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외통부 장관 지낸 송민순 민주당 의원

2008. 7. 27. 13:33정치

"이명박 정부 외교는 설계도 없는 공사현장
늦었다 생각말고 '현인그룹'에 자문 구해야"
[인터뷰①] 외통부 장관 지낸 송민순 민주당 의원
김태경 (gauzari) 기자황방열 (hby) 기자
 
  
참여정부에서 마지막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민주당 의원
ⓒ 유성호
송민순

 

"이명박 정부의 외교현장은 설계도 없는 공사장 같다. 더구나 설계도 없이 공사 하면서 공기 단축에만 애를 쓴다. 잘못하면 '실용(實用)'이 아니라 '실용'(失容·face-losing)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릇 깬 사람이 그릇을 왜 놋쇠로 안 만들고 사기로 만들었느냐고 하는 것 같다. 참여정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를 풀었으면 한나라당은 '생색은 자기가 내고, 부담은 다음 정권에 넘기고, 한미 FTA와 관련한 카드는 없애버렸다'라고 했을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마지막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24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비유했다. 외교 현안은 직설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그는 공직에 있을 때 특유의 은유와 비유를 즐겨 사용했는데 이날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현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난맥 원인 가운데 하나가 외교부 독주에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송 의원은 "외교부 독주 문제보다는 대통령의 철학이 중요하다. 대통령의 비전에 관료들이 따라가는 것 아닌가?"라면서 "외교안보 정책은 통치권자가 중심에 서서 다양한 생각들을 잘 녹여 좋은 결론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금강산 피살 사건을 정부가 국제무대로 끌고 가는 것에 대해 "북한이 우선 사과하고 재발방치 조치를 해야 한다"면서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같은 '동네 한마당'에서 거론하면 북한과 진지하게 대화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의심받게 되고, 모양새가 별로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보내는 신호가 매우 혼란스럽다"면서 "대통령은 국회연설에서 대화하자고 하고, 여당은 대북특사 보낸다 만다 하고, 정부는 금강산 피살사건을 ARF에서 제기하는 등 오락가락한다"고 비판했다.

 

송 의원은 "앞으로 이명박 정부가 외교·안보 분야에서 급커브를 반복할까 걱정이다, 쇠고기 문제 때문에 현 정부의 운신 폭이 좁아져 있는데 외국 사람들이 이를 활용하려 할 소지가 있다"면서 "외교문제는 한번 주도력을 잃으면 설 땅이 없다. 대통령이 현 정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까지 포함해 '현인그룹' 같은 것을 만들어서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다음은 송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외교 문제 한번 주도력 잃으면 설 땅 없어"

 

  
"이명박 정부의 외교현장은 설계도 없는 공사장 같다. 뭔가 급하게 공사는 진행되는데, 무엇을 만들려는지 종합적인 조감도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 유성호
송민순

- 장관일 때와 지금 국회의원일 때 가장 크게 느끼는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

"도시 시민으로 비유한다면 장관은 도시 속에 살고 있어서 전체 모양을 제대로 못 본다. 그런데 국회에 와서는 밖에서 거리를 두고, 좀 더 객관적으로 도시를 보는 여유가 있다."

 

-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 정책을 두고 논란이 너무 많다.

"이명박 정부는 작년 12월말 인수위 때부터 사실상 업무를 시작했다. 지난 7개월 동안 외교안보 분야에서 조기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데 집착했다. 세계 어느 나라든 외교문제의 경우 새 정부가 이전 정부 정책을 검토(review)하는 시간을 갖는다. 현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설익은 정책을 바로 집행하려했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현장은 설계도 없는 공사장 같다. 뭔가 급하게 공사는 진행되는데, 무엇을 만들려는지 종합적인 조감도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의 함수, 북일 관계와 남북관계의 함수, 미국과 중국이 어떤 이익을 공유하고, 어떤 면에서 극복할 수 없는 제약을 갖는지, 미일 관계와 미중 관계는 어떤 관련을 갖는지 등을 입체적으로 리뷰한 다음에 세부공사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 해결책은 있을까? 이미 늦지 않았나?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외교문제는 한번 주도력을 잃으면 설 땅이 없다. 대통령이 현 정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까지 포함해 '현인그룹' 같은 것을 만들어서 의견을 들어야 한다. 내가 인수위 핵심인사에게 '참여정부 정책 모두가 옳았던 것은 아니다. 모든 정책은 모자란 게 있고 고쳐야 할 게 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반대쪽으로 가려는 것 같다. 이는 옳지 않다'고 충고한 적도 있다."

 

- 현 정부는 실용을 강조하는데 결과는 반대로 됐다.

"현 정부는 설계도 없는 공사를 하면서 공기 단축에 애를 많이 쓴다. 잘못하면 '실용(實用)'이 '실용'(失容·face-losing)이 될 것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한 말은 국제적으로 무게를 가져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지 않나.

 

부시 대통령하고 쇠고기 수입한다고 약속했는데 이런 상황이 됐다. 일본과는 과거는 묻어두고 가자고 낭만적인 말을 했다가 독도 문제 발생했다. 중국의 경우 한미전략동맹-한미일 삼각협력 강조하다가 불필요한 경계심을 갖게 만들었다."

 

"중국· 러시아 배제는 냉전적 사고방식"

 

- 한중 정상 회담 때도 문제가 참 많았다.

"우리는 주변국들과 불필요한 경계심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 동네 사람들과 편안하게 가야 한다. 그런데 중국이 한미동맹은 역사의 산물이고, 냉전의 유산이라고 한마디로 퇴짜를 놓았다. 그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얘기해야 한다고 본다. 한미동맹은 역사의 산물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동북아 전체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역내 공동의 안보를 증진시키는데 한미동맹의 미래 역할이 있다고 중국 쪽에 우리의 입장을 분명하게 해줘야 한다.

 

또 미국 쪽에는 한국이 대양과 대륙의 중간에 있고 분단 국가라는 점에서 '전략동맹'이라는 표현이 상대방에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용어선택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확실히 말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는 미국에게 듣기 좋은 소리, 중국에 가서는 전략적 동반자라는 정리되지 않은 개념을 썼다. 주변국들에게 한국이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겠다는 의구심을 주고 있다. 한미동맹을 지역의 안정요소로 발전시켜 나간다고 강조하면 되는데, 일종의 '구호 인플레이션'으로 자극해버렸다."

 

- 이명박 정부 외교정책에는 중국·러시아가 없다고는 지적도 있다.

"그게 냉전적사고 방식이다. 냉전시대에 우리의 외교 전략에 중국과 러시아는 없었다. 미래지향적인 한미동맹과 한중 동반자 관계를 상호수용되고 접합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시키면 된다. 또한 미국과 아주 잘되면 북한은 신경 안 써도 되고, 북한과 잘 되면 대미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이다. 이명박 정부의 양분법적 사고에 문제가 있다.

 

- 한미관계와 북한과의 관계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한미관계는 미국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는 만큼 강화, 발전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정책을 수립하지, 대한관계에서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우리와 다른 점이다. 현 정부는 양국 정상이 악수하고 사진 찍고 제스처를 취하면 한미관계가 잘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북한을 나쁘다·좋다는 감정으로 보면 안된다.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 것이 우리 이익에 맞는지 어떻게 해야 한반도에서 우리가 주인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전 정부에서 했다고 다음 정부가 바꾸면, 현 정부가 아무리 잘해도 다음 정부가 또 바꾼다는 전례를 남기게 되고 그러면 현 정부의 대북 정책도 힘을 받지 못한다. 다음에 또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나. 통일 이전 서독의 일관된 대동독정책이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 지난 10년은 한나라당에 부정의 대상이니까 굳이 리뷰대상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 아닌가. 한미동맹 '복원'이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복원이 됐나? 국가 간 관계도 정치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생물이다. 한국의 국가이익과 미국의 국가이익을 잘 결합시켜서 균형을 찾는 게 원칙이다.

 

두 나라가 민주주의·인권존중·시장경제 등 이익과 가치를 공유하는 분야가 많다. 또 지난 10년간 주한미군 기지 통폐합·작전통제권 이양 등은 한국 혼자 한 게 아니다. 미국 사람들도 지난 수년간 한미관계가 전략적으로 잘 발전해왔다고 공개적·비공개적으로 밝혔다. 단 레토릭 때문에 일부 문제가 있었지만 이는 한미관계의 실체가 아니다. 복원이 아니라 개선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독도 군대 주둔은 인기 영합책"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보내는 신호가 매우 혼란스럽다. 이러면 우리가 보내는 메시지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
ⓒ 유성호
송민순

-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부 독주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는 비판도 있다. 외교부 수장 출신으로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외교부 독주 문제보다는 대통령의 철학이 중요하다. 대개 대통령의 비전에 관료들이 따라가는 것 아닌가? 국가 정책결정은 다양한 견해가 조화를 이뤄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 외교안보 통일 정책을 하는 데 있어서 통치권자가 서로 다른 생각들을 잘 녹여 좋은 결론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 청와대가 금강산사건 이후 '국가위기상황센터'를 만들었다. 위기관리시스템으로 기능 할 수 있다고 보나.

"위기관리는 시스템도 있지만, 오랫동안 연습을 통해 그 시스템이 유연하게 작동하도록 해야한다. 위기관리는 다른 나라에서도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 과거 사례를 익히면서 잘 활용해야 한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동물은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인간은 기록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다 무시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 이명박 정부가 금강산 피살 사건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국제무대에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군인이 민간인을, 그것도 50대 여성을 살해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이 우선 사과하고, 진상규명하고, 재발방치 조치를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남북 간 접촉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북측이 접촉에 응하지 않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그렇다고 ARF로 가져가서 공식 거론하는 것은, 북한과 진지하게 대화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의심받게 된다. 둘째 모양새가 별로 좋지 않다. 남북 간 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보내는 신호가 매우 혼란스럽다.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대화하자고 하고, 여당은 대북특사 보낸다 만다 하고, 정부는 금강산 피살사건을 ARF에서 제기한다고 하는 등 오락가락한다. 이러면 우리가 보내는 메시지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

 

- 독도문제는 어떻게 보나.

"우리가 새로운 조치들을 취하는 식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법적 조치는 1905년 시마네현 고지로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한 게 근거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그 이전 기록과 자료를 찾아 우리의 논리를 공고히 확립하면서 장기대책을 지긋이 세워나가는 것이다. 지금 독도에 군대 주둔시킨다거나 특별법을 만들겠다는 등의 조치는 인기영합 정책이다."

 

- 앞으로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분야가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나.

"외교안보 분야에서 현 정부가 급커브를 틀 것으로 본다. 이미 대북정책이 왔다갔다 하는데, 급커브를 반복할 것 같아 걱정이다. 쇠고기 문제 때문에 현 정부의 의 운신폭이 좁아져 있는데, 외국 사람들이 이를 활용하려 할 소지가 있다. 그러면 정부가 합리적 정책결정을 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대북정책도 전에는 앉아서 줬는데, 지금은 우리가 엎드려서 받아달라고 하는 지경이 됐다. 현 정부는 통미봉남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정책을 세우기 때문에 대한정책·대북정책은 최우선이 아니다. 미국은 전 세계 전략차원에서 필요하면 한국은 제쳐두고 북한과 빨리 갈 수 있다. 우리 문제에 대해서 남이 그려주는 설계도 아래에서 하청시공업자로 전락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08.07.25 16:56 ⓒ 2008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