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2주기 추도식 참가기] 봉하, 그 곳에서

2011. 5. 25. 17:14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대통령 2주기 추도식 참가기] 봉하, 그 곳에서
조회수 : 529
등록일 : 2011.05.25 09:44

봉하, 그 곳에서
-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 2주기 추도식 참가기

강기석 / 노무현재단 홈페이지편집위원장


봉하에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지난 해 추도식 때도 이렇게 비가 내렸고 서거하신 그 해에도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져 참배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대책없이 흠뻑 적셨다. 비는 사람의 마음을 훨씬 더 서럽게 만든다. 피할 데 없이 빗속에 서 있던 참배객들은 빗물에 눈물을 흘려보내고 그 빗물 위에 또 눈물을 흘렸었다. 그렇게 마음껏 서러웠었다. 그때 사람들은 하늘도 우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 사람들은 그 때만큼 울지 않지만 비에 젖은 부엉이바위는 여전히 더 슬프다.

광주에서도 오고, 부산에서도 오고, 대구에서도 사람들이 왔다. 전주에서도 대전에서도 서울에서도 왔다. 1년 만에 만난 사람이 반가운 것은 당연하지만 어제 만난 사람도 봉하에서 다시 만나면 새삼 반갑다. 몰랐던 사람도 아는 순간 금방 반갑다. 그렇게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각별하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 빗속에서 대통령을 추모하다


이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아는 이들이다.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있다. 생전에 대통령을 오해했다는 회한이 있다.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과도하게 비판하고 비난했다는 뉘우침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너무 슬퍼하지 마라, 너무 미안해하지 마라” 고 당부했거니와 그로 인해 더더욱 슬프고 미안한 사람들만이 추도식에 모인 것이다. 노란 우의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겨우 가린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사회자 문성근의 인도로 대통령 2주기를 기린다.

노(老)역사학자 강만길 교수의 장중한 추도사가 가슴을 때린다.

“한 나라의 통치권자는 한 치의 가림 없이 온 몸으로 역사 앞에 서게 마련이며, 한 정권에 대한 최고 최후의 평가는 결국 역사가 하게 마련”이라고 전제한 그는 “그렇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역사 앞에 정당한 정권만이 옳은 정권이며, 역사 앞에 떳떳한 집권자만이 당당한 통치자인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참여정부가 정치적 민주주의, 경제적 민주주의, 정치․경제적 발전을 바탕으로 만민평등을 지향한 사회적 민주주의, 그리고 사상의 자유가 확대된 문화적 민주주의를 크게 신장시켰으며 6․15남북공동선언으로 국민의 정부가 열어놓은 민족통일의 길을 활짝 더 넓힌 정권으로 역사에 등재될 것임을 확신한다고 선언했다.

평생을 굽힘없이 바른 민족사 정립에 바쳐온 노학자의 평가다. 겉만 번지르르한 허툰 헌사일 리가 없다. 대통령과 함께 참여정부를 이끌어온 추모객들이 큰 선물을 받았다.


노학자의 장중한 역사 평가, 참여정부에 대한 귀한 선물

원로는 그러한 참여정부 5년간의 업적과 역사가 각 부문에서 정체되거나 훼손되거나 후퇴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노 대통령의) 업적은 누가 무어라 해도 민족사적로나 세계사적로 올바르고도 떳떳한 길이었으므로 앞으로 성립될 올바른 역사노정에 선 정권들에 의해 반드시 계승될 것이라 확신해 마지않을 것”이라며 정권교체에 대한 갈망을 끝내 숨기지 못했다.

부경대 3학년 박애림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그 역시 노 대통령에게 미안한 사람이다. 비극이 벌어질 당시에는 진상을 제대로 몰랐을 어린 나이였음에도 그는 “활짝 웃는 대통령의 사진을 보면 그 환한 웃음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고, 그 웃음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이 가슴 아프고 미안해 목이 메고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님이 떠나신 뒤 우리는 꿈을 가질 수 없는 세상의 모습이 어떤지를 보고 느끼고 있다”면서 자신과 같은 젊은이들이 특권과 반칙이 없는 나라, 정의로운 역사를 만들 것이며,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아름다운 상식을 지켜낼 것이며,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벗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박애림은 노무현재단 부산지역위원회가 4월초 주관한 ‘대학생 봉하캠프’에 참가해 대통령을 새로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날 추도문을 낭독하게 됐다고 한다. 다시 한번, 민주주의는 이렇게 서서히 깨이고 조직된 시민들의 힘으로 결국 되찾고 끝내 지켜질 터이다.

“대통령님
지켜보고 계시죠?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노란 물결이
다시 대한민국에서 일고 있습니다.
이제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가 감사의 말씀으로 답했고, 세상의 온갖 불의와 몰상식을 질타하던 대통령 생전의 사자와 같은 모습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됐다. 이어 정은숙 교수의 청아한 목소리에 실린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의 애잔한 노랫말이 아직도 참석자들의 귓전에 여운으로 남아 감돌 때, 자원봉사자들이 일제히 2011마리의 나비를 추도식장 공중에 날렸다. 희망을 상징하는 나비들이 빗속에서 힘겨울까봐 추모객들은 힘찬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희망의 날갯짓을 부추겼다.


더 많은 사람들의 더 또렷해진 기억, ‘슬픔을 넘어 희망’으로 이어지다

추도식을 마친 추모객들은 권양숙 여사와 가족들을 앞세우고 대통령이 잠든 너럭바위로 자리를 옮겼다. 이날 권여사의 표정은 한결 평온해 보였다. 시간이 흘러가면 사람들이 대통령을 잊어버리고 찾지도 않을 것이 두렵다며 한숨짓던 분이다. 이날 빗속에서 대통령을 함께 추모하기 위해 전국에서 달려 온 수많은 사람들이 기꺼웠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봉하를 찾는 이들은 오히려 점점 더 많아지고, 기억은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희망이 생겼고 자신감까지 더해지고 있다.

가족의 뒤를 이어 한명숙․이해찬 두 전 총리와 김원기․임채정 두 전 국회의장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함께 너럭바위 앞에 국화꽃을 바쳤다. 이어 손학규 민주당, 이정희 민노당, 조승수 진보신당, 유시민 참여당 공성진 창조당 등 각 당 대표들이 헌화했다. 계속해서 안희정·김두관·이광재·강금원·이기명·송기인·김정길 등 대통령과 의리로 맺어진 사람들, 정세균․정동영․김진표․박지원․김근태․천정배·권영길 등 야권 주요 정치인들, 이병완·성경륭·김용익·김세옥 등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모셨던 참모들, 윤광웅·이종석·김만복·이창동 등 참여정부 장․차관들, 그리고 또 누구 누구….

추도식을 끝으로 5월초부터 전국 방방곡곡에서 계속되어 왔던 노 대통령 2주기 추모행사들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동안 부산·광주·대구 등 대도시는 물론 강릉·충주·군산·거제 같은 중소도시, 읍면, 군구 단위에서까지, 심지어는 미국과 영국에서까지 수십 차례의 사진전, 음악회, 문화제, 강연, 토론회, 학술대회가 이어지면서 노 대통령을 추모했다. 이젠 단순히 추모만 할 것이 아니라 ‘슬픔을 넘어 희망’을 찾자는 행사들이었으며 희망을 성취하기 위한 의지를 다지는 행사들이었다.


죽어서도 죽지 않고 희망의 불꽃으로 남을 두 분 대통령


그러고 보면 23일 공식추도식에 참석한 정치권 주요 인사들만 한 마음을 이룬다면 희망은 이미 절반은 이루어지는 셈이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접하고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진 것 같다”며 애통해했던 고 김대중 대통령은 끝내 읽지 못한 추도사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라고 절규했다.

이 나라와 민족은 그때보다 지금 훨씬 더 위기에 처해 있다. 노 대통령의 2주기와 곧 닥쳐올 김 대통령의 2주기에 두 분은 죽어서도 죽지 않고 우리의 가슴속에 부활해 희망의 불꽃으로 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