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김성재-김용익 대담-복지개혁 구현 위한 ‘진보

2010. 8. 2. 23:35관심사

복지개혁 구현 위한 ‘진보협의체’ 있어야

한겨레 | 입력 2010.08.02 23:20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김성재-김용익 대담

 

 

 

 

김성재 연세대 석좌교수와 김용익 서울대 의대 교수. 두 사람은 각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복지개혁의 주역이었다. 김성재 교수는 청와대 수석을 지내면서 기초생활보장법 도입 등 김대중 정부의 숱한 복지정책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다. 김용익 교수 또한 노무현 정부의 사회정책수석을 맡아 노인장기요양법 제정 등에 힘을 쏟았다. 두 주역이 마주 앉아 진보개혁 10년의 복지를 되돌아보는 대담을 벌였다. 대담은 7월28일 최영준 고려대 교수의 사회로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이뤄졌다. 이날 대담에서 두 사람은 복지재정의 지방이전 등에서 시각차를 보였지만 교육개혁과 진보적인 사회정책 대안에 대한 철저한 준비의 필요성에는 깊은 공감을 표했다. 이를 위해 특히 김성재 교수는 진보개혁진영 안의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재 국민의정부 정책기획수석
"복지=기본권…패러다임 전환 기틀 다져"
참여정부, 복지책임 지방정부 넘긴건 잘못
김용익 참여정부 사회정책수석
보육·건보 등 국민의정부가 만든 틀 내실화
"보수적 관료 틈에서 정책실행 쉽지않았다"


최영준 교수(사회)

김대중 정부는 '생산적 복지', 노무현 정부는 '참여복지'(나중엔 '사회투자')를 주창하며 이전 정부보다 복지를 강조했다. 두 분은 각 정부에서 복지정책을 추진한 주역이었다. 당시 취지를 간단히 얘기해 달라.

김성재 교수(김성재)

사회복지정책을 말할 때 중요한 건 철학이다. 대통령이 어떤 철학에서 국정을 수행하는지가 제일 중요하다. '생산적 복지'는 인권과 사회정의에 근거해 국가가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국민 기본권으로서의 복지라는 철학에 기반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빈곤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귀속시켰다.

김용익 교수(김용익)

참여복지는 초기에 썼지만 오래 사용하진 않았다. 2~3년 정도 지나 내놓은 게 '비전 2030'이다. 사회투자와 동반성장,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이 핵심 내용이다. 생산적 복지와 맥락을 같이한다. 참여정부 때는 더 큰 범위에서 경제정책과와 사회정책을 한 덩어리로 생각하고 유기적 결합을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사회

생산적 복지, 사회투자란 개념을 들고 나와 전통적 복지를 상대적으로 소외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적절했다고 보는가?

김성재

생산적 복지는 무엇보다 복지가 소모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복지의 현실은 6·25 이후 미국의 구호물자에 기반한 자선적 사회사업의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사회복지 이념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절박했다. 또 당시 외환위기로 서민과 빈곤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한 과제였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추진한 것이 생산적 복지정책이다. 안타까운 것은 참여정부 복지정책이 복지에 대한 국가 책무 강화보다 경제적 분배와 사회정책의 선순환이란 논리로 결국은 복지가 경제정책 뒷전에 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김용익

참여정부의 기본적인 인식은 시장에서 분배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제 쪽에서 분배 악화를 완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업의 고용과 임금구조가 개선돼야 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해소되고, 지역균형 발전도 필요하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회서비스 확대, 그리고 사회적 기업 등을 육성하려고 했다. 이것이 동반성장이다. 그렇다고 전통적 복지분야를 소홀하게 다룬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 후반부에 가면 사회정책 쪽 예산이 경제정책보다 훨씬 더 올라가게 된다. 복지수준을 높이되, 사회지출의 방향을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 확충되는 방향으로 노력했다. 이것이 사회투자의 개념이다.

사회

김성재 교수는 정부가 사회정책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김용익 교수는 경제와 사회, 두 정책이 유기적인 결합을 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실제 성과도 그렇게 나타났다고 보는가?

김용익

물론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고, 아쉬운 점이 많았다. 국민의 정부 때나 참여정부 때나 정부 안에 이른바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많이 들어갔다. 솔직히 힘이 달렸다. 정부라는 게 단순하지 않다. 광의의 정부 안에는 관료도 있고 국회도 있고 사법부도 있다. 특히 관료사회는 보수성향이 강하다. 대통령과 대통령의 사람들이 정부를 모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책 실행과 한계는 이런 상황들이 얽혀서 나타난 결과다.

김성재

민주적인 시장경제체제에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규제하거나 기업가에게 도덕적 훈계 등으로 복지에 대한 책무를 하도록 하는 것은 정상적 정책이 아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정의로운 법과 조세정의에 근거해야 한다. 정부는 국방, 외교와 함께 모든 국민에게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되는 사회정책, 곧 의식주, 교육, 의료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을 하는 사회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한 책무이다.

사회

두 정부 간 실제 정책 운용에서도 차이점이 있었다고 생각하나?

김성재

복지는 국가의 책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는 복지를 지방자치단체에 이관시켰다. 그러다 보니 지방의 재정불균형 속에서 복지불평등이 심화됐다. 또 지역의 사회사업 토착비리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고, 지방정부의 3분의 2가 한나라당 정부이다 보니 정치적 왜곡도 있게 됐다. 또 참여정부는 복지예산을 일반회계보다도 기금, 특별회계로 많이 충당했다. 예산이 많이 늘어났지만 복지재정의 왜곡현상도 나타났다.

김용익

전국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사회보장제도는 중앙정부의 일이지만 복지서비스는 지방의 일이다. 사회복지, 보건의료, 교육 등 서비스는 지방정부가 하는 업무다. 그래야 주민들의 수요에 잘 부응할 수 있다. 제도는 중앙에서 표준을 정해야 하지만 집행은 지방에서 한다. 다만 재정문제가 생겼다. 그 부분은 종부세로 지방재정을 보강해주는 조처를 했다. 주민생활서비스 체계도 개편했다. 과거 읍·면·동 사무소를 주민센터로 변화시켰다.

사회

두 정부의 복지정책을 돌아볼 때 잘한 것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김성재

국민의 정부는 반세기 만에 민주적 정권교체를 해서 민주인권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를 기반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최소한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만들었다. 4대 사회보험 확대를 통해 국민 기본권이 더 보장될 수 있도록 했다. 사회복지를 사회정의와 인권의 차원에서 인식하게 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뤘다. 중3 무상의무교육 완성 등 교육복지도 확충했다.

김용익

참여정부 시기에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것은 육아지원이었다.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가 인수받은 육아지원예산이 2300억원 정도였다. 이명박 정부에 넘겨줄 때에는 2조800억원에 이르렀다. 건강보험 보장성 비율도 국민의 정부 말 52% 수준에서 인수받아 65% 수준으로 올려서 넘겨줬다. 국민의 정부 때 만든 틀에다 훨씬 더 예산도 늘리고 내실화했다고 볼 수 있다. 노인요양보험제도도 참여정부에서 기초했고, 고용지원제도도 대폭 정비했다.

사회

하지만 두 정부 다 경제관료에게 포위돼 복지정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김성재

생산적 복지 정책,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중3 무상의무교육 완성 등의 정책을 추진할 때 관료 출신 수석과 경제관계 장관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시민사회단체와 언론의 지지가 있었기에 추진할 수 있었다.

김용익

경제관료들에게 포위됐다고까지 말할 것은 아니다. 밖에서는 대통령도 있고 아무개도 있고 권력을 갖고 있는데 왜 못할까, 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진보적 역량은 정부 안에서도 그대로 투영된다고 보면 된다. 변명하자는 게 아니다. 진보진영이 재집권을 하더라도 역량이 부족하면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될 것이다. 이 문제가 가장 큰 걱정이다. 그래서 진보진영이 정치, 경제, 사회의 개혁과제에 대해 능력을 키우고, 사람도 조직도 키우는 작업을 꾸준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김성재

정책 제안만 해서는 한계가 있다. 사람이 있어야 한다. 철학을 가지고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추진할 수 있는 전문성 있는 사람이 정책 추진 책임자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김용익

공감한다. 진보적인 세력과 진보적인 사람들이 곳곳에 있어야 한다. 시민단체, 학교, 언론에, 정부 안에도 많이 있어야 한다. 진보적 생각을 하는 이들이 진보정당에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성재

진보진영의 끊임없는 성찰도 중요하다. 시대가 변하고 세계가 급변하고 있는데 과거의 패러다임에 머문다면 진보가 아니다.

사회

진보개혁 정권이 다시 들어선다면 어떤 것을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가?

김용익

너무 많다. 중요한 것은 복지 등 사회정책 과제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21세기의 한국 사회를 위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교육개혁이다. 입시제도의 차원이 아닌 창의력 교육과 평생교육 차원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평생 사용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또한 학벌 중시와 같은 낡은 관습이 없어지지 않으면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김성재 국가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최선은 아니지만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또한 현행 학교제도가 양극화의 주범 중 하나이기 때문에 교육개혁을 철저히 해야 한다. 학제를 줄이고 내용을 지식정보사회에 맞게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부분개혁은 또다른 부작용을 낳기 때문에 진보적 철학과 정책을 공유하고 통합적이고 일관되게 개혁할 수 있는 사회개혁협의체 같은 게 있어야 할 것이다.

진행·정리 이창곤 최원형 기자 g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