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 영부인의 애틋한 포옹

2009. 10. 21. 19:17사람 사는 세상

두분 영부인의 애틋한 포옹
추천 : 6 반대 : 0 신고 : 0 조회수 : 1173 등록일 : 2009.10.21 17:25
이광재 의원
쪽지보내기

두분 영부인의 애틋한 포옹
- 위로와 연민의 정을 나눈 ‘봉하상봉’ 




이희호 여사님께서 봉하마을에 오신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겁고 힘이 들었습니다. 이희호 여사님과 권양숙 여사님이 만나시는 장면을 상상하니 더욱 아팠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이 살아 계실 때 부부동반으로 밝게 만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하다못해 노무현 대통령 묘역이라도 제대로 정비한 다음 모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질 못해 더욱 아쉬웠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은 닮은 젊이 많습니다.
두 분 다 인생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분은 호남이라는 이유만으로, 또 한분은 영남 사람으로서 민주당을 하면서 혹독한 고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투옥된 경험도 같습니다. 정치역정이 시련의 연속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도전하는 삶을 사신 것도 같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평화, 서민복지,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하신 것도 같습니다. 끝없이 견제 받고, 색깔공세에 시달리고, 일부 언론에 의해 철저히 공격 받은 것도 같습니다. 아끼고 사랑했던 정치인들로부터 탈당 요구를 받고 당을 떠나야 했던 배신의 아픔도 비슷합니다.

그렇게 비슷한 게 많았던 두 분은 비슷한 시기에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님을 갑자기 잃은 두 전직 대통령의 영부인 두 분. 시련과 고난과 영광의 시절을 대통령님들과 함께 하셨건만 이제는 빈들에 홀로들 남아 계십니다.

두 분 대통령님께서 추구했던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평화, 서민복지,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한편으론 인간적인 외로움과 쓸쓸함, 절해고도와 같은 삶,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고독의 무게는 또 얼마나 무거울까요. 

연약한 두 분의 어깨를 누르는 인간적인 외로움의 무게, 가치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느낄 중압감이 아프고 처연하기만 합니다.


그 두 분이 오늘(10월21일), 봉하에서 만났습니다. 이희호 여사님이 김대중 대통령님 추모비 제막식이 끝난 후 처음 참석한 외부 행사로 권 여사님을 위로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은 것입니다. 

봉하마을에 도착한 이희호 여사님은 마중 나온 권양숙 여사님과 악수를 나눈 뒤 포옹을 합니다. 손을 잡고 노 대통령님 묘역으로 걸어가 함께 헌화, 분향을 합니다. 고개를 숙인 채 긴 묵상을 하던 이희호 여사님은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립니다. 

묘역 주변, 부엉이 바위, 사저 등을 둘러보면서도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칩니다.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두 숙연해집니다.

이희호 여사님은 묘역을 보며 안타까워합니다. 전직 국가원수의 묘역이라기엔 너무 황량한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프셨던 게지요. 권양숙 여사님은 “묘역을 제대로 정비한 다음에 모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민망해 합니다. 이희호 여사님은 “묘역 조성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합니다. 

이희호 여사님은 또 권 여사님께 “아드님이 외국 나가서 힘드시죠?”라며 세심한 걱정까지 건넵니다. 권 여사님은 “직장에 복귀하라고 제가 강하게 주장했지만 그래도 아들이 없으니 혼자 있음을 절실하게 느낀다”고 말합니다. 

건호씨가 계속 한국에 남아 있으려 할 때 권 여사님께서 “젊을 때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 “어려움은 내가 혼자 이겨 내겠다”라면서 건호씨 등을 떠미는 것을 보고는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 마음을 이희호 여사님이 헤아려 걱정을 하신 것이지요. 두 분의 대화에선 진심어린 걱정과 연민이 그득 배어 있습니다. 


두 분은 1시간 가량 오찬을 하고 사저 앞에 있는 생가를 둘러봤습니다. 생가를 관람하던 이희호 여사님은 기념품 매장에 들러 손주들에게 선물하신다며 대통령님 캐릭터 상품을 직접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짧은 만남을 끝으로 이희호 여사님은 봉하마을을 떠나셨습니다. 반가운 만남 뒤의 이별은 그 허전함이 더 큰 법입니다. 

이제 가을이 끝나가고 겨울이 오는 빈들에 권 여사님 혼자 계실 생각을 하니 더 힘드시겠구나, 더 많은 상념의 시간을 보내시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곧 가을걷이도 하고 겨울이 옵니다. 제 고향 강원도를 볼 때 산이 봄, 여름, 가을은 괜찮은데 잎이 떨어진 겨울은 참 쓸쓸합니다. 차라리 눈이라도 쌓여 있으면 괜찮은데, 이곳은 눈도 잘 오지 않으니 이리저리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권 여사님께 힘내시란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제는 시련과 역경과 불굴의 삶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이끌어 나가려 노력했던 두 분 대통령님, 그리고 유족들을 우리 국민들이 지켜드려야 할 때입니다. 

누구의 어떤 위안도 위안이 되기 힘든 절대 고독 속에 계실 그 분들을 마음속에 안았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추천 6 반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