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이다.
15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한명숙 전 총리를 당대표로 한,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새 지도부가 탄생함으로써 한국의 정치지형이 용트림치기 시작했다. 한국 정치사상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유례가 없는 이 거대한 지각변동은 민주진보세력의 ‘정권환수’가 이루어질 때까지 그 꿈틀거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야권이 통합해야 한다는 명확한 국민의 명령에도, 과연 구 민주당이 지금의 모습으로 시민사회세력과 통합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결국 그 지난한 작업을 해냈다.
많은 사람들은 또, 구 민주당이 통합결의를 하는 과정에서 보인 약간의 혼란을 지적하면서 민주통합당은 가망이 없다며, ‘도로민주당’이 됐다며 비아냥댔다. 통합을 성공시킨 후에도 별다른 혁신의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면서 조급함을 내 비치기도 했다. 갓 심은 나무에서 기어이 열매를 따야겠다는 이런 성급함이란…
혼란, 성급함, 조롱의 잔물결 뚫고 용솟음 친 민심, 그 선택
그런 조롱과 초조함이 일렁이는 동안 저 깊은 심연에서는 무언가 엄청난 것이 착착 준비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 실체가, 모바일에 실린 80만명이라는 민심으로 이날 용솟음쳐 오른 것이다. 그 결과 민주통합당은 안정과 변화, 경륜과 패기가 조화를 이루고 지역색을 탈색시켰으며 각 정치세력이 균형을 이루어 각축하는 전혀 새로운 정당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그 맨 앞에 한명숙, 그 뒤에 문성근이 섰다.
한 전 총리와 문성근 후보가 1‧2위를 차지한 것을 두고 언론은 친노세력의 부활이라고 평가한다. 한 전 총리가 참여정부 때 국무총리를 지냈고 노무현재단 초대 이사장이었다는 점,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했던 문 후보 역시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직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그런 평가는 일면 타당한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명숙 신임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이끌려 정계에 투신한 이래 국민의 정부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한 인물이다. 문 후보 역시 부친 문익환 목사와 연결된 정치적 뿌리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깊숙이 닿아 있음이 분명하다. 이들의 등장은 이른바 친노의 부활이 아니라 김대중과 노무현의 완벽한 결합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이밖에도 대구출신인 김부겸 후보와 함께 6명 지도부의 출신지가 모두 다르다는 점, 연령별로도 40‧50‧60대가 고르게 포진한 점 등 민심은 민주통합당을 완벽하다 할 정도의 놀라운 구조물로 다시 빚어냈다. 다만 시민사회운동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이학영 후보가 탈락한 것이 아쉽지만, 누구 못지않게 시민사회운동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한 대표와 문 최고가 충분히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전 총리에게 대표출마를 강권하다시피 한 이들이 그 자리를 영광으로 여겨 그러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2년여의 기나긴 법정투쟁으로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그에게 또다시 십자가를 지운 것은 그가 민주진보세력을 이끌고 4월 총선과 12월 대선 승리를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역시 이명박 정권의 정치탄압을 온 몸으로 겪으며 “무너질 것 같다” “도망가고 싶다”는 나약한 마음을 “피할 수 없는 소명이라면 온 몸으로 받아들여 당당히 맞서 싸우겠다”는 결의로 극복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13일 항소심 무죄판결을 받아 낸 후 선언했듯 ‘진실과 정의가 권력을 이긴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혹독한 단련이 그를 ‘철의 여인’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정치탄압 통해 단련된 ‘철의 여인’, 진정성으로 무장하다
그가 이끌 민주통합당과 박근혜가 이끄는 한나라당의 결전은 실로 한민족의 운명을 건 역사적 대결이다. 이날 전당대회에서 표출된 민심의 요구는 경제민주화‧남북평화‧복지강화‧양극화해소‧검찰과 언론개혁 등등으로 요약된다. 절박한 부르짖음이다. 그런 부르짖음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총선과 대선에서 이기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쪽으로는 당을 쇄신하고 공천혁명을 이루어야 하며 다른 한 쪽으로 야권연대를 성사시켜야 한다.
민중의 요구에 정확히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한나라당은 열심히 얼굴에 분칠을 하고 새 옷을 갈아입으려 하고 있다. 화장으로 안 되면 분장도 하고 위장도 할 것이다. 여차하면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 형광등 1백개를 들고 덤벼드는 수구언론들의 ‘박비어천가’도 요란하다.
하지만 두려워하거나 초조해 할 이유는 없다. 묵묵히 정도를 가면 된다. 한명숙 대표에게는 ‘진정성’이란,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진정성이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에게 통했다. 이젠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들에게 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