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일기 5편 "대통령과 함께 변화를 준비하는 봉하마을 사람들"

2008. 4. 13. 12:12사람 사는 세상

4월 4일, 사저 비서진들의 표현을 따르자면 첫 번째 금요일입니다. 일주일이 ‘월화수목금금금’이라고 하니까요. (있어보니 정말 그렇더군요.) 사저 앞에는 어김없이 방문객들이 모여 있습니다. 방문객들의 환호 속에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는군요. “멋있어요.” “실물이 더 나으십니다.” “여사님은 왜 안 나오세요.” 누군가 묻습니다. “왜 좋은 서울 놔두고 고향으로 내려오신 건가요?” 노 대통령이 답합니다.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균형발전을 스스로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여러 군데 찾아봤는데 결론은 제가 태어난 고향이 제일 낫다는 것이었죠. 균형발전정책 가운데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라는 농촌 지원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농촌은 기본 인구 자체가 유지되지 않으니까 농민들이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만들어야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의 말이 이어집니다.

“농촌에 기본 인구가 유지되도록 하자면 수도, 가스 등 기초생활 여건을 최대한 확충하고 생활환경도 아름다워야 합니다. 우리 농촌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실제로 가보면 많이 버려져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여기 와서 한달 간 주민들과 청소도 하고 나무도 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주민들과 함께 하려고 합니다.” 노 대통령의 말 속에서 봉하마을 주민들은 이렇게 등장합니다.

“좋게 마무리하고 오셔서 좋은 모습 보여주니 우리도 기분 좋습니다”

노 대통령은 봉하마을의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대통령의 귀향 자체가 이미 변화입니다. 가장 먼저 실감하는 곳이 어딜까요? 주차장에 매점이 하나 있습니다. 동네 슈퍼에서 담배 피는 대통령, 이른바 ‘노간지’를 탄생시킨 그 곳입니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 뽑아놓고 눈치를 보다가 한산한 틈을 타 매점 여주인에게 몇 마디 물어봤습니다.

매점은 노 대통령 재임 중인 2004년 11월 문을 열었답니다. 대통령 재임 때보다 요즘이 장사가 잘 된다고 합니다. ‘노간지’ 얘기를 물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놀랐지. 갑작스레 아침 일찍 오셔서 담배 하나 달라고 그라는데, 가슴이 쿵닥거리고 얼마나 놀랐는데예….” 얘기하는 지금도 소녀처럼 얼굴에 홍조를 띱니다.
‘대통령 내려오시니까 어떻습니까’ 했더니 물론 ‘좋다’고 합니다.
“장사도 장사지만 사람들이 대통령 좋아서 이렇게 많이 오는 거잖아예. 사람들도 좋아하고 대통령도 반갑게 맞이하는 거 보면 참 좋아예. 그나저나 ‘노간지’ 사진 구해서 붙여놔야 하는데.”

매점만큼이나 방문객들을 자주 접하는 집이 있습니다. 봉하마을 이장댁입니다. 대통령 경호동과 인접해 있어 사저 방문객들이 집 뒤에 항상 모여 있을 수밖에 없는 위치입니다. “대통령 나오세요”라는 외침이 끊이지 않으니 조용한 날이 별로 없겠죠. 마침 이장님 부인이 빨래를 널고 있는 게 보입니다. ‘방문객들 오가느라 소란할 텐데, 불편하시겠다’ 했더니 ‘문 닫아놓으면 안 들린다. 좋은 일 하시는 건데 불편할 게 뭐 있겠나’고 합니다. “좋게 마무리하시고 오셔서 좋은 모습 보여주시니까 기분 좋습니다.”

방문객 맞이하는 모습 외에 대통령을 직접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매점 여주인만큼이나 얼굴을 붉힙니다. 아침에 길가에 내려가서 꽃을 보고 있는데 저기서 누가 ‘안녕하세요’ 하더랍니다. 누군가 하고 보니 대통령이더라는 거죠. ‘너무 갑작스러워서 인사도 못했다’면서 얼굴이 또 발그레해집니다. 방문객들만이 아닌 이곳 주민들에게도 ‘봉하마을 주민으로 돌아온 전직 대통령 노무현’은 여전히 가슴 설레는 존재인가 봅니다.

4월 5일. 식목일이자 두 번째 금요일입니다. 주말이다 보니 방문객도 많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김해장군차영농조합 조합원, 부산상고 동창회 자원봉사자, 노사모 회원 등과 함께 세 차례 장군차나무, 매화, 산수유나무를 심었습니다. 노 대통령에게서 어제와 비슷한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방문객이 또 ‘어떻게 귀향을 결심하셨습니까’라고 물었기 때문이죠.

“여기가 서울보다 물가가 싸잖아요. (웃음) 맑고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음나무, 장군차와 같이 보기도 좋고 먹을 것도 나는 것들을 심으면서요. 예전엔 큰 나무 아래 관목 따위의 작은 나무들도 잘 자라서 망개나무, 개옻나무, 산딸기나무도 많았고 도토리도 앉아서 따먹었는데…. 이제 다시 돌아오게 해볼 생각입니다.”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 얘기도 덧붙입니다. “요 앞에 도랑이 있는데 콘크리트로 칠해버렸어요. 송사리가 살던 도랑인데 말이죠. 생태하천으로 복원해서 미꾸라지도 살 수 있게 만들 겁니다. 제가 중3때는 메기, 바늘치를 주낙하던 곳이었는데요.” 난데없이 대통령 얘기를 듣고 있던 어린이가 큰 소리로 묻습니다. “학교 안가고 땡땡이 치셨어요?”

“대통령이 국밥 한 그릇 먹고 갔으면 좋겠어예”

슬쩍 사저 앞을 빠져나와 다시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테마식당을 빼놓을 수 없겠죠.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국밥집’으로, 봉하일기 3편에서 잠시 소개된 바 있습니다. 5명의 ‘아지매’가 함께 일합니다. 못난이, 공주, 아가씨, 이쁜이, 할멈 아지매 이렇게 각자 별명을 만들었더군요.

공주, 아가씨, 이쁜이 세 아지매가 주방 일 외에 손님 맞는 일도 봅니다. 장사는 처음 해보는 분들이지만, 고무 슬리퍼에 사인펜으로 ‘공주’ ‘못난이’ 등 각자 별명을 써놓고 재밌게 일을 합니다. 못난이 아지매 말을 들어보니 대표 메뉴가 된 쇠고기 국밥이 어제오늘 등장한 것이 아니었더군요. 예전부터 마을에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사람들이 올 때마다 부녀회에서 국밥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장사가 아주 잘 되는 수준은 아니랍니다. 평일엔 손님이 많지 않고 휴일에 관광버스 타고 오는 방문객들은 먹을 걸 대부분 싸가지고 오는 터라 승용차 몰고 오는 사람들이나 마을에서 일하는 분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못난이 아지매가 민원 아닌 민원을 이야기 합니다.

“대통령이 한번 와서 국밥 먹고 갔으면 좋겠어예. 매점은 가서 담배도 피우고 해서 유명해졌는데…. 추어탕 좋아하신다니까, 오시면 맛있는 추어탕 내드리랄고예.” 겸사겸사 여름에는 주 메뉴를 영양식인 추어탕으로 바꿔볼 계획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은 매점에 이어 식당에서도 ‘노간지 2탄’을 만들어주실까요? (지난 10일 대통령이 못난이 아지매의 바람처럼 이 식당에 들러 국밥을 한 그릇 비우고 갔다고 합니다.)

이날 저녁에는 봉하마을 아지매 네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네 분 모두 비슷한 시기에 봉하마을로 시집 와서 나란히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았답니다. 하루일과를 마치고 가진 부담 없는 자리라 이런저런 말들을 편하게 나눕니다. 특히 대통령이 부산서 출마했을 때, 대선후보 경선 때 이 아지매들이 따라다니면서 응원했던 당시를 얘기하는 대목에선 뭉클한 감회를 감출 수 없었습니다. 아지매들은 사저에서 일하는 비서진 면면과 ‘사람사는 세상’ 홈페이지 얘기, 봉하사진관에서 사진 내려 받는 법까지 모르는 게 없습니다.

‘대통령 하실 때하고 마치고 내려왔을 때, 어느 때가 더 좋냐’고 한번 물어봤습니다.
“사실, 내려오니까 더 좋아예. 대통령 할 때는 조마조마 했거든예. 언론에 좋은 소리 안 나오고. 어쩌다 인터뷰 같은 거 하자고 하면 이상하게 나갈까봐…”
“지금 내려오셔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사람들하고 만나는 모습이 너무 좋아예. 인상도 좋고 말씀도 참 편하고 재밌게 하시잖아예.”
언론에 비춰지지 않았을 뿐 대통령이 현직에 계실 때도 변함없이 그런 모습이었다고 얘기해줬습니다.

4월 6일, 세 번째 금요일. 일요일이지만 휴일이 아닙니다. 아침 9시 전부터 마을엔 관광버스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상춘객들이 늘어서일까요. 봉하마을이 정말 미어터지는 것 같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꼬박 11번을 나와 방문객들을 맞았습니다.


“다 대통령 보러 오는 사람들 아닙니까”

아침에 체육대회 행사에 참석하느라 마주칠 기회가 없던 봉하마을 이장과 만났습니다. 원래 자기 일 외에 별도로 참석해야 할 대통령 행사가 생기다보니 아무래도 더 바빠졌다고 합니다. ‘집이 사저 옆이라 방문객들로 불편하지 않으시냐’고 물었더니 “조용한 거 보다 낫습니다. 다 대통령 보러 오는 사람들 아닙니까”라며 넉넉한 마음이 느껴지는 답변을 합니다.

이장님은 당장 마을에 편의시설이 별로 없는 게 가장 마음이 쓰인 답니다. 방문객들이 대통령 얼굴이라도 보지 못하면 딱히 할 일 없이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사저와 봉화산을 연계해서 소개하고 홍보하는데 힘쓰고 있답니다. “봉화산이 고도는 높지 않지만 굉장히 좋은 산입니다. 1시간 안팎이면 쉽게 올라올 수 있고 봉화사 마애불도 있고요. 무엇보다 사자바위 위에 올라가면 전망이 굉장히 좋고 정말 가슴이 탁 트이거든요.” 봉화산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갑니다.

오후에는 마을회관 앞에서 진영농협 조합장을 만났습니다. 대통령과 조합장은 어릴 때부터 봉하마을에서 함께 뛰어놀던 사이라고 합니다. 조합장은 걱정부터 앞서는 모양입니다. “대통령도 내려와서 오히려 쉴 틈이 없고 비서진들도 휴일이 없으니 걱정입니다. 즐거운 비명일지 모르겠지만, 다들 죽을 지경일 겁니다.”

친환경농법에 대해서도 언급하더군요. 사저 비서진들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일단 물이 문젭니다. 마을 농지가 다 매립지거든요. 지금은 수리시설을 좀 해놓아서 나은데 원래 저습지라 예전에는 논도 잘 잠겼고요. 친환경농법, 화포천 살리기, 장군차 등등 대통령이 이런저런 구상이 많은데 여건이 쉽지만은 않네예.”

길지 않은 시간 조합장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쉬운 일이 아니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하마을로 시집간다고 하니까 집안 어르신이 ‘너 가서 밥이나 제대로 먹겠나’ 걱정하더라는 마을 아주머니의 말이 떠오르더군요. 조합장 말처럼 봉하마을 앞에 펼쳐진 농지는 다 매립지랍니다. 경전선이 지나면서 둑이 생겼는데 그게 자연스레 제방 역할을 한 것이죠. 낙동강보다 지대가 낮기 때문에 비가 내리면 쉬이 잠겼답니다. 배수펌프가 생긴 지 이제 한 3년 됐다니까 농사짓기 쉬운 땅은 아니었겠죠.

대통령과 자원봉사자들의 식목 행사가 예정돼있는 봉화산 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미리 자리를 잡으려고 마을 앞 도로를 따라 걷는데 경호동 사이로 사저 앞에 몰려든 인파들이 보입니다. 대통령이 나와 있네요. 마을 이장 집 옆 마당까지 방문객들이 몰려있습니다.

“어렵고 하루 아침에 되는 일 아니지만 다 미래 위해 하는 일”

이날 자원봉사자들이 장군차나무를 심은 곳은 못난이 아지매 감나무 밭입니다. 못난이 아지매의 남편되시는 분은 마을 전통테마마을 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마흔여섯살의 ‘청년’입니다. 사저에서 방문객과 인사를 마치고 현장에 온 대통령이 “어, 왔나” 하며 사무국장을 반갑게 맞습니다.

조합장말처럼 사무국장도 수리(水利) 문제를 비롯해 여건이 좋지 않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유기농법, 장군차 밭 조성 같은 일도 작은 사업이 아닙니다. 사무국장 말대로 돈도 필요하지만 그것만 갖고 되는 문제도 아니고 열정과 전문지식까지 뒷받침되어야 하니까요. ‘지금 어렵고 하루아침에 될 일도 아니지만 미래를 위해 하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하는 사무국장에게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살고 싶은 농촌 만들기라는 노 대통령의 구상과 계획은 큰 힘입니다.

“당장 좋아진 것이 보이잖습니까. 일단 마을이 깨끗해졌고 전보다 활력이 넘칩니다. 마을 주민들도 계속 고민하고 있지만 뭔가 희망이 보인다는 것 자체가 단합을 가능하게 합니다. 저도 (대통령이) 오시고 난 뒤엔 한 시간이라도 더 일찍 일어나게 되고요.”

일정상 봉하마을 사람들 만나는 일은 여기서 접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봉화산 정상 사자바위에 올랐습니다. 가슴이 탁 트이네요. 봉하마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 앞으로 농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동쪽으로 거기에 잇닿은 화포천이 보입니다. 앞으로 이 풍경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마을 앞 농지 27만평 가운데 2만평 남짓한 땅은 올해부터 시범적으로 친환경농법인 오리농법을 시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봉하에서 띄우는 세 번째 편지’에서 ‘옛날의 그 오리, 기러기들을 다시 불러들이려고 한다’고 밝혔듯이 화포천도 되살아 날 것입니다. 물론 짧은 기간에 이 모든 것이 실현되지는 않겠죠. 지체도, 오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가까운 과거, 어떤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멀리보고 뚜벅뚜벅 나아갈 것 같지 않습니까?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봉하마을은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100m를 15초쯤 주파하는 분이라면 30초 정도 달려보세요. 마을 입구에서 대통령 사저까지 여유 있게 닿을 수 있습니다.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은 40여가구 120여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곳에 봉하마을 주민으로 돌아온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를 가슴 설레게 지켜보고 함께 변화를 준비하는 주민들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 몇 명 만나는 것으로 다 알았다고 얘기할 순 없겠지만, ‘사람사는 세상’을 방문하는 여러분들과도 어딘가 닮아있을 것 같습니다.

김상철(前 국정홍보비서관실 행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