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경 대통령기록관장, 무엇이 그를 변하게 했을까…

2008. 7. 20. 19:48사람 사는 세상

임상경 대통령기록관장, 무엇이 그를 변하게 했을까…
(서프라이즈 / 풍청지경 / 2008-7-19)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동지의 변절은 더불어 나누었던 고통과 시간의 무게만큼이나 깊은 상처로 되돌아옵니다. 너무나도 달라진 그 모습이,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라는 실망과 함께 겹쳐지면서 남은 이들에게는 괴로움이 됩니다. 돌이킬 수조차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을 때는 좌절마저 느끼지요.

 

심재철과 이재오는 말할 것도 없고, 난닝구들과 미키들이 그렇습니다.

 

술자리에서, 취재 현장에서, 후배 기자들에게 '기자정신'을 이야기해 놓고 30초 주총의 진행에 앞장서며 용역 깡패로 그 후배들을 짓밟았던 YTN 선배 기자들이 그렇습니다.

 

필자는 이들과 직접적인 인연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옛날에 걸었던 그 길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며 동지였던 사람들의 등에 칼을 꽂는 행태에 분노할 뿐입니다. 하지만, 과연 제가 느끼는 이 감정이 정말 말 그대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분들의 그것에 미칠 수 있을까요?

 

최근 저에게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해 준 분이 있습니다. 바로 임상경 대통령기록관장입니다.

 

임상경 관장은 참여정부 말기, 그러니까 노무현 대통령께서 참여정부의 기록물들을 철저하게 재분류하고 이관하는 준비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셨던 2007년에 대통령 비서실 기록관리비서관을 맡았던 분입니다.

 

기록물 분류와 이관 준비가 완벽하게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2007년 12월 노 대통령께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임무를 위해 임상경 비서관을 대통령기록관장으로 보냅니다. 총무비서관실에 있던 박 모 행정관과 함께 말이죠.

 

이쪽에서 보낼 준비가 되어도, 받는 쪽에서 준비가 안 된다면 소용없습니다. 때문에 노 대통령께서는 참여정부 기록물들을 직접 분류했던 사람을 대통령기록관의 수장으로 보내 방대한 기록물들을 활용할 준비를 맡기신 겁니다.

 

대통령기록관장으로 취임하며 당찬 포부를 밝히는 인터뷰 기사에 내심 흐뭇해하며, 노 대통령께서 그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던 기록물들이 잘 활용되도록 크게 기여하리라는 기대를 품었습니다.

 

하지만, 섣부른 기대였을까요? 몇 달 안 되어 기록물 '유출'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란이 펼쳐지고… 봉하마을을 방문하여 '조사'한다던 그 무리들의 사진 속에 낯익은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임상경 관장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언론 보도들은 저를 크게 실망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출'이라는 프레임으로 노무현 대통령님을 몰고 가는 기자들에게 임상경 관장은 일언반구 하지 않았습니다.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사본 제작도 열람의 범주의 포함된다는 내용이 삭제될 때에도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청와대는 기록물을 볼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상 825만 건 중 지정기록물을 제외한 95.5%의 기록을 다 볼 수 있게 돼 있다."

 

"청와대는 일반기록물의 경우 3월 말부터 이미 온라인으로 열람서비스를 받고 있고, 비밀 기록물도 오프라인으로 사본까지 보고 있다."

 

이 발언들은 김경수 비서관이 참다못해 오늘 밝힌 내용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 임상경 관장의 입을 통해 언론에 알려지길 바랐지만 그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다만, 오늘 기록물 하드디스크를 받으며 했던 아래와 같은 말이 전부였지요.

 

"기록물을 수령키로 한 것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국가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 전직 대통령 기록물이 안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장시간 방치될 위험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임상경 기록관장의 황당한 발언에 기자들이 “기록물 반환과 전직 대통령 예우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질문을 하자 얼버무리는 모습을 보여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 (독고탁님 글 <사실은 - 청와대, 볼 것 다 보고 있었다> 中…)

 

참여정부 기록물 재분류 및 이관준비의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어쩌다가 이런 웃음거리로 전락했을까요. 임기 말년, 대통령 공식 행사 때마다 배석하며 수시로 비공개회의에 불려가 당신의 기록물에 대한 의지를 직접 확인한 사람이 어떻게 한마디도 못할 수가 있을까요.

 

지난 3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든 참여정부 임명 인사들이 잘려나가는 판에 - 청와대에서 새벽부터 나와 청소하시던 아주머니들과 밤낮으로 관용차를 운전하시던 기능직 분들조차 대기발령 조치하는 그 행태 속에서도 - 임상경 관장과 박 모 행정관이 재임명을 받는다는 인사 소식을 접하고, 다행스럽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래도 노 대통령님의 기록 자산에 대한 의지와 비전은 어느 정도 이어질 수 있겠구나"…

 

하지만, 이런 저의 생각은 헛된 기대였을 뿐이었습니다.

 

임상경 대통령기록관장.

 

한 가정의 가장이고, 식솔들의 앞날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그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국민일보에도 전화를 걸어 압력을 행사하는 청와대인데, 하물며 행안부 소속의 국가기록원, 그 아래 대통령기록관장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2008년 2월 25일… 노 대통령님 퇴임과 함께 물러났던 우리와 왜 같은 길을 택하지 않았느냐고 책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임상경 관장님. 대통령께서 당신에게 주신 임무는 바로 끝까지 남아서 참여정부의 기록 자산이 국가적으로 잘 활용되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었고, 노 대통령님의 그 비전이 이어지도록 노력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정당한 열람권마저 '불법 유출' 프레임으로 매도당하고, 오히려 '불법' 운운하는 자들은 지정기록물까지 마음대로 들여다보는 진짜 불법을 행하고 있음에도 방관하는 대통령기록관의 모습뿐입니다.

 

정작 당신의 기록물을 보시고 각종 저술과 연구활동으로 이를 국가적 자산으로 환원시켜야 할 노 대통령께서는 범법자로 오도되고 정당한 권리까지 빼앗기고 있습니다. 이를 너무나도 잘 아는 분께서 단 한마디도 못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지난번 국가기록원 방문 후 노무현 대통령께서 쓰신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대통령기록관장과 상의할 일이나 그 사람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국가기록원장은 스스로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결정을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본 것도 보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해 놓은 말도 뒤집어 버립니다."

 

이것은 정진철 국가기록원장에게도 하시는 말씀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임상경 관장에게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정진철 원장은 3월 2MB 정부 출범과 함께 국가기록원장에 취임한 분입니다. 노 대통령께서 이미 그들의 말 바꾸기 속성을 잘 아시는데, 비록 행정공무원일 지언정 그들이 임명한 사람에게 무슨 기대를 하시겠습니까?

 

저는 이 편지를 보았을 때, 봉하마을을 찾아온 임상경 관장을 바라보시는 노 대통령이 떠올랐습니다.

 

공식행사 때마다 배석하여 당신의 말씀을 꼼꼼히 기록하고, 수많은 회의를 통해 기록물에 대한 세세한 지시에 대답하던 임상경 비서관과 이번 사태에 대해 아무 말도, 아무런 결정도 못 하는 임상경 관장이 오버랩되면서 노 대통령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돌려달라고 난리를 쳐서, 정당한 권리마저 400km 넘는 거리를 '갖다 바쳐도' "어쩔 수 없이 예우 차원에서 받아둔다"라고 하는 말을 하는 옛날의 동지에게 대통령께서는 무슨 감정을 느끼셨을까요?

 

차라리 현재의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청와대 지시에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속이 편하겠지만. 본인도 하고싶은 말이 많으나 어쩔 수 없이 참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싶지만…

 

오늘 임상경 관장의 발언은 이런 속 편한 생각을 자꾸만 지워버리네요.

 

"앞으로도 참여정부의 가치를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대통령기록관 정책협력부장으로 영전하시던 박 모 행정관과 함께여.


슬픕니다. 괴롭습니다.

 

YTN을 보며, 대통령기록관을 보며, 울분만 삼킵니다.

 

옛 동지들을 변절자로 만들어버리는…

 

원칙과 상식을 지키자며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던 동지들을 파란 나라의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작금의 시대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괴로워하며 오늘도 술잔을 기울입니다.

 

ⓒ 풍청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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