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Rome...

2008. 8. 15. 07:46관심사

Rome... 

 

지도상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이탈리아는 알프스로부터 시작해 지중해 한가운데로 길게 뻗어 있는

굽 높은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와 두 개의 큰 섬, 사르데냐와 시칠리아로 이루어져있다
 

1. 파리에서.
 시차가 7시간이 나서 아 침에 출발하여 12시간을 왔는데도 낮 2시이다.  7시간 벌었단다. 
인생이 '시간 보내기'라면 별로 안 반갑다.  아! 되돌아 갈 때 다시 그만큼 잃어 버리면 된다!  역시.. ^^;
이코노믹 클라스의 창가 자리에서 12시간을 꼼짝도 못하고 갇혀 있으면서
여행을 형벌같이 느낀 건 나의 소심함 때문만은 아니리라.
중간 경유지인 파리 드골공항은 향기로왔다.  아예 출발 라운지에 화장실을 두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랫층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는데 그곳조차도 어느 공항보다 향기로왔다. 
라운지의 프랑스 노부부가 참으로 여유롭고 우아하였다.  항상 다정한 노부부를 보면 넋을 잃는다. 
나이가 들수록 '노추'가 두렵다.  부디 제게 아름다운 노후를 주소서...
 
포로 로마노의 전경.. 
 

 
2.백야의 Rome.
파리에서 두시간 작은 비행기로 Rome에 왔다. 
로마공항의 입국장에서 마중나온 사람들을 보며..
여기 情人이 있어 머무를 수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건 여행자의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백야의 유럽은 환한 저녁으로 여행자를 맞이 하였다. 
마의 상징인 우산소나무가 가로수로 도심에 줄지어 있었다. 
길 양쪽에 이 소나무를 심어 놓으면 짙은 그늘이 가운데로 모아져서
전쟁에 지친 로마벙사들이 길을 잃지 않고 일사병에 걸리지 않게 그 그늘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한다.
현재의 우산소나무는 무솔리니가 심어 놓은 것이라 한다.
 
 
 
 
대형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Colosseum)
-부활절 밤에 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집전하신 십자가의 길이 이곳에서 촛불 속에서 진행되었다.
경기장 바닥에 대형으로 설치된 빛의 십자가.. 엄숙한 감동으로 가득 찼던 콜로세움의 밤이었다.
 
3. 신새벽의 Rome.
 시차적응이 안되어 가이드의 예언대로 새벽 세시에 잠이 깨어 버렸다. 
발코니로 나가 야경에 불타는 로마시내를 네로황제인양 내려 보았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새벽 4시에 HTL Lobby로 내려가니 메이드들이 열쒸미 청소를 하고 있었다. 
五星 HTL이라 덜 이탈리아 다운 것일까..  Cavalieri Hilton HTL은 유럽에 있는 Hilton 중에서도 제일 고급으로 친다 하던데.. 
사순절에 찾은 로마는 HTL Lobby부터 숙연하였다.  Lobby 장식이 예수부활의 테마였으니.. 
부활절 계란을 크리스마스 츄리처럼 나무에 달아 놓은 Lobby 중앙에 꾸며 놓은 우리 안에는
꼭 서른마리의 아기 병아리가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며 옹기종기 자고 있었다.
[세어 보았다! 분명 서른마리였으며 그 숫자의 의미는 잘 모르겠다] 
국교가 가톨릭이니 사순절기간에는 상가도 많이 철시하고 도시가 -관광지임에도- 예수수난의 고통을 함께 나눈다 한다. 
순수했던 어린시절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며 울었던 적이 있다..
로마에 온 첫 날 신새벽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바티칸을 찾아 왔는가?  여행을 준비하며 찾은 변명은 '이별여행'이다. 
또 하나의 변명은 인도에 가면 일상으로 다시 못 돌아 올 것 같다는...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마음을, 삶에 대한 두려움을 다 벗어버리고 돌아 갈 수 있을까...
 
슬픔은 멍게와 같다. 
꼭 멍게 만한 것이 가슴에서 목울대로, 목울대에서 두 눈속 깊숙히 불끈불끈 올라오면 그 뜨거움에 많이 아파한다. 
조금만 작아지면 좋을거 같다. 그 슬픔의 덩어리가.. 이번 여행을 통하여 보다 성숙해지고 단단해지기를 기원한다.
 
4. 돌아오라 소렌토로  (Come back to Sorrento)

변하지 않기에 아름다운 도시 나폴리로 향했다. 
2천년 전의 길을 그대로 쓰며 로마시내의 건물들은 최소한 200年 이상은 되었다나..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린 가로수가 정물화처럼 서있고 침엽수가 울창한 납골당이 큰사원처럼 펼쳐져있으며
수려하고 장대한 우산소나무 사이로 도시의 모든 것이 곧 박물관이었다. 
아테네 여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는 올리브 나무의 파스텔 톤이 이태리의 산야를 안개에 젖은 듯 보이게 하였다.

이태리인들은 상대방을 좀 알게 되어야 미소를 짓는다. 
서구인에 비하여 우리도 표정이 많이 경직되어 있는데 이태리에 오니 -
그들의 무뚝뚝함은 그 안의 뜨거운 정열을 충분히 가려주는 강한 자존심으로 다가왔다.  
길에서 마주치는 이태리 연인들의 뜨거움을 보라!
시공이 멈추어 버린 그 자리에서 상대방의 눈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두 연인의 무아지경 포옹은 순간 도시를 진공상태로 몰아 넣으며 이방인의 지친 가슴도 같이 안아주는 듯 하였다.
자신의 삶이 어디로 향하여 달려 가는지 사색하며 사는 사람들.. 양비론이 발 디디지 못하는 정열적인 나라..
 
평화롭고 고요한 소렌토(Sorrento) 
 
나포리의 산타루치아 해변은 우리나라 남해안같이 아늑하고 예뻤다. 
절벽위에서 내려다 본 소렌토의 바다 또한 절경이었다. 
미항의 조건은 물이 깨끗하고 깊고 주변경관이 아름답고.. '쭈쭈빵빵'이 많아야 한다나..
아하! 해운대가 세계의  미항에 속하지 못한 결정적 요인은 내가 넘 자주 가서 인가.. 하하..
 
5. 폼페이 그 폐허에서..
 
번영을 누렸던 도시 폼페이가 화산재 밑에 묻히던 날
 
 
 어느 잔인한 역사가가 그리 말하였다던가..
역사를 가장 리얼하게 보존하려면 한순간에 화산재로 덮어 버리라고..
성난 베수비오 화산 아래 독가스와 화산재와 뜨거운 화산자갈로 모든 것을 덮어버린 폼페이는
그 폐허 속에 그렇게 존재하였다.  이제야 1/10 이 발굴되었다는데 그 일부분이라는게 장장 60 헥트아르였다. 
 
 폴란드 화가 백친스키 (Zdzislaw Beksinski)의 작품 
 
로마는 파는 곳마다 유적지여서 이미 발굴된 유적지도 다시 아래로 파내려 가면 더 오래된 또 다른 유적지가 나온다 한다. 
무심한 관광객들은 -이태리는 조상 잘 둔 덕에 먹고 산다 하지만 그 장구한 세월의 역사를 어찌 그리 폄하하겠는가..
 
 폼페이의 귀부인. 당시의 생활 수준을 한눈에 보여준다.
 
다이제스트의 폐혜를 짚었던 것처럼 빠르고 정교한 공중파 방송의 폐혜도 그와 같지 않을까.. 
TV에서 쉽게 접한 폼페이 유적이 차라리 선명하여 인파에 휩쓸리며 어수선하게 지나가는 Tour는 그 맛이 덜하였다. 
 
 
 
'그 여자의 집'이라 '애칭'한 그 곳도 이미 TV를 통하여 본지라 -
그 희미한 벽화의 음란함도 별무미 하였으니 이는 은은한 감동을 잃은 현대인의 비애라할까..
 
6. 바티칸. 그 엄숙함이여..
 
 
 
 
바티칸 박물관
 
전세계에서 가장 작은 도시국가 (0.44 평방 키로미터) 인 바티칸시국은 종교와 권력과 부의 상징처럼 보여졌다. 
바티칸으로 들어가는 줄이 끝도 없이 돌아가며 조각같은 바티칸 경찰들의 '쉿!' 하는 함구 명령에
숨도 크게 못쉬며 끝없이 끝없이 밀리며 바티칸을 체험하였다. 
사순절의 바티칸은 부활절을 기다리는 가톨릭신자들의 염원으로 보다 부산하고 설레임으로 가득하였다.
 
1,400개의 방으로 구성된 웅장한 바티칸궁에 속한 바티칸 박물관은
고대 예술품들과 이탈리아, 유럽의 수많은 회화들로 감동의 결정체였다.
미술책에서 많이 본 '라오콘'(뱀에 휘감겨 고통받는 사제 라오콘과 두아들)이 압권인 고대로마관,
벨베데레의 '토르소'는 팔다리가 잘린 몸통만의 조각을 구한 교황이 미켈란젤로에게 그 조각의 완성을 요구하자
고심하던 미켈란젤로가 그 조각 자체가 너무 완벽하여 손을 댈 수가 없다고 고사하여 그대로 보존 되었다 한다. 
라파엘의 프레스코화는 눈부신 색의 아름다움이 있었으며
레오나르드 다빈치, 죠반니니 벨리니, 반다이크.. 등의 거장들의 작품들도 큰 감동을 주었다.
 


시스틴 소성단의 천정화 -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중 압권은 시스틴 소성당의 천정화인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벽화인 '최후의 심판'이었다.
미켈란젤로가 젊고 아름다운 시기에 4년여를 그 엄청난 공간에서 불편한 자세로 매달려 그린 천지창조는
당당한 나신들의 모습과 등장하는 각기 다른 그림들로 '원죄에서 구원까지' 의 이야기를 평면도법으로 광범위하게 소개한다. 
 
 
그 중 '아담의 창조'는 하느님의 손가락과 첫 인간 -아담의 손가락이 거의 닿음으로서 생명을 탄생시키며
스필버그 감독의 ET의 모티브가 되었다 한다. 
 
 
미켈란젤로가 종교적으로도, 인생에서도 내리막을 경험한 장년이후 노년에 가까운 시기에 그린 최후의 심판은
거의 나체인 등장인물들이 당당하고 근육질로 그려져 있으며 이 장면은 회오리 바람이 부는 듯한 인상을 주며
또한 심각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의 걸작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운명과 초자연적인 인간의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7. 자유로움과 낭만의 하루
 결국 피렌체 Tour를 포기하고 Rome 시내에 남았다. 
단체관광의 한계를 벗어 버리고 자유로움과 낭만의 하루를 즐겼다.
 
비가 오는 Rome 은 아름다웠다. 
걷고 또 걷고.. Bus를 타고.. 비가 오는 노천 카페에서 진한 커피를 마시고..
밥생각이 간절하여 찾아 낸 조그마한 중국레스토랑에서 먹은 뜨겁고 짭잘한 새우볶음밥과 완탕의 기가막힌 맛의 조화..
이태리인들은 반도국가라 그런지 우리나라 사람들과 통하는 데가 많았다. 
우선 보행자를 배려 않는 다혈질의 운전 스타일이 그러 하였으니..
 
 
 성 베드로 광장
 
 
 
어제 놓친 성베드로 성당이 압권이었다. 
아침일찍 가서 부활절 미사를 준비 중인 성베드로성당을 가슴에 담았다. 
-미켈란젤로가 없었으면 오늘의 Rome 은 없었으리라.. 미켈란젤로의 돔은 웅장하였으며 장엄하였다. 
성당의 길이는 전장이 210m 이며 돔의 높이는 136m 라 하였다.
 
 미켈란젤로의 비탄 (Pieta)
 
성당입구의 미켈란젤로의 '비탄'은 그가 20대 중반에 조각한 것으로
성모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를 안고 있는 대리석 상이다. 
모성애를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를 상대적으로 거대하게 표현한 데서
미켈란젤로의 천재적인 예술성을 엿볼 수 있다. 
[33세의 성인 남성인 예수의 키를 생각컨대-
이렇게 성인 예수를 어린아기처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는 거의 4미터의 키로 추측이 된다고 한다.]  
 
6세에 어머니를 여읜 미켈란젤로가 그려낸 성모마리아는 젊고 아름다운 처녀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너무 일찍 잃어버린 안타까움'이 아닐까..
질리도록 누린 사랑은 이미 퇴색되어서 아름다움을 상실하는 것이 아닐까..
성베드로 성당에서 느낀 나의 영혼의 가장 깊은 상흔은 '죄책감'이었다.
 
베르니니 광장의 Tomas Cook 앞에서 HTL 셔틀을 탈 때 까지 나는 진정한 방랑자였으며 그건 아름다움이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고 
삶이 아름다운건 죽음이 숨어 있어서이고
사랑이 아름다운건 시작할 때 부터 이별을 안고 있어서이고
여행이 아름다운건 돌아 올 일상이 기다리고 있어서 라던가..
비오는 Rome의 쓸쓸한 방황을 끝내고 HTL로 돌아와 대리석 욕조에서 뜨겁고 사치스러운 목욕을 오랫동안 하였다.
 
 그리고..
 Rome을 떠나기 전에 성베드로 성당을 다시 찾았다.  미켈란젤로의 '비탄'을 다시 보고 싶었다. 
 
 
神이 있다면 '비탄'의 성모마리아 처럼 크고 넓게 人間을 품어 주리라..  죄책감을 안고 돌아가긴 싫었다. 
그런데 결국 이른아침에 다시 찾은 성베드로 성당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혼돈을 느끼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공항까지 Rome은.. 끝없이 우울하였다... 그리고 와인에 젖은 도시 파리로 향하였다..


PS : 좋은 사진들은 여러 사이트에서 펌하였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이 인물위주였구 멋진사진을 많이 못남겨서.. 양해바랍니다.



Beethovens Silence / Ernesto Cortazar
 
*출처: 사람 사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