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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2. 16. 16:09정치

우리가 정말 그것을 잃었을까? 
                                                                                                                                                   -낮은풍경

 

전세금들고 계약하러 가는 길에 느끼는 긴장의 무게는 상당하다. 뒷주머니 지갑에 넣어 두었다가 소매치기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어, 평소 쓰지도 않는 겉옷 안주머니를 확인해본다. 터지진 않았겠지. 고이고이 찔러넣고 단추까지 채워도 불안하다.

이곳에 돈이 있소~라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태연한 척 하지만 나도 모르게 손으로 더듬어 보게 된다. 여전히 그곳에 있다. 휴~. 가방안에 넣는 게 더 나을까? 고민도 보통 고민이 아니다.

악! 마누라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핸드백에 넣어둔 전세금이 없어졌단다. 아까 불안해서 내 안주머니에 넣었어. 털썩 주저앉을 표정이다. 말을 하지! 하지만 눈빛에 깃든 다행스러움과 안도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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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소문이 돌아. 연말에 특별보너스를 지급할 지도 모른대네. 예상치 않았던 보너스가 생길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기분이 붕 뜬다. 옷 하나 사줄꺼야? 받아봐야 알지, 설레발은! 떼끼! 말은 그랬지만 은근히 기분이 좋고 얼마를 떼서 뭘 사고 뭘 먹고 용돈도 드리고~ 이런 저런 궁리를 한다.

연말이 다되어도 소식이 없다. 윗선에서 줄까말까 저울질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단다. 에이, 썅. 당연히 받기로 한 돈도 아니면서 기분이 상한다. 기대했던 만큼 씁쓸해진다. 헛물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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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이론(prospect theory)이라고 있는데, 기대효용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인간의 판단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되었고, 위의 그래프로 곧잘 설명된다.

이득과 손실이 정도를 더할 수록 점점 완만해져가는 것은 한계효용 체감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비슷하다는 의미는 기대효용이론이 효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비해 이 이론은 가치(value)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전망 이론은 이득(gains)의 완만한 경사와 손실(losses)의 급격한 경사의 특징을 가진다. 수직축은 사람이 느끼는 가치의 정도를 의미한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10만원을 얻었다가 잃거나, 잃었다가 얻으면 총합은 0으로 이익이나 손해의 효용이 없는 상태이지만, 전망이론에서는 10만원을 얻었을 때의 기쁨의 크기보다 10만원을 잃었을 때의 아픔의 크기가 더 크기 때문에 돈은 그대로인데도 기분이 나빠지는 현상을 설명해준다.

이는 사람이 판단하는 기준점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푼도 없는 사람이 10만원을 얻었다가 잃었을 경우, 애초에 한푼도 없었던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10만원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잃어버린 것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건 위의 두가지 에피소드에서처럼 실제로 돈이 오가는 상황이 아닌 경우에 특히 이해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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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줄기세포 사태를 인지부조화, 후광효과, 집단사고, 스톡홀름 신드롬 등등 상황을 설명하는 글들이 많은데 전망이론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33조라는 시장가치, BT 강국이라는 비전이 사람들의 가치판단 기준을 저만치 앞으로 던져두었다. 그것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때, 더 앞에 던져졌던 기대들에서부터 후퇴해오는 상실감이 존재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전한 국익, PD수첩이 말아먹었다는 그 국익의 크기는 상실감의 크기일 뿐이다.

지하철 결혼식 소란을 보면서도 유사한 느낌을 얻었다. 상황극을 실험했고, 우연히 핸드폰으로 촬영을 해서 인터넷에 올려졌으며, 인터넷의 무한 증식의 힘은 순식간에 감동을 전염시켰다. 단 하루 이틀만에 실험극이라는 게 밝혀졌고, 호서대 게시판은 난장판이 되었으며, 그 젊은이들은 속인 것 같이 되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 관련 기사의 댓글은 분노와 비난으로 도배되어 있고, 실험극에 대한 평가는 상실되었다.

이런 기대와 감정의 기복에서 많은 것들이 상실된다. 언론의 의미, 질문의 의미, 여론의 의미, 과학의 의미, 대화의 의미, 실험적인 도전의 의미 같은 것들. 하나씩 따로라면 충분히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할 것들이 방위를 알 수 없게 혼재되면서 감정의 앙금만 찌꺼기처럼 남아있게 된다. 판단을 할 때는 한발짝 물러서서 마음을 차분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전망이론을 근거로한 행위들은 실전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가장 흔한 예로 좋은 소식은 나눠서 전달하고 나쁜 소식은 한꺼번에 전달한다는 전략이 있다. 기업공시와 국정홍보에서 사용되는 방법이다. 또한 보수적 시각이 형성되는 것을 설명하기도 하는데, 개혁을 통해서 얻는 정도와 잃는 정도가 정확히 파악이 안되거나 비슷할 경우, 막연하게 잃는 부분에 대한 위협감이 더 크게 느껴질 때가 많다는 것이다. 개혁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잃는 것 보다 훨씬 크게 제시되어야 여론에게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실제로 얼마만큼 얻었는가, 얼마만큼 잃었는가.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를 따지는 역할을 심리에 내줄 경우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가 정말 그것을 잃긴 잃었을까?

 

-노하우2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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