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제 우리가 이 사회의 주류라니까?
2006. 4. 2. 10:40ㆍ정치
1.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농민들에 대한 연민을 표현한 러시아 민중시인 네크라소프의 저 싯귀는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통해 80년대 암흑과 동토의 땅인 대한민국에서 다시 살아난다. 조국을 사랑하는 자는 곧 온갖 고난 속에서 버겁기만 한 삶을 이어가는 민중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 슬픔과 철저히 왜곡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분노로 삶을 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쯤은 동시대를 살아 온 우리에겐 너무나 자연스레 다가오는 것이라서 그에 대한 어떠한 부연도 사족일 수 밖에 없다.
2. 그러나 '슬픔과 노여움'이 만연한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우리는 다가올 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현재의 내가 가지고 있는, 가질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유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더 나은 미래를 담보하는 현재의 희생은 슬프지가 않을뿐더러 노여울 리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여움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조차 없는 이들에게 미래의 '행복한 삶'이란 구호는 말초적 흥분만 주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환각제보다 무가치한 것이며, 헛된 부도수표에 불과하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슬픔과 분노를 보듬어야만 하는 이유다.
3. 온통 분노만이 넘쳐난다.
조국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서인가? 보듬고 격려하는 모습 보다는 조롱과 비난, 분노만이 들끓는다. 말 한마디 글 한 줄에 날카로운 칼이 숨겨져 있고, 치명적인 독이 발라져 있다. 장난 삼아 던지는 듯한 눈덩이 속에도 모난 돌이 숨겨져 있다. 마치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야생의 정글에 홀로 된 듯한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작은 불일치에서 연유한 상대방에 대한 분노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마저도 오염시키는 독이다. 분노를 다스리는 것은 역지사지하는 길 밖에 없다. 극단만이 선명이고 중간은 회색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4. 이제 우리가 주류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주류다. 바리케이트 뒤에서 짱돌과 화염병만으로 조직화되고 훈련되어 있으며 수준 높은 무기로 무장되어 있는 적들과 맞서 힘겨운 싸움을 하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몇 차례의 위대한 승리를 통하여 우리가 가진 힘을 확인하였다. 우리의 삶은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우리 스스로 우리 몫으로 차지해야 할 행복의 양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아직도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소외 당한 이들과 아울러 소위 공권력이라 부르는 그들의 적 조차도 우리라는 범주 안에 포함시켜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서 있는 터전을 넓혀야 한다. 우리의 시야와 지평을 더욱 넓혀야 한다. 왜? 우리가 이 사회, 이 나라의 주류이기 때문이다.
5. 소모적 갈등은 이제 그만!
아직 평화의 시대는 아니다. 부른 배 두드리고 가무에 흥겨운 태평성대는 아직 우리 곁에 오지 못했다. 손에 잡힐 듯 멀어져 가곤 하지만 그 그림자는 어렴풋이 우리 시야에 어른거린다. 그러나 아직도 도처의 불온한 자들이 보내는 유혹의 손짓을 물리치고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여기서 스스로 다투다 모든 기운을 소진하기를 기다리는 저들의 바램에 따라서는 안될 일이다.
현대사 반세기 중 우리가 주류로 서 있었던 것은 겨우 오분지 일도 못 되는 짧은 시기에 불과하다. 이제 동력이 돼야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굴릴 수 있는 힘이 되어야 한다. 설사 힘이 되지는 못할망정 힘꾼들의 발목을 잡지는 말아야 한다. 수레바퀴를 가로막는 당랑의 어리석음만은 버려야 한다. 우리가 바로 주류이기 때문이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농민들에 대한 연민을 표현한 러시아 민중시인 네크라소프의 저 싯귀는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통해 80년대 암흑과 동토의 땅인 대한민국에서 다시 살아난다. 조국을 사랑하는 자는 곧 온갖 고난 속에서 버겁기만 한 삶을 이어가는 민중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 슬픔과 철저히 왜곡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분노로 삶을 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쯤은 동시대를 살아 온 우리에겐 너무나 자연스레 다가오는 것이라서 그에 대한 어떠한 부연도 사족일 수 밖에 없다.
2. 그러나 '슬픔과 노여움'이 만연한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우리는 다가올 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현재의 내가 가지고 있는, 가질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유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더 나은 미래를 담보하는 현재의 희생은 슬프지가 않을뿐더러 노여울 리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여움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조차 없는 이들에게 미래의 '행복한 삶'이란 구호는 말초적 흥분만 주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환각제보다 무가치한 것이며, 헛된 부도수표에 불과하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슬픔과 분노를 보듬어야만 하는 이유다.
3. 온통 분노만이 넘쳐난다.
조국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서인가? 보듬고 격려하는 모습 보다는 조롱과 비난, 분노만이 들끓는다. 말 한마디 글 한 줄에 날카로운 칼이 숨겨져 있고, 치명적인 독이 발라져 있다. 장난 삼아 던지는 듯한 눈덩이 속에도 모난 돌이 숨겨져 있다. 마치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야생의 정글에 홀로 된 듯한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작은 불일치에서 연유한 상대방에 대한 분노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마저도 오염시키는 독이다. 분노를 다스리는 것은 역지사지하는 길 밖에 없다. 극단만이 선명이고 중간은 회색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4. 이제 우리가 주류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주류다. 바리케이트 뒤에서 짱돌과 화염병만으로 조직화되고 훈련되어 있으며 수준 높은 무기로 무장되어 있는 적들과 맞서 힘겨운 싸움을 하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몇 차례의 위대한 승리를 통하여 우리가 가진 힘을 확인하였다. 우리의 삶은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우리 스스로 우리 몫으로 차지해야 할 행복의 양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아직도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소외 당한 이들과 아울러 소위 공권력이라 부르는 그들의 적 조차도 우리라는 범주 안에 포함시켜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서 있는 터전을 넓혀야 한다. 우리의 시야와 지평을 더욱 넓혀야 한다. 왜? 우리가 이 사회, 이 나라의 주류이기 때문이다.
5. 소모적 갈등은 이제 그만!
아직 평화의 시대는 아니다. 부른 배 두드리고 가무에 흥겨운 태평성대는 아직 우리 곁에 오지 못했다. 손에 잡힐 듯 멀어져 가곤 하지만 그 그림자는 어렴풋이 우리 시야에 어른거린다. 그러나 아직도 도처의 불온한 자들이 보내는 유혹의 손짓을 물리치고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여기서 스스로 다투다 모든 기운을 소진하기를 기다리는 저들의 바램에 따라서는 안될 일이다.
현대사 반세기 중 우리가 주류로 서 있었던 것은 겨우 오분지 일도 못 되는 짧은 시기에 불과하다. 이제 동력이 돼야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굴릴 수 있는 힘이 되어야 한다. 설사 힘이 되지는 못할망정 힘꾼들의 발목을 잡지는 말아야 한다. 수레바퀴를 가로막는 당랑의 어리석음만은 버려야 한다. 우리가 바로 주류이기 때문이다.
출처 : 산마루의 명경지수
글쓴이 : 산마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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