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때늦은 인사를 전한다

2009. 3. 20. 09:41사람들

2009-03-18 02:17:57  

 

무슨 말로 이런 느낌을 담아낼 수 있을까...

지난해 뜨거웠던 여름이 스러져갈 무렵부터 우리들의 만남도 뜸해져 갔다.
세상은 달라졌고, 우리들도 마냥 그렇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그보다 앞선 날들에, 꿈틀대며 파닥거리던 우리들의 어떤 거창한 계획과 사소한 소망, 나름 최선이라던 노력들... 벌써 아스라히 추억으로만 남겨지는... 이기기 힘든 싸움의 어느 구석구석을 저마다 지키고 버티다가, 그 뒤집어진 세상과 함께 난파선처럼 흩어져버리는 우리들은 그저 어설픈 집단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듬해 문득, 촛불의 가녀린 떨림과 함께,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었던, 이길 수 없는 싸움의 언저리에서 애써 서로를 부여잡고 남은 열정을 불태웠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시절의 열정이 사그러질 무렵 우리들은 저마다 각자에게 디뎌져야 할 어떤 길들로 떠밀리고 말았던 것이다.

참 한숨이 많은 날들이었지. 누군가는 머리에서, 누군가는 심장에서, 누군가는 손끝에서, 누군가는 발바닥에서, 누군가는 지갑과 계좌잔고에서... 미쳐가는 세상을 어쩌지 못해 한숨을 토하고 욕설을 게워내며... 어쩌면 누군가는 그 모든 것들을 시리즈로 보너스로 따블로 트리플로 고통스럽게 감당하며... 그렇게 우리들은 누구나, 차마 눈뜨고 보기엔 돌아버릴 것 같이 민망하고 분노스런 세상살이를 버텨내고 있었던 거란 말이다.

바람결에 듣기로, 누구는 생업전선을 옮겨갔고, 누구누구는 농촌으로 투신했고, 어떤 이는 믿음을 근거로, 어떤 이는 능력을 자산으로, 낯설게 혹은 낯익은 새로운 전진을 시작하기도 하였으며, 또 많은 어떤 이들은 미친 세상에 자칫 빼앗겨선 안될 어떤 것들을 처절하게 지켜내며 희망과 전진을 꿈꾸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 그렇게 우리는 모두 고통받고 천대받고 억눌리고 빼앗기며 살고 있었단 말이다.
그렇지? 넌 어땠을까?

뜸해진 우리들, 종종 이러저런 핑계로 酒님을 영접하러 모이곤 했었지.
촛불과 어울리다... 새로운 계획이 있다며... 가족의 일들을 이유로...
우리는 미련을 떨치지 못한 채 설익은 사랑에 지쳐가는 연인들처럼
서로를 한움큼씩 그리워하고 서로에게 반걸음씩 이끌렸었다.

그렇게 그리움에 지치면 다시 술잔을 부딛칠 수 있는 "벗들"이라는 이름으로라도
우리는 더 오래도록 위로와 휴식이 되었어야 하는 건데... 그러다가 마침내
그 헛되이 사라지던 말들의 잔치를 언젠가는 빛나는 현실로 이뤄내고야 말았어야 하는 건데...

성호야, 라고 불러본 적이 많지 않구나.

감자야, 시상아, 지깐노기스야, 시건의장치야... 고개 처박고 제 흥에 겨워 음흉스럽게 킬킬거리던 한쪽 구석의 타이핑소리과 클릭소리, 뜬금없지만 나름 귀엽던 농짓거리들과 시끄럽지만 늘 그렇게 목소리 낮았던 일장연설들... 혀가 꼬일 무렵 제가 먼저 비틀비틀 일어서서 자박자박 내딛던 귀가길... 너의 순수함과 멈춤없는 사변과 시적 허영과 그 바탕의 열정과 천성적인 낙관주의가 나는 그저 너답고 미더웠었는데...

이 미친 파도에 끝내 너는 먼저 훌쩍 휩쓸려 가버렸구나...

아프기 전, 아니 입원하기 전에 너는 이미 심한 내상을 입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알기에... 마지막 그날의 이틀 쯤 전에 나름 바쁘고 정신없는 날들의 한 찰나, 왠지 문득 전화기를 열어 네 번호를 검색했다가, 그냥 일상을 핑계로 딸깍 닫아버린 스스로를 아마도 영원히 후회하게 되겠지...

서울살림 예닐곱 해 동안에, 어느 하루인들 온전히 행복하기만 했겠느냐만, 그래도 "힘들다" 라는 그 말만은 시인의 언어감각 탓인듯 쉽게 내뱉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 니가 너무나 쉽게 "힘들다" 라는 말을 토하기 시작할 때, 거기서는 피비린내가 났었다. 그건 너의 장과 간이 다쳐서가 아니라, 너의 영혼이 많이 다쳐 철철 피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아챘었단 말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무능한 너의 벗은, 참고 버티자, 몇년만, 아니 우선 일년이라도, 응? 조금만, 나도 그렇고, 쟤도 그렇고, 그들도 그분들도 다 그렇게 버티니까, 그러니까, 니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것 맞고, 그래도 반쯤 벗은 듯 한발만 걸친 듯 나름 애쓰고 있는 것 좋고, 아무튼 그렇게 어지럽고 아찔하게 살얼음판을 걷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응?

권력이 흘겨보고, 조직이 걸려 하고, 동료들이 외면하고, 후배들이 무거워하는... 그런데도 이른아침부터 산더미같은 일감을 묵묵히 감당해 내야 하는 한숨겨운 날들... 그러다가 너는 믿었던 누군가에게서 심한 배신까지 당했다. 미친 세상에 돌아버린 신뢰, 압제에 길들여진 배신자의 칼, 그렇지? 그게 비수였던 거야. 그날 나는 너에게 당장 때려치라고 말했었잖아... 일단 사표 내고, 바보야... 저 멀리 제주도로 튀든가, 강릉으로 날르던가, 며칠이라도, 그래라, 응? 정말 심각한 상황이잖아...

급소에 박힌 비수는 이미 그때 니 영혼과 육체의 건강을 회복할 수 없게 만들었던가 보다.
설마설마 하며... 그렇게 지나쳐 버릴 시간도 너는 길게 허락하지 않았구나.
비정한 자식, 술먹자고만 말고, 외롭다고도 한번만이라도 "말"하지 그랬냐...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시" 대신에 "막말"로 한번 더 크게 외쳐보지 그랬냐...
나만 미안하잖아, 나쁜 넘아, 바보같은 넘아...

우리는 너를 지켜주지 못했다. 우리는 무능한 "살아남은 자들"일 뿐...
그런 우리들이 다시 네가 못다이룬 꿈을 이어가고 마저 가야 할 길을 헤쳐나서야겠지.
아직 너라는 하나의 삶과 세계를 차근히 돌아보기엔 준비가 안된 것 같다.
그래, 우리에게 남겨진 몫은 또 있는 거지...

뭐라고 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야 할 지 몰라서,
멍하니 그렇게 너의 옆을 서성거리기만 했구나...
이제서야 때늦은 인사를 전한다. "성호야, 내 친구야, 잘 가라~!"

-그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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