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유족들이 심은 봉하사저 산딸나무에 하얀 꽃이…” - 노 대통령 사과로 55년 제주의 恨 풀어…“초여름에 봉하를 찾아달라시더니”
이중흥 / 4․3유족회 제주시지부 회장
4월이 되면 노무현 대통령님이 생각난다.
지난 2003년 10월 30일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제주 라마다호텔에서 제주도민과 4․3 유족 등 천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4․3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과도한 진압과정에서 학살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제주 4․3이 일어난 지 꼭 55년 만에 국가원수가 유족들과 제주도민에게 사과를 한 것이다. 그동안 연좌제로 공직에 진출할 수도 없었고, ‘빨갱이’란 말로 매도당하며 숨죽이며 살아왔던 제주도민과 유족들은 그때서야 응어리진 한을 풀 수 있었다.
노 대통령이 사과하는 자리에서 조천 제주시 유족회장은 “만세”를 외쳤다. 나는 조용히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 후 2008년 2월 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고향 김해로 돌아간 후 우리 4․3 유족회 제주시지부는 임원들과 함께 봉하마을을 찾아갔다. 퇴임 후 노 대통령이 사저로 초청한 외부 인사로는 우리 4․3 유족이 처음이었다고 들었다.
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뤄놓은 일에 저는 과일만 따먹었습니다”란 말씀을 했다. 이런 겸손함에 우리 유족들은 “정말이지 이런 분도 계시구나”라고 되뇌였다.
대략 1시간 정도 여러 얘기를 나누고 봉하마을을 떠나려고 할 때 양영호 고문이 “정원에 우리 제주 수종인 나무 한그루를 심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전하자, 노 대통령은 “저도 좋습니다”라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해 가을 우리 유족들은 제주 수종인 ‘산딸나무’를 봉하마을로 가져가 정원에서 노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와 함께 정원에 기념식수를 했다.
유족들은 “산딸나무는 4~5월에 하얀 꽃이 피고, 가을에는 빨간 열매를 맺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하얀 꽃은 우리 제주도민의 순수한 마음이고, 빨간 열매는 4․3 유족들의 한이라는 것을 알고 잘 가꿔 주십시오”라고 당부했다.
노 대통령도 “예 잘 가꾸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내년 꽃이 필 무렵에 꼭 다시 찾아오십시요”라고 화답했다.
하지만 이게 우리 4․3 유족들과의 마지막 추억이었다. 검찰이 조작하며 집요하게 수사하는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부엉이바위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했다.
그 소식을 듣고 우리 유족들은 분하고 야속한 마음에 한걸음으로 봉하마을에 도착해 눈물과 통곡으로 헌화․분향했다.
'하얀 꽃이 피게 되면 다시 꼭 방문해 달라고 했는데…'. 산딸나무는 하얀 꽃을 피웠지만 대통령님은 다시 볼 수 없었다. 소탈하고, 누구보다 제주도를 아끼고 사랑했던 노 대통령님을 생각하니 원통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2010년 우리 유족들은 다시 봉하마을 찾았다. 노 대통령의 묘역을 방문하고, 대통령님이 거닐었던 봉하산과 절을 찾았다.
또 황망하게 노 대통령을 잃으신 권양숙 여사도 만났다. 권 여사는 “대통령께선 그때 4․3 유족들에게 ‘여러분의 정성을 잊지 않도록 가장 잘 보이는 사저 정원 한 가운데 심었습니다. 잘 키우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고, 또 ‘내년 초여름 꽃이 피면 그 때 한 번 더 오시지요’라고 화답했는데 그 한마디가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말했다.
권 여사는 “지난해에도 산딸나무가 하얗게 꽃을 피웠지만 그 분을 떠나보내느라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올해는 참 예쁘게 꽃이 피더군요. 4․3 유족들께서 이리 잊지 않고 자주 찾아주시니 너무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때에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국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자 국가공권력에 의한 참극이었던 제주 4․3의 역사적 굴레를 걷어준 노 대통령님에 대한 고마움을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까.
이제 다시 4월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제주 4․3. 4월이 오면 항상 노무현 대통령님을 잊을 수가 없다.
겨울에서 봄으로, 폐허를 딛고 아름다운 섬으로 -노 대통령, 제주 4·3위령제 및 특별자치도 보고회 참석 국정브리핑
노 대통령은 3일 오전 1948년 사건 발생 후 국가원수로선 처음으로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해 불행한 역사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한 넋들을 애도하고 위로했다. “오랜 세월 말로 다 할 수 없는 억울함을 가슴에 감추고 고통을 견디어 오신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국가권력이 불법하게 행사됐던 잘못에 대해서 제주도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대통령은 지난 2003년 10월 15일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가 확정된 뒤 같은 달 31일 제주도를 찾아 처음으로 유족들에게 정부 차원의 사과를 했다. 그 후 위령제가 봉행될 때마다 총리를 통해 위로와 애도의 뜻을 전달했다. 2004년 3월엔 평화공원 1단계 사업이 마무리됐으며 4·3특별법 시행령 개정으로 희생자 345명이 추가 신고됐다.(총 14,373명) 2005년 1월 27일 대통령은 이제 제주도가 4·3의 상처를 딛고 화해와 상생의 미래로 나가자는 뜻에서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선포했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 나가야”
대통령의 추도사에 앞서 경과보고와 추모문을 낭독한 김두연 4·3유족회장, 김태환 제주지사, 아라중학교 강나영 학생 그리고 1만 여명이 운집한 유족들의 목소리와 눈빛, 박수소리엔 58년 길고 어두웠던 터널을 벗어나 밝은 햇살을 받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해원(解寃)의 감회가 서려 있었다.
대통령은 거듭 과거사 정리의 현재적 의미를 강조했다. “자랑스러운 역사이든 부끄러운 역사이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 나가야 합니다. 특히 국가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아직도 과거사 정리 작업이 미래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과거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의 걸림돌을 지금껏 넘어서지 못한 것입니다.” (2006년 4월3일 국정브리핑 중)
| | - [봉하영상관]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 추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