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사동네서 치매노모랑 살기 14] 늙어가며 할 말은 오직 ‘감사하다’

2011. 2. 1. 09:19관심사

 

늙어가며 할 말은 오직 ‘감사하다’

갑사동네서 치매노모랑 살기 2011/01/31 20:30 이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주차를 하려는데 밖에 나와 있는 장닭이 보였다.

아니 이게 웬일이람?

부랴부랴 닭장으로 올라가 보니 문이 열려있다. 아침에 모이를 주고 문단속을 제대로 안 했던 모양이다. 이놈 저놈을 몰아 닭장 안으로 넣고 있는데 꼬꼬왕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뽁뽁이(삐약삐약하던 병아리가 중닭이 되니 뽁뽁거린다)를 두고 어미가 어디를 갔을까?



웃기는 건 뽁뽁이다. 어미가 없는데 찾지도 않고 아래 횃대위로 올라가더니 이내 제일 꼭대기 횃대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엇쭈! 저놈이 겁도 없이...

늘 바닥에서 어미 날개 밑을 파고들던 놈이 아니던가.  그런데 대체 꼬꼬왕은 딸 뽁뽁이를 두고 어딜 갔을까? 타샤아줌마도 최근에 닭 한 마리를 잃었다는데 꼬꼬왕도 동네 고약한 고양이들한테 당한 건 아닐까?




▲닭장 밖. 눈 위의 발자욱은 고양이가 호시탐탐 닭들을 노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숨을 쉬며 집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오오, 거기에 있었다.

꼬꼬왕은 무리를 떠나 홀로 얌전히 집 출입구 나무데크 위에 앉아있던 것이다. 뽁뽁이와 늘 붙어 다니더니 모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녀석은 쉽게 닭장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자동차 밑으로 산으로 한참을 도망 다니며 나를 골탕 먹이다가 닭장 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뽁뽁이가 잡아놓은 자리. 꼭대기 횃대 위로 올라가 앉았다.

10월 말에 병아리를 깐 뒤 어린 병아리들을 건사하느라고 석 달을 땅 위에서 살아야 했던 꼬꼬왕. 아니 10월 초부터 알을 품기 시작했을 터이니  넉 달을 땅에 붙어살던 꼬꼬왕이 드디어 분발한 뽁뽁이를 따라 횃대에 오른 것이다. 삶의 질이 달라질, 커다란 전환을 맞은 뽁뽁이와 꼬꼬왕에게 축복 있으라~~~ ^^


▲횃대에서 잠을 청하는 꼬꼬왕과 뽁뽁이. 꼬꼬왕은 넉 달 만에, 석 달 전에 태어난 뽁뽁이는 처음으로 차가운 땅바닥 잠을 면하게 되었다.




이제는 변기에 꼿꼿이 앉으신다



유일하게 알을 낳던 회색닭은 열흘 전쯤 엉덩이에 원인모를 부상을 입고 생을 마쳤다. 외부 침입자의 흔적은 없었다. 양계장 아저씨 말로는 동료 닭들의 공격을 받아 그리 될 수도 있단다. 심한 비명소리가 들려 뛰어나가 보면 상황종료. 닭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멀뚱멀뚱 쳐다보는 경우도 있다.  대여섯 마리 있는 닭장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CCTV를 설치해 보면 알까나.



석호가 가던 날 아침에 냉동만두를 끓여 먹은 것이 잘못 되었는지 이틀간 심한 고열과 전신통을 앓았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복통과 설사는 일주일을 끌었다. 고열 때문인지 입술 안쪽이 터졌다. 그러나 충분히 잠을 자는 것 외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음에도 몸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어머니도 쇠약해져 가는 몸이지만 쉼 없이 원상회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던가. 가래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기저귀에 묻었던 혈뇨는 완전히 사라지고 다시 예쁜 연노랑색이 되었다.

요양소에서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 이동변기에 앉혀놓으면 중심을 못 잡고 옆으로 힘없이 휘어지셨지만 이제는 꼿꼿하게 앉아계신다. 에헤라 디여~  



▲변기에 꼿꼿이 앉아 사진을 보고 계신 어머니.





서울서 한의원을 할 때 노인네들이 오시면 치료를 하면서도 회의가 들곤 하였다. 치료를 하면 무슨 소용인가. 저무는 태양. 저들에게는 죽음만 남아있을 뿐인 것을.



그러나 명상공부를 한 뒤로는 노인들에게 기쁘게 할 이야기들이 생겼다.

늙어가며 할 이야기는 한 마디 뿐이더라고요. ‘감사하다!’ 이거 한 마디요. 어떤 걱정도 하지 마세요. 큰 아들 사업이 어쩌고, 둘째 손자 학교 성적이 어쩌고... 어떤 걱정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걱정을 하면 우주에서 걱정거리가 몰려온대요. 그냥 하루 종일 감사하다... 한 마디만 되뇌세요. 하늘이 안 무너져서 감사하다. 땅이 안 꺼져서 감사하다. 비바람을 가릴 천정과 벽이 있어 감사하다. 입을 옷이 있으니 감사하다. 거리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오니 감사하다. 꽃의 색이 예쁘고 새의 지저귐이 예쁘니 감사하다... 그렇게 ‘감사하다 감사하다’를 연발하다가 생을 마치시면 이번 생은 ‘남는 장사’ 하시는 거래요.   



노인네들 뿐인가. 십 수 년을 누워만 있는 남편을 간호하며 직장생활을 해야 했던 아주머니는 젊어 속 썩이다가 늘 누워있는 남편이 밉고 돌보는 것이 짜증이 났는데, 감사하다고 생각을 바꾸는 순간 남편수발의 시간들이 더 이상 괴롭지 않았고 그러다가 남편도 편안하게 저 세상을 갔단다. 만약 자기가 계속 짜증을 내며 수발하던 중 남편이 돌아갔다면 남아있는 세월, 엄청난 자책과  후회로 고통스러웠을 것인데 감사하다는 말이 마법과 같았다며 내게 감사하다는 말을 수없이 했다.



도처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기적



한 달 쯤 전에 지인의 소개로 누군가가 찾아왔다. 시민운동을 해왔는데 최근 자기도 심신이 지쳐 병이 들었고 머리 좋은 것만 믿고 까부는 큰 아들 녀석(초등 고학년)도 자기를 힘들게 한단다. 그 녀석은 고질적인 틱장애를 가지고 있다. 가족이 모두 한 방에서 잔다기에 자기 전에 아이들 손을 잡고 ‘감사 게임’을 해보라고 했다.  ‘나는 **가 감사해.’라고 돌아가며 계속 말을 잇는 게임이다. 며칠 뒤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큰 녀석이 감사게임을 너무 좋아하네요.”



형광등, 쓰레기통, 옷걸이, 시계, 연필, 연필의 나무, 나무를 키워 준 바람과 별빛과 달빛과 구름과 태양, 나무를 베어낸 나무꾼, 베어낸 나무를 공장으로 운반한 기사, 연필을 만드는 기계를 설계한 기술자. 그 기술자를 낳아준 부모... 세상에 감사하지 않은 게 없네.

얼마 전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선생님, 큰 아이의 틱이 기적처럼 사라졌어요.  



▲어머니, 처마 밑의 고드름입니다. 구름이 눈을 만들고 눈은 녹아 고드름이 되고 녹아서 떨어지면 지하에 모여 있다가 우리 입으로 들어와 혈관 속의 피가 되겠지요. 알고 보면 도처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기적입니다.

 

http://blog.ohmynews.com/feminif/357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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