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목소리들

2010. 8. 11. 15:55정치

그리운 목소리들
(딴지일보 / 산하 / 2010-08-09)


 

고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

 

며칠 전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이 작고했다. 전두환 일당이 일으킨 12·12 사태 당일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더불어 반란군을 진압하고자 동분서주했으나 자신의 발밑까지 파고들어 왔던 전두환의 끄나풀들의 작당에 분루를 삼켜야 했던 비운의 무장이 죽었다. 하루 상간으로 졸했던 또 하나의 전직 수경사령관 윤필용이 권좌의 꿈을 키우다가 되레 권력의 철퇴를 맞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언젠가 드라마에서 가수 혜은이의 남편 탤런트 김동현 씨가 장태완 장군 역을 맡아 열연한 적이 있는데 격한 경상도 사투리로 반란군에 분통을 터뜨리는 모습이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군대는 총칼 앞세워 권력을 호주머니에 넣었던 불한당들만의 집결소는 아니었다. 권력에 맞서고 불의에 저항했던 의기 있는 군인들을 꽤 배출했던 것이다. 얼추 꼽아 봐도 이승만 대통령의 명령에 거역했다가 “포살하라!”는 말까지 들었던 이종찬 육참총장. 박정희의 쿠데타에 저항하려다가 체포된 1군 사령관 이한림 장군. 12.12 당시 반란군에게 완전 포위된 상황에서 상관의 피신 권유를 뿌리치고서 상관 대신 죽어간 김오랑 소령 등의 이름이 연신 떠오르거니와 4.19 혁명 당시 데모대에 끝끝내 총을 쏘지 않았던 것은 실로 대한민국 국군이 길이 간직해야 할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어디 군대만 그러랴. 정권의 사냥개이자 죽은 권력을 먹이로 하는 하이에나이며, 제 이마에 묻은 똥칠은 아랑곳없이 대한민국의 정의는 우리가 지킨다는 망상을 유서 깊게 지니고 있는 검찰 조직에도 길이 추앙받아야 할 롤모델은 있었다. 한홍구 교수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도 이런 검찰이……”라는 찬탄이 절로 튀어나오는 분들이 우뚝하다. 이승만의 총애를 받던 임영신을 독직 혐의로 기소했던 초대 서울지검장 최대교, 이승만에 밉보여서 글쎄 검찰총장에서 서울고검장으로 강등당하기까지 했던 김익진. 이 말도 안 되는 횡포에 역시 세상에 이승만을 상대로 인사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내며 강단을 부린 서울지검장 이태희. 반공 의식 넘치는 공안검사였으되 인혁당 사건 당시 무조건 기소하라는 중앙정보부와 상부의 압력에 “어떻게 증거 없이 기소한단 말입니까?”라고 버티던 이용훈 검사 등 안드로메다지검 검사 같은 검사가 우리 역사에 있었던 것이다.

 

정권의 물리력이요 정권을 지탱하는 가장 큰 방패이자 칼이었던 조직 중의 하나인 군과 검찰이지만 그런 별과 보검들이 있었다. 비록 형편없이 망가져 그 명예란 것이 개똥밭에서 리듬체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일지라도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대한민국 육군”과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는” 검찰로서 존심을 세웠던 역사와 인자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롤모델’을 찾아보기가 조금 더 어려운 조직도 있다. 바로 경찰이다.

 

이승만의 획책에 따라 반민특위를 습격했던 경찰들의 수뇌부는 죄다 일제시대 한 가락 하던 이들이었다. 조병옥에 따르면 Pro Jap (친일파)가 아닌 Pro Job (전문직업인)이었던 그들은 일제시대의 치안 유지법을 옷만 바꿔 입은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체제 반대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4·19 때 시위대에게 총을 쏜 것은 군인이 아니라 경찰이었고 5공 때에는 경찰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쓸 정도로 정권이 경찰력에 유지하는 가운데 20대 청년이 탁 하는 소리에 억 하고 죽는 지상 최대의 차력쇼를 연출하기도 했다.
 
물론 존경할만한 경찰도 많을 것이다. 평생을 범죄자들과 대결하면서 칼 맞아 가면서 범인을 체포하여 법의 심판을 받게 한 분들의 노고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권력과의 관계에서 불의를 자행하는 권부에 반기를 들거나 스스로의 양심을 지키고 떨쳐 일어난 인물들에 대한 기억이 희끄무레하다는 것 또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중의 지팡이여야 할 경찰을 누군가 민중의 몽둥이로 사용하고자 할 때 그 손잡이에 날카롭게 돋아나 우리는 몽둥이가 아니라고 외치는 가시 같은 분들이 과연 경찰에 누가 있었을까. 몇 년 전 국회의원에게 경찰관이 뺨 맞았다고 들고 일어난 사례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걸 ‘권력에 대한 저항’이라고 부를라치면 듣는 사람이나 얘기를 하는 사람이나 가려운 낯 긁어대다가 피가 맺히고 말리라.

 

그래도 60년 역사에 사람이 없기야 할까. 그 중의 한 분을 들자면 6·25 동란이 터졌을 때 충북 영동군 용화지서에 근무했던 고 이섭진 주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전황에 쫓겨 철수 준비를 하는 와중에 그는 상부로부터 적성 분자들을 모조리 소탕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관내의 보도연맹원을 전원 죽이라는 것이었다. 비료를 준다, 땅 나눠 준다 등등의 전갈을 듣고 집결하여 멀뚱멀뚱 앉아 있는 보도연맹원을 보면서 이섭진 주임은 갈등했다. 또 그 옆에서 아내가 격렬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저 사람들 죄 있는 사람들이냐. 저 사람들을 다 죽인 뒤에 당신은 평생 마음 편하게 살겠느냐.”

 

고 이섭진(왼쪽), 이섭진 영세불망비(오른쪽)

 

재판 없는 처벌을 금지하는 대한민국 헌법은 전쟁의 군홧발에 짜부러진 지렁이가 된 지 오래였고 인근 마을에서는 보도연맹원들에게 내지르는 총성이 귀를 찌르고 시신들을 태우는 역한 냄새가 코를 가르고 있었다. 만약 명령을 어긴다면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자신의 생사가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인근 증평 지서 주임은 보도연맹원들을 어떻게든 살려 보려다가 헌병대에게 죽음을 당했다. 상부의 명령과 양심의 가책 사이에서 헤매던 이섭진 주임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칼과 가위 등을 내 주면서 널빤지를 뜯고 도망가도록 한 것이다. 서른 명이 넘는 죽을 목숨들이 놓여났다. 그런 경찰이 몇 명 더 있었다면 수백 명의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건 불법입니다. 부당한 명령에는 따를 수 없습니다.”라고 손을 든 경찰이 더 많았다면 전쟁 초기 수십만 명의 생목숨이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꺼져 버린 비극의 규모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몇 분의 이름이 더 있다. 서북청년단에 맞섰던 제주도 서귀포 경찰서장 문형순. 광주 시민들의 피해를 어떻게든 줄여 보려고 노력하다가 신군부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했던 유병하 전남 도경국장)

 

장태완 장군 이하 이섭진 주임에 이르기까지 들어진 이름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의 임무를 가장 성실히 수행한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속한 조직에서 결코 우러름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장태완 장군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가에 대해선 굳이 언급할 것도 없겠거니와 이섭진 주임은 그때의 명령 불복 문제를 주홍글씨처럼 지니고 살다가 별것도 아닌 일로 경찰에서 쫓겨나 낭인으로 살다가 죽었다. 가장 군인답고 가장 검사답고 가장 경찰다웠던 사람들은 쫓겨나거나 비주류로 살거나 죽음보다 더한 수모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 나라의 역사가 어찌 바를 수 있으며 그 나라의 근간이어야 할 조직들이 곧게 설 수 있을까.

 

경찰청장의 성과주의를 비판하여 ‘상명하복’의 질서를 어겼다는 이유로 한 경찰 간부가 파면됐다. 제 상관이 강사로 모셔온 인권 단체 활동가가 ‘고문’이라는 표현을 쓰자 “당신이 고문하는 걸 봤냐?”면서 비아냥거리고 “고문이 아닌 가혹행위”라는 괴이한 국어 실력을 발휘하는 경찰 분위기에서 경찰 내부의 “성과주의”를 비판했던 경찰서장의 설 자리란 바늘 끝보다도 좁았으리라.

 

서울은 모로 가도 가기만 하면 누가 뭐랄 사람 없지만, 무슨 짓을 하든 범인만 많이 잡으면 된다는 발상은 여러 생사람을 잡는다. 생사람을 잡아도 “근무의욕이 부른 실수”로 포장되었고 운수가 나쁜 이들로 듬뿍 위로까지 받는 것이 당연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의 ‘순사’들의 역사였고 관행이었고, 청산되어야 할 악습이었다. 그러나 21세기 광명천지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CC TV를 돌려 버리고 사람의 어깻죽지를 꺾어 올리며 자백을 강요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경찰서의 서장은 자그마치 정직 1개월이라는 무거운(?!) 징계로 책임을 마감했다. 다시 언급하지만 “무조건적인 성과주의는 경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경찰서장은 파면으로 그 공직 생활을 종식당해야 했다.

 

2002년 대통령 후보 출마 연설 당시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해야 했습니다.” 는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사자후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열광했던가. 피가 끓었던가. 주먹을 부르쥐었던가.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 조아리는 자들이, 그들이 얻은 힘으로 “아니오” 하는 자들을 짓밟고, “틀렸소”라고 하는 이들을 가두는 꼬락서니를 파노라마로 지켜보아야 하고, 정의가 얼마나 연약하며 약자 편에 서는 일이 어느 정도로 미련한 짓인지를 생생히 교육받고 있다.

 

기억하고 싶다. 뉴라이트에 따르면 지극히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에서 그 ‘자랑스러움’에 몇 점 먹물을 끼얹었던 무모한 이름들을. 내 보기엔 참 아니꼽고 더럽고 치사하고 메스꺼운 역사에서 세상은 꼭 그렇게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버티고 섰던 몇 안 되는 장승 같은 사람들을.

 

비록 장태완 장군 본인의 육성은 아니었지만, “거기 그대로 있어. 내 전차 가지고 가서 대가리를 날려 버릴 테니까.”라고 일갈하던 탤런트 김동현 씨의 목소리가 다시금 그리워지는 것은 애써 남기고 싶은 가닥의 하나일 것이다. 아울러 “증거 없이 어떻게 기소하란 말입니까?”라고 법무부 차관 앞에서 따져대던 공안검사의 떨리는 목소리, “이걸 가지고 벽을 따고 도망가게.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야만 하네.”라고 나직하게 칼과 끌을 내밀던 지서 주임의 목소리와 더불어 “열 명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희생은 없어야 한다”는 상식을 얘기하던 한 경찰관의 항변 역시 그러하고 말이다.

 

산하


출처 : http://www.ddanzi.com/news/38481.html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9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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