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습니다]
요리사 꿈꾸던 수진에게 아빠가
키 170㎝, 몸무게 50㎏, 다리가 학처럼 길어서 별명이 학 다리였던 우리 막내딸 수진이. 외모보다도 마음씨가 더 예뻤던 수진이가 이젠 우리 가족 옆에 없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일까. 수진이가 친구들과 함께 하늘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자꾸 까먹는다. 왜 그럴까. 무의식적으로 수진이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일까. 그럴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18년 짧은 생도 채 다 못 살고 간 불쌍한 우리 수진이를 잊어버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셋째딸로 우리 가족 곁에 온 예쁜 수진이, 눈이 커서 잠잘 때도 눈 뜨고 잔다고 놀림 받았던 막내딸. 엄마와 아빠가 시키는 일은 불평 한마디 없이 했던 착한 딸. 이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안고 싶어도 안을 수 없는데 어떡하지? 야간자율학습 끝나면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 나가던 아빠는 어떡하지? 하늘나라로 마중 나갈까?
진도 팽목항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던 못난 엄마와 아빠를 용서해줘. 그리고 엄마, 아빠가 수진이 보러 하늘나라로 찾아가면 예쁘게 웃는 얼굴로 마중 나와 줄 거지? 우리 딸은 착하니까 분명히 마중 나와 줄 거야, 그치?
사랑하는 우리 딸 수진아, 다시는 춥지 않게 가슴에 품어줄게. 보고 싶고, 보고 싶고, 또 보고 싶다. 수진아, 많이 많이 사랑해.
수진이의 장래희망은 요리사였다. 두 언니가 해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볶음밥도 주먹밥도 척척 해줬다. 수진이는 세월호 침몰사고가 났던 4월16일 오전 8시57분부터 가족 카카오톡방에 ‘배가 기울어졌다’, ‘바닷물이 창문 앞에 보인다’며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놀란 언니가 ‘그럼 빨리 나가라’고 했지만, 수진이는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며 나가지 않았다. 오전 9시36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카카오톡방에 수진이의 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수진이는 사고 7일째인 4월22일 숨진 채 아빠의 품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친구들과 함께 경기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잠들어 있다. 수진이 아빠는 국회 앞에서 세월호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다가 14일째인 지난달 27일 쓰러져 고대 안산병원에 입원했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496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