재판소 아이들의 판결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세종시 논란의 본질은 충청도 땅에 계획도시 하나 짓자는 이명박 설치류의 삽질 장난이 절대로 아니다. 시작은 0.5% 국토면적에 20% 인간이 떼 지어 사는 만화 같지도 않은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였다. 노무현이 공약으로 제시하여 당선되었고, 한나라당도 표면적으로나마 동의하여 국민적 합의로 내린 결론은 단순명료했다. “수도권에 전부 매몰된 대한민국의 중추기능 중 최소한 정치-행정기능만은 분리하여 지방으로 옮겨놓자!”이다.

 

세종시의 현재 계획은 문제가 있는 것이 맞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정운찬과 이명박의 망상과는 정반대에 있다. 세종시가 제대로 된 자립도시가 되려면 노무현의 계획대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것이 수도권 과밀화 억제와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행정수도 이전 계획의 근본취지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해결책이다.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 판결? 걱정 마라. 그거 나가리 만드는 거 쉽다. “너네들 판결은 나왔지만 법적 효력은 없는 거야.”고 헌법재판소 아이들에게 내가 한마디 해주면 그만 아니던가.

 

이명박과 그 똘만이 정운찬에 의해 촉발된 세종시 논란은 펜티엄급 컴퓨터에서 운용하던 소프트웨어를 2MB 컴퓨터로 돌리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봐야 할 거다. 노무현이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진지하게 접근한 문제를 설치류 대가리 수준에서 땅값도 안 나오는 깡촌의 삽질사업으로 바라보니까 당연히 답이 안 나온다. 그러니 기껏 내놓는 답이라는 게 만만한 기업이나 학교나 골라다가 ‘니가 가라 하와이’라는 씨알도 안 먹힐 헛소리나 지껄이는 수준이 되는 것이다.

 

개그맨 정종철은 추남의 대명사로 주가를 올리다가 오지헌이 데뷔하자 한마디 한다. ‘너 때문에 나의 외모는 평범한 것이 되었어.’ 대한민국 바보 캐릭터의 대명사는 단연 영구와 맹구였다. 오늘 드디어 영구와 맹구도 평범한 지능을 가진 보통사람이 되었다. 이명박과 정운찬 덕분에 우리는 친근한 바보 캐릭터를 잃어버리게 된 셈이다. 이명박과 정운찬, 이 두 종자가 되풀이하는 “세종시 없다~~”라는 바보 합창은 대한민국의 파열음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cL)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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