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선언이 무너뜨린 '한명숙 죽이기'

2010. 12. 21. 15:40사람 사는 세상

[한명숙 전 총리 2차공판 참관기] 양심선언이 무너뜨린 '한명숙 죽이기'
추천 : 15 반대 : 0 신고 : 0 조회수 : 506 등록일 : 2010.12.21 12:01
김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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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본능에서 본성으로 발전한다

- [한명숙 전 총리 2차공판 참관기] 양심선언이 무너뜨린 ‘한명숙 죽이기’


김형주
/시민주권 사무총장・전 국회의원


인간이 신비스러운 점은 본능과 더불어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본능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물질적인 생존력에만 관심을 쏟지만, 본성은 정신적이다.

인간은 지능을 통해 자신의 세상에 대한 이기배타적 지배를 강화하기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반이기적 도덕 판단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의식의 자기반성도 함께 하는 존재인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본능과 본성의 변증법적 통일은 역사발전에 있어서도 재현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본성의 정치’

며칠 전 <노무현재단> 송년회에 수많은 사람이 운집한 것도 노무현이라는 정치 지도자가 자신이 살겠다고 발버둥친 본능의 정치인이 아니라 남을 위하여 자신을 역사 속에서 던진 진실과 본성의 정치를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는 이기적 본능에서 이타적 본성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그리고 거짓에서 진실로 나아간다는 믿음을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거짓말하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오늘 나는 한명숙 전 총리 재판에서 한만호 증인의 번복된 진술을 통해 그 위대한 역사발전 원리를 재확인했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지하철 교대역을 나와 법원에 다다르자 입구 반대편에 ‘1위 시위’를 하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모습이 모였다. 주변에 있는 재단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한명숙 전 총리가 차에 내려 문재인 이사장의 1인시위 현장에 나타났다.

카메라 기자들이 모여들고 두 분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한 전 총리는 차로 현장을 떠났다. 기자들 때문에 걸어서 법원으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후 1시 반 경 법원 입구에는 제법 많은 기자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스포츠연예부 기자들. 그들은 왜 왔을까? 잠시 후 의문은 풀렸다. MC몽이 급한 걸음으로 법원 실내로 이동하고 있었다.

한 전 총리가 오시고 김상희, 유시민, 정세균, 이경숙 등 정치인들과 한 총리의 결백을 믿는 지지자들이 모여들고 이윽고 한 총리는 변호사들, 정치인들과 함께 건물 입구로 들어섰다. 오늘도 30여명이 앉는 좁은 법정에 기자들이 3분의 2의 좌석을 차지하고 30여명은 입석한 가운데 2차 공판이 시작되었다.

한만호의 번복된 진술

오늘은 한신건영의 대표였던 이 사건의 핵심 증인인 한만호에 대한 심문이 있는 날이다. 검찰의 심문은 기세등등하고 빠르게 시작되었다. 증인인 한만호씨는 청주 한씨로서 13대째 일산에 살았고 한씨 종친회 고양회장으로 일했으며 종중에도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등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비록 본인이 운영한 건설회사는 부도가 났지만 피해자 중 95%가 합의를 해줄 만큼 회사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적이 없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검찰은 강조하였고, 한 전 총리에게도 비교적 저렴한 조건으로 사무실을 임대하는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에 한 총리가 증인에게 넥타이를 선물하기도 하였다는, 말하자면 같은 청주 한씨 가문으로서 너무도 자연스러운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라는 점을 강조하려 하였고, 제법 그럴 듯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만호 증인은 증인석에서 일어나 한 전 총리뿐 아니라 한 전 총리의 비서였던 김모씨에게 정치자금과 금품을 제공했다고 증언한 적은 있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밝힘으로써 법정 분위기는 180도로 달라졌다.

그렇게 거짓 진술을 한 것은 회사를 되찾으려는 욕심과 제보자인 남모씨가 찾아와 한 전 총리의 서울시장 출마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신을 협박해 허위진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증인의 진술이 끝남과 동시에 현장에 있던 김모씨는 실신하여 병원으로 실려 나갔다. 재판장은 박수와 탄식이 일었다. 내 앞에 있던 강기석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은 “한만호씨 훌륭합니다”라고 외쳤다.

검찰의 공개적 ‘고문’

한만호 증인의 증언을 요약해 보면, 한만호씨는 한 전 총리와의 연관성과 관련해 진술을 부인해 오다가 회사를 되찾을 욕심으로 진술을 결심하고 3번에 걸쳐 3억씩 현금과 달러를 섞어 준 것으로 스토리를 구성하였단다.

다만, 첫 번째 전달한 3억원은 김모씨에게 전달했고, 한 전 총리에게 전달하지 않았으며 그것도 2억원은 부도난 직후 돌려받았고, 나머지 1억원은 부도가 난 상태에서 돌려받는다고 해도 다른 피해자의 몫이 될 것이기에 김모씨가 갖고 있는 게 더 낫겠다 싶어 돌려달려는 얘기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3억원의 행방은 일부는 자신이 사용하고 일부는 김모씨라는 임원에게 주었으며, 세 번째 3억원도 성과급 명목으로 자신의 회사 임원에게 제공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세 번째 건네준 돈은 이야기를 꾸미기도 어려워 아예 말없이 돈만 주고 나온 것으로 했다고도 했다.

또 그는 7년 가까이 약을 복용하였기 때문에 기억 능력이 현격히 저하되어 있던 데다가 8개월여의 수사에 지쳐 검찰 질문에 대충 수긍하고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로써 한 전 총리는 완벽하게 누명을 벗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검찰의 증인에 대한 공개적인 ‘고문’이 시작되었다. 검찰은 얼마나 탄탄한 증거에 입각해 기소하였는가를 입증해 보이려 했다. 자신들의 수사가 결코 강압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수사한 내용도 전적으로 증인의 말에 의한 것임을 성실하게 증명해 보이려고 애쓴 것이다.

변호인들은 여러 차례 그러한 검찰의 비효율적이고도 지리한 질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였다. 검찰은 증인이 거짓 자백한 것이라는 말을 했음에도 그 내용을 재확인하려고 발버둥을 친 것이다. 심지어는 이제는 증인이 기억을 되살리려고 갖고 있던 메모를 강제로 법정에 제출하라는 생트집을 잡기까지 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하였다.

증인, ‘생존의 단계’를 뛰어넘다

한만호씨의 증언 번복을 보면서 심리학자 클레어 그레이브스와 같이 인간의 심층적 가치의식을 연구한 결과에 대해 재인식하게 된다. 인간의 가장 낮은 단계는 생존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가 친족정신 단계, 세 번째 단계는 불법과 탈법의 권력추구, 그 다음 단계가 종교와 같이 절대적 진리에 대한 복종 단계라는 것이다. 이 단계들은 모두 소유론적 패러다임의 낮은 단계에 해당된단다.

한만호씨는 처음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같은 종씨인 한 전 총리에게 누명을 씌웠으나 어쩌면 뒤늦게나마 한씨 문중의 자랑스러운 인물 중 한 사람인 한 전 총리에게 오명을 뒤집어씌우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테고 아니면 문중으로부터 질책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훌륭한 이유는 역사가 언젠가는 진리를 드러낼 것을 너무 늦기 전에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사건에는 교회신축 공사 수주를 둘러싼 검은 돈의 전달과정이 등장한다. 한만호씨가 돈을 만들어서 실제 전달한 사람은 교회에서 신축공사에 관여한 장로이다. 그는 공사 수주 전에 이미 수억 원의 돈을 요구해서 받아 가로챈 것이다.

이것은 결코 소수의 사례라고 볼 수 없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나만 살면 된다거나 우리 친족과 종씨끼리, 혹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니면 내가 믿는 것만 진실이라는 사회 풍토가 낳은 우리 사회 일반의 사례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남의 도움을 받을 때 자신이 보답할 수 있을 경우에 ‘고맙다’는 말을 하지만 자신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그에 대한 응답을 할 수 없을 때는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오늘 방청을 통해 정치인은 결코 다른 사람의 도움에 대해 고마움을 표해서는 안 되는 존재여야 한다는 씁쓸한 교훈을 얻었다.

본성이 본능을 이기는 장면

사실 재판 참관 이후 억제된 그러나 숨길 수 없는 나의 감정은 분노였다. 소위 우리 사회의 엘리트라고 하는 검찰의 능력과 행태에 대해 화가 나는 내가 오히려 순박한 것일까?


학교는 무얼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기가 막힌다. 아니 바로 그 시각 연평도에서 사격하는 군을 무기력하게 숨졸이며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 가슴은 어떤 감정이었을까를 생각하면 검사들의 생고문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돌아오는 지하철의 숨막히는 틈 속에서 스마트폰으로 고스톱을 치고 있는 사람은 왜 또 그렇게도 많은지. 혹시 너무도 말도 안 되는 세상에 대한 등돌림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지.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진실이 거짓을 이기고 역사 앞에 튀어 오르는 바로 그 본성이 본능을 이기는 장면을 목격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역사가 우리 편임을 말해주는 증거이며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무언가를 희망하며 살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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