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 정부와 기업, 보수언론이 알려주지 않았던 진실

2010. 6. 25. 10:27관심사

가난한 환자가 끝내 못하는 말 "살고 싶다"
[1만1000원의기적④] 정부와 기업, 보수언론이 알려주지 않았던 진실
10.06.25 09:44 ㅣ최종 업데이트 10.06.25 09:47 이진석 (news)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자'는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민이 어떤 질병에 걸려도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뜻이다. 이들은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에 손을 벌리기에 앞서 국민 스스로 보험료 부담을 조금 더 늘리자고 제안하고있다. 지금보다 건강보험료를 1인당 월평균 1만1000원 올려서 모든 사람이 필요한 혜택을 받을수 있도록 한다는 것. <오마이뉴스>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의료복지혁명을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심도있게 고민해본다. 네 번째는 이진석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의 글이다. <편집자말>
  
드라마 <뉴하트>의 한 장면.
ⓒ MBC
건강보험

"당신들이 병원비 내 줄 거야! 쓸데없는 치료 그만 하고 퇴원시켜 달라는데 웬 참견이야!"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에서, 그리고 병실에서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고성이다. 이대로 퇴원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으니, 병원에 더 머물면서 검사와 치료를 받으라는 의료진에게 항의하는 환자 보호자의 목소리다.  

 

이내 언쟁은 형제, 남매간으로 번진다. 이대로 계속 치료하다가는 남은 가족들이 다 죽는다는 오빠의 하소연과 아버지를 그냥 죽게 놔둘 거냐는 여동생의 통곡이 뒤엉킨다. 환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듯 질끈 눈을 감고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한 대부분의 환자들은 퇴원을 자청한다. 그리고 '퇴원 후 발생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병원의 책임은 없다'는 자의 퇴원서를 쓴다. 이렇게 퇴원한 환자의 일부는 자신의 집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구급차 안에서 세상을 떠난다.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아는 환자가 정말 하고 싶었지만 끝내 못한 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지옥,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지옥의 고통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을 찌르고, 베고, 물어뜯는 일을 영겁의 세월 동안 쉼 없이 해야 하는 고통'으로 묘사했었다. 그렇다면, 지옥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남은 가족들이 살기 위해서 사랑하는 부모 혹은 남편 혹은 자식의 생명 줄을 끊는 그 순간이 바로 생지옥이다.

 

'내가 만약 우리 가족이 경제적으로 감당 못 할 큰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할까?'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라면, 이런 상상을 한두 번쯤은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런 상상을 한 가장들 중에서 제법 많은 사람이 가족들을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병원비 대느라 한 가정이 졸지에 거덜 나는 일을 주위에서 드물지 않게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국민의 병원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국민건강보험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제도적 틀은 세계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수하다. 하나의 보험에 모든 국민과 모든 의료기관을 포괄하고 있다. 부유한 사람은 보험료를 더 내고, 가난한 사람은 보험료를 덜 낸다. 그리고 국민과 기업과 정부가 분담해서 재정을 마련한다. 그리고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은 모든 국민이 골고루 누린다. 사회통합과 사회연대의 정신이 응축된 그야말로 아름다운 제도이다.

 

그런데, 이런 국민건강보험의 중요한 흠결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보장성이 낮아서 국민의 병원비 부담을 제대로 덜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환자 보호자들이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 줄을 끊고, 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는 끔찍하고 비장한 상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의료 불안, 병원비 걱정을 비집고 파고드는 것이 바로 민간의료보험이다. 국민건강보험이 국민의 일상적인 불안과 걱정을 해결해 주지 못하니, 믿을 것은 민간의료보험밖에는 없는 셈이다.

 

민간의료보험시장이 급팽창한 이유...의료 불안과 병원비 걱정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
ⓒ 화면캡쳐
건강보험

 

2008년 민간의료보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간의료보험 가입자가 부담하는 월평균 민간의료보험료는 십수 만원에 이른다. 1인당 국민건강보험료가 월평균 3~4만 원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민간의료보험료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지난 5년 사이에 2배 가까이 늘어난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크기는 그 기간 동안 증폭된 의료 불안과 병원비 걱정의 크기에 정확히 비례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최근 들어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팽창 속도가 한층 가속화됐다는 점이다.

 

"나는 살고 싶다"는 말을 끝내 못한 채 환자 스스로 병원 문을 나서도록 만드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 줄을 끊는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큰 병에 걸리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는 끔찍하고 비장한 상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오로지 민간의료보험밖에 없는가?

 

나라 꼴 갖춘 나라 중에서 미국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처럼 의료 불안과 병원비 걱정을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고 떠넘기는 나라는 없다(영국에는 긴 병에도 효자 있다병원이 환자에게 교통비 주는 나라를 상상하라).

 

적어도 돈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고, 생명을 버리는 일은 없도록 국민을 안심시키고 보호하는 것이 국격을 갖춘 나라의 기본적인 소임이다. 그리고 이런 나라들은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는 것을 통해 이 소임을 다하고 있다.

 

이런 나라들이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 명쾌하다. 평소에 국민건강보험료(국영의료체계를 채택한 나라는 조세)를 좀 더 내는 것이다. 그 대신, 국민 누구라도 병에 걸리면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혜택을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국민건강보험료를 좀 더 내자는 주장이 낯설고 어색할 수도 있다. 특히,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나는 1년에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는데, 왜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느냐'는 반문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의료 불안과 병원비 걱정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와 나의 가족, 그리고 우리 이웃의 일이다. 연로하신 부모님, 갓 태어난 아이, 잦은 병치레를 하는 가족과 일가친척, 그리고 병원비 문제로 지금 이 순간도 생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 이웃을 구할 수가 있다.

 

정부와 기업, 보수언론이 알려주지 않았던 건강보험의 진실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할 수 있도록 국민건강보험을 발전시키는 것은 원래 정부가 먼저 나서서 해야할 일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는 당최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적자이고, 이대로 두면 파탄난다는 말은 어제 오늘 들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예전에는 그나마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늘리면서 재정이 어려워졌었는데, 최근에는 혜택을 늘리는 것 없이 국민건강보험의 숨통을 틀어쥐어서 재정이 어려워진 것이다. 그 와중에 국민건강보험은 점차 고사되고 있다. 그리고 민간보험사들은 표정 관리를 하느라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지난 6월 9일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오는 7월 중순 공식 출범할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는 병원비 걱정 없는 사회를 시민의 힘으로 직접 만들자는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풀뿌리 운동이다. 지금까지 정부와 기업과 보수언론이 알려주지 않고 은폐했던 '국민건강보험료를 좀 더 내면, 민간의료보험 없이도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는 단순 명쾌한 진실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시민의 힘을 모아서 이를 실현하자는 운동이다.

 

어떻게 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을까? 먼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블로그에 와서 운동에 동참하면 된다. 공식 누리집은 7월 중순 오픈할 예정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터인 가정, 직장, 동네에서 가족, 동료, 친구, 이웃들과 병원비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주제로 토론하고, 이들이 이 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도우면 된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시민이 수십 명이면, 정부는 본 척도 안 할 것이다. 수백 명이면, 외면할 것이다. 수천 명이면, 움찔할 것이다. 수십 만 명이면,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을 것이다. 그리고 수백 만 명이면, 시민의 힘에 굴복할 것이다. 시민의 힘이 모이면, 병원비 때문에 수많은 환자가 끝내 삼켜야만 했던 마지막 말을 마침내 편하게 내뱉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