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들에게서 그분의 체취를 느낍니다

2009. 10. 31. 00:12사람 사는 세상

님들에게서 그분의 체취를 느낍니다
추천 : 78 반대 : 0 신고 : 0 조회수 : 3146 등록일 : 2009.10.30 10:49
관리자
쪽지보내기

님들에게서 그분의 체취를 느낍니다


며칠 전 오후, 재단 임시 사무실에 감귤 두 상자가 제주에서 배달돼 왔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선물. 궁금했습니다. 재단 직원이 물어물어 감귤을 보내준 분과 어렵게 통화를 했습니다.

이미 본인 이름으로 후원을 시작한 회원이었습니다.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자신의 후원만으론 성이 안찼던 모양입니다. 곧 딸아이의 생일이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아이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 이름으로 평생회원 후원을 선물로 주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컸을 때 가장 기억에 남을 소중한 선물,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키워가는 큰 나무 한 그루를 딸의 마음속에 심어준 아빠의 사랑이라는 겁니다.

"자식들도 모르는 나만의 기쁨으로..."

노무현재단 후원금 자동납부시스템을 개통한 지난 10월 17일 이후 불과 열흘 만에 1만여 명께서 후원금 납부를 시작하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하시지만, 비영리단체 후원의 자발적 기부 가운데 전례를 찾기 힘든 열의입니다.

숫자도 중요하지만 가늠할 수 없는 큰 뜻, 깊은 마음을 저희는 온 몸으로 느낍니다. 하루하루 많은 사연이 저희를 울리고 웃게 합니다.

대전에 사는 어느 할머니. 전화를 걸어 “노 대통령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 어떻게든 후원을 하고 싶은데 인터넷을 전혀 모른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전화로 안내하는 방식으로 하면 힘드실지 모르니 자제분들에게 도움을 받는 게 어떠냐고 여쭸습니다. 정중하게 거절하셨습니다. 번거롭더라도 저희 도움을 받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자식들도 모르는 나만의 기쁨으로 이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여든 한 살의 어느 할아버지께서도 “내가 얼마나 살진 몰라도, 살아있는 동안 평생후원을 하고 싶다”며 저희들의 전화 도움을 받아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한 60대 할머니도 인터넷을 몰라 이웃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의 이런 사연은 통념을 깹니다. 대통령님의 서거를 애통해 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엔 세대 구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아낀 돈을 내놓은 분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형편이 넉넉지 못한 분들의 정성입니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한 어르신께선 벌이가 마땅치 않아 타국살이 형편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몸까지 불편해 외출도 어려운 처지라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끼고 아낀 돈, 미화 1450달러를 평생후원금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어느 중년 남자 분은 월 1만원의 정기후원조차 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대단히 미안한 목소리로, 아이로 하여금 청소년후원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하는 그 분 앞에 도리어 저희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없는 분은 없는 분들대로 성심을 다하듯 다소 여유가 있는 분은 있는 대로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봅니다.

며칠 전 재단 사무실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신사분이 방문했습니다. 직접 1천만원을 들고 오셨습니다. 하고 있는 일의 특성 때문에 계좌로 보내지 못하고 직접 갖고 왔다고 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더 후원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주변에 1천만 원을 낼 사람이 또 있는데 그도 곧 후원을 할 것이라고 전해줬습니다.

어느 부인은 본인과 남편, 아이들의 이름으로 나눠 가족이 1천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온 가족이, 후원하는 기쁨을 나누려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가족이 두 세 가족 됩니다.

또 다른 중년부인은 수도권 지방도시에서 일부러 올라와 1천만 원을 기부하고 가셨습니다.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시라며 붙잡아, 큰 결심을 하게 된 얘기를 들어보려 했지만 서둘러 떠나셨습니다. “멀리서 늘 보고 있고, 홈페이지에서 일하는 모습들 잘 보고 있으니 괜히 번거롭게 더 연락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배웅을 하려 하자 “바쁠 텐데 빨리 들어가 일보라”며 돌아서는 아주머니의 촉촉한 눈가를 잊을 수 없습니다. 

"속상해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그냥 후원만 하는 게 아니라 재단에 전화를 걸어 후원 사연을 말씀해 주는 경우, 한 분 한 분의 얘기가 우리 모두의 얘기 같습니다.

작은 구멍가게를 한다는 어느 아주머니는 가게에서 ‘내 마음속 대통령’ 책을 읽다가 너무 울화통이 터지고 속이 상해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후원을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아주머니는 대통령님 서거 이후 우울증이 생겼다고 합니다. <사람사는 세상> 홈페이지에 들어와 글을 읽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습니다. 이제 후원을 시작한 것이 큰 낙이라 했습니다. 

먼 이국땅에서 지극정성을 보이시는 일도 많습니다. 서거 이후 시민들 조의금 300여만 원을 거둬 보내셨던 영국 교포들께선 재단 후원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일주점을 엽니다.
이 분들의 모임 ‘모난돌’이 교포사회에 돌린 초청장은 이렇게 돼 있습니다.

“노무현의 가치를 계승하는 일에 너와 내가 다를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멀리 영국에서도 노무현재단의 출범을 축하하고 후원하기 위한 일일주점이 열립니다. 시대가 당신을 필요로 하는 지금, 한 분 빠짐없이 참석하셔서 즐거운 시간도 보내시고 ‘사람사는 세상’에 함께 합시다.” 

한명숙 이사장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현지에서 만난 교민들도 현장에서 성금을 거둬 전달하는가 하면, 앞으로 추가 모금을 하겠다며 열의를 보여주셨습니다. 

저희들이 미처 몰랐던 ‘페이팔’(온라인결제) 방식을 찾아 알려준 분들도 교민들입니다. 어려운 유학생활이지만 생활비를 아껴 송금해 주시는 분들의 사연도 가슴이 짠합니다.

재단이 출범한 지 불과 한 달이 좀 지났습니다. 일일이 소개드리지 못한 분들의 애틋한 마음과 뜻 깊은 사연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은 안 계시지만 그 분들에게서 대통령님의 체취를 느낍니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봅니다.

※ <사람사는 세상> 회원 분들의 애틋한 후연 사연은 ‘희망적금 이야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