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칼럼] ‘노무현을 넘어서’

2012. 1. 30. 06:56사람 사는 세상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칼럼] ‘노무현을 넘어서’
조회수 : 843
등록일 : 2012.01.27 11:48
참여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정치외교학 박사가 1월 27일자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 ‘노무현을 넘어서’를 해당 신문사의 동의를 얻어 전문 게재합니다.


‘노무현을 넘어서’
- [한겨레 기고] “노무현 정신 계승·발전시킬 중심 대오 ‘커지고 강해져야’”




나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3년간 보좌했으며 그 후 장관까지 지냈다. 호사가들이 말하는 식으로 하자면 ‘친노인사’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거부한다. 나는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나보다 훨씬 더 노무현을 사랑하며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애쓰는 보통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다. 노무현의 죽음 앞에 슬픔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린 수백만 명의 추모 행렬도 보았다. 나 못지않게 노무현을 존경하고 옹호하는 국민의 정부 출신 인사들도 많이 만났다. 그래서 친노는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한 참모들이나 가신들에게만 붙여지는 이름일 수 없다. 그것은 노무현의 이상과 정책을 지지한 국민 모두에게 붙여질 수 있는 말이며,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정통 민주세력 누구나 자처할 수 있는 이름이다. 파당적 정치세력으로서 친노를 분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얘기다.

친노라는 편 가르기는 사라져야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중심 대오는 지금보다 커지고 강해져야 한다. 다행히 19대 국회의원 총선거 예비후보자 중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을 지낸 인사들이 50명에 달한다고 한다. 아마 정부기관, 국회 등에서 참여정부 운영에 참여한 이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크게 늘어날 것이다. 정부 퇴임 4년이 지난 시점에서 국정철학과 국정운영 경험을 공유한 동질의 집단이 이처럼 대규모로 국회 진출을 도모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들을 총선의 장으로 끌어낸 것은 국민의 삶을 불안과 좌절로 내몰고 참여정부 자체를 부정한 이명박 정부다.

유권자의 반응도 호의적인 편이다. 우스갯소리로 많은 지역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관이었다는 경력만 명함에 넣어도 지지율이 몇 퍼센트씩 상승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여의도에 입성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그가 못다 펼친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열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금 참여정부 인사들의 최대 과제는 노무현이 못다 펼친 정치를 구현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참여정부를 복고하려는 자세일까? 아니다. 자신의 과오와 부족함에 대해서는 스스럼없이 인정하고 고치려 했던 노무현의 정신을 본받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민주발전과 국민주권, 복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분명한 대의를 가지고 열심히 일했다. 성취도 있었고 시행착오도 겪었다. 이 중에서 지금은 성공보다 실패에 대한 성찰을 통해 미래로 나갈 에너지를 축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참여정부의 성과를 계승함과 동시에 부족했던 점을 인정하고 채워가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솔직히 참여정부는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불임정권이었다.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많은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당시 다수의 국민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거대 수구언론이 참여정부에 대한 정당한 국민인식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수구언론의 차단막을 뚫고서라도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고 국민의 올바른 판단을 끌어내는 것은 정부의 책임 영역이다. 따라서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닌 참여정부의 한계였다. 불행하게도 그 결과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으로 이어졌고 국민생활은 고통으로 점철되었다. 이 점에서 참여정부 인사들은 국민에게 한없는 송구함을 느끼고 그 바탕 위에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미래를 구상해야 한다.

이제 참여정부 인사들은 자신의 성과와 실패를 모두 안고 국민 앞에 서 있다. 그들은 노무현의 가치를 계승한 사람들이 과거의 성취와 좌절을 성찰하여 한 단계 진화한 국정운영 능력을 지닌 세력으로 거듭났음을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의 명함에 짙고 굵게 새긴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은 단순히 국회의원 당선을 위한 치장이 아니라 ‘노무현을 넘어선 노무현’이 되겠다는 다짐과 결의의 표시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국민 속으로 더 파고들어야 하며 철저하게 도덕성을 견지하고 정책적 소양을 연마해야 한다. 문재인이 자서전에서 말한 것처럼 이제 우리는 노무현을 극복해야 하며 참여정부를 넘어서야 한다. 성공은 성공대로, 좌절은 좌절대로 뛰어넘어야 한다. 그것이 노무현이 꿈꾼 ‘사람사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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