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나는 노무현이 좋다

2006. 12. 12. 22:10정치

 
  
 
나는 노무현이 좋다.
 
 
요즈음 친구들의 모임에 가면 의례 대통령 험담이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노무현 대통령을 씹는다. 그런 중에 유독 나만 노무현 대통령을 두둔하는 편이어서 친구들의 공격을 받는다. 내가 현실을 잘 몰라서인지 아니면 정치에 대한 감각이 둔해서인지 친구들이 ‘노무현, 노무현’하면서 마치 옆 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 하는 게 여간 못마땅하지 않다. 도대체 우리 대통령의 어느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우선 최근에 대통령을  ‘노무현, 노무현’하면서 큰 소리로 헐뜯을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생각해보라. 아무리 문민정부니 국민정부니 해도 대통령을 욕하려면 우선 주변을 둘러보아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찰이건 검찰이건 안기부건 아무도 겁 내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무능하고 대통령답지 않아서 욕을 먹을 만 하니까 정부마저 모른 척 하는 걸까? 심지어 ‘노무현이는 빨갱이xx’ ‘청와대에는 빨갱이가 우글우글한다.’고 거침없이 떠드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잡혀갔다는 사람이 없으니….

노무현 대통령이 쌍꺼풀 수술을 했다. 나는 왜 쌍꺼풀 수술을 했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른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물어도 그 이유를 잘 모른단다. 설마 우리 대통령이 멋을 부리려고 쌍꺼풀 수술을 했을 리는 없을 게다. 주변의 친구들도 속눈썹이 눈을 찔러서 어쩔 수 없이 쌍꺼풀 수술을 한 사람이 더러 있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도 그래서 했을 거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의 쌍꺼풀 수술을 두고 말들이 많다. ‘수의사가 시술을 했다더라.’ 말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이 아니라 개나 고양이 같은 짐승이라는 얘기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제 나라 대통령을 두고 개나 고양이 같은 짐승이라고 하다니…. 우리 이웃간에도 이렇게 사람을 모독하면 당장 멱살잡이를 하고 주먹이 날아갈 날 일이다. 아니 칼부림이 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이렇게 모독하다니….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부끄럽다. 노무현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들과는 달리 컴퓨터로 인터넷을 잘 이용하는 신세대다. 그런 대통령이 시중에 떠도는 이와 같은 소문을 모를 리 없다. 내가 노무현이라면 분하고 억울해서 혈압으로 쓰러질 판이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은 참 잘 참는다. 이런 당치도 않은 소문이 나도 전혀 대응하질 않는다. 과거의 대통령이라면 최소한 행정자치부, 검찰청장 또는 경찰청장의 이름으로 대통령을 비하하는 어떠한 말이나 행동은 국가 원수에 대한 모독죄로 처벌 받을 것이라는 점잖은 경고성 성명서라도 발표함직 한데…. 나는 이렇게 전혀 대응하지 않는 우리 대통령 노무현이 정말 점잖고 신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터무니없이 전국의 부동산 값을 올리고 세금을 올려 받는다며 흥분한다. 공연히 수도를 이전한다고 해서 중부 충청지방의 부동산 값을 올렸고 아파트의 재개발 정책이며 수도권 택지개발 공급 등이 모두 실패해서 수도권의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고 결과적으로 빈부의 격차가 더 커졌다며 흥분한다. 사실 행정수도의 이전은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공약 중 하나였다. 선거공약을 걸고 당선이 되면 후보는 당연히 선거공약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아니라고 핏대를 세우니 이상한 일이다. 하긴 내가 부동산 전문 경제학자가 아니니 어째서 실패인지 그 이유를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딱히 노무현 대통령의 탓이라고 몰아세우기는 석연치 않다. 또 이상한 것은 아파트 값이 오른 사람도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한다. 아파트를 줄여가려고 했더니 세금내고나면 오히려 작은 아파트도 살 형편이 못된다며 ‘죽일 X'이란다. 무조건 불리하거나 심기가 뒤틀린 일은 노무현이 탓이란다.

노무현 대통령은 특이한 삶을 산 사람이지만 대통령이 되었다고 거만하거나 권위적이지 않아서 좋다. 한 때 ‘대통령 못 해먹겠다.’고 해서 구설수에 오르고 (가) 국법질서 문란, (나) 자신과 측근들의 비리 사실로 인해 국정을 이끌 도덕적 명분 없음, (다) 경제 위기 상황 초래 등의 이유로 결국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사태가 벌어졌었다. 실제 속내는 금기로 여기던 상황까지 쉽고 당당하게 거론하는 대통령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고 생각된다. 말하자면 ‘빨갱이는 무조건 나쁘다’던 과거의 보수적인 생각에서 ‘그들은 우리와 미래를 같이 할 동족이다’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사상과 정치적 노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강한 동포애로 감싸야 한다는 대통령을 ‘너도 빨갱이구나’라며 몰아세운 집단적 마녀사냥이었다.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말이 뭐 그리 못할 말인가? 그토록 힘들어하는 대통령에게 위로는 못 할망정  경솔하다느니 대통령 재목이 아니라느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 때도 노무현 대통령은 의연했다. 법의 절차를 따라 진행되는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았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부결되리라는 어떤 믿음을 갖고 있었을까? 사실 헌법재판소의 구성 인사들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리 우호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날의 다른 대통령과는 다르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정치노선을 그대로 고집한다. 그 노선에서 비록 꼭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없어도 그 길로 간다. 당연히 당선 가능한 당이나 노선, 지역구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되면 그리로 간다. 겨우 고교를 졸업한 그가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판사가 되었지만 결국 2년 만에 민권변호사의 길을 갔다. 주변에서 얼마나 말렸을까? 그 좋은 자리를 박차고 나오다니 미친놈이라고…. 1988년 부산에서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부산의 대부 김영삼을 버리고 김대중과 협력했다. 그러니 1991년 부산에서 낙선하고 1995년 부산시장선거에서도 낙선했지. 1996년 서울 종로에서 다시 국회의원에 낙선하였지만 1998년 종로 보궐선거에서 기어코 당선했다. 그리고 2000년 그는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서 또다시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참 제 정신 가지고는 하기 힘든 일이다. 그의 이러한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다른 정치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참으로 돋보이는 행동이었다. 김대중이와 손잡고 김대중이라면 고개를 흔드는 부산에서 당선되겠다고 나서는 돌쇠 같은 사나이. 그래서 나는 노무현이 좋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소신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다. 그렇다고 자기의 소신에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무조건 틀렸다고 자기 소신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2006년 5월, 자신이 소속한 열린우리당에게 야당인 한나라당에게 사학법 일부를 양보하도록 권유했다 거절당했다. 대통령으로서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자기 당 소속 현직 대통령의 권유를 거절하다니 과거라면 꿈도 못 꿀 일이 아닌가? 그런데 대통령의 권유를 거절한 열린우리당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섭섭하다느니 괘씸하다느니 하지 않았다. 참, 놀라운 일이다. 오히려 놀란 쪽은 한나라당이었다. ‘이제는 양보하겠구나.’하고 느긋이 기다리다 뒤통수를 얻어 맞았으니 말이다. ‘뭐 이런 콩가루 집안이 있나?’ 과연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가지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노무현의 장인이 한국 전쟁당시 북한에 부역을 한 빨갱이란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지금까지도 빨갱이 딸과 산다고 말이 많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의 대답이 시원하다. ‘장인이 빨갱이지, 우리 아내는 빨갱이가 아니다. 비록 내 아내의 아버지가 빨갱이라 할지라도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한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 한다면 차라리 대통령 안 하겠다.’ 과히 노무현이다. ‘빨갱이면 어떠냐? 왜 빨갱이가 나쁘냐?’고 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만약 그랬다면 또 많은 사람들이 탄핵하자고 들고 일어나지 않겠는가? 하긴 그렇지. 한국 전쟁 때라면 대통령의 부인(권양숙 1947.12.23생)은 4살배기 코흘리개였으니 빨갱이가 뭔지나 알았을까? 우리 친구 중에는 대통령이 북한을 무언가 좀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면 대통령이 빨갱이라서 수령인 김정일에게 가져다 바치는 거라고 얼빠진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안타깝다. 세상에! 제 나라 대통령을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의 부하쯤으로 취급하다니….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은 빨갱이여서 우리의 우방인 미국에 대한 태도가 분명하지 않단다. 그래서 미국이 한국에 대하여 압력을 가하고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단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우리가 홀로서기를 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마냥 미국에게 빌붙어 비위를 맞춰가며 살아가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따라서 한 편으로는 힘을 기르고 한 편으로는 협조할 일은 협조하면서 조화롭게 미국과의 관계를 끌고나가야 할 것이다. 무조건 미국은 옳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지났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런 관점에서 고민하고 어떻게든 우리의 위상을 일본에 밀리지 않도록 안간 힘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도 그렇다. 실제로 우리와 일본을 비교하면 우리가 더 우세한 것이 무엇인가? 그들과의 과거사 하나도 청산하지 못한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들이 속으로 비웃지는 않을까? 그들에게 비웃음을 사지 않으려면 대통령이나 헐뜯고 낄낄대서는 안 된다. 잘 못된 정치, 신중하지 못한 대외적인 태도, 친인척의 비리를 지적하는 것은 정당한 국민의 권리다. 그러나 모략이나 중상은 안 된다. 제발 대통령의 인격을 모독하지 말자.

노무현 대통령의 친인척 관리도 과거의 대통령과는 다르다. 형이라는 노건평이 가끔 구설수에 오르지만 과거의 대통령들의 경우에 비추어 그야말로 ‘새발에 피’다. 그것도 어떻게 잘 되지 않을까하고 접근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리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는 못하지 않아나 싶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다. 그 남매가 모두 대통령 재임 중 결혼을 했다. 그런데 그 사돈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진 내용이 없다. 사돈 한 사람이 뭐, 술 마시고 운전하다 사고를 냈는데 뺑소니를 쳤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지만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은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또 사위가 어떤 녀석인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고약한 친구가 대통령 아들이 다니는 L그룹만 정부로부터 세무조사 등 경제 재제를 받지 않았다고 침을 튀기며 주장했지만 사실 뚜렷한 근거는 없다. 전직 대통령 본인이 구속되고 대통령의 아들들이 줄줄이 구속된 과거의 예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우리 노무현 대통령이 재직 중에는 말이 많아도 임기가 끝나면 그런 불행한 사태는 없을 상 싶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두 자녀와 내외가 부산의 한 팬션에서 단란하게 휴가를 보내던 뉴스가 생각난다. 화려하지도 요란하지도 않은 평범하고 조용한 대통령의 휴가.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이 혼탁한 서울에 머물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간단다. 아직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이 넷이나 되지만 어느 한 놈도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모두 서울에 살고 있는 것에 비하면 과연 노무현이는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