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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보상들이 판마할 물품을 묶어 등에 지거나, 보자기에 싸는데 쓰던 박다위와 조이개. |
ⓒ 국립민속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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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만드는 사람들. 대부분의 이동수단이 도보였던 과거에 길은 누가 만들었을까? 걷다보면 길이 아닌 곳도 길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 아포리즘에 걸맞은 부류가 있다. 지금도 그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부보상 혹은 보부상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이번 장시(場市)를 끝내면 휘적휘적 걸어 닷새 후 또 다른 장터를 향해 걷고 또 걷는 이들 부보상들은 지금처럼 교통·통신망이 없었던 시절에 네트워크를 담당했다.
좋은 소식에는 절로 발걸음도 가벼워졌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솜을 지고도 지게나 봇짐이 천근만근이어서 하룻길도 보름 가듯 무겁게 이 땅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을 것이다. 지금도 그들의 후예는 지게 대신에 털털거리는 낡은 용달에 보물상자처럼 엄청난 가짓수의 물건을 싣고 다니고 있다. 때때로 휴먼다큐에 등장하는 그들도 아마 걸어서 하라면 차라리 그만둘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길도 아닌 길로 평생을 걸어다녔던 부보상들의 삶은 안락함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무언가 교훈을 준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신광섭)이 충남 민속문화의 해를 기념한 특별전 '부보상, 다시 길을 나서다'를 마련했다. 24일부터 일반에 공개한 이번 특별전은 오는 4월26일까지 계속된다. 서울 일정이 끝나면, 마치 부보상이 그랬던 것처럼 전시품 250여점을 고스란히 싸서 온양민속박물관과 충남역사박물관으로 돌며 순회전시를 열게 된다.
박물관측이 내놓은 보도자료에 의하면 부보상들의 상업기간을 평균 30년으로 추정할 때, 이들이 평생 걷는 거리가 지구를 세 바퀴하고도 절반 이상이라고 한다. 그정도 걸으니 길이 아닌 곳에도 길을 낸다는 말이 허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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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시에서 상거래의 기준이 되었던 됫박 등 각종 도량도구 |
ⓒ 국립민속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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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보부상으로 알고 있는 이들의 역사적인 명칭은 부보상(負褓商)이 바른 표기라 한다. 생산자 혹은 중간판매자(보상객주 등)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행상인 이들은 지게 등을 이용해 부피가 큰 것을 취급하는 이를 부상(負商)이라 했고, 부피가 작거나 소규모 물품을 거래하는 이를 보상(褓商)이라 부른다. 자세한 내막은 전시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서울 등 큰 도시가 아니라면 거주상인이 극히 드물었던 조선경제 속에서 일반 백성들이 생활에 소용되는 상품들을 구하기 위해서 매 닷새마다 열리는 장터가 이들 부보상의 주된 목적지였으나, 한 장터를 마치고 다른 장으로 이동하면서 예약되거나 혹은 즉흥적으로 거래되는 일 역시 다반사였다. 그런 거래방식에는 부상과 보상이 다르지 않았는데, 지게를 세워놓고 거래해야 하는 부상은 다른 말로 입상(立商), 봇짐이 작아 자연스럽게 앉아 거래를 텄던 보상은 좌상(坐商)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나 부보상들이 길 위에 서는 목적은 장터다. 이번 전시 역시 유물을 따라 걷다보면 마지막에 장터전시에 다다르게 된다. 난전의 분위기를 풍기는 전시물과 영상이 어우러져 제법 시끌벅적하게 꾸며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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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논산의 강경시장 모습을 담은 엽서 |
ⓒ 국립민속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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