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재미있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정치인들에게 말이 중요하니 말과 관련해 웃지 못할 일들이 많다.
#에피소드 1
상임위 위원장의 회의 진행은 해당 상임위 전문위원이 써준다. 대체로 법률적 형식(의결 등)이 필요하므로 그대로 읽는 경우가 많다. 초짜 위원장,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간다. 동료의원들 ‘잘하는데...’ 이게 웬 걸.. 잘 나가다가 “의사봉 3타”라고 말씀하신다.
의사봉을 세 번 두드려야 하는데 써준 글에 “의사봉 3타”라고 써 있으니 의사봉 3타라고 읽어버렸다.(부끄부끄)
#에피소드 2
의원과 보좌관 사이가 편한 사이도 있고, 상하가 엄한 사이도 있다. 아무리 친해도 다소 간극은 있다. 보좌관이 의원의 지역구에 도전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보좌관들은 국회의원을 협박(?)해서 지역구에서 지방의원이나 단체장 공천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보좌관이 의정활동을 대부분 하는 것은 현실이다.
의원이 보좌관을 혼을 내주었다. 보좌관은 내심 ‘한문도 잘 모르면서.... 의원이 너무 권위적이다.’ 보좌관은 너무 너무 화가 났다. 보좌관은 국회의원에게 질문서를 만들어 주었다. 보좌관이 쓴 질문서를 읽으려고 회의장에 앉아 서류를 꺼내는데 이게 웬일인가? 전부 한자로 질문지가 써 있다. 앗.. 이외에 재밌는 일들이 많다.
각설하고..
#기억 하나,
88년 노무현 국회의원이 첫 당선되었고 노동 분야 대정부 질문을 맡았다. 우리는 자료를 수집하고 노무현 의원은 연설문을 직접 쓰셨다.
대정부 연설은 좋은 평을 받았다.
13대 첫 본회의다 보니 이런저런 말들도, 평가도 있었다.
당시 노무현 국회의원 “연설문을 자기 손으로 쓸 수 없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많이 와 닿는 말씀이었다.
정치인들의 천편일률적인 연설은 감동이 없다. 나도 국회의원을 하지만 ‘정치인들이 쓰는 단어를 다 합치면 몇 백 단어나 될까’하는 회의가 들 때가 많다.
#기억 둘,
노무현 국회의원은 글을 매우 신중하게 천천히 쓰시는 분이었다.
원고지 10매 쓰시는데 아주 오랜 시간 공을 들이셨다. 강연을 준비하려고 하면 자료 조사도 많이 해야 한다. (자료를 모으고 인용 시에는 반드시 근거자료 페이지를 명기할 것을 요구하셨다.)
‘10분 말하려면 100시간은 공부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강연 주제를 정하면 가설을 세우고, 자료를 수집한다. 그러다 보니, 노무현 의원실은 국회 도서관에서 책을 가장 많이 빌려가는 방이 되기도 했다. 열심히 노력해서 독서카드(자료)를 만든다. 완성된 문장을 직접 만드시기에 카드로 자료 준비를 한다.
보좌관인 입장에선 오늘 강연에서 내가 드린 카드를 몇 장이나 쓰실까가 신경 쓰인다. 보통 한 강연에 30장 - 50장 정도의 자료를 밤새 준비한다. 그러면 많이 쓰시면 5장 정도이다. 어떨 땐 1 - 2장 쓰실 때도 있다. 그럴 땐 정말 맥이 탁 풀린다.
나도 꾀가 생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비상한 기억력은 노동시간을 배가시킨다. 자주 쓰시는 카드는 up-date를 계속해 나간다. 그리고 안 쓰는 것들은 나도 차츰 잊어버린다.
그러다 차를 타고 가시다가 문득 오늘 가지고 오지 않은 카드 내용 중 하나를 물으신다. 예를 들어, “영국 왕립위원회에서 아동 노동실태 조사를 한 후, 공장법이 만들어진게 몇 년이지?”
몇 년??(…) 꿀 먹은 벙어리…
난 내가 준비를 했었으니까, 머리를 굴려서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받았으니까 1789년 넘고 등등을 생각해서 1810년이라고 말씀 드린다.
노무현 국회의원의 말씀 “1810년?? 1802년 아니냐??” (당해 보지 않으신 분들은 모르실 것, 그 화끈거림)
순간, 창피한 마음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아 내가 만든 독서카드를 다 보시는 구나, 강연에 쓰시지 않을 뿐이지’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감사한 마음도 들고 그랬다.
그 결과는 뻔하다. 내 노동 강도는 더 강해질 수밖에 덕분에 계속해서 책을 보고, 자료를 보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다.
장·차관이나, 청와대 참모진들은 이 글을 보면 기억나는 것들이 한 두 가지씩은 꼭 있으리라고 본다.
장관 하신 분들하고 모임을 한 어느 날이었다.
“보고서가 두 달 전에 낸 것하고 인용하는 통계가 다른 것 같은데, 논리가 왜 바뀌었지요? ”라고 물으셔서 쩔쩔 매었다는 어느 장관님... (보고서는 전부 전자문서로 되어 있기 때문에 대통령께서는 문서를 즉시 검색할 수 있다.)
그 장관님은 “노 대통령께서 끝없이 진화하시는 것 같다.”고 하시며 더 큰 문제는 대충 넘어 갈 수 없다는 점이다.
늘 겉만 보시지 않고, 꼼꼼히 자료를 보시는 노 대통령의 연설문은 거의 직접 다 쓰신 것이다.
#기억 셋,
강연을 하러 가시면 모시고 가는 경우가 많다. 많은 시간을 차 안에서 이런 저런 말씀을 하셨다.
‘글을 직접 쓰는 지도자’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된 동기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요약하면 이렇다.
『대전서 판사를 그만두고 부산서 개업을 했다. 부산에서 변호사를 할 때 아마 당시는 변호사들이 판사나 검사들과 자리를 할 때 접대를 하곤 했다. 어느 날 모임에서 변호사들은 직접 변론서를 쓰지도 않는다는 등의 모욕을 당한 일이 있었다.
노무현 변호사 밥상을 뒤집어엎고 자리를 나왔다.
다음날부터 모든 사건은 변호사가 직접 상담하고 변론서도 직접 썼다. 승소를 많이 했다. 억울한 사람들의 애기를 직접 듣고, 자료를 찾고 했다.』
노 대통령님의 글은 짧다. 그리고 쉽다. 연설에는 삶이 있다. ‘여보 나 좀 도와줘’ 책을 쓰시고, 책 제목도 직접 정하셨다.
“원고지 8-10매가 제일 어렵다.“ 고 말씀하시던 그때가 생각난다.
http://www.yeskj.or.kr/sub.asp?id=memorial&mode=read&subID=35&cid=&no=9&p=1&q=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