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8. 09:58ㆍ정치
유명환, ‘철밥통세습은자유주의’의 수호자
(서프라이즈 / 개곰 / 2010-09-07)
1871년 서양 문물을 배우기 위해 구미로 파견된 이와쿠라 사절단을 매료시킨 나라는 독일이었다. 미국과 영국은 앞선 경제력과 기술력으로 우뚝 솟았지만 철저하게 이익만을 따지는 자본주의는 두렵기만 했다. 프랑스의 공화주의는 혼란스러워 보이기만 했다.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뭉쳐 강국 프랑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통일까지 이룩한 독일은 일본 사절단에게 희망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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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수백 개의 영주로 나라가 갈가리 찢겨 끝없는 내분과 전란에 시달리던 나라였다. 독일도 수백 개의 공국이 서로 관세를 물어야 하는 콩가루 집안이었지만 철혈 재상 곧 철과 피의 재상으로 불리던 비스마르크의 중공업 우선주의와 군사력 우선주의를 앞세워 분열을 극복하고 순식간에 유럽의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와쿠라 사절단이 무엇보다도 독일에 끌렸던 것은 독일도 일본처럼 군주가 군림하는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영국도 군주제를 가진 나라였지만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영국의 복잡한 민주주의 전통과 관행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국 왕은 이미 실권을 의회에 빼앗겨 허수아비나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반면 독일은 군주가 실권을 쥐고 있었다. 빌헬름 1세는 철혈 재상이 기어오르는 것 같자 바로 갈아치웠다. 일본은 투표권을 가진 어리석은 국민의 변덕에 농락당하는 프랑스 모델이 아니라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진 군주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독일 모델을 받아들여야 프로이센이 프랑스를 무찌른 것처럼 단숨에 서양을 따라잡아 서양과 전에 맺은 불평등조약을 맺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와쿠라 사절단이 귀국한 이후로 일본은 국비 유학생의 90퍼센트를 독일로 보냈다.
서양에서 왕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왕은 어디까지나 대등한 사람들 가운데 일순위였을 뿐이지 유일무이한 존재는 아니었다. 귀족들은 왕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았고 틈만 나면 왕의 권위를 위협하고 침해했다. 왕위를 찬탈하려고 툭하면 자기들끼리 싸웠다. 귀족은 자기 땅에서는 왕처럼 군림했다. 그러나 군주는 다르다. 군주를 뜻하는 영어 Monarch는 ‘혼자서 우뚝 솟은 존재’라는 뜻이다. 똑똑한 군주는 백성을 등에 업고 귀족을 눌렀다. 군주의 등에 업힌 백성은 이제 머슴이 아니라 국민이었다. 백성은 군주를 구심점으로 삼아 국민이 되었다. 현명한 군주는 구국의 상징이었다. 왕을 지키는 것이 곧 나라를 지키는 길이라고 국민은 생각했다.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정권이 들어서고 영국에서도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당시 왕이었던 조지 5세는 자본가의 편에 서지 않았다. 조지 5세는 작위 수여 대상자를 공익을 위해서 일한 사회활동가를 포함하여 노동자, 여성에게까지 확대하여 공공의 책임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BBC가 생기면서 조지 5세는 정례 라디오 연설도 했다. 독일에서는 히틀러,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 같은 호전적 극우파가 애국주의의 구심점 노릇을 했지만 영국에서는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꾸려가던 군주가 애국주의의 구심점이었다. 군주는 아버지 같은 이미지를 풍겼다. 2차 대전 때 독일의 맹폭을 받던 수도 런던을 조지 6세는 떠나지 않았다. 군주도 국민과 마찬가지로 식량과 옷을 배급받았고 검소하게 살았다. 군주는 국난에 처한 영국 국민의 정신적 지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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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독살당했다는 설이 얼마 전에 나오기도 했지만, 일본이 조선을 삼키고 나서도 조선의 군주가 살아 있는 한 일본은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군주는 서양의 군주하고도 다르다. 혈연으로 왕족끼리 얽혀서 돌아가던 서양의 군주는 말이 안 통하는 나라에서 왕 노릇을 하기 일쑤였다. 전쟁의 승패에 따라 한 사람은 프랑스 왕의 백성이 되기도 했고 스페인 왕의 백성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의 왕은 조선의 평민과 같은 말을 썼다. 연속되고 안정된 영토에서 거주하는 동질성 높은 국민이라는 관념은 서양에서는 생소했지만 조선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폭발적 흡인력을 가진 조선의 군주가 살아 있는 한 조선은 언제 일본을 위협할지 몰랐다. 일본은 조선의 왕조제를 반드시 무너뜨려야 했다. 그리고 조선이 무너진 것은 무능한 왕조제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조선인의 머리에 주입시켜야 했다.
군주제가 지탄받는 것은 권력이 세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권력이라는 것이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고 또 군주가 공익의 상징적 수호자 노릇을 할 수 있다면 특히 금권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얼마 전 스웨덴에서 후계자 일순위인 빅토리아 공주가 지극히 평범한 집안 출신의 체력단련 강사와 결혼한 것은 스웨덴 사회의 통합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권력이 대물림되는 왕조제보다는 물론 권력이 투표로 교체되는 공화제가 선진적 제도다. 그러나 세습 왕조제를 맹렬히 성토하면서 정작 본인은 모든 규칙을 짓밟고 세습을 하는 사람이 많다. 외무장관에서 물러난 유명환은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젊은이들이 서해와 동해에서 미국과 함께 군사 훈련을 벌이면서 긴장을 조성하는 한나라당 찍으면 전쟁 나고 야당 찍어야 전쟁 안 난다는 말을 했다면서 그런 애들은 권력을 세습하는 독재국가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고 떠들더니, 정작 본인은 자격도 안 되는 딸을 고급 외교부 고위직으로 뽑느라고 응시 자격 조건을 박사에서 석사로 낮추었고 영어 시험을 아직 못 본 딸에게 기회를 주느라고 1차 응시생들을 모두 불합격시켰다. 이게 바로 세습이다. 뭘 힘들게 북한까지 가라고 하나, 그냥 문하생으로 받아주겠다고 하지.
왕조제와 세습제를 규탄하는 한국의 목사들 중에도 교회를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못해서 안달인 사람이 수두룩하다. 조선, 동아 같은 족벌 언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금권을 세습시키려고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는 재벌이 수두룩하다.
조지 6세가 독일군에게 맹폭 당하는 런던을 떠나지 않은 것처럼 김일성도 미군에게 맹폭 당하는 평양을 떠나지 않았다. 이승만은 바로 줄행랑을 치면서 서울에 남아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는 한강 다리를 끊어서 공산군이 무서워서 피난가던 수천 명의 국민을 죽였다. 자기는 살고 자국민만 사지로 몰아넣은 사람을 국부로 추앙하는 세력의 공통점은 북한의 세습은 성토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하나같이 공익은 아랑곳없고 나라야 어떻게 되건 말건 나와 내 새끼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세습 의지로 똘똘 뭉쳤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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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그림판 |
북한의 세습을 비웃기 전에 이런 위선자들의 세습부터 족쳐야 한다. 북한의 세습은 바로 이런 위선자들의 세습으로부터 공동체를 지켜내려는 측면일 수 있다. 북한을 세습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지름길은 이런 위선자들의 세습을 뿌리 뽑는 것이다. 유명환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가 아니라 ‘세습자유주의’의 수호자다. 아니, 공정한 경쟁을 먹고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근본을 허물어뜨리는 ‘철밥통세습은자유주의’의 수호자다.
개곰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98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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