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13. 13:27ㆍ관심사
신이시여, 이것이 정녕 제가 만든 메주인가요?
갑사동네서 어우렁 더우렁 살기 2011/12/12 23:16 이프
드디어 건축신고필증이 나왔다. 60평 이상은 허가, 미만은 신고사항이란다. 그래서 신고필증을 받게 된 것인데 군청의 1층, 2층, 3층을 오르내리며 면허세, 국민주택채권, 지역개발공채, 농지전용허가세, 농지보전부담금 고지서 등을 받아 신용증권을 사고 은행에 납부하는 절차를 거치고서야 받을 수 있었다. 채권은 산 뒤에 바로 그 자리에서 되팔 수 있는 것이어서 4백여만원에 이르는 비용은 150만원 정도로 충당할 수 있었다. 복잡하지만 오래 동안 거주할 시설물을 짓는 것이니 주변환경을 손상시키지 않고 법을 준수하면서 짓기 위해 필요한 절차일 터, 기꺼이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건축신고필증을 받기 위해서는 너댓가지 세금을 내고 채권을 사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2월에 토지측량을 거쳐 땅이 녹는 3월 말 경부터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하면 여름 무렵에는 이사가 가능할 것이다. 그리되면 내 인생의 후반부, 또 다른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지상에서 낙원을 꿈꾸는 일. 그것의 실현은 순전히 우리의 의지와 능력에 달려 있다.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메주 만들기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보내게 될 마지막 겨울이다. 이 집에 있는 황토방과 아궁이, 커다란 무쇠 솥은 손쉽게 만나기 힘든 아주 귀한 시설물. 이곳을 떠나기 전에 그것을 이용해서 메주를 쑤어보기로 했다.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니 내년 봄에 메주를 사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인터넷에서 가격을 찾아보니 콩 값의 거의 세배나 된다.
동네 할머니들도 다 만드시는 걸 내가 못하랴. 타작한지 얼마 안 된 국내산 햇 콩을 네 말(32kg)사서 인터넷에서 배운 방식대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출근 전 두 말을 씻어 물에 불렸다가 퇴근 후 아궁이에 불을 때서 콩이 붉은 색이 날 때까지 충분히 익혔다. 콩 물이 넘치면 안 된다고 해서 첫 날은 뚜껑을 수십 차례 열어야 했지만 다음 날엔 요령이 생겨 끓기 전까지 불을 때고 아궁이 입구를 닫고 오래 뜸을 들였더니 넘치지 않고 충분히 물렀다.
▲물이 넘치지 않게 관리하면서 콩에서 붉은 빛이 돌 때까지 충분히 삶는 것이 관건이다.
▲신이시여~ 이 것이 정녕 제가 만든 메주란 말입니까.
절구통이 없어 들통에 옮겨 방망이 믹서로 갈았는데 그것도 하다보니 요령이 생겼다. 5cm정도 높이로 콩을 담아 갈다가 또 위에 5cm 콩을 담아 가는 식으로 하니 깊게 뒤적거리지 않아도 수월하게 콩을 갈 수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 손으로 다듬어 네모 모양을 만들어 나갔다. 오호... 예전에 어머니가 만드시던 그 메주. 그 모양이 갖추어지는구나. 에헤라 디여~
아침에 씻어 불려놓고 퇴근 후에 불을 때어 삶고, 으깨고, 틀을 만드는 것... 혼자서도 하루에 두 말씩은 일도 아니로구나! 공동체 마을을 만들면 메주를 만들고 된장을 만드는 수익사업을 해도 좋겠는 걸...
노쇠를 부정하는 할머니
참으로 부지런하게 사는 부부가 있다. 남편은 수십 마리의 소를 키우고, 아내는 비닐하우스에 호박, 방울토마토, 깻잎 등을 키운다. 비닐하우스에 농사를 지으니 농한기가 따로 있을 수 없고 일 년 내내 농번기다. 낮에는 시간이 없다며 밤에 집으로 침을 맞으러 오고는 했는데 어제는 불쑥 한의원으로 침을 놓아달라며 할머니를 모셔다 놓고 갔다.
82세의 노모는 동네 한의원은 못미더워 하신다며 없는 시간에도 멀리 병원으로 모시고 다녀야 한다고 힘들어 하더니 어제는 어지간히 바빴던 모양으로 한의원에 모셔다놓고 가버린 것이다. 할머니는 침을 맞은 상태에서도 여러 가지 요구가 많았다. ‘내 다리를 고쳐주면 내가 동네에 널리 소문을 내서 사람을 많이 끌어주겠다’는 달콤한 멘트도 수차례 하신다.
조용히 할머니를 보내드리려 했지만 주야장창 열심히 일만 하며 사는 아들며느리가 늙은 노모 때문에 힘들어할 것을 생각하면 그래선 안 될 듯싶었다.
“할머니. 예전처럼 막 씩씩하게 걷고 뛰고 싶으시지요? 그렇지만 이제 그렇게 되실 수는 없어요. 80여년 써 먹었으니 이제 기계가 낡을 때도 되었지요. 세상에 80년 넘게 쓰는 기계가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 이 정도도 정말 아주 감사한 거지요. 저는 할머니 다리를 예전처럼 튼튼하게 고쳐드리지 못해요.
할머니 연세에 나가서 소를 키우시겠어요, 밭농사를 지으시겠어요? 그럴 거 아니니까 튼튼한 두 다리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지요. 아들 며느리가 열심히 일하면서 할머니께 따듯한 음식, 잠자리 마련해 드리니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아들 며느리에게 다리 고쳐달라고 하지 마세요. 이만하면 참 건강하게 잘 지내오신 거예요. 젊게 되돌릴 수 있는 병원은 없는데 할머니가 자꾸 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하면 바쁜 아들며느리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할머니는 아들며느리가 얼마나 착한지 급히 설명하신다. 그리고 오늘 정말 한의원에 오기를 잘했다고, 정말 고마운 말을 들었다고 인사를 하며 모시러 온 아들과 함께 집으로 가셨다. 만약 할머니가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아들 며느리는 노모가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인네들이 쇠약해져가는 육신을 자꾸 되돌리려는 욕망을 갖는다면 그 수발을 들어야 하는 세상의 자식들에게 그것은 큰 짐이라는 걸 그들이 알면 좋을 텐데.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니...
4,50줄에 들어선 우리 또래들은 자식들 막바지 건사하는 것도 힘들지만 부모의 노화, 질병, 죽음도 감당해야 한다. 늙고, 쇠약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 부모가 쇠약해져 가는 육신에 자꾸 미련을 갖거나 닥쳐올 죽음에 공포심을 갖고 불안해하는 것은 자식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가. 우리의 부모가 노쇠와 죽음 앞에 의연하다면 우리는 그들이 떠난 후에도 그들과 감사와 사랑의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죽음 앞에 두려워 초라해진 모습으로 떠난다면 우리는 애써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이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데 오래 사는 것은 참으로 여러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해인 수녀의 시 <여정>에 나오는 글귀처럼, 몸은 아파 삶이 더욱 무거워지더라도 마음은 산으로 가는 바람처럼, 호수 위를 날아가는 흰 새처럼 가볍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길 위에서 만났던 모든 이에게 울어야 할 순간들도 사랑으로 받아 안아 행복했다고, 고마웠다고,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는 스코트 니어링처럼 죽음을 ‘무한한 경험의 세계’로 인식하고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갈 것이며,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니 삶의 다른 일들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고 씩씩하게 유언을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고은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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