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생태농업사회를 위한 씨를 뿌릴 때

2009. 3. 18. 15:50관심사

생태농업사회를 위한 씨를 뿌릴 때_대담 박석두, 이태근
작아    2009-03-18 14: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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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환경을 주제로 달마다 다양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달 주제는 '생태와 농업'입니다. 박석두 님(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이태근 님(흙살림연구소)이 함께하셨습니다.

대화<12>-생태와 농업

생태농업 사회를
위한 씨를 뿌릴때


사진·정리 편집부



지금 농업의 자리는 어디인가


박석두 저는 농업정책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농업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미래가 있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태근 저는 현장에 있는 사람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생태 영역이 농업전체로 보면 소수입니다. 그래서 더욱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과 대치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논쟁보다는 지금 농업의 자리는 어디이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이야기 했으면 합니다.


박석두 얼마 전 생태운동 하는 분에게 ‘농업을 모른 채 환경운동 하는 건 거짓이다. 도시에 살면서 관광객의 시각으로 환경운동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역에 살면서 이웃에서 벌어지는 환경 파괴를 직접 부딪치고 거기에 대응하며 환경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농민들, 농촌 주민들이야말로 밑바닥에서 환경을 지키고 지역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농업하는 입장에서는 농사가 갯벌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통탄하고 가슴이 찢어지더라. 누구도 농업 지키자는 이야기를 안 한다. 농사꾼마저도 농사를 버리려는 입장이니까.’ 그런 말을 했어요.


이태근 농업은 늘 위기라고 했지만 이미 그 단계도 넘어서 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특히 올해는 아마 다른 것도 다 어렵겠지만 농업은 더 어려워질 거란 생각이 들어요. 실제 현장에서 무슨 농사를 지을 거냐에 대해 답이 없어요. 씨를 뿌릴 때가 됐는데도 뭘 뿌려야 할지 계획이 안 서는 거죠. 생산비는 다 올랐어요. 근데 농산물 가격은 떨어지거나 그대로 가는 추세니까 암담한 거죠. 요새 친환경 농업 이야기를 하지만 친환경 농업도 정말 비전이 있고 희망이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정부가 이야기하는 목표와 현장에 있는 사람들 목표는 늘 달라요. 현장에 기반하지 않고 정책 목표를 세운 결과지요. 지금 한 해에 천만 원을 못 버는 농가가 62퍼센트가 넘어요. 우리나라 평균 경작면적이 4천 평 좀 넘으니까 다 해봐야 천만 원 조금 넘는데, 거기에서 비용 빼고 나면 실제 농가가 일 년에 5백만 원도 못 번다는 거예요. 자기 품값도 안 되는 거죠. 60퍼센트 넘는 농민들 벌이가 도시에서 최저임금 받는 사람 수준도 안 되는 상황이 바로 농업의 현주소입니다.


박석두 정책을 내놓는 시각은 이렇습니다. “‘업’도 아니고 ‘직업’도 될 수 없고 그거 가지고는 소득도 안 되니까 그만두세요. 그리고 지을 만한 사람한테 몰아주세요.” 논농사 같은 경우 큰 농가한테 몰아주고 규모 작은 농가는 손 떼라는 거고, 밭농사 경우도 ‘돈벌이가 안 되는 작물은 짓지 마세요, 기술이 좋은 것,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것, 첨단을 선도하는, 이런 형태의 농업하시는 분만 농사짓고 전통 농업을 하시는 분, 고령으로 시장 여건 변화에 적절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는 분들은 농사에서 손 떼세요’, 이런 거 아닙니까. 그러면 농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대로 갔을 때는 경영과 기술능력을 가진 소수 대규모 농가들만 ‘농업’을 하는 형태가 되겠지요. 과연 그렇게 될 거냐, 그게 바람직한가 하는 논란이 있을 수 있겠죠.


이태근  농촌이라는 곳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마을을 이루는 곳이에요.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고 애도 있고, 그런데 거기에서 이 사람은 경쟁력이 있고 저 사람은 경쟁력 없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어요. 농촌 안에서는 오히려 나이 드신 분들이 할 일이 훨씬 많거든요. 정책이 너무 천편일률로 간다고 생각해요. 어떻게든 잘 만들어서 돌아가도록 해야 희망이 있는데 정책 방향은 뭘 자꾸 꿰매려고 하는 거죠. 젊고 땅 많은 사람 중심으로 가는것이 바람직하냐, 그런 건 아니거든요. 지역이 잘 돌아가서 지역에 할 일이 있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정부가 지금 수출과 식품산업 이야기는 하는데 옛날에는 쌀이 남으면 그걸 빻아서 시장에서 팔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못 팔잖아요. 예전에는 닭이 알을 낳으면 노인네들이 시장에 가서 팔았단 말이에요. 거기서 닭도 팔고 토끼도 한 마리 갖다 팔곤 했어요. 지금은 시장이 다 죽었단 말이죠. 지역에서도 큰 시장이나 마트가 주도하고 있어요.



박석두 생태가 인간 이외 동식물이나 자연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인간이 빠지고 더군다나 사회가 빠진 채 생태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봐요. 인간이 살고 있는 공동체가 빠진 생태라는 건 생각할 수 없거든요. 한국농업 100년사를 한마디로 말하면 ‘농업은 발전했지만 농촌은 해체위기에 놓여있다.’라는 것입니다. 기술 발전과 생산성 면에서 보면 농업은 발전했죠. 하지만 ‘농촌’이 하나의 사회로 유지되지 못하고 공동체 문화와 전통이 하나하나 해체되고 깨지면서 마을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됐어요. 다원적 기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가운데 대부분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농촌에는 도시에서 밀려온 쓰레기문화만 있죠. 이런 식으로 농촌의 고유문화, 전통 문화, 향토, 인정 같은, 지금까지 농촌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다 사라졌어요.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농촌의 한 마을은 대략 50호 안팎인데, 지금  60퍼센트 정도는 60대 이상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그분들이 돌아가시고 충원이 안 되면 마을의 호수가 절반으로 떨어지겠죠. 그러면 농촌이 존재하겠는가, 마을이라는 게 남아 있겠는가, 마을이 약화됐을 때 마을에 살고 있는 농가들은 지금처럼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농업 정책은 산업으로서 농업을 전제하면서 ‘농업사회’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은 거예요. 앞으로 농촌 사회가 어떤 내용으로 존재할 것인가, 그 기능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해요.


이태근 생태라는 건 ‘지속가능한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고 봐요. 지속가능하려면 잘살든 못살든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살아야 하는데, 제가 보기엔 너무 큰 산업 위주로 하는 건 정답이 아니에요. 어디든 농사짓는 사람은 다 어려운데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우리는 농민을 농산물 생산하는 기능으로만 규정한다는 거예요. 다른 나라 경우는 농사짓고 스스로 가공하고 식당도 운영하는데, 우리는 농민들이 생산만 담당하고 가공은 다른 산업체가 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이게 실제로 우리 농업을 어렵게 만든 큰 원인이라고 봐요. 예를 들어 농가가 가공해 파는 것에 대해 괜히 사람들이 안전성이니 하면서 자꾸 막는 거죠. 다른 나라 경우는 ‘홈메이드’가 실제로 훨씬 가격도 비싸고 안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말이죠. 큰 기업들이 만드는 건 안전하고 좋을 것 같아도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생태 농업 실마리가 거기에 있다고 봐요. 농촌에 와서 생존이 되고 지속가능만 하다면 해결되는 게 많다고 봅니다.

생태와 농업, 이음 줄을 이의려면


박석두 서구에서 농촌이 발달해온 과정이나 농업이 가공업, 유통업으로까지 연결된 과정과 비교해보면, 우리는 식품산업 자체가 우리나라 농업과 전혀 상관없이 외국 자본에 의해 규모가 커지면서 농가에서 그런 싹들이 잘렸어요. 그 가운데 하나가 양조업이에요.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농가에서 술을 직접 만들었는데 일제가 세금 걷을 목적으로 하나하나 못 하게 막고, 나중에는 양조장을 허가해주면서 규제했어요. 일제가 망한 뒤에도 이런 틀을 유지했죠. 이렇게 전통주들은 사라져갔어요. 그 밖에 다른 것들도 대량으로 생산하는 식품 공장이 생기면서 가내수공업 방식의 가공을 위축시켰어요. 서구에서는 치즈나 와인 같은 식품 가공을 농가 단위로 하는 게 정착됐는데, 우리는 압축성장하면서 자본이 외부에서 들어와 장악해 버린 거죠.


이태근 사실 생태 농업이 가능하려면 돼지 몇 마리 키우면서도 생존이 가능해야 하잖아요. 이렇게는 생존이 불가능하니까 자꾸 기업 형태로 간다는 거죠. 유럽의 경우 돼지 몇 마리 키워서 햄 만들고 소시지 만들어서 팔아도 돈이 되거든요. 예를 들어 콩 농사지어서 그걸로 된장 만들고 간장 만들고 두부 만들어 유통할 수 있어야 우리 농가도 가능성이 있어요. 대기업들은 값싼 외국산 가져와서 만들어 버리니까 결국 악순환인 거죠. 농가에서 생산한 농산물로 만든 안전하고 좋은 먹을거리가 농업을 살릴 수 있죠.


박석두 소규모 농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식품 가공은, 시설 기준, 규모 기준 같은 걸 차츰 작게 만들어서 농가들도 할 수 있도록 조금씩 완화되고 있긴 합니다. 근데 문제는 과거 같으면 마을마다 그런 기능을 갖춘 사람들, 젊은 인력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토대 위에서는 그걸 발전시킬 수 있는 여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노령화됐고 그런 기능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내부에서 그걸 발전시킬 만한 토대를 잃은 상태거든요. 지금은 그런 구조를 재건해야 하는 상황인 거지, 바탕은 있는데 억제되어 있거나 토대와 기반은 있는데 제도로 막혀 있는 상태는 이미 지나버렸다고 생각해요.


이태근  평균수명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그분들 역할이 있을 수 있어요. 마을이란 기능을 조금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할 것 같아요. 실제로 농사는 기계를 가진 사람들이 짓지만 기계만 가지고 농사가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기계와 관계없이 하나의 구조로 돌아가기 때문에 마을 안에서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박석두 일본을 보면 영농을 하더라도 그냥 막연한 법인이 아니라 농촌 마을이 주축이 되고 마을이 경영체가 되는 걸 지향해요. 마을 단위로 영농을 하다가 나중에 법인을 만드는 식으로 발전하더라도 마을이 항상 유지되면서 거기에서 뭔가 이루어지죠. 예를 들어 50호 농가가 사는 마을이 있는데 거기에 젊은 농가가 들어오면, 짓던 농사를 젊은 농가에게 몰아주고 고령 농가는 임대료를 받아요. 젊은 농가가 영농 주체가 되고 노령 농가들은 부차 노동력을 제공하거나 임대료를 받으면서 상생하는 관계를 유지하죠. 노령농가들은 수확만 하는 게 아니라 등급도 매기고 외부로 출하할 때는 포장까지 책임지는 방식으로 하더라고요. 노령농가들은 무조건 농업에서 손 떼라는 게 아니라 적절하게 마을 안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자기 가치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이런 순환이 가능한 구조가 생태적 농업사회라고 생각해요.


이태근 농민들의 경험과 오랫동안 해왔던 기술 같은 게 공유가 잘 안 되고 있어요. 기계화되고 자본화되면서 우리나라만큼 엄청난 설비를 갖춘 나라가 사실 별로 없어요. 정부가 기계나 설비 만드는 데 돈을 지원하고 있죠. 실제 미국 농민들은 트랙터, 경운기를 오랫동안 써요. 일본도 똑같더라고요. 이제는 농민 스스로도 농사짓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낭비가 없는가, 이런 걸 좀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혼자 할 수는 없지만 역동성을 가지고 스스로 변화해야겠죠.


박석두 실마리는 농업과 과학기술 발전이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자본주의 시장경쟁체제가 점점 더 강하게 압박하는 상태에서 과연 농업과 농촌이 생존할 수 있겠는가, 생태적인 모습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게 아닐까 싶은데요. 전통농업에서 현대농업으로 오는 과정은 결국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왔다고 보는데, 지금도 과학기술 발전은 고수익, 고생산성, 고수확, 곧 어떻게 하면 가장 비용을 줄이면서 생산량을 늘리고 품질을 높일 것인가, 시장과 관계 속에서 이런 방향으로만 달려가고 있어요. 농촌사회와는 무관하게 말이죠.


이태근 결국 농업이 생태와 자꾸 멀어지면서 위기에 놓였어요. 엄청난 시대 변화 속에 시설 중심으로, 지금처럼 석유 없이는 농업이 안 되는 형태로 온 거죠. 그야말로 농업을 넘어선 상태라고 봐요. 생태와 농업이 정말 잘 결합하는 접점이 뭔지를 찾아내는 것 자체가 희망이 아닐까요. 그것 없이 엄청난 시설과 장비에 의존하는 농업은 한계에 부딪치죠. 정말 생태 농업을 한다면 우리 사회에 기여할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더 멀리 내다보면 그것이 지속가능한 형태가 되지 않겠어요?


박석두 서구에서는 기계가 노동력을 덜어주는 식으로 발전했다면, 우리는 품종개량이라든가, 비료 농약, 생화학 같은 기술로 발전해서 수확량을 높이는 쪽으로 나갔어요. 60~70년대 뒤로 기계가 도입되면서 노동절약 쪽으로 흘러왔고요. 환경파괴를 일으키는 생산요소를 외부에서 조달하는 농업생산 방식은 일제 강점기 때 화학비료 쓰면서부터가 아닌가 싶어요. 전통 농업은 외부 에너지나 외부 기술, 외부 생산요소 투입에 의존하지 않고 내부 순환 방식으로 조달하고 유기질 퇴비로 농사를 지었어요. 전통 농업은 순환이 있는 생태적인 방식이었는데 그게 불안정해져서 보완하고 해소하려다 보니 지금까지 온 거예요. 그런데 지금 와서는 그런 방식이 반생태적이고 농업 지속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인식하게 된 거죠. 그렇다고 기술이나 과학을 거부할 게 아니라 발전 방향을 친생태, 친환경, 지속가능한 형태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태근 쿠바를 예로 들면 생태 유기농업 기술로 식량을 상당 부분 자급해서 농업 쪽으로 성공을 거뒀어요. 기술이라는 건 전통기술과 과학기술이 결합해야 올라간다고 보거든요. 우리는 전통 기술이 무시되고 있는 거죠.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토양 상태가 열악한데 갑자기 화학비료나 농약 같은 게 들어오니까 상당히 효과를 보면서 사람들이 거기에 빠져버렸어요. 전통 맛에 미원이 들어가면서 입맛이 바뀌듯, 그 시기에 중요한 걸 놓쳐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 농업 핵심은 순환이었는데, 그 시기에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면 농업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겁니다. 도시에서 버리는 유기물, 음식물도 중요한 순환 자원인데 도시에서는 에너지를 투입해서 버려야 하고, 농촌에서는 자체에서 순환이 안 되니까 외부에서 유기물을 가져와서 농업에 투입하는 엄청난 악순환이 이어지는 거죠. 도시와 농촌이 잘 결합한다는 건 도시의 유기물이 농촌의 순환 속에 잘 들어가는 것도 포함해요. 농촌이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순환체계가 되면 도시가 어려워질 때 사람들이 농촌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기도 생기고 일자리도 만들어진다고 봐요. 그게 바로 생태적 순환이 아닐까요.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어떻게 결합해 낼 것인가가 중요해요.



박석두 예전엔 먹을 게 없으면 산속에서 열매도 따먹고, 그러면 산이 품어주고 농촌이 품어주고 그랬거든요. 농업이 경제공황기에 완충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 농촌도 그럴 여력이 충분하다고 봐요. 노령화되고 인구가 빠져나가 텅텅 빈 상황에서 넘쳐나는 도시 인구가 적절하게 되돌아가서 공동체를 회복해 사는 게 전체 문제를 해결하고 농촌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도시 빈민이나 실업자들한테도 좋은 삶의 터전이 생기지 않을까요. 문제는 시장 상황인데요, 사람들이 지금까지 관행과 일반 흐름에서 벗어나기 두려워하는 거죠. 농민들도 마찬가지로 그래서 관행농법으로 생산하게 되고, 유기농을 할 경우 어려움을 겪잖아요. 정부나 과학기술 연구자들이 보다 손쉽고 보다 안정성 있게 관행농법을 대체할 수 있는 생태 농업기술을 제시해야 농민들이 쉽게 채택하고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태근 결국 농업은 생산력이 중요한데 생산력이라는 건 대부분 기술과 연결된 게 아니겠습니까. 기술은 여러 방식으로 채택하고 현장에 기초해서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야 하는데 외부 기술을 무조건 가져와서 적용하는 것은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현장하고 정책이 따로 노는 게 우리 농업이 가진 가장 큰 문제예요.

생태적 바탕을 잃은 농업, 미래가 있는가


이태근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이 26,7퍼센트로 상당히 심각한 수치입니다. 사회 전체로 봐도 위기인데 우리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걸 위기라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과연 세계에서 식량문제가 어렵게 되었을 때 우리 먹을거리가 지속가능한지를 본다면 지금 도시 사람들이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해요. 지금처럼 ‘농업이 걸림돌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들이 앞서 가더라도 실제로 걸려 넘어지고 못 나아가거든요. 선진국 이야기하지만 농업 부문이 지금 같은 상태로는 갈 수 없어요. 결국 국민들이 농업에 대한 시각, 먹을거리에 대한 생각을 뿌리에서부터 바꿔야 해요.


박석두 농업을 단순히 농사짓는 사람들의 직업, 돈벌이 내지는 생계 수단으로  생각하는데 사회와 국가 전체로 보면 농업이 갖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먹을거리를 생산해서 안정되고 값싸게 누구나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입니다. 만일 농업을 농민의 생계수단 정도로 생각한다면 농업 안 해도 되겠죠. 좀 더 돈벌이 잘되는 게 있으면 농사짓지 말고 다른 데로 가면 되잖아요. 심하게 이야기해서 돈벌이 되는 농업 찾자, 이게 농업 정책 중심이 되면 정말 망한다고 생각합니다. 농업이 농사꾼들에게는 생계수단일지 모르지만 국가와 사회 유지를 위해서는 먹을거리 기반인데, 그 점을 중심에 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농사꾼들을 위한다는 이름 아래 생계수단정도로 농업을 생각한다는 거죠. 세계 식량위기가 닥치고 어떤 나라에서는 식량이 부족해서 폭동이 발생하는데, 식량자급률 26퍼센트 수준인 나라에서 농업정책이 식량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돼요. 왜 식량자급률이 이렇게 떨어졌느냐. 농민들이 생산 안 하기 때문입니다. 돈벌이가 안 되기 때문이죠. 결국 시장, 돈벌이, 이런 식으로 다시 귀착된단 말입니다. 이게 문제 핵심입니다. 식량 작물을 생산해서는 돈벌이가 안 되는데 식량 작물은 우리나라에 꼭 필요하다, 그럼 정책은 식량 작물이 유지되도록 시장실패 부분을 보완해주고 해결해줘야죠. 그게 농업정책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거든요. 그래야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탕이 되는 농업이 살지 않겠어요? 그런데 쌀농사, 식량작물이 천덕꾸러기가 된 겁니다. 이게 안타까워요.


이태근 쌀값이 지금 15만 원 정도인데 제가 보기엔 최소한  30~40만 원 정도는 해야 해요. 국민 생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한 사람이 1년에 쌀 한 가마, 80킬로그램밖에 안 먹거든요. 따져보면 쌀값이 엄청 싸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박석두 밥값이 사실 커피 값보다 싸니까요.


이태근  지금까지는 외국산에 비해 비싸다고 단순 비교했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가 여부가 여기에 달려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논에 골프장 짓자는 사람들 논리가 맞을 수도 있는 거죠. 우리 사회가 생태적으로, 농업 면에서 지속가능하려면 그런 마음과 결단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박석두 자유무역론자나 시장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해요. 품종이 같은 쌀을 캘리포니아나 호주에서 생산하면 같은 품질의 쌀이 25퍼센트 가격으로 생산되니까 그 쪽에서 생산하고 우리가 수입하면 훨씬 싼 값에 먹을 수 있는데 왜 고집하느냐.


이태근 그건 작년에 정리가 됐지 않습니까. 그 논리가 지금까진 맞는 것 같았는데 기름 값 오르기 시작하면서 곡물 가격이 같이 엄청나게 오르고, 지금은 이미 쌀값이 비슷해지고 있잖아요. 어느 정도 증명된 거죠. 단순하게 보면 예전에는 중국에서 사다 먹는 게 훨씬 이익이었지만 이제 중국도 모자라기 시작했어요. 정책 세우는 사람들이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해야겠죠. 미국도 망하는 판인데. 우리 식량자급률이 25퍼센트라는 위기를 인식해야지요. 휴대전화, 자동차 팔아서 영원히 먹고살 수 없다는 게 증명이 되고 있잖아요.


박석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정작 돈 주고도 못 사는 경우가 생길 수 있겠죠. 세계 식량 생산 추세로 봤을 때 더는 늘어나기 어렵고 오히려 수요가 늘면서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식량부족 사태가 생겨날 수 있어요. 국내 농지가 180만 헥타르 정도 되는데 그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이 논이에요. 벼 재배 면적이 줄어 만약 그 논에다 벼를 못 심는다면 뭘 할 거냐, 어떤 작물을 심을 거냐, 아니면 놀릴 거냐. 이런 문제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 국내 자원 유휴화가 심각하게 초래될 거라는 거죠. 만일 쌀농사가 위축되거나 위기에 처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회 혼란이 발생할 수 있어요. 농업의 미래, 해결책, 대안과 관련해서는 지금 농업 자체가 위기에 처해 있고 농촌 해체 또는 시장경제에 내몰려 맞닥뜨리는 어려움이 있는데 결국 그걸 뛰어넘거나 극복하는 대안이 가장 중요하겠죠.

다시 농촌마을 공동체에서 길을 찾다


이태근 저는 졸업하고 바로 시골에 갔어요. 벌써 25년 됐네요. 젊은 사람들은 시골이 어렵다 하지만 시골에서 할 일을 찾으면 엄청난 일들이 있거든요.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죠. 어렵기 때문에 가능성은 더 많고 젊은 사람들이 역할을 하면서 지속가능한 농촌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농촌에 대한 대대적 인식전환이 필요해요.


박석두 농업이 사실 쉽지는 않아요. 농산물 생산이 통제 안 되고 자연재해가 하루아침에 닥치니까, 노동 자체가 힘들죠. 그래서 지금까지 과학기술 발달은 농업을 어떻게든 자연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사람이 통제해보자는 식으로 흘러왔어요. 공업생산은 그야말로 사람에 의한 통제잖아요. 농업을 공업 시각으로 접근한 건데, 결국 농업은 자연에서 멀어지고 반생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농업의 미래는 이러한 기로에 있다고 봐요.
그리고 농촌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나 가치, 현재 우리가 처한 농업의 어려움을 벗어나는 길을 이야기하면 다들 성공사례를 보라고 해요. 성공사례면 빤한 거 아닙니까. 가혹한 시장경제 속에서 뚫고 이겨내고 살아남은 한 사람 얘기죠. 백 명 가운데 99명은 어디로 갔는지 이야기하지 않고 한 사람만 이야기해요. 그런 성공사례를 쫓아 경쟁의 블랙홀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반대로 경쟁 그만두고 여럿이 더불어 협력하는 체제로 바꿔보자는 쪽으로 생각해볼 수 있어요. 농촌에 사는 장점이 훨씬 많이 있는데, 도시의 풍요와 편리함, 삶의 양태를 쫓아가려고만 하니까 안 풀리는 거죠. 도시는 다 사먹어야 하고 안심할 수 없고 누가 어떻게 길렀는지 모르지만, 농촌에 오면 내 손으로 가꿔서 내가 먹는다, 이런 다른 풍요가 있다는 거죠. 농촌이 이런 부분을 스스로 누리고 긍지를 가지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농촌과 도시가 서로 상생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봐요. 도시와 다른 삶의 모습, 다른 공간을 창출하자는 거죠. 그런 점에서 보면 마을 만들기, 귀농 이런 것들이 일맥상통한다고 봐요.



이태근 여러 대안을 만드는 움직임이 있지만 이런 일들이 개인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가 중요해요. 결국 개인이 지속가능한지 아닌지 문제인 거죠. 아무리 조직이 잘된다 하더라도 그게 나한테 얼마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느냐 하는 문제거든요. 결국 개개인 삶이 어우러지면서 사회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지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죠.


박석두 개별로는 힘들어요. 공동체 운동이나 연대 같은 게 필수로 있어야만 가능한데.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엔지오나 공동체 운동, 생협 운동 같은 것들은 정책이 경쟁, 성공사회, 돈벌이 위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반시장,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환경 같은 형태로 가거든요. ‘실제 대안은 어디에 있는가, 과연 경쟁 굴레에 들어갔을 때 희망이 있겠는가, 가능성이 있는가, 한국 농업은 지금의 어려움을 계속 가지고 갈 텐데 과연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그걸 향해 끊임없이 치달려 가는 게 옳은 것인가’를 묻는 거죠.


이태근 현재 농촌에서 농사만 지어서는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농촌형 사회적기업이 활성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기농, 생협 같은 것도 어떻게 보면 다 농촌 중심이라기보다는 도시를 우선으로 한 발상이잖아요. 도시의 틀 속에 농촌이 종속되어 가는 건데, 제가 보기엔 농촌형 사회적기업, 그야말로 지속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면 전체 고용 가운데 상당 부분을 흡수할 수 있어요. 농촌에서는 임금이 엄청나게 높지 않아도 먹고사는 것이 가능하니까요. 농사만 지어서 버티는 건 여러 어려움에 이미 봉착해 있기 때문에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방식을 도입하면  새로운 농촌형 모델이 되지 않을까요.


박석두 농촌 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건 사람이 없다는 것, 준다는 것, 앞으로 더 많이 줄 거라는 것이죠. 그러면 사회가 이완되고 해체되는 과정으로 돌입하는데, 다시 되돌리긴 어려워도 그 상태에서 사회가 해체되지 않고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동으로 협력해야 해요.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농촌에 비농업 분야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지금 농촌 개발에서 핵심은 도로 놓고 다리 놓고 하부구조를 설치하는 사업이 아니라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인 거죠.



이태근 일자리만 만들어주면 젊은이들이 들어옵니다. 농협이나 영농조합법인이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한 가구에서 한 사람만이라도 채용한다면 농업을 유지하면서도 지속가능하거든요. 농촌에서 결국 지속 가능하려면 겸업 형태로 사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박석두 지역에 있는 공기업은 인건비를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기업 운영 못 합니다. ‘인건비는 고용이다, 그만큼 고용효과라고 생각해라.’ 그것이 농촌에서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합의점이에요. 그런 공감대 없이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농촌에서 기업을 하거나 일자리를 만들면 지방 재정에서 인건비에 해당하는 운영비를 지원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농협이 회사를 세울 수도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공기업을 세울 수도 있어요. 사회적기업 형태로 공공서비스를 민간이 제공하면 지방재정이나 국가재정이 운영비 일부를 지원하는 방식을 포함하는 거죠. 적자 나는데 왜 저걸 계속 하고 있느냐, 이런 개념으로 바라보면 지방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없을 거예요. 농촌에 꼭 농사꾼만 살아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전업농이 있고 겸업농, 부업농, 여러 가지 농가 형태가 있을 수 있어요. 농촌의 농업기능은 농업만 하면서 먹고살 수 있는 전업농이 규모 있게 담당하면 되는데, 그런 사람들만 가지고 농촌이 꾸려지지 않잖아요. 농촌에 적절한 인구가 있어야 하고, 농업 외에 다양한 직업군이 어우러지는 사회가 유지되어야 해요.


이태근 동의합니다만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고 봐요. 당장 농촌 자체가 지속 불가능한 사회로 가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맞게 적절하게 배치하고 대안을 만들고 정책으로 뒷받침해야 해요.


박석두 사실 농업은 소기업이나 마찬가지거든요. 농가라기보다는 ‘농업 경영자’라고 부르잖아요. 농업이란 농사를 가지고 사업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외부에서 들어와 농업을 시작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창업을 하려 한다는 점 때문이에요. 농업기술이나 경영능력도 없고 시장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 채 농업을 경영할 수는 없는 시대거든요. 창업이 아니라 취업을 통해 농업에 참여하고 지방에 이주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태근 몇 년 전에 프랑스에 간 적이 있었는데, 프랑스 농민들이 한국 농민들은 어쩜 그렇게 애국자들만 모였느냐 하는 거예요. 자기들은 절대 길 닦아 달라, 집 지어 달라 얘기 안 한대요. 그런 건 당연히 국가가 할 일인데 왜 우리가 그걸 해달라고 요구하는 거냐. 전체 국가 차원에서 필요해서 하는 것인데 우리는 정작 스스로 먹고살기도 어려우면서 남의 것만 고민하는 거예요. 현장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생존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식량 자원 이야기해봐야 쫓겨나는 판인데 말입니다. 좀 더 현실 차원에서 스스로가 지속가능한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아요.


박석두 농지에 농사 안 지으면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 자연 상태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나라 전체에 농사를 안 짓는 상태가 가능할까요? 어떤 특정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불가능해요. 지금 농촌에 사람이 줄어들고 휴경 농지·유흥 농지도 많이 생기지만, 농업생산기반이 정비된 농지들은 다 경작을 하고 있거든요. 앞으로도 방식은 달라지겠지만 경작은 될 거예요. 그 동네 사람이 아니고 출입경작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지겠죠. 꼭 그 동네 사람이 아니고 그 동네 살지 않더라도 농사는 짓는다는 거예요.


이태근 기업농이나 대농들은 지금도 지속가능하고 버텨갈 수 있어요. 문제 핵심은 소농 구조에 있는 사람들이 지속가능한지의 문제거든요. 소농이 유지되어야 하고 이 사람들이 먹고살아야 한다는 거죠.


박석두 호당 평균 7백 평 농사짓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180만 헥타르농지를 다 농사짓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많은 농가가 있어야 하겠습니까? 여러 유형의 농가가 존재하고 주축이 되는 형태가 있는가 하면 부차적인 형태도 있을 수 있어요. 전업농이 주축이 되겠지만, 소농도 살고 농사 안 짓는 사람도 살아야 해요. 앞서 말한 대로 농사 아닌 다른 여러 형태 소득원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태근 말씀하셨던 생산뿐만 아니라, 가공에서 유통까지, 내 농산물을 직접 파는 여러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 사회적기업 구조를 도입하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거죠. 젊은 사람들이 취업 형태로 들어가서 비전이 있으면 창업을 하고 여러 방식을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한 가지 방식으론 답이 없어요.


박석두 저는 ‘인간을 위한 생태학’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농촌 사회가 유지되고 농촌 공동체가 유지되는 것이 생태적이라고 보는 겁니다. 사실 농촌 마을이 없어도 농업은 할 수 있겠지요. 미국 농촌에는 마켓타운이 있고 농장 한가운데 농가가 있을 뿐 농가로 이루어진 마을은 없습니다. 우리 농촌은 40호, 50호가 모여 있는 집촌 형태예요. 농촌에 공동체 모습이 남아있고 유지되면서 거기에 농업이 결합되는 형태가 건강한 모습이죠. 그러려면 적절하게 도시에서 농촌으로 인구 이동이 이루어져야 해요. 농촌만 떼어 놓고 보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로 농업과 농촌이 도시 또는 비농업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가를 보았을 때 도시인구의 이동은 결국 도시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죠.



이태근 농업과 생태가 밀접하기에 지속가능한 소농들이 정말 친환경 유기농업을 하면서 지역을 환경적으로도 잘 만들어가는 데 관심을 두는 것이 절실해요. 그런데 국가 정책은 상당히 기업 방식으로 가버리기 때문에 문제의 골이 깊어지는 거죠. 앞으로도 우리나라 농업 구조는 도시와 농촌이 서로 협력해야 하고, 농업 내부 빈부 격차 문제도 해결하려면 새로운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어요. 그야말로 모두가 고르게 지속가능한 생태적 농업사회인거죠.


박석두 농업은 본래 생태적인 것이자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생태파괴적인 형태로 점점 변화해 왔어요. 농업이 주도해서 변해 왔다기보다는 수동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긴 했지만, 과학기술 발달과 시장 상황 같은 여러 여건 변화에 따라 농업, 농촌이 반생태 요소를 점점 강하게 띨 수밖에 없었어요. 게다가 농업과 농촌은 해체 위기에 놓여 있어요. 그렇다고 옛날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과학기술을 거부할 수도 없잖아요. 결국 더불어 가야하는 거죠. 정책도 뒷받침되어야 하고, 스스로 풀어가는 운동도 있어야 하는데, 지금 정책으로는 생태적 농업과 생태농업사회를 기대하기 어려워요. 모두가 절박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시각을 바꾸고, 발상을 전환할 때인 겁니다. 모두의 생존이 달려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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