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일기8] 대통령표 '봉하오리쌀' 맛 볼 수 있을까?

2008. 5. 23. 10:40사람 사는 세상

신미희(前 국내언론비서관실 행정관 )
5월 농촌의 들녘은 바쁩니다. 모내기를 하고 고추, 오이, 고구마, 옥수수 등 온갖 작물을 심습니다. 봉하마을은 더 분주합니다. 귀향한 대통령을 보러오는 인파가 연일 늘어나는 것도 일이지만, 새로운 ‘농사거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올해부터 대통령의 권유로 쌀농사에 친환경 오리농법을 도입하기로 한 것입니다.

대통령은 3월 말부터 주민들과 함께 수차례 오리농법 전문가 초청강의, 현장견학, 토론회 등을 실시하며 친환경 쌀재배 준비를 해왔습니다. 지난 5월 7일에는 주민 13명을 중심으로 '봉하마을 친환경농업 생산단지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마을앞 2만 4,600평의 논을 시범지역으로 정했습니다.


대통령은 왜 농사를 짓는가

추진위원회 고문을 맡은 대통령은 마을이장과 공동으로 4,500평의 벼농사를 직접 짓습니다. 올해 오리농법이 성공을 거두면 봉하들판 24만평 농지로 친환경농법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대통령은 왜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자고 했을까.

“우리 농민에게 차별적 농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쌀시장이 개방되는) 2014년 이후가 되면 무슨 재주가 있겠습니까. 미국 쌀과 한국 쌀의 차별성을 무엇으로 만들 것이냐, (지금 방식으론) 대책 없는 것 아니냐? 쌀값을 더 받느냐, 안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더 이상 우리 쌀을 팔 데가 없어집니다. 우리 쌀을 사는 이유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5월 10일 장군차 묘목 잡풀제거와 우드칩(woodchip, 나무부스러기) 뿌리기를 마친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하면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나무를 갈아 만든 우드칩은 풀이 자라는 것을 막을 뿐더러 발효되면 땅 힘을 길러주는 유기질 퇴비가 된답니다. 봉하마을 장군차 역시 친환경농법으로 재배되고 있죠. 대통령은 다음날 ‘안전한 먹을거리’의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안심할 수 있는 먹을거리, 좋을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농사를 해보려고 합니다. 친환경이면 안전할 것이고, (소비자들은) 안전 이상을 원하니까 영양성이 좋은 것은 유기농법으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빈손으로 와서 가득 담아가는 여행의 재미를, 마을 분들에게는 소득의 재미를 제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마을의 농사방법을 개선해야 합니다. 지금 특별한 방식이 없지만 올해부터는 농사를 잘 지어서 보증하도록 하겠습니다.”



“노무현이 돈벌려고 장군차를 심었나?”

그동안 봉하마을 주민들은 고민이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농사방식으로는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 어려웠고, 젊은 사람들은 계속 농촌을 떠났습니다. 마을공동체마저 붕괴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숙고했지만 선뜻 해결책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주민들의 고민은 ‘살기좋은 고향’을 만들고 싶다는 대통령의 퇴임활동과 만나면서 ‘친환경생태마을 조성’으로 구체화됐습니다.

이를 위해 대통령은 마을환경 정비, 봉화산 숲가꾸기, 화포천 습지보호, 친환경농법 도입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버려진 산등성이 감나무 밭에 장군차를 심고, 수생식물 생태학습장을 목표로 연밭을 만들었습니다. 대통령은 왜 그렇게 열정적으로 마을가꾸기를 하는 것일까. ‘장군차는 우리들의 차나무’임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말속에 해답이 있습니다.

“‘노무현이 돈벌려고 장군차를 심었나’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봉하마을 장군차는 노무현 차나무가 아닙니다. 1천명이 넘는 사람이 차를 심고, 풀을 뽑고, 물을 줬습니다. 우리들의 차나무입니다. 여러분 모두의 것입니다. 장군차가 자라면 봉하마을에 와서 찻잎도 따고 구경도 하고, 메뚜기.미꾸라지도 잡고, 화포천에서 철새도 보고, 잉어도 잡으세요.”

대통령이라고 쉬고 싶지 않을까요. 대통령은 재임 때 제일 큰 희망이 휴식이었다고 합니다. 정치는 정리했어도 너무 험난한 길을 바쁘게 달려오느라 인생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랍니다. 귀향해서도 휴식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봉하마을을 찾는 인파는 늘어만 가고 있죠. 하루 1만7천명(5월 4일), 2만명(5월 11일)이 다녀갔습니다.

대통령은 “휴식이란 게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인데 이리 많이 오시니 도저히 휴식이 안돼요.”라며 손사래를 칩니다. 그러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남의 광장에서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일을 나갔다가도 방문객을 보게 되면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합니다. 여기에도 ‘우리 사회, 이웃’이 빠지지 않습니다.

“희생과 봉사는 우리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꼭 필요한 일입니다. 주변과 이웃이 아름답지 않고, 따뜻하지 않고, 넉넉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고, 깨끗하지 않으면 아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생물과 교감을 나누며 느낌으로 고향을 싸안는 마음은 이웃을 더욱 넉넉하고,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드는 밑천이 될 것입니다.”


“흰잎마름병이 뭔지나 아나?”

지금이야 좋아졌지만 봉하마을에서 친환경농법을 도입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리농법만 하더라도 기존 영농방식에 비해 화학비료와 농약의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고 방제가 불가피할 경우 친환경자재(목초액, 키토산 등)로 무공해 쌀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품은 더 들고, 비싼 친환경농자재를 구입하는 비용이 생기는데다 수확량이 줄 수 있어 친환경농법을 선뜻 수용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김정호 전 청와대 비서관은 시범농지 구역에 속한 13명의 주민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을 했습니다. 그들의 소유경지와 연락처, 주문사항이 빼곡하게 적혀 닳아버린 한 장의 낡은 그림이 지난한 설득과정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농사경험이 전무한 ‘초짜 농사꾼’이 ‘수십년 농사꾼’을 상대하다 생긴 일입니다. 김정호 전 비서관이 4월 20일 주민설명회에서 친환경농법의 필요성을 역설하는데 한 주민이 “흰잎마름병이 뭔지나 아나?”라고 묻더랍니다.

흰잎마름병은 벼잎 가장자리가 말라죽으면서 수량감소, 쌀품질 저하를 가져오는 대표적인 벼농사 질병입니다. 단어조차 알아듣지 못했답니다. 그는 현재 ‘친환경농업 추진위원회’ 실무간사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매일 현장과 이론을 넘나들며 농사공부에 여념이 없습니다.

5월 11일 오후 농수로 바닥에서 기름띠 낀 슬러지(sludge)를 걷어내는 현장에서 만난 문성구 ‘친환경농업 생산단지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은 “친환경농법은 농민 스스로가 언젠간 해야 되는 일인데, 대통령의 귀향을 기회로 앞당겨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쌀값이 100원 오르면 비료값이 300원 올라요. 수확은 좀 떨어져도 (정부품질인증의) 친환경 쌀값 정도면 채산성도 괜찮은 편이고, 이젠 소비자가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농산품을 생산해야 농민들이 살 수 있어요. 처음엔 해보지 않은 일이어서 ‘성공할 수 있을까’ 겁난 것도 사실인데, 대통령님이 책임지고 팔아준다고 했으니까 걱정 안합니다.”

오리농법은 모내기 10~15일 후부터 벼 이삭이 나오기 전까지 논에 오리를 풀어 잡초나 해충을 제거하고 유기질 성분이 많은 오리 배설물을 비료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논 10평당 1마리의 오리를 넣어 60일간 풀어 놓습니다. 2,000평의 논이라면 200마리의 오리를 두 달간 매일 관리해야 합니다.

4월 24일 대통령과 마을주민들이 진영읍내 옆마을로 오리농법 현장견학을 나갔습니다. ‘논에 풀어놓은 오리 관리’에 대해 설명이 진행됐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오리를 풀어주고, 저녁에는 막사로 거둬들여야 한다고 말이죠. 대통령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후배인 이기우씨가 “나는 못한다”고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대통령이 “그럼 자네 논은 내가 해주께, 풀어주고 가두기만 하면 되는 거 아이가?” 한바탕 웃음 속에 13명의 농민이 오리농법에 참여하기로 결정됐습니다.



우렁이로 할까, 오리로 할까


오리농법으로 낙찰을 보기까지도 진통이 있었습니다. 친환경농법은 오리농법, 우렁이농법, 참게농법, 지렁이농법, 쌀겨농법, 천적을 이용한 농법, 숯을 이용한 농법, 유기미생물농법, 키토산농법, 새우농법 등 다양한 방식이 있습니다. 그저 마른 논에 볍씨를 뿌리고 가을에 벼를 거두는 태평농법도 등장했습니다.

한편에서는 좀 더 관리가 수월한 우렁이 농법으로 하자는 의견이 강하게 나왔습니다. 6년간 오리농법을 했던 인근 마을이 올해부터 우렁이농법으로 바꾼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수차례 논의 끝에 친환경 체험학습과 제초, 병충해 방제, 시비 등에서 효과가 큰 오리농법을 1순위로 채택했습니다. 우렁이농법의 경우 병충해 방제효과가 낮고, 왕우렁이 일부가 겨울에 죽지 않고 왕성한 번식을 하면서 자연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어 2순위로 밀렸습니다. 벼 품종은 쌀 품질이 좋고 도복(쓰러짐)에 강한 ‘남평’으로 정했습니다.

봉하마을 오리농법의 본보기는 국내 최대 오리농쌀 생산지로 유명한 충남 홍성군 문당리 홍성환경농업마을입니다. 연간 2만여명이 찾는 생태체험마을로 각광받고 있는 문당리는 친환경농업으로 주민소득을 높이고, 문화와 대안교육을 통해 지역공동체를 회복하고 있는 농촌마을입니다. 그런 점에서 친환경농업을 통해 살기좋은 마을 가꾸기를 추진하려는 봉하마을에 좋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홍성환경농업마을 대표인 주형로 한국오리농법연구회장은 여러 차례 봉하마을을 찾아 오리농법을 지도했습니다. 주 대표는 “오리 10마리가 사람 1명의 몫을 한다”며 친환경농업의 일등농사꾼이라고 부릅니다. 농약도 쓰지 않고 비료도 없이 자연 생태계 그대로 순환되는 농사를 짓기 때문이랍니다. 그는 “물이 잘 안 빠지는 땅이 어떨지 모르겠다”고 대통령이 조심스레 묻자 “유기농과 물은 관계가 깊은데 봉하마을의 무논은 오리농법을 하기에 조건이 좋다”며 웃습니다.


“‘물’ 없으면 오리농법이고 오리할애비고 안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봉하마을 오리농법이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물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친환경농사를 하려면 흙과 물이 좋아야 합니다. 땅의 힘을 기르는 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오염된 물로는 친환경농업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봉하마을 27만평의 들판에 농수를 공급하는 주변 농수로, 배수로를 둘러본 대통령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축산폐수와 공단 오·폐수로 오염돼 있었습니다. 오리농법 시범농지 인근 뱀산 배수로에서는 오염물질이 누적된 슬러지가 15톤 덤프트럭으로 100대분이 넘게 나왔습니다. 김해시 하천수준 개선계획에 따르면 낙동강 원수를 끌어다 쓰는 것은 3~4년 이후에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주무기관인 한국농촌공사도 예산문제로 당장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오리농법이고 오리할애비고 못한다”는 우려가 커졌습니다. 대통령은 “사비를 털어서라도 독자적으로 지하수를 개발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지하수 개발도 기술문제 등으로 한참을 고생하다 한국지하수개발협회 도움으로 겨우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이로써 3개 지하수에서 하루 450톤 이상의 깨끗한 물을 확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봉하마을까지 불어닥친 AI여파

드디어 5월 5일 대통령과 마을 주민들은 친환경농법에 필요한 씨나락 파종과 모판작업을 했습니다. 보름 여간 훌쩍 자란 모판의 벼는 모내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과정은 오리와 오리막사, 오리그물망 등을 준비하고 모내기 뒤 오리를 논에 넣는 ‘입식’입니다.


벼에 피해를 주지 않고 오리의 효과를 높이려면 모내기 후 1주일에서 열흘 정도 어린 벼의 뿌리가 튼튼하게 내릴 수 있도록 시간을 준 뒤 2~3주 되는 새끼오리를 논에 풀어줍니다. 품종은 몸집이 작은 청둥오리나 청둥오리와 집오리의 잡종, 또는 카키 캄펠종을 구입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순조롭게 풀리려나 싶던 오리농법이 예상치 못한 암초를 또 만났습니다. AI(조류 인플루엔자)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오리농법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처지가 됐습니다. ‘친환경농업 추진위원회’는 5월 6일 경기 용인 원삼농협에 2,460마리의 오리를 공급해달라고 의뢰했습니다. 노란 오리를 구해보려고 했는데 순전히 노란 오리는 아직 없다고 합니다. 6월 초 ‘봉하오리’들이 태어날 예정이지만 봉하 입성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5월 중순부터 신문, 방송에는 AI가 서울, 경기, 강원, 충청, 호남, 영남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과 ‘닭, 오리 살처분’ ‘오리농법 중단’ 등의 기사가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사람사는 세상> 게시판에도 관련 문의가 올라왔습니다.

김정호 ‘오리비서관’은 주형로 홍성환경농업마을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만약의 경우 우렁이농법으로 대체하면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답변이 되돌아왔지만 ‘초짜 농사꾼’의 근심은 가라앉지 못했습니다. 이호철 전 수석은 자원봉사에 참여한 수의사에게 이것저것 자문을 구했습니다.

5월 20일 친환경농업 추진위원회는 오리막사, 오리그물망, 고정대 등의 설치와 오리관리 전반에 대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오리그물망은 풀어놓은 오리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면서 외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논 주변에 둘러치는 보호막입니다. 농로에 줄지어 서있는 33개의 노란 오리막사가 인상적입니다. 봉하마을에서는 오리막사도 ‘노사모’입니다.

아직 김해지역은 AI가 발병되지 않았습니다. 또 봉하마을이 공급받을 ‘새끼오리’가 AI 파고를 잘 넘기고 봉하마을에 들어오면 오리농법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5월말까지 상황을 지켜본 뒤 여의치 않을 경우 우렁이농법이나 참게농법 등으로 대체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봉하마을의 첫 친환경농법 실험인 오리농법. 그동안 갖은 난관을 헤쳐왔던 것처럼 6월 14~15일께 논에 오리를 처음으로 풀어주는 입식 행사를 무사히 치를 수 있을까요? 올 가을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생산한 ‘봉하마을 오리쌀’을 맛볼 수 있을까요? 봉하마을 오리농법의 도전과 시련, 그 속에 검게 그을린 얼굴로 달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