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오후. 배낭 하나 둘러맨 채 시골역 분위기가 물씬 나는 진영읍에 내렸다. 화창한 날씨가 너무 좋아서 걸어가기로 작정했다. 읍내 사거리를 건너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선 지역을 지나서 논두렁 사잇길을 에둘러 농공단지를 통과하자 봉하마을로 들어가는 도로가 보였다. 시골 2차선 도로답지 않게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쌩쌩 내달린다. 봉하마을을 둘러보고 나오는 방문객들인가 보다. 한참을 걸어가니 평일인데도 마을 주차장을 가득 메운 차들이 보이고, 그 뒤로 대통령 사저가 눈에 들어온다. 1시간 남짓 걸린 것 같다.
대통령 사저를 둘러봤다. 우선 텃밭이 눈에 띄었다. 대통령 내외가 아예 집에서도 농사(?)를 지으실 생각인 모양이다. 한쪽에는 묶여있는 책 덩어리들이 쌓여 있다. 서재 겸 회의실의 책장에는 정리되지 않은 책들이 그야말로 쟁여져 있다. 항상 책을 옆에 끼고 지내는 대통령이지만, 아직 그럴 여유가 없으신 것 같다.
그래도 뭔가 달라진 게 있을 텐데…퇴임 후 한 달. 대통령의 하루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국정 전반을 고민하시던 게 장군차 재배나 민주주의2.0 사이트 개발로 주제가 바뀌었을 뿐 바쁘시긴 여전했다. 대통령은 청와대에 계실 때처럼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 7시, 점심 12시 저녁 6시 반의 생활패턴에 변화가 없었다.
거의 쉬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에다, 이것저것 챙기느라 들락날락. 오랜만에 만난 비서진 하고도 길게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
“다들 너무 바쁜 것 같네요. 좀 쉬기는 하는지 모르겠네”라고 한 마디 했더니 사방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날아든다. 퇴임 후 대통령도 하루를 못 쉬었는데 어떻게 비서진이 쉴 수 있겠냐고. 청와대 시절엔 돌아가면서 주말이라도 쉬었는데, 지금은 아예 주말이 평일보다 더 바쁘단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찾아오는 방문객이 워낙 많다보니 대통령께서도 되도록 주말엔 별도의 일정을 잡지 않고 있다. 하루에 무려 8번이나 나가서 방문객을 맞은 적도 있다 한다.
귀향길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통령은
“실제로 이런저런 일을 내가 계획하더라도 손님 맞다가 볼 일을 보지 못할까 그것이 제일 걱정입니다. 안 와도 걱정, 와도 걱정이지요”라고 말을 꺼내셨는데, 실제 상황이 그리 돼버렸다. 사실 이렇게까지 방문객이 몰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비서진의 ‘솔직한 증언’이다. 대통령이 편하게 산책도 하시고 마을 청소도 하고 숲도 가꾸고 하려던 애초 구상과는 양상 자체가 변한 것이다. 얘기 도중에 상근 자원봉사중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이 영락없는 시골 농사꾼 차림을 하고 쑥 들어섰다.
봉하마을에선 저녁을 사먹을 데가 없어서 찾아온 읍내의 한 식당. 돼지갈비를 안주 삼아 이야기꽃이 피었다.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봉하찍사’의 실체도 밝혀졌다. 사진을 잘 찍는 문용욱 비서관이 원조 봉화찍사인 것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그 후 데뷔한 봉하찍사2, 봉하찍사3, 봉하찍사4, 봉하찍사5가 누구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 홈페이지 접속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운영관리 지원을 위해 합류한 김정현씨, 마을 주민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이장 출마해도 되겠다는 말까지 듣는 김정호 전 비서관, 비서진의 홍일점 박은하 비서관, 며칠 전부터 폭주하는 업무 분담을 위해 자원봉사를 자원한 성원호씨가 그 주인공들이다. 공식 사진사가 없어서 급하면 누구나 사진기 들고 뛰어나가다 보니 그리됐다고. 여기에선 거의 모든 게 자원봉사로 움직이는 듯하다. 조만간 포크레인 작업이 필요한 모양인데, 아예
“누구 포크레인 자원봉사 할만한 사람 없나”로 얘기를 시작한다.
‘귀향’과 ‘낙향’은 어떻게 다른가술이 제법 몇 순배 돌았을 때 일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물론 힘이 들 때도 있지만, 정작 비서진을 힘들 게 하는 건 따로 있단다. 일부에서지만 봉하마을에 방문객이 몰리는 걸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얄팍한 상혼을 드러낼 때는 정말 난감하다고 한다. 한 결혼정보업체는 대통령과 만나는 미팅 이벤트라며 수십쌍을 모집해서 언론에 보도까지 된 후에야 도와달라는 연락을 해왔다. 그러나 대통령과의 만남을 개인적인 영업활동으로 이용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모 관광버스 회사에서 김해OO청년회라는 명의로 실비를 내면 대통령을 만나는 봉하마을 관광을 할 수 있다는 모집광고를 팩스로 보냈다가 문제가 돼서 해프닝으로 끝난 적도 있다고. 비서진들의 바람은 소박했다.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국민들과 만날 수 있도록 모두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새벽 1시. 살 집을 아직 구하지 못한 비서진과 자원봉사자들이 거주하기 위해 임시로 빌린 봉하마을 집에서 불이 꺼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마을회관에서 열린 ‘봉하마을 쉼터 조성과 전통 테마마을 조성’ 회의에 참석한 김정호 전 비서관이 아직도 오지 않았다. 주민들과의 대화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모양이다. 나중에 설명을 들어보니 봉하마을의 주업인 쌀농사와 단감 농사를 중장기적으로 친환경 농법으로 바꾸고 김해 특산품인 장군차 밭을 조성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주민들과 의논하고 있다 한다. 여기에는 봉화산 숲 가꾸기와 화포천 살리기도 포함된다. 대통령은 귀향에 대해 흔히 말하는 낙향이란 개념하고는 접근하는 시각이 다르다. 국토 균형발전과 살고 싶은 농촌 만들기에 대한 평소 소신과 연결돼 있다. 3년 전 이즈음에 대통령은 농림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농촌은 지난 40여 년 동안 세계 최고 속도의 경제발전을 뒷받침한 분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다 나이가 드셔서 노후생활이 된 것이죠. 일반적인 농업정책과는 별개로 그분들의 노후생활을 국가가 함께 보살펴야 하는 상황입니다.
농촌이 안정된 노후생활을 하다가 여생을 마칠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을 우리 국민들이 가져야 됩니다. 기존에 사시던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좀더 나아가 도회지에서 살다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돌아가면 안전하게 노후생활을 하고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우리가 농촌 환경을 조성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농촌을 도회지 사는 사람도 가보고 싶고, 또 나아가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거시적인 목표를 항상 놓치지 않도록 관리해 주십시오. 구체적이고 작은 목표에 매달리느라 자칫하면 이 큰 목표를 잊어버릴 수 있거든요.”대통령 사저 아침회의 풍경27일 오전 9시. 대통령이 비서진과 함께하는 아침회의 시간이다. 오늘 따라 부산 해운대의 집에서 출퇴근하는 이호철 전 수석이 10분쯤 늦었다. 통상 1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길이 막혀 2시간 정도 걸린 모양이다. 대통령이 운을 뗀다.
“우리 아침회의 시간을 30분쯤 늦춥시다.” 이 전 수석이 난색을 표한다.
“제가 오면서 보니까 벌써 방문객을 태운 버스가 5대나 들어와 있던데 회의시간을 더 늦추시면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러나 대통령이
“필요하면 내가 회의 전에라도 한 번 나갔다 오지”라며 거듭 제안하면서 일단 내일부터 그리 해보기로 했다. 대통령이 이어 경호팀장을 바라보며 미안한 듯 말을 꺼낸다.
“내가 갑자기 밖에 나가곤 하니까 당황스럽죠. 식사할 때는 신경 쓰지 마시고, 아침에는 회의에 나올 때까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옆에 계셨던 권양숙 여사도 거든다.
“그래요. 신경 쓰지 마세요.”대통령도 방문객이 몰리면서 업무가 폭주하고 있는 비서진과 경호팀에 대한 걱정이 많아졌다. 귀향 후 하루도 쉬지 못했던 대통령은 지난 주말에는 몸살 기운이 있어 반나절 쉬었는데, 그 후 방문객들에게
“나 때문에 비서들이 하루도 못 쉬어 너무 미안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권양숙 여사께선 걱정이 더 많으신 것 같다. 대통령이 직접 삽과 낫을 들고 일을 나서는데 비서진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권 여사께선 맨날 책상에 앉아 일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삽 들고 낫 들고 어떻게 일 하냐,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이 많으셨다고.
참고로 아침회의 전에 비서진의 업무분장표를 들여다보다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나가실 때마다 사진을 찍고 이를 정리해서 홈페이지에 직접 게시하는 문용욱 비서관의 업무는 △비서실 업무 총괄 △접견 요청 접수 및 조정, 배석 △외부행사 수행 △마을 가꾸기, 숲 가꾸기, 화포천 살리기 업무 지원, 그리고 가외로 하는 일이 ‘봉하찍사’다. 김경수 비서관은 △공보 담당 △행사계획 수립, 사전답사, 진행 △지시사항 및 보고서 관리 △기록 및 자료 관리 △외부행사 수행 △홈페이지 관리 지원 △민주주의2.0 사이트 개발 지원 △마을 가꾸기, 숲 가꾸기, 화포천 살리기 업무 지원 등이다. 이처럼 명시되지 않았지만 수시로 생기는 온갖 상황들을 처리하는 것은 물론 비서진의 몫이다.
오전 9시 45분. 오늘 일정부터 어제 마을회의 결과까지 오고간 아침회의가 끝났다. 그중에서 대통령이 가장 관심을 갖고 많은 말을 하신 건 민주주의2.0 사이트에 대한 생각과 아이디어들이었다. 오프라인의 토론을 온라인상에서 어떻게 구현하고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위키피디아를 따라잡을 수 있는 공동집필 시스템은 또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도무지 한계가 없는 듯했다. 반면 비서진들의 고민은 무한대로 늘어났을 것 같다.
“저희 고모부 아세요? 박OO씨라고요”
10시 30분 사저. 밖에는 보슬비가 조금씩 내린 탓에 일부 방문객은 우산을 받쳐 든 채 “(하나, 둘, 셋) 나오세요”를 연호한다. 비서진에선 비도 조금씩 내리니까 초등학생들과의 만남 행사부터 마치고 바로 방문객들을 찾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대통령 내외는, 진영읍에 있는 대창초등학교 6학년 학생 200여명이 ‘고장 답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찾은 사저 옆의 봉화산 자락까지 빠른 걸음을 옮겼다. 대통령 내외가 보이기 시작하자 “온다, 온다” 하며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대통령은 학생들이 부르는 교가를 따라 흥얼거리며 걷고 있다. 대통령 내외는 대창초등학교가 모교다.
학생들 앞에 선 대통령은 1959년 35회 졸업생이라며 인사말을 건넨다. 권양숙 여사는 36회 졸업생이다.
“적어라. 종이 없으면 손바닥에 적어라.” 농담까지 섞어가며 말을 이어가자 여기저기서 웃음과 환성, 박수가 터져 나온다. 대통령은 날씨를 의식해 봉화산 주변에 얽힌 얘기들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질문 없냐고 묻는다.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다가 바로 여기저기서 손들이 올라온다. 초등학생들답게 별의별 질문이 다 나온다. “어린이회장 해보셨나요?” “어떤 운동을 잘 하세요?” “영부인은 어떻게 만나셨나요?”(이 부분에선 옆에 앉아 있던 학생들의 “얼레리 꼴레리”라는 후렴구가 따라붙었다) 등등. 그러나 압권은 이 대목. “저희 고모부 아세요? 박OO씨라고요.”
“잘 알지. 그저께 나랑 장군차 심었는데.”반별로 찍는 단체사진 촬영시간. 경호팀과 수행비서진이 ‘전면전’에 들어간다. 경호팀장은 연신
“자, 카메라 보세요”를 외치고, 수행한 경호관은
“사진 다 찍은 사람들은 이쪽으로 오세요”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오늘은 단체사진을 여러 차례 찍어야 하는 탓에 수행한 문용욱 비서관 외에 봉하마을 보조 찍사로 등재된 김정현씨도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그런데 이 와중에 한 여학생이 수줍은 듯 비닐에 싸인 초콜릿 하나를 얼른 대통령 손에 쥐어주고는 친구들과 “와~”하며 뛰어간다. 현직에 계셨을 때 같으면 경호사고다. 순간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하실까 궁금했다. 즐겁게 뛰어가는 뒷모습을 쳐다보다 시선을 돌린 순간 대통령은 이미 초콜릿을 입에 넣고 계셨다. 우물우물, ‘아 맛있다’는 표정으로.
11시 10분. 서둘러 돌아온 대통령은 남원과 구례 등지에서 왔다는 방문객 100여명을 사저 앞 만남의 광장에서 반갑게 맞았다. 5분 정도 대화를 나눈 뒤 대통령이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인사와 함께 퇴장하자 방문객들은 사저 바로 아래 대통령생가를 보러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1분쯤 뒤늦게 온 아주머니들의 표정에선 안타까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거봐, 빨리 가자고 혔잖여.” “언제 또 나오신데요.” “그냥 은근히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부녀회장의 ‘한우 쇠고기 국밥’ 예찬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마을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원래 봉하마을에는 따로 식당이 없었다. 대통령 퇴임 후 방문객이 몰리면서 허기진 사람들이 주민들에게 돈을 줄 테니까 밥을 해주면 안 되겠냐고 묻는 일까지 가끔 생기는 데다, 김해시 관계자도 농번기까지 일단 해보라는 권유를 하는 바람에 마을회관을 활용해 3월 2일부터 갑작스럽게 문을 연 식당이다.
주 메뉴는 4천원 짜리 ‘한우 쇠고기 국밥’. 남는 것이 별로 없어 일당도 안 나온다는 말을 이미 들었던 터라 봉하마을 부녀회장에게 왜 한우 쇠고기 국밥을 택했냐고 물어봤다. “하기 쉽고, 모든 사람들이 잘 잡수신다”는 것이 그 이유. 채산성? 그건 손해만 안 보면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이게 업이 아니잖아요. 우린 농사를 짓고 있는데, 마침 농번기도 아니고…. 대통령 귀향으로 즐거운 마음이고, 또 그런 대통령 보러오는 손님들이 드시는 거니까 기분 좋은 마음으로 하려 하죠. 벌이하겠단 마음은 없습니다.”
그럼 방문객이 많아서 불편한 점은 없을까? “번거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렇지만 대통령이 우리 마을로, 고향으로 돌아오셨는데 거기에 비기겠어요. 또 이 시골에서 돈도 안 들이고 앉아서 전국에서 오는 사람들 다 보잖아요.”(웃음) 대통령께서도 들리셨냐고 묻자 “대통령님이 마을에 관심이 많다”며, 가끔 들려서 “장사 잘 됩니까” 묻곤 한단다. 그러면서 한우 쇠고기 국밥 자랑도 한자락 걸친다.
“먹고 가는 사람들이 맛이 있다고들 하여. 맛이 없다고 하면 그만하지 그라제.” 모든 게 게시판에 올리면 해결된다?오후 1시 20분. 마을식당 맞은편 봉하마을 공동 농기계 보관창고. 노사모는 이 창고를 빌려 4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봉하마을 자원봉사 지원센터로 쓰기 위해 준비 중이다. 노사모에선 신은주 사무국장을 포함해 자원봉사자 3명이 상근을 하고 있다. 평일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들리는 회원들의 발길도 잦은 편이다. 허름한 건물이지만 나름대로 칸막이도 쳐 있고 사무집기와 컴퓨터도 여러 대 설치돼 있다. 그런데 이 또한 모두 자원봉사로 이루어진 것들이란다.
노사모 회원들이 컴퓨터를 가져다 설치했고, 전기공사도 자원봉사를 받아 진행 중이고, 조만간 외벽 페인트칠과 바닥공사도 자원봉사로 해결할 예정이다. 뭐든지 자원봉사로 해결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봉하마을에서 빈방을 구할 수가 없어서 진영읍에 방을 얻었다는 신은주 국장은 너무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즉답한다.
“전국적으로 온갖 직업에 종사하는 회원들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걸 게시판에 올리면 바로 해결되죠.” 어제 누군가, 자원봉사자들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큰 무리 없이 상황을 관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요즘 노사모 자원봉사자들은 방문객이 몰리는 주말에는 마을식당 설거지부터 마을 안내, 주변 쓰레기 줍기까지 필요한 일이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사모의 자원봉사에 대한 철학과 계획은 생각보다 훨씬 더 컸다. 신은주 국장은 “대통령의 살기 좋은 농촌마을 만들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 하고 있는 하천 정비, 나무 심기 같은 건 이러한 운동의 시발점이자 표본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신 국장의 말이 이어졌다.
“노사모 회원이 아니라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시골 농촌마을에 자원봉사를 할 생각만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귀향한 대통령님이 사는 마을에 보탬이 된다는 데 만족하지만, 앞으론 인근 마을까지 지역을 넓혀 갈 겁니다. 그 센터 역할을 하고자 하는 거죠.”
노사모는 창고 건물의 상당 부분은 대통령 활동과 관련된 것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꾸며서 누구나 둘러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탄핵 반대 촛불집회 때 썼던 타다 남은 초, 16대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에서 사용한 대선 개표 현황판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기증한 대통령과 관련한 각종 자료와 물건 등이 전시된다고. 빠르면 다음 주부터 봉하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날 것 같다.
필명 ‘노공이산’에 얽힌 내력오후 2시 25분. 대통령이 또 사저에서 나와 현관 앞에 모인 100여명의 방문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고 있는 일부 방문객을 의식한 듯 대통령은 인사를 가급적 짧게 마무리했다. 그래도 방문객들은 사저로 돌아서는 대통령을 향해 “고생 많았습니다” “건강하세요”를 연호한다. 어디서 오셨냐고 물었더니 “서울이요” “당진이요” “대구” “상주” “광주에서도 왔어요”라고 소리친다. 그야말로 지역을 초월한 무지개 연합군인 셈이다.
오후 3시 30분. 사저에선 비서진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홈페이지에 대통령의 다섯 번째 편지를 올리랴, 홈페이지에서 사진 찾아가는 방법을 적은 봉하사진관 안내카드 디자인을 최종 점검하랴. 이 사이 회원 게시판에는 한 달여 만에 3만 번째 글이 올라왔다. 1만 장을 찍은 안내카드도 거의 다 떨어졌다. 다섯 번째 편지가 올라가자 바로 홈페이지 댓글에선 대통령이 지은
‘노공이산’이라는 필명이 화제가 됐다.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자주 언급해왔다.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거창한 구호보다 우공이산의 심정으로 국정에 임하겠다”고 말했고,
“꾸준히 노력하면 달라질 것입니다. 우공이산”이란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게다가 청와대를 방문한 신영복 선생이 직접 써서 대통령에게 선물한 휘호도 ‘우공이산’이었다. 이처럼 ‘우공이산’은 대통령이 평소 마음에 담고 있던 고사성어다. 그렇지만 이미 ‘우공이산’이란 필명을 선점한 이가 있어 ‘노공이산(盧公移山)’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가치와 의미는 선택하는 겁니다”오후 4시 20분. “와 나오신다.” 우산을 받쳐 든 대통령이 나타나자 200여명 정도 되는 방문객들 사이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방문객들이 핸드폰과 사진기를 높이 들어올리자 대통령은 우산을 접어 왼팔에 들고 오른팔을 올려 포즈를 취해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넘게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젠 귀찮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대통령께 직접 물어봤다. 대통령이 잠깐 내 얼굴을 쳐다보셨는데, 평소에 핵심을 잘못짚고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지으시던 표정 같은 느낌이다.
“물론 양면성이 있죠. 귀찮게 생각하면 참 귀찮을 수도 있겠죠. 찾아온 사람들이 고맙다고 생각하고 성의를 다하면 정말 기쁜 일이고 소중한 분들이죠. 다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닌가요. 시간을 빼앗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는 일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이구요. 새로운 생활리듬을 만들어야겠죠. 가치와 의미는 선택하는 겁니다. 선택할 준비가 돼 있으면 다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준비가 잘 돼 있다고 생각해요.”
저녁 무렵. 진영읍에서 서울로 향하는 열차에 올랐다. 내가 대략 안다고 생각했던 봉하마을의 분위기와 직접 가서 느낀 현장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퇴임 대통령이 주연이지만, 수많은 자원봉사자 조연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이 드라마를 훗날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까?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읽은, ‘인터넷 세상의 문을 연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클릭을 발명한 괴짜들>이란 책의 뒷 표지에 써있는 한 대목이 유난히 눈길을 잡아끌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생소한 말이었던 ‘클릭’은 어떻게 겨우 몇 년 만에 우리 일상을 이렇게 완전히 바꿔놓았을까? 거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노력과 열정이 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