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난 집에 수저 자체가 없던 '무수저' 출신"

'은평의 작가, 김훈 초청 토크콘서트'가족사부터 현실문제까지 솔직하게 밝혀무협지 작가 부친, 가정에 무심100세 어머니 아직도 미워하셔한국현실 표현'수저론' 안타까워"파괴적 가난에서 인간 보호해야"세월호 소재 소설? 계획은 없지..이데일리 | 김용운 | 입력 2016.05.09. 06:16

 

소설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과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 ‘라면을 끓이며’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훈(68)이 유년시절과 신혼시절을 보낸 서울 은평구의 북한산 자락에서 독자들을 만났다. 7일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연 ‘은평의 작가, 김훈 초청 토크콘서트’를 통해서다. 김훈은 이날 300여명의 청중 앞에서 가족사와 문학에 대한 고민,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소설가 김훈이 7일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토크콘서트’를 열고 300여명의 청중 앞에서 2시간 동안 가족사와 문학관, 한국 현실의 문제 등 다방면에 걸쳐 자신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사진=은평구청).

 

◇ 아버지로부터 배운 간결한 문장

 

김훈은 먼저 아버지 김광주(1910~1973)에 대한 회상으로 입을 열었다. 김광주는 젊은 시절 중국으로 건너가 백범 김구 밑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중 해방을 맞았고 이후 귀국해선 일간지 문화부장과 편집국장 등을 역임했다. 말년에는 은평구의 기자촌에서 살면서 국내 1세대 무협지 작가로 필명을 날렸다.

 

김훈은 “아버지로부터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글을 쓰는 법을 배웠다”며 “그러나 아버지는 우리가 숱하게 이사를 다녔는데 이사 간 집을 모를 정도로 가정에 무심했다”고 회고했다. 이사 간 집에 찾아와서도 ‘배산임수’가 아니란 이유로 오히려 식구들을 타박했다는 것.

 

김훈은 “중학생 때 ‘아버지는 어디를 그렇게 다니십니까’ 물었더니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에 머물 수야 있겠느냐’고 대답했다”며 “아버지는 나라 망할 때 태어났고 나는 나라를 막 만들 때 태어났다. 사실 아버지는 광야가 아니라 폐허를 살았다”고 덧붙였다. 가정에 무심한 가장 탓에 고생은 고스란히 김훈의 어머니 몫이었다. 김훈은 “어머니가 올해로 100세인데 아직도 아버지를 그렇게 미워한다”고 말해 객석의 웃음을 자아냈다.

 

◇ 젊은이들 책망, 어른의 태도가 아니다

 

김훈은 현재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조선말 천주교 박해를 소재로 한 소설 ‘흑산’의 상황을 빌려 “그때나 지금이나 공론의 장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념과 외래 사조가 부딪치면서 공론화되기보다 바로 대결의 장이 섰고 그것이 박해의 배경이 됐다”며 “공론의 장이 없는 비극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가장 안타까운 한국의 현실은 부모의 자산으로 자식의 삶이 결정되는 이른바 ‘수저론’ 사회였다. 금수저와 은수저, 동수저와 흙수저에 이르기까지 서열화하는 ‘수저론’은 다시 가난이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김훈은 “사실 나는 집에 수저 자체가 없었던 ‘무수저’였다”며 “그렇다고 젊은 친구들에게 ‘내가 너보다 더 고생했으니 견뎌라’라고 말하는 것은 어른의 태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계층 간의 차이는 어디에나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수저와 수저 사이의 관계가 너무나 억압적”이라며 “특히 가난 탓에 인간이 절망에 빠지고 타락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너무 많이 봤기에 파괴적인 가난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라고 역설했다.

 

7일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연 ‘은평의 작가, 김훈 초청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청중 300여명이 2시간여 동안 소설가 김훈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사진=김용운 기자).

 

◇ “가난 극복했지만 비리·차별 물려준 셈”

 

김훈은 “우리 세대는 가난을 극복하고 싶은 일념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며 “밥과 자동차와 집이 넘치는 풍요의 세상을 만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비리와 차별과 모순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이어 “아버지세대가 가난과 억압을 물려줬다면 우리는 비리와 모순을 다음세대에게 물려주게 됐다”며 “누구나 자기세대에 문제가 있지만 현재의 잘못된 구조를 해결하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당부한 것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감수성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요즘 어린이날은 애초 제정했을 때의 의미는 사라지고 모성애의 이름으로 내 새끼만 호강시키는 날로 변질됐다”며 “인간 모성애의 위대함은 동물과 달리 내 새끼뿐만 아니라 이웃집의 새끼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남의 고통을 알게끔 가르쳐야 한다. 남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인간으로 키워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세월호 소재 소설, 아직은 계획 없지만…

 

이날 청중이 한 질문 중에 김훈을 가장 곤혹스럽게 한 것은 신작소설이 ‘세월호’에 관한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김훈은 “괴로운 걸 물어봤다”고 운을 뗀 뒤 “얼마 전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를 봤는데 이준석 선장에게 종신형을 내린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들을 사면할 수 있겠나 싶어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며 “지금 답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없다. 근력이 안 된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어찌될지 모르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김용운 (luck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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