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국제적 식물종자 전쟁, 국가적 대비가 필요하다

2009. 3. 19. 20:32관심사


들어가는 말

최근에 우리들은 언론을 통해서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외국품종에 대하여 로열티를 지불한다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가 2002년도에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을 맺으면서 여태 공짜인 줄만 알았던 외국산 식물품종에 로열티를 지불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의 나라 씨앗은 단 한 알이라도 함부로 이용할 수 없는 식물종자 전쟁시대가 도래하였다. 요즘에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지적재산권 보호제도와 유사한 개념으로 보면 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를 해왔지만 우리는 국제적 흐름에 대한 정보수집에 뒤처져 무방비로 식물종자 전쟁을 맞게 된 셈이다. 우리가 식물종자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식물종에 대한 수집, 분석 등 식물에 어떠한 관심과 노력들을 기울여 왔는지와 국제적 식물종자 전쟁에서 우의를 선점하기 위하여 국가적인 대책이 왜 필요한지 살펴보고자 한다.


식물자원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다

현대 산업사회의 태동을 일컫는 산업혁명이 18세기 영국에서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유럽 특히 영국에선 또 하나의 혁명이 있었다. 16세기부터 외국의 희귀한 식물들을 자국 내로 들여온 것이 그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국제적 식물종자 전쟁의 시초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때 시작된 영국의 희귀식물에 대한 수집은 유럽에 자생하는 식물종이 대부분이었으나, 17세기에는 식민지 건설이 확대되면서 더 많은 세계 각국의 다양하고 희귀한 식물들을 영국으로 들여왔다. 18세기 들어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경제적 지위가 높아진 영국의 귀족들이 정원문화라는 고품격 생활패턴을 지향하면서 희귀식물을 통한 정원 꾸미기가 성행하였고 이 문화는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당시 희귀한 식물들은 품귀현상을 빚어 튤립 구근 한 개의 값이 무려 집 한 채 값을 호가하는 등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문화는 산업을 이끈다”는 말이 있듯이 정원문화는 식물관련 산업을 크게 번성하게 하였다. 영국 왕실에서도 식물자원의 가치를 인정하고 1804년 영국 왕립원예학회를 설립하여 식물에 대한 체계적인 분류를 하게 되었고 세계의 다양한 식물자원 수집을 위하여 많은 식물수집가들을 전 세계에 파견하였다. 원예품종을 생산하는 기업에서도 희귀식물 수집을 위해 사설 식물수집가를 파견하여 많은 식물들을 영국으로 들여왔다. 이 시기에 열대지방에서 도입된 식물들이 자라던 곳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유리온실이 처음 만들어졌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이 있다면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 열강국들의 해외 식민지 건설이 각축전을 벌일 때 영국은 식물수집에 열을 올렸고, 이들 식물에서 얻은 공업원료들을 상품화해서 식민지 건설에 필요한 자원을 조달한 반면, 스페인과 바이킹 민족으로 잘 알려진 포르투갈은 식민지에서 은을 약탈하여 이를 자본으로 식민지 건설을 확장해 나갔다. 수세기가 지난 오늘날 영국의 선택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탁월했다는 결론이다. 당시 식물자원 중 고무, 차 등은 공업원료와 기호식품으로 상품화되어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영국의 식민지 건설에 든든한 자금줄이 되었고, 오늘날 영국이 식물분류, 식물표본, 원예, 조경, 유리온실 등에 관한 한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독보적인 계보를 만들게 된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식물자원 대신 은을 선택한 스페인, 포르투갈의 현실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국제정세를 읽는 정보력이 필요하다

겨울철이면 우리의 입맛을 돋우어 주는 과일 중에 비닐하우스 딸기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는 딸기 품종은 ‘육보’, ‘장희’가 90%를 차지하는데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이다. 약 10년 전 일본의 종묘회사가 우리나라 정부에 육보, 장희 등 딸기 품종들을 특허 등록하고 매년 일정액의 등록비를 지불할 때만 해도 우리들은 그들이 바보 같은 행동을 한다고 여겼었다. 2002년에 우리나라가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을 하면서부터 그들의 바보 같은 행동이 실은 로열티 수입을 예상하고 치밀한 계획하에 이루어진 것임을 알았지만 우리 농민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영문도 모른 채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연간 1000억 원대의 로열티를 일본 등 외국기업에 매년 지불하고 있다. 10년 앞을 내다본 외국의 기업들을 돈에 눈먼 사람들이라고 치부하기엔 우리들의 준비가 너무 소홀했다. 그리고 국제정세를 읽는 정보 수집에 무능력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농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매향’이라는 국내 딸기 품종을 발 빠르게 개발해서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한 품종으로 다양한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수출 효자 품목인 딸기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되는데 일본에서 자국기업이 개발한 딸기 품종이 아니면 수입을 않겠다고 한다면 우리 농민들은 수출을 위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일본 품종의 딸기를 심어야 한다. 딸기수출을 통해서 벌어들인 외화는 다시 일본 등에 로열티로 지불되고 이들은 벌어들인 로열티로 또 다른 신품종 개발에 투자하게 된다. 새로운 딸기 품종이 만들어지면 우리나라 농가에 판매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우리들은 또 그 딸기 품종을 들여와야 한다. 그래야 수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 같지만 이것이 오늘날의 국제적 종자 전쟁의 현실이다. 앞으로 장미, 화훼류 등 원예품종뿐만 아니라 밤, 감, 녹차 등 임산물들도 앞서 얘기한 딸기와 비슷한 사정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2009년까지는 모든 재배작물로 로열티 지불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IMF사태 이전에는 잘나간다 하던 흥농종묘 등 국내 종자 생산업체들이 외환위기 때 외국자본에 넘어가 외국기업이 된 지 오래다. 우리나라 종자 생산기업이 수년간에 걸쳐 쌓은 식물 육종에 대한 노하우, 연구 성과 등 수많은 인프라가 외국기업으로 손쉽게 넘어가 우리나라 종자산업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국내 원예, 화훼 분야의 종자 시장이 외국기업의 손에 맡겨진 것이다. IMF사태 때 국내기업 중에서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국내 굴지의 종자 생산업체를 외국기업이 선뜻 인수한 이유를 IMF사태 이후 10년이 지난 오늘날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은 이미 10년 후에 있을 국제적인 식물종자 전쟁에 철저히 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식물자원 전쟁, 석유전쟁을 방불케 한다

오늘날 고도산업사회가 진행되면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부각되는 생명공학 산업에 사활을 건 국가들의 시선이 다시 전 세계의 다양한 식물자원에 대한 분류, 표본 등의 자료가 가득한 영국으로 쏠리고 있다. 오늘날 영국의 큐 식물원은 세계에서 제일 많은 식물 표본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마다 세계에서 모여든 식물분류학자 및 식물원 관련자들의 연수, 견학 등 발길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의학에서 화학물질들의 정제와 합성 등을 통하여 생산한 의약품들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면서 건강한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인체에 해로운 이들 의약품들을 외면하게 되었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식물체에서 추출한 천연물질로 의약품을 만들려는 노력을 진행하면서 식물자원 확보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치열하다. 이들 제약회사들은 영국에서 나온 식물분류를 토대로 아직 학회에 보고된 적이 없는 식물자원을 탐사하고 있다. 식물자원의 보국이라 불려지는 브라질에서도 자국 내 식물자원의 해외 유출을 막는데 국가적 차원에서 대처를 하고 있다. 그리고 유전자조작(GM)을 통해 생산되는 식품이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면서 식물원종을 육종한 종자산업이 활성화될 것이며 국가간 자국의 식물종자 지키기는 앞으로도 치열할 것이다. 다국적 곡물생산기업에서는 곡물유통에서 우의를 선점하기 위해 유전자조작으로 결실이 되지 않는 곡물만을 수출 유통시킨다. 힘들여 개발한 식물종자를 외국에서 재배하지 못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흔히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종자를 일컫는 수퍼종자는 전 세계적으로 연간 20조 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앞으로 국가간 식물자원 전쟁은 오늘날 석유전쟁만큼이나 치열할 것이 분명하다.


식물종자 인프라는 국가에서 관리해야 한다

IMF사태 때 우리나라 흥농종묘를 인수한 멕시코의 한 종자회사는 흥농종묘를 인수하면서 대박 품종 3개를 덤으로 얻었는데, 이것은 흥농종묘에서 수년간을 노력과 연구비를 들여 개발한 쭛쭛수박, 쭛쭛참외, 쭛쭛고추품종이라고 자랑을 했다. 기업 인수 이후 새로운 품종개발 등에 별다른 노력 없이 앞서 얘기한 3개 품종의 매출이 매년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엄청난 국가적 손실은 입은 게 틀림없다. 앞으로는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IMF사태 때도 보았듯이 일반기업은 언제든지 기업부도라는 복병을 만나면 모든 노하우와 방대한 자료들이 한순간에 경쟁국가에 넘어가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기업에서 식물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일각을 다투는 산업사회에서 한번 잃어버린 노하우와 자료들을 수년간 다시 수집하고 체계를 갖추기에는 국가적인 손실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목본식물들은 종자를 맺는 1세대의 기간이 너무 길어서 벼, 콩 등 농작물의 품종개발에 비해 연구에 오랜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더욱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실정이다. 나는 산림청에서 국내 식물자원 중 특히 목본식물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맡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는 임업인과 산주에게 식물자원을 이용한 소득창출 혜택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림청의 입지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내 식물자원은 대부분 산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그동안 산림청 산하 각 연구소에 수집된 자료만 잘 활용하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데이터베이스화가 가능할 것이다. 이미 산림청에서는 주목나무의 종자에서 추출한 성분인 ‘택솔’을 이용한 항암제 개발에 성공한 경험과 새로운 밤나무 품종 개발 등 많은 연구를 진행시켜 왔기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맺음말

우리나라에도 약 5천여 종의 식물자원이 있다. 우리 식물자원 중 산업화가 가능한 식물자원을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100년 후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꾸준한 데이터베이스 관리와 신품종 개발에 국가적인 인프라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개발된 식물품종의 국내외 품종등록은 물론 특허출원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대처만이 우리가 살아남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영국의 식물자원 수집, 분류, 산업화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가능했듯이 우리에게도 국가적인 선택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의 식물자원이 대한민국을 부강하게 만들어줄 엄청난 부가가치를 가진 소중한 국가적 자산임을 인식하고, 종자전쟁에서 승리하여 임업인들의 사기진작과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본다.

글 / 하용식 경남 하동군 진교면
출처 : 21c웰빙하우스
글쓴이 : 우리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