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진실하게 기록하여 역사와 후손에게 바칩니다.”

2010. 7. 30. 10:36정치

“모든 것을 진실하게 기록하여 역사와 후손에게 바칩니다.”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 온 생애를 기록한 ‘정본 자서전’

 

김대중은 1924년 남녘의 섬마을에서 태어나 2009년 8월 세계인의 애도 속에 고단한 몸을 누일 때까지, 파란으로 가득 찬 한반도 현대사를 헤쳐 왔다. 일제 강점기에 유년기를 보내고 전쟁의 참화를 거쳐 촉망받는 청년 실업가로, 30여 년에 걸친 군사 정권의 통치기에는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21세기로 건너오는 길목에서는 겨레의 새 길을 여는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으로, 그는 길고도 거대한 생애를 숨 가쁘게 살아 냈다.

 

이 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서거하기 전, 만 6년 동안 준비해 온 정본 자서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청와대를 떠나 동교동으로 돌아온 후 2004년부터 자서전을 구상해 구술을 시작했고 2년여 동안 총 41회 구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자서전은 김대중 대통령의 구술을 바탕으로 생전 기록물들을 참고로 하여 정리됐다. 김대중은 2009년 7월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까지 정리된 자서전 원고를 읽으며 직접 고치고 부족한 부분은 추가로 구술해 반영토록 했다. 그리고 이희호 여사가 원고를 최종 검토하고서 편지 형식으로 여는 글을 적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고르바쵸프 전 소련 대통령, 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이 글을 보내와 앞머리에 실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역사와 국민을 믿었습니다.”

 

1권에는 출생에서부터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1954년 민의원에 출마한 후 세 번 연거푸 낙선, 네 번째 당선되었으나 군사 쿠데타를 맞아 의정 활동을 못하게 된 과정, 그리고 1971년 40대 대선 주자로 나서 박정희와 겨룬 일, 그 후 독재 시절을 거치며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미국으로 망명하기까지의 상황, 귀국 후 대선 도전에 이어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을 담았다. 섬마을 소년, 청년 실업가, 젊은 정치인, 그리고 사형수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역정이 담긴 1권에는 1924년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199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리기까지 70여 년 동안 우리나라 민중이 거쳐 온 굴곡진 삶과 위정자들의 폐단이 고스란히 재현된다. 그리고 옥중에서, 망명지에서, 연금된 자택에서 구상한 여러 정책과 대한민국에 대한 비전을 엿볼 수 있다. 이 시기, 화자인 김대중의 몸과 마음은 민주주의 달성을 위해 항거하는 민중의 곁에 있었고, 그의 시선은 힘 가진 위정자 쪽을 향해 매섭게 벼려져 있었다. 여기서 20세기 한국사의 빛과 어둠, 역사적 ‘사실’로 포장된 허울에 감춰진 ‘진실’의 힘을 발견할 수 있다.

 

2권에는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퇴임 후 서거 직전까지가 담겨 있다. 대통령 재임기 5년은 김대중에게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조국 통일, 민생 해결을 위해 70년 동안 온몸으로 부딪쳐 가며 생각해 낸 이상을 실현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당선되자마자 불어 닥친 국가 부도 위기 극복, 1980년대 옥중에서부터 구상한 대한민국 IT 강국의 실현, ‘햇볕 정책’의 실천으로 남북 간 화해의 장인 6․15 남북 정상 회담 성사, 그리고 이어진 노벨평화상 수상,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 등 재임기 동안의 이야기는 퇴임한 전직 대통령에게 직접 듣는 최초의 국정 보고이자 ‘성공한 민주주의 정치가’의 전모가 담긴 회고록이다.

 

퇴임 후 영면에 들기까지 김대중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내외 강연, 연설, 인터뷰를 통해 남북 관계 개선,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 미얀마 등의 민주 회복, 세계 평화 달성에 혼신을 다했다. 2008년 새 정권이 들어선 후, 민주주의 역행 현상을 바라보면서도 끝까지 국민과 역사의 심판을 믿었다. 이 책에는 한평생 민주주의, 정의, 평화, 민족을 위해 살아온 인물 김대중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께 전하는 마지막 당부가 담겨 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29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자서전' 출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 평생 작은댁으로 사신 내 어머니

 

나는 오랫동안 정치를 하면서 내 출생과 어머니에 관해서 일체 말하지 않았다. 많은 공격과 시달림을 받았지만 ‘침묵’했다. 평생 작은댁으로 사신 어머니의 명예를 지켜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을 감춘다 해서 어머니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셨고, 나 또한 누구보다 어머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는 당신이 이 세상에서 맺었던 모든 인연과 화해하셨을 것이다.

 

― 1권 1부 <섬마을 소년> 27쪽

 

2. 죽음 직전에 예수님을 만나다 (1973년 납치 사건)

 

‘물속에서 쇳덩이를 벗길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바닷속이니 몇 분이면 모든 것이 끝날 거야. 고통도 사라지겠지. 그러면 내 고단한 삶도 끝이 날 거야. 어떤가, 이 정도 살았으면 된 것 아닌가.’

 

그러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다. 살고 싶다. 살아야 한다.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 상어에게 하반신을 뜯어 먹혀도 상반신만으로라도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팔목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양 손목을 묶고 있는 밧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소용없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그때, 바로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나는 기도 드릴 엄두도 못 내고 죽음 앞에 떨고 있는데 예수님이 바로 옆에 서 계셨다. 아, 예수님! 성당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고, 표정도 그대로였다. 옷도 똑같았다. 나는 예수님의 긴 옷소매를 붙들었다.

 

“살려 주십시오. 아직 제게는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저를 구해 주십시오.”

 

― 1권 4부 <예수님이 나타났다> 312~313쪽

 

3. 나를 죽이려 했던 박정희, 나를 찾아온 박근혜

 

세월이 흘러 그의 맏딸 박근혜가 나를 찾아왔다.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지 25년 만이었다. 그녀는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의 대표였다. 2004년 8월 12일 김대중도서관에서 박 대표를 맞았다. 나는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박 대표의 손을 잡았다. 박 대표는 뜻밖에 아버지 일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드립니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고마웠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했다. 박정희가 환생하여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 사과는 독재자의 딸이 했지만 정작 내가 구원을 받는 것 같았다.

 

― 1권 4부 <궁정동의 총성> 385쪽

 

4. 야권 후보 단일화, 나라도 양보를 했어야 했다

 

선거가 끝나자 국민들은 큰 상실감에 빠졌다. 민심은 흡사 폭격을 맞은 듯했다. 거리는 너무나 조용했고, 특히 민주 진영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닥치자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진심으로 미안했다. 어찌 됐든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많은 민주 인사들의 희생과 6․10항쟁으로 어렵게 얻은 선거에서, 그것도 오랜 독재를 물리치고 16년 만에 처음으로 치른 국민의 직접 선거에서 졌다. 국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나라도 양보를 했어야 했다. 지난 일이지만 너무도 후회스럽다. 물론 단일화했어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저들의 선거 부정을 당시로써는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분열된 모습을 보인 것은 분명 잘못됐다.

 

― 1권 6부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지다> 536쪽

 

5. 내가 호남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내가 호남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 번도 고향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품어 본 적이 없다. 차별받는 호남 사람들을 위해 할 일을 제대로 못 해 늘 가슴이 아팠다. 그렇기에 호남인들과 고통을 나누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실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때로는 지역감정을 선동한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나는 고향인 전라도를 찾는 데 많이 망설였고 가지 않았다. 가고 싶었지만, 진정 만나고 싶었지만 고향 땅을 일부러 밟지 않았다.

 

― 1권 6부 <지역감정과 편파 보도> 596~597쪽

 

6. “김 위원장, 일 처리 좀 시원하게 합시다.”

 

― 남북 정상 회담의 클라이맥스

 

그러자 김 위원장이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과거 7․4 공동 성명도 상부의 뜻을 받들어 이후락과 김영주, 이런 식으로 한 예가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대표해서 임동원, 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표해서 김용순, 이렇게 합시다.”

 

“그때는 이후락 씨가 왔지만 지금은 대통령인 내가 직접 와서 정상 회담을 한 것입니다. 일 처리를 좀 시원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임동원 원장이 거들었다.

 

“선언문의 서두에는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언제 평양에서 상봉하고 정상 회담을 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는 표현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이 선언문의 말미에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로 표기하고 서명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이 선언문은 우리 민족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기념비적인 문건입니다. 이것을 마련하신 두 분이 직접 서명하여 역사에 길이 남겨야 하지 않을까요. 이 얼마나 역사적이고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대통령이 전라도 태생이라 그런지 무척 집요하군요.”

 

갑자기 튀어나온 김 위원장의 농이었다. 절박한 분위기를 단번에 깨뜨렸다. 나도 다시 그에게 농담을 날렸다.

 

“김 위원장도 전라도 전주 김씨 아니오. 그렇게 합의합시다.”

 

“아예 개선장군 칭호를 듣고 싶은 모양입니다.”

 

“개선장군 좀 시켜 주시면 어떻습니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덕 좀 봅시다.”

그러자 비로소 김 위원장이 웃었다. 정상 회담은 이렇게 종료되었다. 저녁 7시였다. 합의문은 ‘남북 공동 선언’으로 하기로 했다.

 

― 2권 3부 <현대사 100년, 최고의 날> 292~293쪽

 

7. 이명박 대통령, 실용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의 국정 운영이 걱정됐다. 과거 건설 회사에 재직할 때의 안하무인식 태도를 드러냈다. 정부 조직 개편안을 봐도 토건업식 밀어붙이기 기운이 농후했다. 통일부, 과기부, 정통부, 여성부 등이 폐지 및 축소되는 부처로 거론됐다. 내가 보기로는 현재와 미래에 우리를 먹여 살릴 부처였다. 그 단견이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선 핵 폐기 후 협력’이란 부시 대통령조차 폐기한 정책을 들고 나왔다. 대통령 후보로 나를 찾아왔을 때는 햇볕정책에 공감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의 말대로 실용적인 사람으로 알고 대세에 역행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는데 내가 잘못 본 것 같았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가장 보편적인 길을 찾는 것이 실용일진데, 그는 실용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것 같았다.

 

― 2권 6부 <국민보다 반걸음 앞서 가야> 565쪽

 

이명박 정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너무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냉전적 사고방식으로 ‘비핵 개방 3000’ 정책을 밀어붙였다. …… 한국 외교 사상 가장 최악의 실패작을 다시 되풀이할 가능성이 컸다. …… 앞선 두 정부에서 이룩한 10년의 공든탑이 무너지려는가. 그런 적대적인 정책으로 회귀하려면 통일부가 왜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 대통령은 남북문제에 대한 철학이 없다.

 

― 2권 6부 <그래도 영원한 것은 있다> 581~582쪽

 

8. 당신이 나보다 먼저 세상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소

 

2009년 새해가 밝았다.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었다.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그 험하고 절망적인 고난의 세월을 이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도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았다. …… 아내 없는 삶이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아내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때는 아내와 같이 종일 같이 지낼 때가 있다. 그래도 기쁘고 즐겁다.

 

― 2권 6부 <그래도 영원한 것은 있다> 580~581쪽

 

9. 이원집정부제나 내각 책임제를 도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오랫동안 대통령 중심제를 지지해 왔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리고 국민과 함께 직선 대통령제를 쟁취하여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정·부통령제였다. 우리나라에도 부통령이 있어야 한다. …… 대통령에 집중된 의전 부담도 줄일 수 있고, 대통령 유고시에 국정 중단을 막을 수도 있다. 이렇듯 권력 상층부가 서로를 인정하면 망국적 이념 공세나 지역감정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 지금도 정·부통령제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대통령제하에서 10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독재자들이 비극적 종말을 맞았지만 그 후로도 독재자나 그 아류들이 출현했다. 이를 막기 위해 이제는 대통령 중심제를 바꾸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5년 단임제는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이제 민의를 따르지 않는 독재자는 민의로 퇴출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이원 집정부제나 내각 책임제를 도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 2권 6부 <그래도 영원한 것은 있다> 586~587쪽

 

10. 노무현 대통령, 비로소 그의 영전에 조사를 바친다

 

노 대통령은 고향 앞산에서 몸을 날려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다. 하루하루가 너무 가혹했을 것이다. 검찰은 해도 해도 너무했다. 노 대통령의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을 마치 소탕 작전을 하듯 조사했다. 매일 법을 어기면서까지 수사 기밀을 발표하며 언론 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 처리에 대해서도 여러 설을 퍼뜨렸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이명박 정권에 의해서 강요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노 대통령 장례위원회 측에서 내게 조사(弔辭)를 부탁했다. 나는 이를 수락했다. 그런데 정부에서 반대한다고 다시 알려 왔다. 내가 준비한 조사는 결국 읽지 못했다. 이제 비로소 그의 영전에 조사를 바친다.

 

― 2권 6부 <그래도 영원한 것은 있다> 591쪽

 

 

김대중의 삶은 곧 20세기 한반도의 역사이다. 1924년 남녘의 외딴 섬마을에서 태어나 2009년 8월 세계인의 애도 속에 고단한 몸을 누일 때까지, 그는 파란으로 가득 찬 한반도 현대사의 한복판을 헤쳐 왔다.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선 청년기에는 촉망받는 사업가로, 30여 년에 걸친 군사 정권의 통치기에는 민주주의의 뜨거운 상징으로, 21세기로 건너오는 길목에서는 겨레의 새 길을 여는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으로, 그는 거대한 생애를 실로 숨 가쁘게 살아 냈다.

 

김대중은 늘 도전하는 존재였다. 사람이 누려야 할 자유와 인권이 유린당하던 시절 무법의 권력에 맞서기를 망설이지 않았고, 투옥과 사형 선고, 망명, 연금으로 이어지는 가시밭길을 기꺼이 걸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국제 금융 위기에 국민과 함께 두려움 없이 대처하여 나라를 파산 지경에서 건져 내었다. 그는 민족 성원들의 운명을 가둔 분단 체제의 철옹성 앞에 가장 창조적이고 대담한 도전자였다. 한 인간으로서도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각고의 의지를 잃지 않았다. 평생에 걸쳐 사색하고 준비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간직한 그가 철학과 경륜을 갖춘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로 올라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대중은 평화와 화해의 실천가였다. 모진 고난과 핍박의 세월을 보냈지만 복수 아닌 용서의 덕목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럼으로써 한국의 정치가 끝 모를 상쟁의 싸움터에서 21세기형 상생 윤리의 구현장으로 바뀔 기반을 닦았다. 남북이 칼날 같은 대치를 이어 온 한반도에서 탄생한 역사적인 6․15 남북 공동 선언 또한 그가 오랜 시련을 견디며 연마한 평화의 정신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김대중은 ‘지구적 민주주의(Global Democracy)’의 전망을 펼치는 가운데 국경을 넘은 지도자로 나아간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아시아에서 근대적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편견을 온몸으로 부수었을 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심화된 민주주의의 비전을 세계의 정치․외교 무대에서 설파하였다. 동티모르와 미얀마의 민주화 같은 국제 쟁점을 해결하는 데 앞장섰고, 지구 생태와 환경의 보존에 선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김대중에게 주어진 해외 각국의 수많은 인권상과 노벨평화상은 동아시아 변방의 약소국에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민주 인권 국가로 성장한 한국과 그 나라를 이끄는 국제적 지도자를 향한, 진심에서 우러나는 경의의 표현이었다.

『김대중 자서전』은 20세기가 낳은 이 비범한 정치가의 생애를 그 자신의 육성으로 생생하게 되살려 준다. 김대중과 함께, 김대중을 넘어 21세기를 살아갈 지혜와 슬기를 얻는 보람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추모 행사 안내


 

 

추모 기간 : 2010년 8월 10일~8월 18일

― 추모 기간 동안 김대중도서관 로비에 분향소 운영
― 관람객에게 김대중 대통령 마지막 집무실 개방


1. 『김대중 자서전』 출판기념회

― 8월 10일 (화) 오후 5시, 홍은동 그랜드힐튼


2. 김대중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문화제

― 8월 17일 (화) 오후 6시 30분, 서울광장


3. 김대중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식

― 8월 18일 (수) 오전 10시, 현충원 현충관 광장, 김대중 대통령 묘역

 

2010년 7월 29일
김대중평화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