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잊었을까봐 두려웠어, 6학년 4반 내 새끼들 고맙다"

2009. 2. 14. 22:18관심사

"날 잊었을까봐 두려웠어, 6학년 4반 내 새끼들 고맙다"
일제고사로 해직된 청운초 김윤주 교사가 본 졸업식
  김윤주 (news)
  
일제고사 관련 해임된 김윤주 교사가 13일 오전 담임으로 근무한 서울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졸입식에 참석했으나, 김 교사 해임 이후 담임을 맡은 교감이 교단에 서서 졸업식을 진행했다. 김 교사가 학교 공식 졸업식이 끝난 뒤 교단에 서서 아이들로부터 '우리 선생님을 돌려주세요'가 적힌 카네이션을 받고 활짝 웃고 있다.
ⓒ 권우성
김윤주

13일은 우리 반 아이들 졸업식이었다. 하지만 내겐 '결.전.의.날.' 왜? 난 해직교사니까. 교장은 나에게 올 거면 그냥 축하자로서 오라는데, 난 담임으로 갈 생각이었다. 내가 무슨 동네 이모인 것도 아니니까.

 

"선생님, 졸업식 꼭 오실 거죠??"

"당근이지! 샘 성격 알지? 한다면 하는 거. 홍길동처럼 학교 담이라도 넘어간다. 기둘려!"

 

약속했으니 꼭 가야 한다. 저 약속을 했던 때가 그러니까 12월 19일. 해직통보 직후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겠다고 교실에 들어갔을 때다. 내가 아무리 '등빨'이 좀 있기로서니 나 하나 끌어내 보겠다고 경찰·교장·교감·장학사·교육청 초등과장·행정실장 등이 모였다. 그래도 우릴 떼어놓진 못했다. 우리 반 애들 '등빨'도 나 못잖았으니까.

 

1년을 보낸 아이들과 인사할 시간조차 안 주고 애들 눈앞에서 담임을 쫓아내면서, 듣는 이 하나 없어도 불법타령 한 곡조씩 완창해 주시는 센스라니. 그날의 살벌한 분위기로는 애들 졸업식에 다시 오려면 변장과 월담은 필수로 보였다. 그러나 내 분노와 그리움의 게이지 역시 그 못지않았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난 금요일, 난 유유히 교문을 지나 교실 코 앞에서 멈췄다.

 

'움. 시시한데? 하지만 이젠 날 막아서는 이 없건만 너무너무 두렵고 떨린다. 경찰도, 교장도 아닌 아이들이. 날 잊었을까 봐, 분노와 상처로 망가졌을까 봐, 전처럼 가슴 아프게 통곡할까 봐.'

 

그 두려움이 얼마나 컸던지, 졸업식에 가기를 주저할 정도였다. 교실 앞을 한참 서성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들어간다!

 

"전부 자리에 앉아라!!!!"

 

위풍당당 복식호흡. 보무도 당당하게 앞문 열며 소리쳤다.

 

"어? 와!!!!!!!!!!!!!!!!!!!!!"

 

밝게 웃으며 환해지는 아이들. 코끝이 찡~~. 나를 잊지도 않았고 통곡하지도 않는다. 너무너무 안심이다. 반갑다 반갑다 반갑다 내 새끼들.

 

졸업장을 받았다 다시 걷어놓은 아이들

 

  
김윤주 교사가 졸업생들이 모두 떠난 교실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흐느끼고 있다.
ⓒ 권우성
김윤주

새 담임인 교감샘에게 아이들이 너무 심하게 막 굴었다는 전언을 얼마 전에 받은 지라, 걱정이 많았다. 예의 바르게 정성 들여 키운 아이들인데, 내 일로 망가진 것 같아 괴로웠다. 하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나를 안심시켰고 감동시켰다.

 

아이들은 졸업장을 다시 걷어놓았다, 나에게 받겠다고. 상장도 다시 내게 주었다, 나에게 받겠다고. 예쁜 편지들도 적어놓았다. 꽃도 가슴에 달고 있다가 내 가슴에 다시 달아주었다. 노래도 불러주었다. 우리가 장기자랑 삼아 연습했던 노래, <꿈꾸지 않으면>.

 

우리들의 추억을 담은 동영상도 만들어 틀어주었다. 그래, 잘 키웠다. 나 괜찮은 선생이었나보다. 내가 키웠다. 아니 지네들이 알아서 컸다. 감동적이다. 가슴이 뜨겁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옹달샘을 만들고 있었다.

 

사실 며칠 전에 졸업식 문제로 아이들이 전화를 여럿 걸어왔다. 졸업식을 강당 아닌 교실에서 해치운다는 소식에 분노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서러운 교실에서 도둑처럼 해치울 줄 알았나 보다.

 

"그래? 잘됐네. 전에 ○○이가 선생님한테 만들어 보내준 동영상이나 교실에서 학부모들과 함께 보지 뭐."

 

사실 졸업식 30분 전에 전화도 받았다.

 

"선생님, 학교에 계시면 지금 빨리 들어오세요, 교감 샘이 졸업장 억지로 나눠주고 있어요!!!! 우리는 샘한테 받고 싶어요, 어떡해요!!"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래? 그럼 그냥 받았다가 걷어놔, 내가 다시 주면 되지 뭐."

"아하! 그런 방법이? 네~"

 

신나는 목소리로 딸각.

 

그래, 다 내가 사주한 거다. 그럼 이렇게 얘기할 사람 분명히 있을 거다.

 

'오오라, 그럼 그렇지, 애들이 뭘 알아서? 역시 배후세력 선동교사일세!'

 

'마음의 능력'을 가진 6학년 4반 제자들, 자랑스럽다

 

  
졸업식이 끝난 뒤 김윤주 교사와 졸업생들이 자신들의 이름이 적힌 손수건을 목에 두른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김윤주

하지만 그건 뭘 모르는 소리다. 교사는 호기심도, 감동도,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도 아이들 가슴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출구를 몰라 헤매는 것들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존재다. 그냥 가만 앉아서 관찰하고 평가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 해직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할 사람들 대신 엉뚱하게도 우리 반 아이들이 자책감을 짊어지고 산다. 하지만 아직 어리고 힘없는 아이들은 교감 샘에게 반항만 해볼 뿐 뭘 어떻게 할지 모른다. 선생님을 도와주고 위로해주고 싶지만 쑥스럽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럼 교사는 아이들이 그걸 할 수 있도록, 그래서 자책과 슬픔과 분노를 털고 기쁘게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존재다. 나는 감동받고, 그로 인해 아이들은 기쁠 것이고, 나는 아이들이 이렇게 예쁘게 자라고 있다는 그 사실에 진짜 감동이 차오르는 것이다.

 

그게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이고, 이것은 진실된 신뢰와 애정이 서로 간에 있지 않으면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감동받았다. 해직교사인 내가 혼자 편지 주고, 기념품 주고 끝나는 졸업식이 아니라 아이들도 내게 무언가를 주고 함께 만들어가는 졸업식을 선물해 주어서. 그 선물을 받는 사람이 나여서가 아니다.

 

슬픈 처지에 있는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줄 알고, 그것을 스스로 뿌듯해하고 행복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준 것. 아이들의 성장 자체가 내게 기쁨이었다. 내가 이 졸업식을 통해 정말로 주고 싶었던 선물도 바로 그러한 '마음의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아. 나는 너희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부디 나를 잊고 대신 그 아름다운 마음을 세상 곳곳에 자신 있게 뿌려주길 바라고 또 바란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나를 기억하는 것이고, 내가 너희들에게 주었던 사랑을 보답하는 것이다. 오늘 너희는 너무나 멋졌고, 자랑스러웠고, 예뻤다. 너희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행복하렴. 나도 행복할게. 쑥스러워 자주 해주지 못했던 말을 크게 외쳐보고 싶다.

 

"사랑한다, 6학년 4반 아이들아."

'관심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흐음...  (0) 2009.03.06
오바마 "기득권 세력과 싸울 준비 돼있다"  (0) 2009.03.02
해직 교사와 14살 아이들의 마지막 합창  (0) 2009.02.14
아하!  (0) 2009.01.30
동영상-경제는 상식이다(최진기)  (0) 2009.01.25