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운명과 우리의 운명
2011. 6. 17. 13:22ㆍ사람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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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과 우리의 운명 양정철(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
그의 원고를 정리하면서 남몰래 며칠을 울었습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님 서거 전후의 상황을 시시각각으로 되돌아보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원래 알던 내용, 혹은 저도 처음 접하는 내용이 뒤섞여 그 날의 아픈 기억을 일깨웠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럴진대 본인은 어땠을까…. 15일 발간된 책 <문재인의 운명> 얘깁니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문재인 이사장의 책 집필을 자료 지원 및 정리 등으로 돕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겨진 ‘회한의 생채기’를 보았습니다. 참 힘들었을 겁니다. 스스로 그 상황을 다시 정리하는 과정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지, 저는 잘 압니다. 집필 전 저희와 많은 대화를 나눌 때 대통령님 서거 상황을 말하는 대목에 이르면 그의 눈가는 늘 촉촉해졌습니다. 그의 성격상 아마도 혼자 글을 쓰는 과정에선 눈물로 그 대목을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갔을 것입니다. 그의 원고를 접하면서 느낀 건, 그가 안고 있는 슬픔과 회한이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 “충격, 비통, 분노, 서러움, 연민, 추억 같은 감정을 가슴 한 구석에 소중히 묻어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냉정하게 시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가장 힘들었으면서도 “그것이 그를 ‘시대의 짐’으로부터 놓아주는 방법”이고, “그가 졌던 짐을 우리가 기꺼이 떠안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말합니다. 2009년 5월 23일, 속으론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가장 침착하고 냉정한 모습으로 대통령님 서거 사실을 알릴 때처럼 말입니다. 그는 책내기를 원하지 않았다 책이 나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우선은 본인이 책을 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쿨한 분입니다. 자신에 관한 한 수줍음도 많은 분입니다. 책을 낼 경우 생길 오해를 걱정했습니다. 여러 사람의 설득으로 어렵사리 책을 내게 된 것은 두 가지 때문일 겁니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정확한 증언과 기록, 그것을 통한 민주개혁진보진영의 참여정부 극복. 그래서 대통령님 2주기에 맞춰 책을 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2주기 준비에 많은 시간을 내면서 집필에 몰두할 시간을 갖지 못해 늦어졌습니다. 책의 2부, 자신의 인생 얘기도 기술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어렵게 설득을 했습니다. 저희가 보기에, 노 대통령과의 만남에서부터 함께 해온 운명 같은 세월이 우연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두 분 모두 가난하게 컸고, 가난 때문에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려 했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삶을 살게 됐고, 그들이 살 만한 세상으로 시대를 바꿔보려 한 과정의 출발. 그건 바로 성장과정에서부터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점에서 성장과정에 대한 기술도 필요하다고 건의했습니다. 그 건의를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내켜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강권이 심해 일일이 기술하긴 했지만, 아마 책이 나온 지금까지도 찜찜해 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개인사 개인사에 대한 원고를 보고선 놀랐습니다. 청와대와 <노무현재단>에서 그를 모시면서 꽤 안다고 생각했던 저는 물론,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이호철 전 민정수석조차도 처음 접하는 내용이 태반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그동안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수줍어하고 쑥스러워 했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 가난했다는 것도 뜻밖이었고, 그토록 투철한 운동권 대학생이었다는 것도 뜻밖이었습니다. 공수 특전사 출신인 건 알았지만, 특전사에 딱 맞는 ‘A급 군인’이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평소 개인 얘기를 많이 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그의 외모나 스타일에서 ‘가난’ ‘투철한 운동권’ ‘특수부대’ 출신의 냄새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가난하게 컸습니다. 비단 저뿐일까요. 옛날엔 유복했던 사람이 오히려 얼마 안 됐던 것 같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을 회고하는 대목에선 제 얘기처럼 느껴져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특히 책의 마지막 대목에 소개된 어머니와의 가슴 찡한 에피소드는, 문 이사장의 가족들도 전혀 몰랐던 내용입니다. 처음 원고에선 가난에 얽힌 아픈 추억과 애잔한 사연이 더 자세히 들어가 있었습니다. 역시 수줍음 때문에 최종 교정과정에서 스스로 많이 들어냈더군요. 책 제목도 어렵게 결정됐습니다.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이 모두 정해진 운명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붙인 것이 <문재인의 운명>입니다. 대통령님 책 제목이 <운명>이어서, 그 상관관계도 감안했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이 제목 역시 좀 민망해 했습니다. 본문 중에 여러 대목에 걸쳐 ‘운명적 상황’을 언급했으니 본문에 가장 맞는 제목이라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진보·개혁진영 전체의 힘 모으기 문 이사장이 책을 집필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대목은 민주개혁진보진영에 바라는 당부 부분입니다. 집권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가 서 있는 현 주소를 냉정하게 보고 힘을 하나로 모으자는 제언은, 책의 전체를 통틀어 가장 하고 싶었던 얘기였던 걸로 압니다. “지금 집권을 말하기 전에 진보·개혁진영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이 든다. 2003년 참여정부 집권 시기에 비해 현재 우리 진보개혁진영의 역량과 집권능력은 얼마나 향상됐을까. 진영 전체의 역량을 함께 모으는 지혜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참여정부 5년, 더 나아가 민주정부 10년의 성공과 좌절에서 우리의 역량과 한계를 따져보고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보·개혁진영 전체의 힘 모으기’에 실패하면 어느 민주개혁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라는 말은, 따로 책을 한 권 쓰고 싶을 만큼 간절하게 전하고 싶어 했던 메시지였습니다. 책은 발매 하루도 안 돼, 초쇄 1만5천부가 매진됐습니다. 최근 출판시장에선 드문 일입니다. 사람들이 그의 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요. 이유야 다 다르겠지만, 아마도 갈망 때문이 아닐까요. 노무현 대통령과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의 갈망, 이명박 정권 퇴행에 따른 변화의 갈망 등이 중첩돼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갈망이 누구 한 사람에 의해 이뤄질 일은 아닐 겁니다. 책이 나온 후 언론은 문 이사장의 정치적 행보에 더욱 관심을 갖습니다. 사람들도 궁금해 합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당신은 이제 무엇을 하겠느냐?” 책이 나오기 전이든 후든, 이런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 바뀌진 않을 것입니다. 그 대답은 어쩌면 문 이사장에게 요구할 성격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화두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우리야 말로 운명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우리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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