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 - 그예 삽을 뜨려 하는가?

2009. 11. 10. 20:18정치

4대강 사업 - 그예 삽을 뜨려 하는가?
(서울대 경제학부 / 이준구 / 2009-11-09)


4대강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까지 모두 끝남에 따라 이제는 실제로 삽을 뜨는 일만 남았다. 전 국토의 생태계를 헤집어 놓을 만한 잠재적 파괴력을 가진 거대 토목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불과 네댓 달 안에 끝났다니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 만약 환경부의 주장대로 모든 사항을 빠짐없이 고려해 환경영향평가를 마쳤다면 그 놀라운 효율성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야 한다. 반면에 환경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짜고 치는 고스톱’의 일원이 되기를 선택한 것이라면 온 국민의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예상대로 많은 환경문제 전문가들이 4대강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의 부실함을 지적하고 나섰다. 장장 634km에 이르는 방대한 수계에 미칠 영향의 평가를 불과 네댓 달 만에 모두 끝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졸속의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아무리 그동안 축적된 자료를 활용했다 해도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초고속 평가이기 때문이다. 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이모저모 따져 계획을 세우는 데만도 몇 달이 걸릴 텐데 말이다.

 

사업 종료 시 4대강 유역 수질이 모두 개선된다는 평가 결과를 보면 이미 내려진 결론에 짜 맞춘 환경영향평가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말하자면 수질 개선이란 측면에서 4대강 사업을 평가하면 100점이라는 뜻인데, 100점이란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의 수학에서도 맞기 힘든 점수가 아닌가? 만점을 주겠다고 미리 마음먹지 않고서야 전국 방방곡곡의 모든 지점에서 수질이 개선된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기야 한정 없이 돈을 쏟아 붓기로 작정한다면 수질을 개선시키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강 전역에 수없이 많은 정수기들을 촘촘하게 설치해 놓으면 먹는 샘물 수준까지 정수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수질 정화에 투입되는 비용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의 여부에 있다. 저층수 배제시설, 수중폭기시설, 태양광물순환장치 등 정부가 말하고 있는 조치들이 얼마나 큰 비용대비 수질개선 효과를 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백 보를 양보해 모든 지점에서 수질이 개선되리라는 평가에 동의한다고 하자. 수질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생태계 그 자체에 미칠 영향이다. 그런데 4대강 사업 환경영향평가에서 읽을 수 있는 생태계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안이함 그 자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무더기나 자연 굴 같은 소규모 서식지를 만들어 야생동물에게 산란장과 은신처를 제공하겠다는 아이디어는 동화에나 등장할 법한 수준이다. 생태계에는 교란 그 자체가 심각한 위협이며, 생태계의 미묘한 균형이 깨질 때 어떤 예상치 못한 결과가 빚어질지 모른다는 사실은 전혀 안중에 없는 것 같다.

 

4대강 사업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가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온전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다섯 달의 열 배가 넘는 기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생태계의 다양한 측면을 세심하게 추적조사 해 보아야만 이렇다 할 결론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짧은 시간에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평가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환경부가 진정한 환경 지킴이의 역할을 하려 한다면 무엇보다 우선 이 점을 지적하고 나섰어야 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환경부가 존재하고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현 정부 출범 초기에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존재’라는 말이 나온 적이 있다. 2009년 10월 착공 예정이라는 시간표에 맞춰 정부 입맛에 딱 들어맞는 4대강 사업 환경영향평가를 내놓은 환경부를 보면서 그 말을 새삼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설사 윗사람의 미움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할 말은 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그런 행동을 너그럽게 보아줄 정부가 아니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하여튼 입맛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환경 보존의 마지막 보루마저 이렇듯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면 국민은 과연 어디에 희망을 걸어야 할까?

 

이제 4대강 사업을 가로막고 있었던 모든 법적, 제도적 장애물은 말끔하게 제거된 상태다. 따라서 공사 개막을 알리는 화려한 팡파르가 울릴 일만 남았다. 지금 이 단계에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역사의 심판뿐이다. 4대강 사업이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인지 아니면 결코 해서는 안 될 토목공사인지는 머지않은 장래에 명백하게 판가름이 날 것이다. 속전속결로 공사를 해치우려 서두는 바람에 역사의 심판이 내려질 시간도 그만큼 앞당겨진다는 사실이 하나의 위안이라면 위안일 수 있다.

 

그동안 4대강 사업의 당위성을 홍보하기 위해 온갖 해괴한 논리들이 동원된 바 있다. 경부고속도로나 파나마운하도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다는 주장으로부터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도 국토개조를 부르짖었다는 주장까지 별의별 말들이 난무했다. 그 사람들의 논리에 따르면 나처럼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사람은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바보 아니면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 고집통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사람은 선각자요 애국자임에 틀림이 없다.

만의 하나 내가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바보였다는 것이 밝혀지면 겸허하게 무릎 꿇고 사죄할 용의가 있다. 나 자신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겠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차라리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내가 옳았다는 것으로 드러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단지 어느 누가 사죄하는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후 수습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를 위시한 4대강 사업 반대론자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걱정이다.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질까봐 정부에게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서 4대강 사업으로 간판을 바꿔 단 지 불과 1년 만에 단군 이래 최대라는 거대 토목공사의 준비를 모두 마쳤다. 이제는 나 같은 백면서생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보았자 귓가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4대강 사업의 포기 혹은 연기를 원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그들을 제지하기에 충분치 못하다. 그들은 지금 승리에 도취해 첫 삽을 뜨기만을 고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머지않아 역사의 심판대 위에 서게 될 것을 생각하면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준구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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