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울린 민주콩고 난민 소녀, 엄마 찾았다

2008. 11. 20. 10:22관심사

지구촌 울린 민주콩고 난민 소녀, 엄마 찾았다!

한국일보 | 기사입력 2008.11.20 03:05


'세살 조카 업고 엄마 찾아…'
전쟁의 비극 보여준 AP통신 사진… 세계인의 안부 묻는 이메일 쇄도
기자가 직접 戰線 누비며 수소문…생이별 보름 만에 '극적인 재회'

소녀는 울고 있었다. 엉엉 우는 어린 여자아이를 등에 업은 소녀는 힘에 겨운 듯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다 떨어진 셔츠로 닦고 있었다. 행여 등에 업힌 아이와 헤어질까 봐 서로의 몸을 묶은 스카프가 마른 목줄기를 감고 있었다.

 

 

내전에 찌든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ㆍ옛 자이르) 동부의 난민촌 키완자에서 11세 소녀 프로테제와 그의 세살 난 조카 레퐁스는 그런 모습으로 6일 AP 통신 사진기자 제로미 들레이의 카메라에 잡혔다.


프로테제는 3일 전 엄마와 함께 키완자에서 20㎞ 떨어진 고향 마을 키세구루를 떠나 피란길에 올랐었다. 하지만 도중에 엄마를 잃어 버렸다. 3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프로테제는 더 어린 레퐁스를 업고 난민촌으로 흘러 들었다.

1980년부터 분쟁지역을 취재해온 들레이 기자가 찍은 이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전세계에서 두 소녀의 안전을 묻는 이메일이 그에게 쇄도했다. 엄마를 꼭 찾아줬으면 하는 소망을 담은 글들을 읽으면서 들레이 기자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취재를 미루고 프로테제의 엄마 찾기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엔아동기금(UNISEF)에 따르면 민주콩고 내전은 이미 25만명의 난민을 냈고 지난 주말에만 1,600명의 아이들이 피난길에 부모와 헤어졌다. 더구나 가족관계 기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민주 콩고에서 피난길에 오른 프로테제의 엄마를 찾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그런 난관도 "내 어린 딸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면못할 게 없다"고 다짐한 들레이 기자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들레이는 중무장한 반군과 정부군이 대치하고 있는 위험지대를 뚫고 프로테제의 고향 키세구루에 도착했으나 어떤 성과도 얻지 못했다. 다시 90㎞ 떨어진 고마의 유엔 난민대피소를 찾아가 프로테제의 사진을 난민들에게 일일이 보여준 끝에 프로테제를 처음 발견했던 키완자의 한 종교단체 대피소에 그녀가 수용돼 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다시 키완자로 가 그녀를 찾았으나 그녀의 반응이 들레이 기자를 어이없게 했다. "이 곳에서 프로테제를 만났지만 여기도 안전하지 않은 것 같아 다시 조카와 단둘이 고향으로 되돌려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은 몸이 아파 함께 갈 수 없었다며 힘없이 주저앉았다.

들레이 기자는 17일 이번에는 어머니를 차에 태워 다시 한번 사선을 뚫고 키세구루로 가 모녀의 재회를 성사시켰다. 생후 2개월 만에 아버지를 내전으로 잃었던 프로테제는 에스페랑스라는 이름을 지닌 엄마를 본 순간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었다고 들레이 기자는 전했다. 에스페랑스는 불어로 희망을 뜻한다.

프로테제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조카를 업고 12일 고향에 도착했었다. 그러나 고향의 형제와 친척들은 이미 이웃국 우간다로 피난을 떠나버려 어린 조카와 단둘이서 작은 움집에서 5일 동안 어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내전은 그렇게 어린 두 소녀를 방치하고 있었다.

민주콩고 내 후투ㆍ투치 두 부족은 1998년 풍부한 지하자원을 노린 외세의 부추김 속에 내전을 시작한 이래 54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2006년 유엔의 개입 속에 민주정부가 수립됐으나 올해 8월 투치족이 중심이 된 반군이 대규모 공세에 나서면서 다시 내전의 격랑으로 빠져들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