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일기4-2008년3월29,30일] "장군차 흰꽃 필 때 다시 오세요"

2008. 4. 2. 21:44사람 사는 세상

 

이창섭(前 홍보수석실 행정관)
"와-, 와-" 환호성과 함께 '봄꽃'이 활짝 폈습니다. 산수유, 매화, 목련, 개나리, 진달래 등 봉하마을 곳곳에 개화한 꽃나무뿐만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기다리던 방문객 300여명의 얼굴에 반가움이 봄꽃마냥 한꺼번에 피어납니다.

"대통령님 반갑습니다" "멋있습니다" "직접 뵈니 너무 좋습니다" "건강하시죠"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노소남녀를 마다하고 반가움과 그리움을 한껏 표현합니다. 아이들은 큰소리로 "대통령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합창을 합니다. “먼길 오셨는데 점심도 대접 못하고, 차 한잔도 못드리고…, 미안합니다.” 이렇듯 대통령과 방문객들의 대화는 늘 정겹습니다. 그리움과 반가움이 듬뿍 담긴 인사말이 정답게 오고갑니다. 정말, 만개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졸지에 상춘객이 된 제가 지켜본 '봄날의 풍광'은 이틀간 12번쯤 반복됐습니다. 3월 29, 30일 봉하마을의 봄은 이렇게 약동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여섯 번째, 정성스레 장군차 심는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요즘 장군차(將軍茶)에 보이는 관심은 각별합니다. 벌써 여섯 번째 장군차 묘목을 직접 심었습니다. 사저 주변과 '만남의 광장'에도 장군차 나무를 심어 예쁘게 단장했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비서진들은 우선 마을 뒷산의 폐원된 단감 과수원과 산비탈에 3만여 그루를 심을 작정입니다.

이들은 버려진 폐과수원을 김해지역 특산품인 장군차 밭으로 탈바꿈시킬 요량으로 요즘 한창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9-10월에 개화하는 하얀 장군차 꽃이 봉하마을을 뒤덮을 것입니다. 기대되지 않습니까? 만남의 광장엔 방문객 얼굴에 만개한 웃음꽃이 활짝, 봉하마을 곳곳엔 향내 그윽한 흰 장군차 꽃이 흐드러지게 필 테니까요.

대통령은 왜 장군차에 관심이 많을까요? 대통령은 본래 차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청와대를 찾은 김해분들에게서 장군차를 선물 받은 뒤 차 재배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주변 경관과 취미생활을 위해 차를 심을 생각이었죠. 그런데 장군차는 품종과 맛에 차별성이 있고, 약학적 효능도 연구돼 있고, 김해시에서 특산물로 지원 중인데 전망도 좋아서 차 생산을 위한 재배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도시에서 방문 오는 사람들과 결합시켜 처음에는 차를 같이 심고 가꾸고 나중에는 함께 따는, 일종의 주말농장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본격적으로 심어보려는 거죠.”

29일 오후, 우중충 흐린 하늘인데도 대통령은 자원봉사자 90여명과 장군차 2년생 묘목 2000여 그루를 심었습니다. 보통 1000 그루씩 심었는데 이날은 2000 그루로 두배나 심었습니다. 삽, 호미를 들고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2시간 30분 동안 정성껏 묘목을 심느라 참가자 모두의 입과 코에선 단내가 진동했습니다.

밀짚모자를 쓴 대통령은 아이들에게 장군차 묘목을 심는 '노하우'를 알려주었습니다. "뿌리가 잘 펴지게 심어야 잘 자란단다. 공기가 들어가면 죽거든. 흙알갱이가 잔뿌리 사이에 골고루 들어가도록 심어야 산단다. 심고 나선 주변의 마른 풀로 잘 덮어줘서 습기가 유지돼야 하는데, 이때도 비록 마른 풀이더라도 뿌리가 없는 걸로 덮어야지 안 그러면 이놈들이 살아나 장군차와 경쟁한단다". 대통령은 찬찬하게 설명하고,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워 듣습니다.

아이가 차 줄기를 잡고, 대통령이 흙을 잘게 부셔 다져넣고, 아이가 다시 풀로 덮어주는 공동작업이 반복됩니다. 열명이 넘는 아이들은 차 묘목을 든 채 옆으로 길게 늘어서 대통령 할아버지가 자기 곁으로 어서 오기를 기다립니다. 부모들은 잠시 일손을 멈추고, 삽과 호미 대신 든 사진기로 장군차를 정성스레 심는 아이와 대통령을 한 컷에 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평생 소원 풀었다"면서 말이죠.

"내년엔 찻잎 덖어 제대로 대접하겠습니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질 조짐을 보여 대통령은 산비탈을 내려왔습니다.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새참을 대접했습니다. 막걸리, 파전, 두부김치로 준비한 새참을 들며 한참이나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참가팀별로 회원이 그린 대통령 캐리커처와 유기 밥그릇을 선물합니다.

참가자 중에는 소리꾼인 홍승자 씨가 있었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그분이 대통령께 드리는 선물이라며 탁 트인 목소리로 <성주풀이>를 신명나게 부릅니다. "어라하 만수- 어라하 대신이야-". 이번엔 장구까지 치면서 <진도아리랑>으로 가락이 이어지자 장단에 맞춰 두 분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춥니다. 모두가 하나 되는 대동세상과 진배없습니다.

판소리 강산제(심청가) 이수자인 홍승자 씨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고향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셨기에 새집에서 잘 사시라는 뜻에서 성주풀이를 불렀다"고 합니다. 성주풀이는 집터를 지키고 보호하는 성주신에게 무당이나 판수가 굿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죠. 대통령을 향한 그분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울 뿐입니다.

대통령은 "내년에 찻잎 따러 내려오세요. 저는 그 전에 고유한 제조법인 황차(黃茶) 제조기술을 익혀 놓겠습니다. 찻잎을 잘 덖어 제대로 된 장군차를 대접하겠습니다. 차통에 담아 선물로도 드리겠습니다. 오늘 수고 많았습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쯤해서 이해를 돕기 위해 장군차를 설명하겠습니다. '가야황차'로도 불립니다. 서기 48년 가야국의 시조인 수로왕의 왕비가 된 허황옥이 인도에서 시집올 때 가져온 것으로 전해지는 김해지역 특산물입니다. 가야차문화연구회 장번 회장은 "고려 충렬왕이 김해지역을 방문했을 때 차나무를 발견하고는 잎이 커 장군감이라고 말한 데서 장군차로 불리게 됐다"고 말합니다. 김해지역이 장군차의 북방한계선입니다.

대통령은 장군차를 "찻잎이 타원형으로 다른 차종보다 훨씬 잘 생겼고, 향내가 그윽하다"고 품평합니다. 당뇨, 암, 치매 예방과 노화방지, 심장질환에 탁월한 효능이 있으며, 항산화 효소 함유량이 많고 다이옥신 저항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장군차는 뿌리가 아래로 쭉 뻗어 자라는 직근성(直根性)이 커 옮겨 심으면 죽는다고 합니다. 맨 밑뿌리 생장점을 건드리면 고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날 심은 묘목 2000 그루는, 씨를 뿌려 키운 파종묘목이 아니라 가지를 잘라 새롭게 뿌리를 내리게 한 2년생 삽지묘목이라서 3년이 되는 내년이면 일부 수확이 가능합니다. 파종하면 5년이 지나서야 찻잎을 딸 수 있습니다.

5월 중순을 넘어서면 장군차를 심어도 소용없기에 대통령과 비서진들은 차나무 심기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날 오후 5시부터 내린 비가 이튿날 아침까지 내린 탓에 다음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하기로 했던 장군차 나무심기는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29일 심은 장군차 묘목에는 도움을 준 단비였지만, 단 하루라도 차나무를 심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역력했습니다.

"폐과수원을 활용하는 장군차밭이 농촌지역의 귀중한 성공모델이 돼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도농교류의 싹이 되고, 농촌을 다시 살리기 위해 새롭게 도전하는 농촌지역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군차 나무심기 실무작업을 도맡은 김정호 비서관의 바람입니다.
'희망의 나무를 심는 사람들'인 대통령과 봉하마을 주민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흘린 구슬땀이 결실을 거두기 바랍니다. 그래서 장군차 흰꽃이 필 때 그들의 구릿빛 얼굴도 함박웃음꽃으로 활짝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귀경하는 야간열차에서 "눈을 뜨고 꾸는 꿈, 나는 그것을 희망이라고 부른다"라고 말한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중국 내몽고에 있는 마오우쑤 사막에 나무를 심은, <사막에 숲이 있다>의 주인공 인위쩐(殷玉珍)도 떠올렸습니다. 1박2일 봉하마을에서 '감동을 먹은' 까닭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