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이 보내 온 '여름 편지'] 푸른 연꽃을 통역사 삼아 늙은 부부가 말없이 대화합니다

2016. 7. 10. 08:27사람들

[소설가 김훈이 보내 온 '여름 편지'] 푸른 연꽃을 통역사 삼아 늙은 부부가 말없이 대화합니다

입력 : 2016.07.09 03:00

莊子

김훈 소설가 
김훈 소설가

 

책을 읽다가 눈이 흐려져서 공원에 나갔더니 호수에 연꽃이 피었고 여름의 나무들은 힘차다. 작년에 울던 매미들은 겨울에 죽고 새 매미가 우는데, 나고 죽는 일은 흔적이 없었고 소리는 작년과 같았다. 젊은 부부의 어린애는 그늘에 누워서 젖병을 물고 있고 병든 아내의 휠체어를 밀고 온 노인은 아내에게 부채질을 해주고 물을 먹여주고 입가를 닦아주었다.

호수의 물고기들 중에서 어떤 놈은 내가 물가로 다가가면 나에게로 와서 꼬리 치는데, 아 저 사람 또 왔구나, 하면서 나를 알아보고 오는 그놈이라고 나는 믿는다. 연꽃의 흰 꽃잎에는 새벽빛 같은 푸른 기운이 서려 있어서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연꽃은 반쯤 벌어진 봉우리의 안쪽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거기는 너무 순수하고 은밀해서 시선을 들이대기가 민망했다. 넓은 호수에서 연꽃들은 창세기의 등불처럼 피어 있었다.

모든 생명은 본래 스스로 아름답고 스스로 가득 차며 스스로의 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것이어서 여름 호수에 연꽃이 피는 사태는 언어로서 범접할 수 없었다. 일산호수공원의 꽃들은 언어도단의 세계에서 피어났고 여름 나무들은 이제 막 태어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빛났다. 나무들은 땅에 박혀 있어도 땅에 속박되지 않았다. 사람의 생명 속에도 저러한 아름다움이 살아 있다는 것을 연꽃을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이것은 의심할 수 없이 자명했고, 이미 증명되어 있었다. 내 옆의 노부부는 나무 그림자가 길어지고 빛이 엷어질 때까지 말없이 연꽃을 들여다보았다. 늙은 부부는 연꽃을 통역사로 삼아서 말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장자 

 

나는 책을 자꾸 읽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책보다 사물과 사람과 사태를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늘 다짐하면서도 별수 없이 또 책을 읽게 된다. 이틀째 '장자'를 읽고 있는데 신문사에서 '여름에 읽을 책'을 골라보라고 해서 주저 없이 '장자'로 정했다. 책을 읽는데 무슨 여름 겨울이 있으랴마는 '장자'는 여름의 나무 그늘에서 읽어도 좋고 눈에 파묻혀서 세상이 지워지는 겨울밤에 읽어도 좋다.

'장자'는 순결한 삶, 자유로운 정신, 억압 없는 세상의 모습을 역동적 드라마로 제시한다. '노자'는 사상의 원형이며 뼈대일 터인데, 여기에 판타지를 넣고 스토리를 엮어서 인간세에 적용시키면 '장자'가 된다. '장자'는 인간의 수많은 질문에 직접 대답하기보다는 질문의 근저를 부수어버림으로써 인간세의 끝없는 시비를 끝낸다. 질문이란 대체로 성립되지 않는다. 인간은 짧은 줄에 목이 매어져서 이념, 제도, 욕망, 언어, 가치, 인습 같은 강고한 말뚝에 묶여져 있다. 짧은 줄로 바싹 묶여져서, 괴로워하기보 다는 편안해하고 줄이 끊어질까봐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장자'가 마음의 도끼질로 이 목줄을 끊어 주는데, 줄이 끊어지면서 드러나는 세계의 질감은 가볍고 서늘하다.

공원에서 연꽃과 물고기를 들여다보면서 '장자'를 생각했다. 연꽃이 '장자'이고 물고기가 책이었다. 아름다운 것은 본래 스스로 그러하다. 거꾸로 써도 마찬가지다. 내년 여름에는 또 새 매미가 울겠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09/20160709000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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